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The New Testament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정경(canon)은 그리스어 kanon에서 유래한 말인데 규칙(a rule) 또는 고정된 기준점(standard)이란 뜻으로 교회에서 정통성을 인정받은 문서라는 뜻이다.
경(Scripture)이라면 의례 구약성경(The Old Testament)을 뜻하지만 교회가 예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을 채택하면서 이를 구약성경과 구별하기 위해서 신약성경이란 말을 사용한 것이다.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us Martyr, 100-165)가 신약성경이란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서 이 말이 교부들에 의해서 일찍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 바울의 서신은 2세기 말경 이미 교회에서 정경으로 채택되었는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150-215)는 요한의 계시록도 정경에 포함시켰다.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문서들은 교회에서 구약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인정받았는데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60-225)는 “율법과 예언자들”과 나란히 “복음적이고 사도적인 문서들”이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그 밖의 문서들도 점차 교회에서 영감을 받은 신약성경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367년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가 회람시킨 그의 39번째 부활축일 목회서신에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27권의 신약성경 목록이 적혀 있는 것에서 27권이 그때 이미 정경으로 채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신약성경 가운데 몇 권은 정경에 포함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한때 논란이 되었다.
서방 교회는 히브리서가 사도의 저술이 아니란 점을 이유로 정경에 포함시키기를 꺼려했으며 동방 교회는 계시록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네 권의 소문서들인 베드로후서, 요한 2, 3서, 유다서는 신약성경의 초기목록에서 종종 제외되었으며 당시 정경 밖으로 밀려난 몇 문서들은 비록 정경으로서 보편적 인정을 받는 데 실패했더라도 일부 교회에서 정경에 버금가는 경으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의 각권 배열순서 또한 상당한 변천을 거쳤는데 어느 것들보다도 네 복음서가 가장 영예로운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합의가 도출되었으며 그 다음으로 사도행전이 영예를 차지해야 한다는 데는 이른 시기부터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동방 교회는 일곱 편의 공동서신(Catholic letters)인 야고보서, 베드로전서와 후서, 요한 1, 2, 3서, 유다서를 14편의 바울 서신(히브리서의 저자가 바울이라고 믿었다) 앞에 두는 경향이었던 반면 서방 교회는 바울 서신을 사도행전 직후에 두고 공동서신을 그 다음에 두었다.
계시록의 지위에 관해서는 동방 교회 내에서 수차례 논란이 있었지만 동방, 서방 정경의 끝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선별과정이 어떠했는지 세부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불분명한 채 남아 있지만 서방에선 4세기 말에 우리가 사용하는 순서로서의 신약성경이 확립된 것은 확실하다.
그 후 종교개혁 때까지 신약성경의 문제는 더 이상 제기되지 않았다.
신약성경 27권은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알기에 충분하다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이것들만 알면 구원받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신약성경은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것으로 한 획도 삭제되어서는 안 되며 또한 한 획을 가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교회의 법이 되었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과 더불어 1400년가량 도전을 불허하는 불멸의 가르침으로 존중되어 왔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였으므로 파피루스에 기록된 내용을 보존하고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필사본으로 재생하는 일이 필요했는데 이 과정에서 오자가 생겼다.
신약성경에서 오자가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때였다.
1516년에 에라스무스(Erasmus)가 만든 그리스어 신약성경과 1551년 로버트 에틴(Robert Etienne)의 중세 그리스어 신약성경 번역본에서 오자가 많이 발견되었다.
1581년에 6세기에 쓰여진 성경이 발견되었고, 1628년에는 5세기에 쓰여진 성경이 발견되었으며, 19세기에 4세기에 쓰여진 성경책 두 권이 발견되었다.
이 두 권은 가장 오래된 성격책으로 알려졌는데 1947년 이집트에서 신약성경 일부가 다시 발견되었다.
파피루스에 쓰여진 이것들 중에는 3세기와 2세기에 쓰여진 것들도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가로세로 2인치에 불과한 조각인데 요한복음서 18장의 구절이 적힌 것으로 2세기 초에 쓰여졌다.
옥스포드의 막달렌대학(Magdalene college)에 소장되어 있는 파피루스 3편은 마태복음서의 부분으로 알려졌는데 그것들이 50년 이전에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사본은 4,700점에 달하고 교부들의 인용은 10만 점에 달한다.
발견된 사본을 통해서 본래 성경에는 없는 내용들이 훗날 누군가에 의해서 가필되었음이 밝혀졌다.
마가복음서는 16장 8절로 종료되는데 훗날 누군가가 9절부터 20절에 이르는 내용을 첨가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맥교수는 저서 『누가 신약성경을 썼나?』에서 요한복음서에 나타난 간음한 여인에 관한 내용이 4세기 말 이전에 쓰여진 사본에는 없음을 밝혀냈다.
그는 요한 1서에는 삼위일체에 관한 내용이 단순한 문체로 기록되어 있는 반면 4세기에 쓰여진 사본에는 이전의 것과는 다르게 기록되어 있어 누군가가 사본에 가필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상이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증언자가 셋 있습니다.
곧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서로 일치합니다 (공동번역 성경, 요한1서 5:7-8)
There are three which bear witness,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 three are one
지상에는 증언자가 셋 있습니다.
곧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일치합니다.
하늘에는 증언자가 셋 있습니다.
곧 성부와 말씀과 성령인데 이 셋은 일치합니다 (4세기 성경)
There are three which bear witness on earth, the spirit and the water and the blood, and these three are one in Christ Jesus: and there are three who bear witness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Spirit, and these three are one
가필한 사람이 요한의 저술 의도를 흐리게 할 목적으로 내용을 보탠 것은 아니지만 르네상스 시대까지 계속된 가필로 인해 신약성경은 난해해졌다.
일부 신학자들이 보태진 내용을 제거하는 작업에 전력했지만 아주 오래 전에 가필된 부분을 발견해서 제거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가령 2세기 또는 그 이전에 가필되었다면 그것을 발견하는 일조차 어려울 것이다.
복음서 저자들이 참조한 출처에도 문제가 있다.
마태와 누가는 예수가 유다 지파(Judah tribe)의 후손이라고 기록했지만 같은 시기에 저술된 문서에 의하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1948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문서들 중에 마리아복음서가 있는데 여기에는 예수가 유다 지파가 아니라 레위 지파(Levi tribe)에 속한 것으로 적혀 있다.
그러므로 예수가 과연 어느 지파에 속했는지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또 있다. Q복음서와 선언이야기를 전래한 그룹의 사람들은 예수의 인성을 강조한 데 비해 신약성경 저자들은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였다.
저자에 따라서 본질적인 내용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신약성경 저자들은 사람의 이미지를 지닌 하나님 즉 신인동성론을 제기했다.
물론 그들도 예수의 인성에 관해 언급했지만 신성을 강조하는 데 더욱 역점을 두었다.
바울을 포함해서 신약성경 저자들 모두 예수의 신성(divinity)과 인성(humanity)의 관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신성과 인성을 두루 갖춘 예수는 과연 누구일까 하는 것이 신학의 본질적인 문제로 오랜 동안 신학자들을 괴롭혔다.
양성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역사에 출현해 인성을 지니고 살았다는 것이 인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이 이천 년 동안 논란거리가 되었다.
학설이 분분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