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그룹 사람들은 무소유 무욕한 생활로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Q그룹 사람들은 무소유 무욕한 생활로 세상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진리만 추구했다.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먹고 마시는 일에는 무관심했으므로 겉으로 보면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성행한 견유학파들(the Cynics)과 다르지 않았다.
견유학파들은 일찍이 금욕주의 생활을 하면서 진리만을 옹호했는데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은 마치 견유학파 스승이 제자들에게 주는 가르침처럼 들린다.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누가복음 12:34, Q복음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누가복음 6:39, Q복음서)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누가복음 11:10, Q복음서)


그러나 Q그룹 사람들에게는 견유학파와 다른 점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에 건설하려는 의욕이 있었으며 행동이 뒤따랐고 새 세상을 창조하려는 의지와 믿음으로 활기가 넘쳤다.
예수는 제자 70명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지침을 말했다.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은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누가복음 10:4-11, Q복음서)


Q그룹 사람들은 정의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이웃에게 나타내는 일에 노력했고,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의 그릇된 신학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예수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에게 말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누가복음 11:42, Q복음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태복음 23:27, Q복음서)


Q그룹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을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자신들의 노력에 반대하는 자들로 여겼다.
하나님의 나라는 궁극적으로 역사의 끝에 가서야 이루어질 일이겠지만 Q그룹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사업에 반대하는 사악한 자들은 최후의 날에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 했다.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누가복음 19:26, Q복음서)


Q그룹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를 심판과 회개를 촉구한 훌륭한 선지자로 평가하면서 예수를 요한보다 위대한 분으로 인식했다.
그들에게 예수는 최후의 심판자이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누가복음 3:7-9, Q복음서)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누가복음 3:16-17, Q복음서)


Q그룹 사람들은 요한과 예수 두 사람이 서로를 잘 이해했다고 믿었다.
요한은 감옥에 갇혔을 때 제자 두 사람을 예수에게 보내어 내가 기다리는 메시야가 당신이냐고 물었다(누가복음 7:18-19, Q복음서).
예수는 자신이 질병과 악귀에 들려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고치고 있는 사실을 요한에게 전하라면서 요한의 질문에 긍정적으로 응답하였다.
요한에 대한 예수의 칭찬은 대단했는데 선지자보다도 위대한 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여자가 낳은 자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없다는 말로 극찬했다(누가복음 7:22-28, Q복음서).
그러므로 Q그룹 사람들에게 요한은 예수와 비교될 만한 훌륭한 선지자였다(누가복음 7:31-35, Q복음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공관복음서의 문체는 다분히 선언적이다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공관복음서의 문체는 다분히 선언적이다. 저자들이 구두로 전래되는 이야기를 명료하게 문자화했다는 느낌이다.
그들이 Q복음서 외에 참고한 것을 선언 이야기라고 한다.
예수를 따른 무리의 수가 한때 사천도 되고 오천 명도 되었으므로 그를 증언한 사람들의 그룹은 하나가 아니었을 것이며 또한 여러 그룹의 사람들이 각기 전래한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선언 이야기도 이런 것들 중 하나이다.
누가는 신원미상의 데오빌로라는 인물에게 편지 형식으로 복음서를 썼는데 그도 자료를 수집해서 쓴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누가복음 1:1-4)


선언 복음서의 특징은 누군가의 질문에 예수가 응답한 형식의구성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가복음 2:17, 선언복음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마가복음 2:19, 선언복음서)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가복음 9:35, 선언복음서)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가복음 10:25, 선언복음서)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누가복음 12:13-14, 선언복음서)


이런 문답 형식 문체는 그리스인의 문헌에서 쉽게 발견된다.
그리스인은 현인들의 가르침을 문답 형식으로 기록했다.
맥교수는 선언 복음서를 가장 많이 인용한 사람으로 마가를 지목하면서 그가 인용한 구절을 열거했다.
마가 복음서 1:35-38, 2:1-12, 15-17, 18-22, 23-28, 3:22-30, 31-35, 4:10-20, 6:1-6, 7:1-15, 24-30, 8:11-12, 31-33, 9:9-13, 35-37, 38-40, 10:2-9, 13-16, 17-22, 23-27, 35-45, 11:27-33, 12:13-17, 18-27, 28-34, 35-37, 41-44, 14:3-9.


