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0편 내 영혼이 주를 기다리나이다
My Soul Waits for the Lord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 그러나 사유하심이 (용서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

5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 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8 저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긍휼을 나타내 보이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부르짖음이다.
순례자는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심을 확신하면서 백성에게 자기와 더불어서 그분이 그들을 모든 불법에서 구하실 때를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자고 권면한다.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1절)라고 말한 데서 순례자에게 고뇌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때는 높은 데서 기도하고 어떤 때는 깊은 데서 기도한다.
우리의 감정은 변화무쌍한데 깊은 곳이란 혼돈을 의미하고 스스로 만든 지옥을 뜻한다.
순례자는 자기가 죄를 지었음을 안다.
순전히 자기의 불찰로 죄를 지었음을 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누구도 의로울 수 없다고 말하면서(3절) 하나님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으므로 그분만을 경외해야 한다고 말한다(4절).
바울은 용서받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다(로마서 4:7).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인데 그분은 사람의 많은 죄를 낱낱이 감찰하시는(kept a record of sins) 분이 아니라 그것들을 모두 용서하시는 인자하신 분이다.




성자 어거스틴(St. Augustine)은 자신의 방에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4절)라는 구절을 적어 붙여 놓았다.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John Wesley)는 회개하던 일요일 오후 성 바울 대성당에서 이 구절을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그때 웨슬리는 자신의 마음이 놀랍게도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은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지옥으로부터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으며 오로지 하나님만이 그 일을 하신다.
지옥은 사람이 스스로 만든 것이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만든 덫에 걸린 사람을 구원하신다.
지옥에서 벗어난 사람은 그 사실을 잘 안다.
지옥에 빠진 사람은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린다고 순례자는 말한다(5-6절).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순례자는 백성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데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이 누구라고 말하지 않고 다만 그분이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하신다고 전할 뿐이다.
시편 저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며 절망과 죽음의 상황에 있는 우리를 보고 계신다고 말한다.
우리는 소망을 가져야 하는데 미래에 대한 소망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으로 소망은 곧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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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1편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였나이다
I have Stilled and Quieted My Soul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자신이 교만하지 않으며, 거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순례자는 자신의 어린 아이 같은 믿음과 하나님 안에서의 소망을 말한다.
교만은 근원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음을 안다.
교만한 야망과 이기적이고 야심에 찬 행동은 그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겸손에 대하여 간증하기를 바라며 이기적 야망과 욕망에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심령을 고요하게 만들며 더 이상 엄마의 젖을 찾지 않는 젖 뗀 아이같이 필요불가결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없어도 만족해 할 줄 안다.
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영혼을 맡겼다.


성전에 오르는 사람들 중에는 신부와 목사도 있고, 신학자와 교수도 있으며, 권세 있고 부유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순례자는 교만하지 말고, 눈을 높이지 말며, 기이한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한다.
심령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직접 몸으로 느끼라고 말한다.
성숙한 성도는 교만한 야망의 외침을 내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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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2편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Here I Will Sit Enthroned, for I have Desired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근심한 것을 기억하소서

2 저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3 내가 실로 나의 거하는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며

4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아니하기를

5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6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7 우리가 그의 성막에 들어가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리로다

8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9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10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받은 자의 얼굴을 물리치지 마옵소서

1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치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위에 둘지라

12 네 자손이 내 언약과 저희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저희 후손도 영원히 네 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13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14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15 내가 이 성의 식료품에 풍족히 복을 주고 양식으로 그 빈민을 만족케 하리로다

16 내가 그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리니
그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외치리로다

17 내가 거기서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
내가 내 기름 부은 자를 위하여 등을 예비하였도다

18 내가 저의 원수에게는 수치로 입히고
저에게는 면류관이 빛나게 하리라 하셨도다


이것은 하나님의 궤가 거할 처소에 관한 순례자의 서원을 기억해 달라는 간구의 노래이다.
성전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 노래를 듣고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과 순례자는 시온이 하나님의 거처가 되고 메시야가 출현하실 것이라는 그분의 약속을 상기한다.
이 노래는 기원전 500년경에 쓰여졌다.
순례자는 500년 전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을 때를 상기한다.
1-5절은 그때를 말하는 것으로 다윗이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했음을 뜻한다.
복원된 성전도 다윗의 성막처럼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기를 순례자는 희망한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8절)에서 금테를 두른 궤는 모세 때 만든 것으로 어린 아이가 누울 만한 크기이다.


