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본성론
Anthropomorphism
김광우의 저서 <신학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신학(theology)이란 신(theo)에 관한 이야기(logos)를 말한다.
Mythology와 theology 모두 신화이지만 theology는 Mythology와 달리 신의 본질에 관해 논리적으로 정립한 때문에 신학이라고 한다.
신학 이야기는 이런 논리가 성립하게 된 원인과 결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스 신화는 신들의 힘의 과시가 주류를 이루어 마치 영웅들의 싸움박질처럼 나타난 데 반해 신이 하나밖에 없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신학에는 우주 주재자 한 분의 고상한 목적과 경이로운 관리능력에 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이들 신학에도 신의 힘의 과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은 부수적인 사건으로 전해진다.
그리스도교 신학이 유대교의 신학과 다른 점은 신이 하늘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소 지상으로 와서 우리와 같은 인생을 살고, 처형당하고, 부활했다는 데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이런 사건은 오로지 인류를 구원하려는 전제 아래 이루어진 신의 사랑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신학의 독특한 점은 신과 인간이 같은 성격을 가졌다는 신인본성론에 있다.
이것은 신이 사람(anthropos)의 이미지(morphe)가 된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천 년 동안 섬긴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가 기원전 5년경에 유대인으로 태어나 여호수아(Jehosuah)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30대 중반까지 살다가 처형당하고 부활했다는 데서 그리스도 신학이 생겼다.
여호수아의 애칭은 예수아(Jeschua)인데 그리스어로 표기하면 예수(Jesus)가 된다.
예수는 네 명의 남동생과 두 명 이상의 누이와 함께 산골짝 나사렛에서 성장했다.
누가가 복음서에 열두 살 때 사건 하나를 소개한 것 외에는 예수가 서른 살이 넘도록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알려진 바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예수는 아주 평범한 유대인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아버지 요셉(Joseph)으로부터 목수일을 배워 그 자신 직업도 목수였을 것이다.
예수의 활동에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서른두세 살 때 유대 광야에 모습을 드러내면서부터였다.
그에 관해 알려진 것은 이때부터이며 십자가에 처형당할 때까지 이 년 남짓 활약상이 네 명의 복음서 저자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28년 봄 예수는 광야로 갔다. 그곳에는 주류에서 밀려난 종교 지도자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었으며 유대교 정화운동을 한창 전개하고 있었다.
광야에서 활약한 지도자들 가운데 예수와 관련해서 관심을 두어야 할 사람은 요한이다.
세례의식에 중점을 두고 사역을 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세례자라고 불렀다.
요한은 낙타털옷에 가죽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에게서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의 모습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요한을 가리켜 엘리야가 화신한 분이라고 말했는데 요한이 왕의 부조리를 여지없이 폭로하고 정의를 외치는 데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대 광야는 모세와 엘리야가 활약했던 성지였으며 하나님의 계시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예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요한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사촌 언니 엘리자벳이 말년에 얻은 아들로 예수에게는 육촌 형이다.
어려서부터 광야에서 성장한 요한은 27년 10월부터 이듬해 9월 사이 광야에서 활약했는데 분봉왕 안디바의 결혼이 불법임을 지적했다가 체포된 후 처형되었다.
예수는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는데 그날은 예수에게 대단히 중요한 날이었다.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올라 올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명을 받았다.
예수는 광야에 남아 금식하면서 명상의 나날을 보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전제 아래 예수는 사탄으로부터 세 차례 유혹을 받았지만 그 유혹들을 물리치고 오로지 하나님의 아들답게 살기로 결심했다.
마태는 예수를 가리켜 동방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소문난 솔로몬 왕보다 더욱 지혜로운 분이라고 했다.
구약성경 저자들이 지혜와 성령을 동의어로 사용했으며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지혜가 뛰어나다는 마태의 표현은 예수에게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이 있음을 말해 준다.
예수의 지혜가 충만하여 부활한 사실은 역사가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1세기에 활약한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이때쯤 지혜로 충만한 사람 (우리가 그를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이 허용된다면) 예수가 살았다.
그는 말하자면 전혀 믿기 어려운 일들을 행했는데 즐겨 지혜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스승이었다.
많은 유대인과 많은 이방인이 그에게 나아갔다.
그는 그리스도(메시야)였다.
우리 가운데서 계획된 고소로 빌라도는 그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하였다.
물론 전에 그를 사랑했던 이들이 오늘날 그에게 충성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이 보낸 많은 선지자들이 그에 대한 수천 가지 놀라운 일들을 선포한 대로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서 그들에게 나타났다.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chistian)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예수가 그리스도로 불려진 사실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110년경에 쓴 『연대기』에서 타키투스는 64년에 네로 황제가 로마시에 방화한 혐의를 벗으려고 그리스도인에게 책임을 씌운 후 박해를 가했다고 적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이 이름은 티베리우스 황제 때 본디오 빌라도 총독에 의해 처형당한 그리스도(christos)에게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