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0편 호흡이 있는 자마다 주를 찬양할 지어다
Let Everything that has Breath Praise the Lord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하늘에서) 그를 찬양할 지어다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 지어다

3 나팔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 지어다

4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 지어다

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 지어다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 지어다 할렐루야


이 노래는 시편 전체를 마감하는 찬양이라 하기에 적당하다.
헨델의 할렐루야 합창을 방불케 한다.
회중은 이 노래를 합창하면서 두 다리에 힘이 솟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사람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한데 모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여간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합창은 땅 속 깊은 곳까지 다다르며 하늘 높은 곳까지 이를 것이다.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 지어다”(2절).


‘인하여(for)’라는 말은 하나님의 기사를 기뻐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 때문에 찬양한다는 말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좇아(for)’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찬양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그 능으로 영원히 치리하시는”(시편 66:7) 분이시다.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팔소리로, 비파와 수금으로, 소고 치며 춤추어, 현악과 통소로,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라고 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찬양하라는 것이며 모든 사람이 찬양하라는 말이다.
살아 숨 쉬는 사람은 모두 찬양해야 한다고 한다.
할렐루야를 커다란 소리로 외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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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사
김홍기 지음 / 지와사랑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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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십자가 신학의 한계: 두 왕국설(Two Kingdom Theory)

<종교개혁사>(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루터의 정치윤리는 “세속 권력에 대한 복종의 한계”(1523), “평화를 위한 제언”(1525), “농민 폭도들의 만행에 반대함”(1525), “농민을 가혹하게 적대한 논문에 관한 공개서한”(1525) 등의 논문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 논문들 속에서 루터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찰스 5세처럼 국가의 권력이 종교적인 일에 간섭하는 것도 철저히 거부하고, 또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황 레오 10세가 세속 권력 위에 군림하려는 것도 철저히 반대하였다.
그리하여 루터의 정교분리의 두 왕국설은 교황이 세속 권력에서 손을 떼게 하는 것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루터는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두 왕국설을 주장했다.
왼손 왕국의 주인은 세속 통치자이고, 그리스도는 다만 오른손 왕국의 주인이다.
따라서 그는 영적인 일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주장한다(행 5:30).
그는 정치와 종교뿐만 아니라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세속적인 일(영토와 백성과 재산과 육체에 관한 일)과 영적인 일을 구분지었다.


루터는 교회는 사랑과 용서로 다스려져야 하고, 세속 국가는 칼과 정의로 다스려져야 함을 그는 강조하고, 율법과 복음, 정의와 사랑을 구분지었다.
교회는 복음과 사랑으로 다스려져야 하고, 세속 국가는 율법과 정의로 다스려져야 함을 주장한다.
그는 딤전 1:9에 근거하여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위하여서는 율법의 정의가 필요하고, 마 7:18에 근거하여 좋은 나무는 저절로 사랑의 열매를 맺는다는 이중구조의 윤리를 강조한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두 왕국 모두에 속한다.
크리스천은 세속 권세에도 복종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권세에도 복종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왕국의 시민으로서 산상수훈대로 살아야 하고, 세상왕국의 시민으로서 세속 법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사랑과 용서의 복음을 말하는 산상수훈은 크리스천의 삶에 적용되는 것이지, 불의와 악을 행하는 세속인들을 통치하는 일에 적용해서는 무질서해진다는 것이다.
세속인들의 무질서와 방종에 대해서는 율법의 칼과 정의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루터는 바로 이러한 두 왕국설의 시각에서 질서를 파괴하고 무정부 상태를 만드는 농민들을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루터의 십자가 신학의 한계가 있다.
불의한 자와 교만한 자와 권세 있는 자와 부자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혁명은 “마리아 찬양” 주석에서 강하게 이야기하지만 인간의 혁명은 허용하지 않는다.
두 왕국설에 근거하여 인간의지의 무력함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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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본성론
Anthropomorphism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신학(theology)이란 신(theo)에 관한 이야기(logos)를 말한다.
Mythology와 theology 모두 신화이지만 theology는 Mythology와 달리 신의 본질에 관해 논리적으로 정립한 때문에 신학이라고 한다.
신학 이야기는 이런 논리가 성립하게 된 원인과 결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스 신화는 신들의 힘의 과시가 주류를 이루어 마치 영웅들의 싸움박질처럼 나타난 데 반해 신이 하나밖에 없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신학에는 우주 주재자 한 분의 고상한 목적과 경이로운 관리능력에 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이들 신학에도 신의 힘의 과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은 부수적인 사건으로 전해진다.


