유세비우스, 그리스도가 과거에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지만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유세비우스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해와 빛에 비유했는데 이는 플라톤이 저서 『공화국 Republic』에서 보여준 비유를 상기하게 한다.
빛인 그리스도는 세상을 가득 채우면서 사망한 자와 불결한 자들에까지 닿게 되는데 그때 빛인 그는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는 하나님의 영적인 힘도 물질적인 실체와 접촉했을 때 본질은 고통을 받거나 손상을 입지 않는다고 했다.
유세비우스는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했음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만물이 수지화풍(水地火風)으로 구성되었다는 그리스인의 합리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예수가 생명 또는 운동이 없는 만물에 최고의 지성과 조화로운 운동을 처음 부여한 분임을 거듭 강조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움직이지 않는 원동자(the unmoved mover)의 개념도 그리스도에 적용했는데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만물을 혼돈으로부터 질서 있게 하여 만물이 제대로 성장하고, 또 완전해질 수 있도록 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유세비우스는 그리스도가 과거에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났지만 소수의 선지자와 의인들만이 그를 알아보고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서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가 전래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으로 무가치하고 비종교적인 유대인과 그리스인 모두에게 구세주로 나타났다고 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자선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11-13)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영혼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8-30)


그는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태어난 것은 신성을 모독한 사건이 아니었으며 십자가의 고난이 신성에 작용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같은 이치로 수금이 망가지고 현이 끊어졌다고 해서 연주가가 고통 받을 수 없는 것이라는 비유를 들었다.
그리스도의 본질에는 감관의 능력이 없는 까닭에 그리스도는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없는데 이는 빛이 진흙과 오염된 쓰레기에 닿았다고 해서 얼룩이 묻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비물질이며 영적인 것처럼 그리스도는 절대적인 인생과 영의 빛에 해당하므로 그리스도의 손에 몸이 닿았을 때 청결해지고 교화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린도전서 15: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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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우스
Athanasius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타나시우스도 유세비우스와 유사한 논리를 전개했는데 그리스도가 온전한 하나님이므로 비록 그분이 육체의 형체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십자가에 처형당할 때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광휘와 지혜이며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현존함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그는 성경에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언한 구절은 많지만 요한의 한 마디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3, 1:14 )


요한의 주장과 같은 내용을 바울에게서도 발견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독생자를 지상으로 보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7)


또한 그는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올 것을 선지자들이 예고했다며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는 이사야의 말을 지적했다.
아타나시우스는 하나님이 사람의 형체로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으로 성육신된 것이므로 하나님이 사람의 형체로 왔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사건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사람의 형체로 온 것과 사람의 모습으로 성육신된 것의 상이한 점은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으므로 사람은 그분이 하나님인 줄 알았다는 것을 다음의 성경 구절을 통해 증명하려 했다.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 (마태복음 8:2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모독했으니까)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노라 (요한복음 10:33)


하나님은 사람의 모습으로 성육신되었지만 여전히 신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골로새서 2:9)


그리스도는 인류가 지은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고통 속에 희생시켰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사야 53: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베드로전서 2:24)


그리스도는 신성을 지녔으므로 신성을 행동으로 나타내 보일 수 있었다고 했다.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모독한다)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 찌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요한복음 10:36-38)


아타나시우스는 인성을 지닌 예수의 육체와 신성을 지닌 그리스도의 영을 구별했는데 예수가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치유한 사건을 예로 들면서 팔을 뻗어 베드로의 장모를 일으킨 것은 인성을 지닌 예수였지만 그녀의 병을 치유한 것은 신성을 지닌 그리스도였다고 했다.
그리고 죽은 나사로를 살린 사건을 예로 들면서 나사로에게 말한 것은 인성을 지닌 예수였지만 죽은 나사로를 살린 것은 신성을 지닌 그리스도라고 했다.
그는 이런 사건들이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환상이 아닌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시간 안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었다고 보았다.
그리스도가 성육신된 예수는 보통 사람처럼 보여도 실상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자신이며 구세주라는 것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예수의 생애를 놀라운 하나님의 사건으로 인식하면서 만일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성육신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예수를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았을 것이며 예수의 행위로부터 결코 자유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수를 제2의 아담으로 해석한 바울의 신학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로마서 5:14)


그러나 죽음은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지배하였는데
아담이 지은 것과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그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원형이었습니다. (공동번역)


아타나시우스는 제2의 아담인 예수는 하나님의 영을 내재했기 때문에 죽음마저도 분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며 사람들은 그분으로 인해 더 이상 아담의 원죄에 의한 죽음으로부터 구속받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담이 상실한 영생을 그리스도가 회복했음을 강조하면서 아담이 지은 죄 값으로 인류는 저주받고 죽어야 마땅하나 그리스도가 인류를 대신해서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인류의 죄가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진 것이며 반면 인류는 영생을 누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역설했다.