선언 그룹 사람들도 Q그룹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바리새파와 대적했으며 예수와 바리새인과의 잦은 논쟁을 기록했다.
다음 구절들에 이러한 선언 복음서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너희 선생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마가복음 2:17, 선언복음서)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마가복음 2:18, 선언복음서)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마가복음 7:5, 선언복음서)

저희가 (제자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마가복음 2:24, 선언복음서)

왜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는가?
(마가복음 14:5, 선언복음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신약성경
The New Testament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정경(canon)은 그리스어 kanon에서 유래한 말인데 규칙(a rule) 또는 고정된 기준점(standard)이란 뜻으로 교회에서 정통성을 인정받은 문서라는 뜻이다.
경(Scripture)이라면 의례 구약성경(The Old Testament)을 뜻하지만 교회가 예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을 채택하면서 이를 구약성경과 구별하기 위해서 신약성경이란 말을 사용한 것이다.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us Martyr, 100-165)가 신약성경이란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서 이 말이 교부들에 의해서 일찍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 바울의 서신은 2세기 말경 이미 교회에서 정경으로 채택되었는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150-215)는 요한의 계시록도 정경에 포함시켰다.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문서들은 교회에서 구약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인정받았는데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60-225)는 “율법과 예언자들”과 나란히 “복음적이고 사도적인 문서들”이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그 밖의 문서들도 점차 교회에서 영감을 받은 신약성경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367년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가 회람시킨 그의 39번째 부활축일 목회서신에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27권의 신약성경 목록이 적혀 있는 것에서 27권이 그때 이미 정경으로 채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신약성경 가운데 몇 권은 정경에 포함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한때 논란이 되었다.
서방 교회는 히브리서가 사도의 저술이 아니란 점을 이유로 정경에 포함시키기를 꺼려했으며 동방 교회는 계시록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네 권의 소문서들인 베드로후서, 요한 2, 3서, 유다서는 신약성경의 초기목록에서 종종 제외되었으며 당시 정경 밖으로 밀려난 몇 문서들은 비록 정경으로서 보편적 인정을 받는 데 실패했더라도 일부 교회에서 정경에 버금가는 경으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의 각권 배열순서 또한 상당한 변천을 거쳤는데 어느 것들보다도 네 복음서가 가장 영예로운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합의가 도출되었으며 그 다음으로 사도행전이 영예를 차지해야 한다는 데는 이른 시기부터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동방 교회는 일곱 편의 공동서신(Catholic letters)인 야고보서, 베드로전서와 후서, 요한 1, 2, 3서, 유다서를 14편의 바울 서신(히브리서의 저자가 바울이라고 믿었다) 앞에 두는 경향이었던 반면 서방 교회는 바울 서신을 사도행전 직후에 두고 공동서신을 그 다음에 두었다.
계시록의 지위에 관해서는 동방 교회 내에서 수차례 논란이 있었지만 동방, 서방 정경의 끝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선별과정이 어떠했는지 세부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불분명한 채 남아 있지만 서방에선 4세기 말에 우리가 사용하는 순서로서의 신약성경이 확립된 것은 확실하다.
그 후 종교개혁 때까지 신약성경의 문제는 더 이상 제기되지 않았다.


신약성경 27권은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알기에 충분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이것들만 알면 구원받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신약성경은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것으로 한 획도 삭제되어서는 안 되며 또한 한 획을 가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교회의 법이 되었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과 더불어 1400년가량 도전을 불허하는 불멸의 가르침으로 존중되어 왔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였으므로 파피루스에 기록된 내용을 보존하고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필사본으로 재생하는 일이 필요했는데 이 과정에서 오자가 생겼다.
신약성경에서 오자가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때였다.
1516년에 에라스무스(Erasmus)가 만든 그리스어 신약성경과 1551년 로버트 에틴(Robert Etienne)의 중세 그리스어 신약성경 번역본에서 오자가 많이 발견되었다.


1581년에 6세기에 쓰여진 성경이 발견되었고, 1628년에는 5세기에 쓰여진 성경이 발견되었으며, 19세기에 4세기에 쓰여진 성경책 두 권이 발견되었다.
이 두 권은 가장 오래된 성격책으로 알려졌는데 1947년 이집트에서 신약성경 일부가 다시 발견되었다.
파피루스에 쓰여진 이것들 중에는 3세기와 2세기에 쓰여진 것들도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가로세로 2인치에 불과한 조각인데 요한복음서 18장의 구절이 적힌 것으로 2세기 초에 쓰여졌다.
옥스포드의 막달렌대학(Magdalene college)에 소장되어 있는 파피루스 3편은 마태복음서의 부분으로 알려졌는데 그것들이 50년 이전에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사본은 4,700점에 달하고 교부들의 인용은 10만 점에 달한다.
발견된 사본을 통해서 본래 성경에는 없는 내용들이 훗날 누군가에 의해서 가필되었음이 밝혀졌다.
마가복음서는 16장 8절로 종료되는데 훗날 누군가가 9절부터 20절에 이르는 내용을 첨가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맥교수는 저서 『누가 신약성경을 썼나?』에서 요한복음서에 나타난 간음한 여인에 관한 내용이 4세기 말 이전에 쓰여진 사본에는 없음을 밝혀냈다.
그는 요한 1서에는 삼위일체에 관한 내용이 단순한 문체로 기록되어 있는 반면 4세기에 쓰여진 사본에는 이전의 것과는 다르게 기록되어 있어 누군가가 사본에 가필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상이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증언자가 셋 있습니다.
곧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서로 일치합니다 (공동번역 성경, 요한1서 5:7-8)
There are three which bear witness,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 three are one


