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토리우스에 대한 시릴의 비난은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데오도레가 안디옥 학파를 대표할 만한 신학자라면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대표할 만한 신학자는 시릴이었다.
숙부의 뒤를 이어 412년에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된 시릴은 악명 높은 논쟁주의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알려졌었다.
그는 몹쉬스티아의 감독 데오도레의 신학을 단호하게 반박했다.
시릴이 사망하자 동시대의 한 사람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마침내 악인이 최후의 결전과 함께 사라졌다네. …
우리 영혼의 통치자께서 그의 적개심이 나날이 증대하여 교회를 해치는 것을 보시고는 암을 도려내듯이 그를 제거하셨네.…
그가 사망한 것은 생존자들을 기쁘게 해 주었지만 사망한 자들을 낙담시킬 것이네.
그의 부추김을 받은 사망한 동료들이 그의 망령을 우리에게 다시 보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사람들이 떨고 있다네.
그러므로 그가 다시 돌아올 수 없도록 장의사는 그의 무덤 위에 아주 크고 육중한 돌을 올려놓을 것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걸세.
428년에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 된 네스토리우스(Nestorius)는 모든 사람이 신성과 연합해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는 사람이어야 함을 주장하고 데오도레의 두 본성 그리스도론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신성과 인성을 지나치게 구별했으므로 과연 신성이 인성과 연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를 구원하는 데 기여했다고 했는데 두 속성에 대한 지나친 구별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고난은 인성의 몫이었을 뿐 신성의 고난은 아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빛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인류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의 신학은 논란거리가 되었으며 시릴이 특히 심하게 공격했다.
시릴과 네스토리우스의 대결은 안디옥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결이었다.
두 학파의 대결은 순수한 신학적 논쟁 외에도 교회의 정치관계와 개인적 야망 등이 함께 합세한 것이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일찍이 동방에서의 교권문제와 여러 신학적인 문제들로 안디옥 학파와 특히 네스토리우스를 중심으로 한 콘스탄티노플 학파와 경쟁관계에 있었다.
이런 터에 에베소 종교회의가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고 이에 반대 입장을 취한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선포함과 동시에 유배형에 처하자 네스토리우스 학파는 교회와 결별했다.
그들은 페르시아 지역에 교회를 세웠으며 그들의 교세는 아시아로 확산되었다.
네스토리우스에 대한 시릴의 비난은 개인적이기도 했는데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고 촉진시키기 위해 무리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를 가르켜 권모술수에 능한 대감독이라고 했다.
시릴은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하기 위해 감독들로 하여금 431년 에베소에 모이도록 했는데 이것이 제3차 세계종교회의였다.
에베소 회의는 알렉산드리아와 콘스탄티노플 두 감독 사이에 벌어진 교권적 대립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회의가 열리던 날 일기가 아주 사나워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한 시리아의 감독들이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지 못하자 시릴은 시간을 지체하면서까지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제안했다.
감독들이 그의 제안을 수상쩍게 생각하고 완강히 반대했지만 시릴은 일단의 이집트 수도승들의 협력을 통해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네스토리우스의 편을 들던 황제는 회의에서 시릴을 정죄할 구실을 찾고자 했는데 시릴은 형세를 역전시켜 콘스탄티노플의 대감독을 고소하고 폭력을 사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루터는 훗날 이 에베소 회의에 환멸을 표명했다.
시릴은 안디옥 학파의 두 본성 그리스도론을 받아들여 예수는 신성과 인성이 융합된 한 실체로 그리스도와 육신이 융합되어 있는 실체임을 역설했다.
그리고 예수에게 사람의 영혼이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신성이 인성과 융합되어 한 실체가 되었음을 강조했다.
또한 진리에 관해 말하면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진리가 모습을 나타내 보이지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진리가 모습을 감춘다고 했다.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 (잠언 2:15)
비뚤어진 길에 발을 들여 놓고 엇나간 짓만 하는 자들이다.
(공동번역)
이것은 하나님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마음이 비뚤어진 자로 규정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바른 길을 보여 주기 때문이라 했다.
사틀한 (비뚤어진)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101:4)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 (호세아 14:9)
또한 시릴은 허황된 이론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디모데전서 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