그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만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5)


그리고 그리스도와 죄의 관계는 베드로의 말을 인용해서 설명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베드로전서 4:1)


그는 예수가 몹시 매를 맞고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육신은 고통을 당했을지라도 신성은 고통당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예수 생애의 의미는 속죄물이 되어 인류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한 데 있기에 예수 자신은 무죄하다고 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요한 I서 3:5)


결론적으로 아타나시우스는 예수의 온전한 인성을 강조하면서도 인성이 신성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고난당하고 높임 받은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인성에만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가 처녀 마리아에게서 영혼과 육신을 취한 것과 그리하여 신성과 인성 두 속성이 항구적 결합을 이룬 것을 그리스도가 하나의 인격을 구성하게 된 사유로 꼽았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성육신으로 인한 결합에서 진정한 주체가 되었으며 육신을 자기의 계시와 사역의 기관으로 삼았다.
그는 이런 결합을 염두에 두고 그리스도의 사역에는 신성과 인성이 모두 참여했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그리고 한 주체의 사역임을 역설하며 그리스도가 고난에 참여했지만 고난 받은 것은 신성이 아니라 인성이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아타나시우스는 종속론을 배척했다. 그에게 그리스도는 또 다른 하나님이 아니며 아버지에게서 유출된 영적인 존재로서 아버지보다 낮은 곳에 거하는 분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항상 자신을 나타내 보이고 발생시키는 분이기 때문에 아들도 이 같은 원리에서 발생되는 분이라는 것이 그의 신학의 요지이다.
그는 아버지는 신적 본체이고 아들은 하나님의 사역 중에 나타나는 외적인 행위에 해당한다는 논리를 폈다.

아들은 또 다른 하나님이 아니다. 이것은 설사 그분이 발생된 존재임을 의미하는 어떤 존재라고 할지라도 신성에서 그는 아버지와 동일한 분이다.
아들과 아버지는 두 분이 공유하는 독특한 본성과 하나의 신성이라는 동일성을 통해서 하나가 된다.


아타나시우스는 신격을 갖춘 위격들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특이한 방법으로 설명했다.
그는 하나님의 활동에 의해서 조건이 지워진 양위간의 차이점을 지적했다.
그에게 아버지는 활동의 근원이 되는 분이고 아들은 아버지의 외형적인 활동 중에 나타난 하나님이었다.
이때 성령도 함께 나타나서 각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였으므로 성령도 신성 안에서 동등한 분이라 볼 수 있다.
그는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신격화 될 수 있으며 만일 성령이 하나님 본체에 속한 분이 아니라면 갱신은 순수한 구원의 행위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그는 하나님의 외형적 활동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고 성부, 성자, 성령은 함께 활동하는 것이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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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오도레
Theodore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양성으로 존재할 수 있었느냐 하는 문제는 아타나시우스의 신학으로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 문제는 신학자들에게 아주 어려운 문제였다.
닛사의 감독 그레고리는 이 문제를 자신은 풀 수 없다고 다음과 같이 솔직히 고백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적인 요소가 어떻게 섞여질 수 있었는지 파악할 방법이 없다.