지상에는 증언자가 셋 있습니다.
곧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일치합니다.
하늘에는 증언자가 셋 있습니다.
곧 성부와 말씀과 성령인데 이 셋은 일치합니다 (4세기 성경)
There are three which bear witness o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re one in Christ Jesus: and there are three who bear witness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Spirit, and these three are one


가필한 사람이 요한의 저술 의도를 흐리게 할 목적으로 내용을 보탠 것은 아니지만 르네상스 시대까지 계속된 가필로 인해 신약성경은 난해해졌다.
일부 신학자들이 보태진 내용을 제거하는 작업에 전력했지만 아주 오래 전에 가필된 부분을 발견해서 제거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가령 2세기 또는 그 이전에 가필되었다면 그것을 발견하는 일조차 어려울 것이다.
복음서 저자들이 참조한 출처에도 문제가 있다.
마태와 누가는 예수가 유다 지파(Judah tribe)의 후손이라고 기록했지만 같은 시기에 저술된 문서에 의하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1948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문서들 중에 마리아복음서가 있는데 여기에는 예수가 유다 지파가 아니라 레위 지파(Levi tribe)에 속한 것으로 적혀 있다.
그러므로 예수가 과연 어느 지파에 속했는지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또 있다. Q복음서와 선언이야기를 전래한 그룹의 사람들은 예수의 인성을 강조한 데 비해 신약성경 저자들은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였다.
저자에 따라서 본질적인 내용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신약성경 저자들은 사람의 이미지를 지닌 하나님 즉 신인동성론을 제기했다.
물론 그들도 예수의 인성에 관해 언급했지만 신성을 강조하는 데 더욱 역점을 두었다.


바울을 포함해서 신약성경 저자들 모두 예수의 신성(divinity)과 인성(humanity)의 관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신성과 인성을 두루 갖춘 예수는 과연 누구일까 하는 것이 신학의 본질적인 문제로 오랜 동안 신학자들을 괴롭혔다.
양성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역사에 출현해 인성을 지니고 살았다는 것이 인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이 이천 년 동안 논란거리가 되었다.
학설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교리
Dogma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교리의 근본 문제는 예수가 누구이냐 하는 것을 규정하는 데 있다.
또한 예수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이며 또 성령과는 어떤 관계이냐 하는 것을 문제로 삼는다.
교회와 감독에 관한 교리는 종교의 본질에서 보면 중요하지 않다.
교리를 제정하는 데 신약성경이 밑거름이 되었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신약성경 저자들이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으므로 후세 교부들이 교리를 제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불화와 이설의 시비를 겪어야 했다.
신학 이야기는 이런 불화와 시비의 역사를 밝히는 이야기이다.


다음과 같은 마태의 기록은 예수가 하나님의 계시자라는 교리의 출처가 되었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마태복음 11:27)


마태는 예수가 하나님의 율법을 해석할 수 있는 권위를 가졌음을 증언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바보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마태복음 5: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마태복음 5:39)


마태는 예수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리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았음을 증언했다.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마태복음 9:6)


마태는 예수가 죽기 전에 새 계약을 세웠음을 증언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8)


이상과 같은 마태의 진술은 마가와 누가에 의해서 확인되었다.
세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예수는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였으며 따라서 예수의 언행에서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다.
마가는 예수가 죄를 용서하고, 모세의 율법에 대해 권위를 행사하며, 자기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풀 수 있는 메시아적 능력을 가졌음을 강조했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2:5)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마가복음 2:28)


마가의 견해에 동조하면서 누가는 예수를 가리켜서 죄인들의 친구라는 개념을 보탰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누가복음 5:8)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누가복음 7:37)


요한의 진술도 공관복음서 저자들의 진술과 일치함을 본다.
요한은 예수를 가리켜 모세와 구약성경 저자들 모두가 증거한 분이라고 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라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요한복음 5: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요한은 예수가 아브라함 이전에 존재했다고 했는데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요한은 예수가 아브라함 이전에 존재했다고 했는데 그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로서 말씀의 형상이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8:58)


요한에게 예수는 안식일의 주인이며 모세5경에 나타난 제사적 계명의 주인이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요한복음 5:8-9)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요한복음 9: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한복음 2:19)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요한복음 4:23)


요한은 이사야가 묘사한 하나님의 종이 예수이며
그가 세상의 죄를 지고 간 어린 양이라고 했다.


이튿날 (세례자)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29)


이상과 같이 복음서 저자들이 증거한 예수는 바울에게 신앙의 근거가 되었으며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 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린도전서 4:1-2)


바울은 제자들을 통해 들은 예수의 생애를 이방인에게 전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린도전서 15:3)


바울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설명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립보서 2:6)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갈라디아서 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