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오도레
Theodore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다르며 어떻게 양성으로 존재할 수 있었느냐 하는 문제는 아타나시우스의 신학으로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 문제는 신학자들에게 아주 어려운 문제였다.
닛사의 감독 그레고리는 이 문제를 자신은 풀 수 없다고 다음과 같이 솔직히 고백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적인 요소가 어떻게 섞여질 수 있었는지 파악할 방법이 없다.


신성과 인성에 관한 신학적 문제에 가장 대립을 나타낸 것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였다.
전장에서 보았듯이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단성론(Monophysitism)이라는 극단적인 신학을 제시하면서 로고스-육신 그리스도론(Logos-flesh Christology)을 주장했는데 이 이론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로고스의 성육신이 골자였다.
이런 주장은 아리우스주의와의 논쟁에서 아타나시우스에 의해 특히 강한 목소리로 나타났다.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의 형체로 태어난 것이라면서 신성을 지닌 그리스도가 인간적 탄생을 공유함으로써 인류에게 영생을 주고 신적이며 영적인 속성에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아타나시우스의 이론을 받아들여 그리스도는 인간 예수의 이성만을 대신했을 뿐이며 그리스도에게는 인성과 신성이 따로 내재한다는 양성론을 주장하면서 두-본성 그리스도론(two-natures Christology)을 제시했다.
구원을 전제로 인성과 신성의 문제를 다룬 점에서는 두 학파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예수의 육신으로 변형되었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주장과 그리스도가 예수의 육신에 내재했다고 주장한 안디옥 학파는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안디옥 학파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달리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리스도는 사람의 육체와 혼 모두 가졌을 뿐만 아니라 성장의 과정도 겪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더욱 긴밀한 관계로 연합할 수 있었으며 그 성장과정은 그리스도가 부활할 때 완성되었다고 했다.
니케아 신조를 받아들인 안디옥 학파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면서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변형된 것이 아니라 신성을 간직한 채 스스로 사람의 형체를 입고 자신을 사람의 본성에 연합시켰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사람의 본성을 하나의 신체적 기관으로 사용하면서 그 기관을 통해 활동한 것으로 이해했다.
이렇듯 두 본성은 각기 다른 것으로 존재하지만 자신들의 활동과 목적의 일치에 의해서 연합될 수 있었다는 것이 안디옥 학파의 주장이다.
안디옥 학파는 그리스도의 양성을 모두 손상됨이 없이 보존하는 방향으로 신학을 정립했다.
따라서 신성과 인성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으로 점차 융합되어가는 방식으로 변화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신적 본성을 가지신 분이지만 동시에 사람의 육체와 혼을 가진 진정한 사람이라는 것이 안디옥 학파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데오도레(428년에 사망)는 안디옥 학파의 중요한 신학자이면서 터키 몹쉬스티아(Mopsuestia)의 감독으로 그리스도가 예수의 이성만을 대신했다는 것으로는 중요한 구원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성경을 이탈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영원한 분이기 때문에 영원한 분만이 영원한 분을 낳을 수 있고 마리아가 낳은 분은 육신에 불과하므로 그리스도가 온전한 인간 예수 안에 거함이 마치 하나님이 성전에 계심과도 같았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일체됨을 부부의 일체됨에 비유했다.
그는 그리스도가 예수로 변형되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보고 그리스도가 예수의 몸에 내재했다고 표현함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리스도가 예수의 몸으로 변형된 것이라고 말한 변형론은 이교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데오도레는 변형 또는 변질(transformation, or transmutation)이란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캅파도키아 학파와 마찬가지로 용어를 제대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한 사람(prosopon)일지라도 두 속성(physeis)을 지닌 분이라는 데오도레의 주장에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반발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데오도레의 논리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두 개의 머리가 달린 괴물에 해당한다고 빈정거렸다.
데오도레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본질에서 하나라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두 속성을 가진 분이 하나로 연합되었음을 주장했다.


데오도레는 원래 변호사가 되려고 수사학을 공부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369년에 디오도루스(Diodorus, 394년에 사망)의 수도원에 들어가 10년 동안의 수도생활을 했다.
그를 가르친 디오도루스는 안디옥 학파의 창설자이면서 장로였는데 나중에 감독이 되었다.
데오도레는 15권 분량의 『성육신에 관하여 De incarnatione』를 썼는데 현존하지 않고 인용으로 일부만 알려져 있다.
그의 이론은 431년에 개최된 에베소 종교회의와 553년에 개최된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 이설로 단죄 받았다.
그리스어로 41권에 달하는 성경, 신학, 수도원에 관한 글을 썼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단편들만이 전래되고 있다.


당시 신학자들 간에는 예수에 내재하는 그리스도의 영이 하나님의 본질(ousia)의 문제냐 아니면 행위(energeia)의 문제냐 하는 주제로 열띤 논쟁이 벌어졌는데 데오도레도 이 문제에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그리스도의 영이 내재한 사람은 보통사람과 비교해서 다른 점을 지적했는데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영이 내재한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 소수에 불과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고린도후서 6:16)


데오도레는 그리스도의 영이 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문제도 아니고, 행위에 관한 문제도 아니며, ‘훌륭한 즐거움 eudokia’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했다.
이 ‘훌륭한 즐거움 good pleasure’은 하나님의 훌륭한 의지이기도 하며 그리스도의 영이 내재한 사람이 하나님에게 열심히 몰두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느끼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여호와는 말의 힘을 즐거워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기뻐 아니하시고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시편 147:10-11)


하나님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만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에 그들을 선택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일을 도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영이 내재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것이며 하나님은 한계가 없고 영원한 분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선택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거룩한 뜻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편 51:11)


데오도레는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거나 멀어지는 것은 사람의 마음의 태도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했다.
하나님은 우주적으로 현존하는 분으로 불의한 사람을 의도적으로 멀리하므로 불의한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현존하지 않는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소수의 사람으로부터 ‘훌륭한 즐거움’을 누리는데 하나님이 사람에게 내재하는 것은 바로 이 훌륭한 즐거움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재한 사람은 그분에게 다양한 ‘훌륭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나님은 사도와 의인에게 내재하며 그들의 덕행에 따라서 하나님이 누리는 ‘훌륭한 즐거움’은 다양하다.
그러나 이 같은 방법으로는 하나님이 내재한 그리스도에 관해서 설명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아들에게 내재할 때는 아들과 함께 일체가 되어 모든 영광을 아들과 함께 나눈다.


데오도레는 하나님이 아들과 더불어 한 위격(prosopon)이 되어 아들로 하여금 권위를 지닌 자신의 동업자가 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모든 언행을 아들을 통해 나타내며, 최후의 시험과 심판도 장차 올 아들을 통해 한다.


데오도레는 예수가 성령으로 태어난 분임을 지적하면서 성령으로 수태될 때 이미 그리스도인 하나님이 그에게 내재한 것이며 그가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렀을 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욱 지혜를 나타낼 수 있었다고 보았다.
예수가 세례를 받기 전부터였는지 아니면 그 후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고의 덕에 달하는 은혜로운 생애를 삶으로써 예수는 자신과 같은 인생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나타냈다.
그리고 예수가 부활한 후 하늘나라로 가서 하나님과 일체가 되는 완전한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데오도레는 예수가 그리스도인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행동을 한 적이 없으며 그리스도와 일체를 이룸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따랐다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