신성과 인성에 관한 신학적 문제에 가장 대립을 나타낸 것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였다.
전장에서 보았듯이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단성론(Monophysitism)이라는 극단적인 신학을 제시하면서 로고스-육신 그리스도론(Logos-flesh Christology)을 주장했는데 이 이론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로고스의 성육신이 골자였다.
이런 주장은 아리우스주의와의 논쟁에서 아타나시우스에 의해 특히 강한 목소리로 나타났다.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의 형체로 태어난 것이라면서 신성을 지닌 그리스도가 인간적 탄생을 공유함으로써 인류에게 영생을 주고 신적이며 영적인 속성에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아타나시우스의 이론을 받아들여 그리스도는 인간 예수의 이성만을 대신했을 뿐이며 그리스도에게는 인성과 신성이 따로 내재한다는 양성론을 주장하면서 두-본성 그리스도론(two-natures Christology)을 제시했다.
구원을 전제로 인성과 신성의 문제를 다룬 점에서는 두 학파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예수의 육신으로 변형되었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주장과 그리스도가 예수의 육신에 내재했다고 주장한 안디옥 학파는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안디옥 학파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달리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육체와 혼 모두 가졌을 뿐만 아니라 성장의 과정도 겪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더욱 긴밀한 관계로 연합할 수 있었으며 그 성장과정은 그리스도가 부활할 때 완성되었다고 했다.
니케아 신조를 받아들인 안디옥 학파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면서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변형된 것이 아니라 신성을 간직한 채 스스로 사람의 형체를 입고 자신을 사람의 본성에 연합시켰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사람의 본성을 하나의 신체적 기관으로 사용하면서 그 기관을 통해 활동한 것으로 이해했다.
이렇듯 두 본성은 각기 다른 것으로 존재하지만 자신들의 활동과 목적의 일치에 의해서 연합될 수 있었다는 것이 안디옥 학파의 주장이다.
안디옥 학파는 그리스도의 양성을 모두 손상됨이 없이 보존하는 방향으로 신학을 정립했다.
따라서 신성과 인성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으로 점차 융합되어가는 방식으로 변화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신적 본성을 가지신 분이지만 동시에 사람의 육체와 혼을 가진 진정한 사람이라는 것이 안디옥 학파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데오도레(428년에 사망)는 안디옥 학파의 중요한 신학자이면서 터키 몹쉬스티아(Mopsuestia)의 감독으로 그리스도가 예수의 이성만을 대신했다는 것으로는 중요한 구원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성경을 이탈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영원한 분이기 때문에 영원한 분만이 영원한 분을 낳을 수 있고 마리아가 낳은 분은 육신에 불과하므로 그리스도가 온전한 인간 예수 안에 거함이 마치 하나님이 성전에 계심과도 같았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일체됨을 부부의 일체됨에 비유했다.
그는 그리스도가 예수로 변형되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보고 그리스도가 예수의 몸에 내재했다고 표현함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리스도가 예수의 몸으로 변형된 것이라고 말한 변형론은 이교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데오도레는 변형 또는 변질(transformation, or transmutation)이란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캅파도키아 학파와 마찬가지로 용어를 제대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한 사람(prosopon)일지라도 두 속성(physeis)을 지닌 분이라는 데오도레의 주장에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반발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데오도레의 논리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두 개의 머리가 달린 괴물에 해당한다고 빈정거렸다.
데오도레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본질에서 하나라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두 속성을 가진 분이 하나로 연합되었음을 주장했다.


데오도레는 원래 변호사가 되려고 수사학을 공부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369년에 디오도루스(Diodorus, 394년에 사망)의 수도원에 들어가 10년 동안의 수도생활을 했다.
그를 가르친 디오도루스는 안디옥 학파의 창설자이면서 장로였는데 나중에 감독이 되었다.
데오도레는 15권 분량의 『성육신에 관하여 De incarnatione』를 썼는데 현존하지 않고 인용으로 일부만 알려져 있다.
그의 이론은 431년에 개최된 에베소 종교회의와 553년에 개최된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 이설로 단죄 받았다.
그리스어로 41권에 달하는 성경, 신학, 수도원에 관한 글을 썼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단편들만이 전래되고 있다.


당시 신학자들 간에는 예수에 내재하는 그리스도의 영이 하나님의 본질(ousia)의 문제냐 아니면 행위(energeia)의 문제냐 하는 주제로 열띤 논쟁이 벌어졌는데 데오도레도 이 문제에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그리스도의 영이 내재한 사람은 보통사람과 비교해서 다른 점을 지적했는데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영이 내재한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 소수에 불과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고린도후서 6:16)


데오도레는 그리스도의 영이 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문제도 아니고, 행위에 관한 문제도 아니며, ‘훌륭한 즐거움 eudokia’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했다.
이 ‘훌륭한 즐거움 good pleasure’은 하나님의 훌륭한 의지이기도 하며 그리스도의 영이 내재한 사람이 하나님에게 열심히 몰두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느끼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여호와는 말의 힘을 즐거워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기뻐 아니하시고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시편 147:10-11)


하나님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만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에 그들을 선택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일을 도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영이 내재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것이며 하나님은 한계가 없고 영원한 분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선택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거룩한 뜻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편 51:11)


데오도레는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거나 멀어지는 것은 사람의 마음의 태도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했다.
하나님은 우주적으로 현존하는 분으로 불의한 사람을 의도적으로 멀리하므로 불의한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현존하지 않는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소수의 사람으로부터 ‘훌륭한 즐거움’을 누리는데 하나님이 사람에게 내재하는 것은 바로 이 훌륭한 즐거움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재한 사람은 그분에게 다양한 ‘훌륭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나님은 사도와 의인에게 내재하며 그들의 덕행에 따라서 하나님이 누리는 ‘훌륭한 즐거움’은 다양하다.
그러나 이 같은 방법으로는 하나님이 내재한 그리스도에 관해서 설명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아들에게 내재할 때는 아들과 함께 일체가 되어 모든 영광을 아들과 함께 나눈다.