그리스도교 신학이 유대교의 신학과 다른 점은 신이 하늘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소 지상으로 와서 우리와 같은 인생을 살고, 처형당하고, 부활했다는 데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이런 사건은 오로지 인류를 구원하려는 전제 아래 이루어진 신의 사랑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신학의 독특한 점은 신과 인간이 같은 성격을 가졌다는 신인본성론에 있다.
이것은 신이 사람(anthropos)의 이미지(morphe)가 된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천 년 동안 섬긴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가 기원전 5년경에 유대인으로 태어나 여호수아(Jehosuah)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30대 중반까지 살다가 처형당하고 부활했다는 데서 그리스도 신학이 생겼다.
여호수아의 애칭은 예수아(Jeschua)인데 그리스어로 표기하면 예수(Jesus)가 된다.


예수는 네 명의 남동생과 두 명 이상의 누이와 함께 산골짝 나사렛에서 성장했다.
누가가 복음서에 열두 살 때 사건 하나를 소개한 것 외에는 예수가 서른 살이 넘도록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알려진 바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예수는 아주 평범한 유대인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아버지 요셉(Joseph)으로부터 목수일을 배워 그 자신 직업도 목수였을 것이다.


예수의 활동에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서른두세 살 때 유대 광야에 모습을 드러내면서부터였다.
그에 관해 알려진 것은 이때부터이며 십자가에 처형당할 때까지 이 년 남짓 활약상이 네 명의 복음서 저자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28년 봄 예수는 광야로 갔다. 그곳에는 주류에서 밀려난 종교 지도자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었으며 유대교 정화운동을 한창 전개하고 있었다.
광야에서 활약한 지도자들 가운데 예수와 관련해서 관심을 두어야 할 사람은 요한이다.
세례의식에 중점을 두고 사역을 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세례자라고 불렀다.
요한은 낙타털옷에 가죽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에게서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의 모습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요한을 가리켜 엘리야가 화신한 분이라고 말했는데 요한이 왕의 부조리를 여지없이 폭로하고 정의를 외치는 데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대 광야는 모세와 엘리야가 활약했던 성지였으며 하나님의 계시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예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요한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사촌 언니 엘리자벳이 말년에 얻은 아들로 예수에게는 육촌 형이다.
어려서부터 광야에서 성장한 요한은 27년 10월부터 이듬해 9월 사이 광야에서 활약했는데 분봉왕 안디바의 결혼이 불법임을 지적했다가 체포된 후 처형되었다.


예수는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는데 그날은 예수에게 대단히 중요한 날이었다.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올라 올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명을 받았다.
예수는 광야에 남아 금식하면서 명상의 나날을 보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전제 아래 예수는 사탄으로부터 세 차례 유혹을 받았지만 그 유혹들을 물리치고 오로지 하나님의 아들답게 살기로 결심했다.


마태는 예수를 가리켜 동방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소문난 솔로몬 왕보다 더욱 지혜로운 분이라고 했다.
구약성경 저자들이 지혜와 성령을 동의어로 사용했으며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지혜가 뛰어나다는 마태의 표현은 예수에게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이 있음을 말해 준다.


예수의 지혜가 충만하여 부활한 사실은 역사가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1세기에 활약한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이때쯤 지혜로 충만한 사람 (우리가 그를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이 허용된다면) 예수가 살았다.
그는 말하자면 전혀 믿기 어려운 일들을 행했는데 즐겨 지혜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스승이었다.
많은 유대인과 많은 이방인이 그에게 나아갔다.
그는 그리스도(메시야)였다.
우리 가운데서 계획된 고소로 빌라도는 그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하였다.
물론 전에 그를 사랑했던 이들이 오늘날 그에게 충성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이 보낸 많은 선지자들이 그에 대한 수천 가지 놀라운 일들을 선포한 대로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서 그들에게 나타났다.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chistian)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예수가 그리스도로 불려진 사실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110년경에 쓴 『연대기』에서 타키투스는 64년에 네로 황제가 로마시에 방화한 혐의를 벗으려고 그리스도인에게 책임을 씌운 후 박해를 가했다고 적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이 이름은 티베리우스 황제 때 본디오 빌라도 총독에 의해 처형당한 그리스도(christos)에게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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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Gospels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예수의 활동을 기록한 책은 네 복음서뿐이다.
따라서 복음서는 그리스도 신학의 주요 모델이 된다.
이것들이 쓰여진 연대에 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지만 마가(Mark)가 먼저 50년대 후반에 썼고, 누가(Luke)가 61년경에, 마태(Matthew)가 70년경 전후에, 요한(John)이 90년경 썼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마가복음서를 당시 사람들은 베드로복음서라고 불렀는데 베드로가 기억한 내용을 마가가 기록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가는 베드로를 믿음의 아버지로 존경했으며, 전도여행에 동행했고, 베드로가 로마에서 62년에 순교할 즈음 그의 곁에 있었다.
마가는 베드로로부터 아람어로 들은 예수의 생애를 그리스어로 기록했다.