데오도레는 하나님이 아들과 더불어 한 위격(prosopon)이 되어 아들로 하여금 권위를 지닌 자신의 동업자가 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모든 언행을 아들을 통해 나타내며, 최후의 시험과 심판도 장차 올 아들을 통해 한다.


데오도레는 예수가 성령으로 태어난 분임을 지적하면서 성령으로 수태될 때 이미 그리스도인 하나님이 그에게 내재한 것이며 그가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렀을 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욱 지혜를 나타낼 수 있었다고 보았다.
예수가 세례를 받기 전부터였는지 아니면 그 후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고의 덕에 달하는 은혜로운 생애를 삶으로써 예수는 자신과 같은 인생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나타냈다.
그리고 예수가 부활한 후 하늘나라로 가서 하나님과 일체가 되는 완전한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데오도레는 예수가 그리스도인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행동을 한 적이 없으며 그리스도와 일체를 이룸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따랐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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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토리우스에 대한 시릴의 비난은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데오도레가 안디옥 학파를 대표할 만한 신학자라면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대표할 만한 신학자는 시릴이었다.
숙부의 뒤를 이어 412년에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된 시릴은 악명 높은 논쟁주의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알려졌었다.
그는 몹쉬스티아의 감독 데오도레의 신학을 단호하게 반박했다.
시릴이 사망하자 동시대의 한 사람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마침내 악인이 최후의 결전과 함께 사라졌다네. …
우리 영혼의 통치자께서 그의 적개심이 나날이 증대하여 교회를 해치는 것을 보시고는 암을 도려내듯이 그를 제거하셨네.…
그가 사망한 것은 생존자들을 기쁘게 해 주었지만 사망한 자들을 낙담시킬 것이네.
그의 부추김을 받은 사망한 동료들이 그의 망령을 우리에게 다시 보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사람들이 떨고 있다네.
그러므로 그가 다시 돌아올 수 없도록 장의사는 그의 무덤 위에 아주 크고 육중한 돌을 올려놓을 것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걸세.


428년에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 된 네스토리우스(Nestorius)는 모든 사람이 신성과 연합해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는 사람이어야 함을 주장하고 데오도레의 두 본성 그리스도론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신성과 인성을 지나치게 구별했으므로 과연 신성이 인성과 연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를 구원하는 데 기여했다고 했는데 두 속성에 대한 지나친 구별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고난은 인성의 몫이었을 뿐 신성의 고난은 아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빛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인류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의 신학은 논란거리가 되었으며 시릴이 특히 심하게 공격했다.


시릴과 네스토리우스의 대결은 안디옥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결이었다.
두 학파의 대결은 순수한 신학적 논쟁 외에도 교회의 정치관계와 개인적 야망 등이 함께 합세한 것이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일찍이 동방에서의 교권문제와 여러 신학적인 문제들로 안디옥 학파와 특히 네스토리우스를 중심으로 한 콘스탄티노플 학파와 경쟁관계에 있었다.
이런 터에 에베소 종교회의가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고 이에 반대 입장을 취한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선포함과 동시에 유배형에 처하자 네스토리우스 학파는 교회와 결별했다.
그들은 페르시아 지역에 교회를 세웠으며 그들의 교세는 아시아로 확산되었다.


네스토리우스에 대한 시릴의 비난은 개인적이기도 했는데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고 촉진시키기 위해 무리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를 가르켜 권모술수에 능한 대감독이라고 했다.
시릴은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하기 위해 감독들로 하여금 431년 에베소에 모이도록 했는데 이것이 제3차 세계종교회의였다.
에베소 회의는 알렉산드리아와 콘스탄티노플 두 감독 사이에 벌어진 교권적 대립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회의가 열리던 날 일기가 아주 사나워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한 시리아의 감독들이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지 못하자 시릴은 시간을 지체하면서까지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제안했다.
감독들이 그의 제안을 수상쩍게 생각하고 완강히 반대했지만 시릴은 일단의 이집트 수도승들의 협력을 통해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네스토리우스의 편을 들던 황제는 회의에서 시릴을 정죄할 구실을 찾고자 했는데 시릴은 형세를 역전시켜 콘스탄티노플의 대감독을 고소하고 폭력을 사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루터는 훗날 이 에베소 회의에 환멸을 표명했다.


시릴은 안디옥 학파의 두 본성 그리스도론을 받아들여 예수는 신성과 인성이 융합된 한 실체로 그리스도와 육신이 융합되어 있는 실체임을 역설했다.
그리고 예수에게 사람의 영혼이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신성이 인성과 융합되어 한 실체가 되었음을 강조했다.
또한 진리에 관해 말하면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진리가 모습을 나타내 보이지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진리가 모습을 감춘다고 했다.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 (잠언 2:15)

비뚤어진 길에 발을 들여 놓고 엇나간 짓만 하는 자들이다.
(공동번역)


이것은 하나님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마음이 비뚤어진 자로 규정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바른 길을 보여 주기 때문이라 했다.


사틀한 (비뚤어진)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01:4)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호세아 14:9)


또한 시릴은 허황된 이론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디모데전서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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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릴은 그리스도가 성육신되었을 때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시릴은 그리스도가 성육신되었을 때 이성적인 예수의 영혼도 그리스도에 융합되어 일체를 이루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요한이 그리스도가 예수가 되었다(요한 1:14)고 말했을 때 예수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융합되었다고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가 달라졌다고도 말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그리스도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인에게서 태어나 육신을 지녔지만 육신을 지니지 않았을 때는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그리스도였으며, 주였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속성은 한결같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가 육신을 지녔다는 것은 육신과 일체가 된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사람이 둘이 아닌 하나의 실체가 된다는 논리이다.
일체에 대한 그의 해석은 비록 사람이 이질적인 물질인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되어 있더라도 인성이라는 한 속성으로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치이다.
그리고 그 육신이 예수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속성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릴은 예수가 우리처럼 죄를 짓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실하게 해 두고자 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4:15)


시릴은 성육신을 인성과 본질의 완전함으로 이해했으므로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은 그리스도 인성의 완전함을 박탈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성육신되어 우리에게 나타났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예수가 하나님인 동시에 사람이며 또한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시릴은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를 그리스도의 육신으로 이해하고 그리스도가 사망한 적이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바울의 “성결한 영으로는 (거룩한 신성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로마서 1:3-4)라는 말을 인용해 자신의 주장을 옹호했다.


이 세상 통치자들은 아무도 이 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깨달았다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린도전서 2:8)


결론적으로 시릴은 아타나시우스와 나지안주스의 감독 그레고리와 마찬가지로 성육신된 그리스도로서의 하나님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 같은 그리스도-하나님이 이성을 포함한 비인격적인 사람의 본성을 취하고 자신은 아무 것도 희생한 것이 없었다는 논리를 진전시키며 “하나님에게는 변화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구속자로서의 활동이 변치 않는 하나님 자신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사건으로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신성과 인성의 인격적 결합으로서의 그리스도론, 즉 그리스도가 성육신되기 전에는 신성과 인성이 두 속성이었지만 성육신된 후에는 오로지 한 속성인 신성이면서 동시에 인성인 신적-인간적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는 논리를 폈다.


이런 점에서 단성론자들은 시릴이 자신들의 주장에 동조했다고 믿었다.
시릴은 그리스도는 수난을 받을 수 없는 분이지만 성육신을 통해서 자기의 것이 된 인간적 속성으로는 수난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시릴의 논리의 요지는 한 마디로 말하면 신성과 인성이 단일체로 결합되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예수의 신성과 인성은 서로 교체될 수도 혼합될 수도 없었다.
신성이 인성 가운데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양성이 각기 자기의 속성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네스토리우스와 시릴의 논쟁이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지자 황제 데오도시우스 2세는 두 사람에 의해서 교회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어 431년 두 사람을 공직에서 파면했다.
안디옥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더 이상 논쟁하지 않기로 하고 433년에 타협안으로 하나의 신조를 만들어 선포한 후 휴전을 공식화했다.
신조에는 안디옥 학파의 주장에 반대되는 내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이 신조는 안디옥 학파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시릴이 서명해 추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시릴은 복직되었으며 444년에 사망했다.


얼마 후 수도사 유티케스(Eutyches)가 그리스도론의 논쟁 무대에 등장했다.
유티케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찬동자로서 콘스탄티노플 근처에 있는 수도원 원장이었다.
그는 안디옥 학파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며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성육신된 후로는 오로지 한 본성만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우리의 인성과는 다르다는 것이 유티케스의 주장이었다.
그의 이론에는 모호한 요소가 많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리스도가 두 속성을 지닌 분이 아니라 한 속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는 대감독 플라비안(Flavian)이 주관한 448년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파면당하고 말았다.
이 문제는 교황 레오 1세(Leo I)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어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종교회의가 이듬해 에베소에서 소집되었으며 유티케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도움으로 본회의를 통해 본래의 직분에 복직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교황의 태도는 공한의 형식으로 플라비안에게 전달되었고 회의석상에서는 논의에 포함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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