마가가 50년대 후반에 복음서를 먼저 쓴 것이 사실이라면 베드로 생전에 쓰여졌으므로 베드로도 복음서의 내용을 읽었을 줄 안다.
그러나 마가는 예수의 활동을 시기적으로 제대로 배열하지 못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의 복음서에는 반복되는 구절이 많으며, 문장이 대칭적으로 구성되었고, 지성적이지 못한 것이 특징이다.
마가만이 예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 모두가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마가복음서는 누가와 마태의 저술에 참고가 되었다.
두 사람은 마가복음서를 많이 인용했는데 마태는 무려 90%나 인용했으며 누가는 절반이 넘는 53%가량 인용하였다.


근래에 제기된 학설은 이 같은 사실을 의심하게 만드는데 마태복음서가 마가복음서보다 10년가량 먼저 쓰여졌다는 것이다.
이 학설의 근거는 근래 발견된 마태복음서의 파피루스(papyrus) 세 조각을 분석한 결과 파피루스 잎사귀가 50년 또는 그 이전의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가가 오히려 마태복음서를 대부분 인용해 간결하게 요약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며 누군가가 마태복음서를 다시 인용했다고 추론해야 할 것이다.


마가·마태·누가복음서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약 150년 전이었다.
신학자들은 이 복음서들이 같은 견해에 의해 씌어졌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고 1776년에 그리스 바하(J.J.Griesbach)는 세 복음서를 가리켜서 공관복음서(synoptic gospels)라고 불렀는데 이는 ‘함께 본다(seeing together)’는 뜻이다.


요한은 마태, 마가, 누가와 달리 함께 보는 견해를 피력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복음서를 기록했다.
가장 늦게 복음서를 기록한 요한은 같은 내용을 반복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신학적 해석에 치중했다.
요한복음서는 그리스도 신학의 가장 훌륭한 모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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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복음서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로마에 반기를 들자 로마 군대는 70년에 예루살렘을 함락했다.
이스라엘에는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는 다양한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로마 군대의 진입으로 이런 운동이 일시에 중단되고 말았다.


예수가 처형당한 30년부터 70년까지 40년 동안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래된 예수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공관복음서를 비교한 신학자들은 누가와 마태가 마가 복음서를 참조한 외에 Q복음서도 참조했음을 발견했다.
Q는 독일어로 출처(Quelle)의 첫 글자이다.
Q복음서라고 말할 만한 것이 문자로 존재했는지 또 Q복음서를 전래한 사람들의 활약상이 어떠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출처가 될 만한 내용이 있었다는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Q복음서가 현존하지 않는 이유를 신학자들은 그것이 2세기 초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근래 일부 신학자들의 노력으로 누가와 마태복음서를 근거로 한 Q복음서를 재생하는 데 성공했는데 Q복음서의 내용은 도마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언급된 예루살렘 교회의 신학과 같지 않다.


Q복음서의 핵심은 가장 지혜로운 분인 예수를 따르는 일이 마땅하며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은 심판의 날에 그와 더불어 영광을 받을 수 있지만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반대로 저주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음 구절은 Q복음서의 개요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9:57-62, Q복음서)


버톤 맥(Burton L. Mack)은 저서 『신약성경은 누가 썼나? Who Wrote the New Testament?』(1995년)에서 누가에게 영향을 준 Q복음서의 주요 신학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하나님의 나라는 가난한 자와 주린 자 그리고 우는 자에게 속하고(누가복음 6:20-21, Q복음서), 원수를 사랑하고 남을 대접하는 자에게 속한다(누가복음 6:27-31, Q복음서).
남을 비판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으며 용서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속한다(누가복음 6:37, Q복음서).

2. 예수의 제자가 되어 예수의 가르침을 전해야 한다
(누가복음 9:57-10:11, Q복음서).

3.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누가복음 11:1-13, Q복음서).

4.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누가복음 12:2-7, Q복음서).

5. 탐심을 물리치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것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들이다
(누가복음 12:13-34, Q복음서).

6. 겨자씨와 누룩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누가복음 13:18-21, Q복음서).

7. 겸손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다
(누가복음 14:11, 16-24, 26-27, 34-35, Q복음서).

이상과 같은 Q복음서의 주요 신학을 근거로 해서 맥교수는 다음과 같은 행동강령을 만들었다.


원수를 사랑하라(누가복음 6:27, Q복음서).

네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라(누가복음 6:29, Q복음서).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라(누가복음 6:30, Q복음서).

남을 비판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라(누가복음 6:37, Q복음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라(누가복음 6:42, Q복음서).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누가복음 9:60, Q복음서).

이리 가운데로 가는 양처럼 가라(누가복음 10:3, Q복음서).

전대, 주머니, 그리고 신을 휴대하지 말라(누가복음 10:4, Q복음서).

가서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고 말하라
(누가복음 10:9, Q복음서).

구하면 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누가복음 11:9, Q복음서).

목숨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누가복음 12:22, Q복음서 ).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누가복음 12:31, Q복음서).


Q복음서는 위의 강령을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마태복음 5:45, Q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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