그들은 조각목(acacia wood)으로 궤를 짓되
장이 (길이가) 이 규빗 반, 광이 (넓이가) 일 규빗 반, 고가 (높이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지며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 지며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출애굽기 25:10-18)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를 유랑하면서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였다.
순례자는 하나님의 궤가 에브라다(Ephrathah)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는데(6절) 에브라다는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Bethlehem)의 옛 지명이다.
다윗의 증조할머니 룻(Ruth)이 살던 곳도 베들레헴이다.
하나님의 궤를 나무 밭에서(in the fields of Jaar) 찾았다고 했는데 나무(Jaar)라는 히브리어는 숲(forest)이란 뜻이다.
아바니답(Abinadab)의 집은 숲속에 있었다.


저희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Uzzah)와 아효(Ahio)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사무엘하 6:3)


“성막을 발견하기까지”(5절)라는 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앗시리아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불태울 때 타버렸거나 그들에 의해서 바빌론으로 옮겨졌을 것이다.


8-10절은 하나님의 궤를 앞세우고 승전했을 때 부른 노래처럼 보인다.
제사장들은 의를 입으라고 했는데 유니폼을 입는 것은 풍습이었다.
하나님은 신랑이고 이스라엘은 신부이기 때문에 제사장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하여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회중이 8-10절을 합창으로 부르면 제사장이 11-12절로 응답한다.
제사장은 사무엘하 7장의 말씀을 인용한다.
그는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회중에게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영원히 쉬실 거처로 시온을 선택하셨다.
하나님은 가난한 백성에게 양식을 주시고 9절에 대한 응답으로 제사장을 구원의 옷을 입힐 것이니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외칠 것이라고 순례자는 말한다.
비록 하나님의 궤는 없지만 복원된 성전이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가 되었음을 순례자는 지적한다.


17절은 축도와도 같은 구절이다.


다윗에게 뿔이 나게 할 것이라고(17절) 했는데 뿔이란 황소의 뿔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힘센 동물은 황소였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사자와 곰이 없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등(lamp)을 예비하셨다고(17절)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등으로 여겼다.


스루야(Zeruiah)의 아들 아비새(Abishai)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을 쳐 죽이니
다윗의 종자들이 다윗에게 맹세하여 가로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사무엘하 21:17)


등 또는 빛은 하나님의 은혜를 뜻한다(이사야 55:3).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사야 49:6)


“내 기름부은 자”란(17절) 메시야(Messiah)를 말한다.
히브리어 메시야를 영어로 그리스도라고 번역한다.


“저에게는 면류관이 빛나게 하리라(upon himself shall his crown flourish)”(마지막 절)는 다윗의 뒤를 이은 이스라엘 왕들의 번성함을 시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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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3편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How Good and Pleasant it is
When Brothers Live Together in Unity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이것은 형제애를 찬양한 노래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형제애는 독특했는데 율법를 통해 알 수 있다.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신명기 25:5)


Brothers는 brethren이기도 해서 자신이 소속된 그룹의 사람들을 뜻한다.
그룹이 교회라면 교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형제인 것이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2절)이라고 했는데 아론을 성결케 한 기름을 말한다.


모세가 관유를 취하여 장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또 단에 일곱 번 뿌리고 또 그 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또 관유로 아론의 머리에 부어 발라 거룩하게 하고 (레위기 8:10-12)


순례자는 형제애를 아론을 거룩하게 한 관유에 비유한다.
그는 또 형제애를 헤르몬 산의 이슬에 비유한다.
건조하고 긴 여름에 헤르몬 산의 이슬은 나무들에게 생명을 주는 달콤한 물이다.
예수님도 형제애를 중요하게 여기셨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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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4편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주를 송축하라
Lift up Your Hands in the Sanctuary and Praise the Lord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3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


순례자는 성전으로 가서 성전을 지키는 하나님의 집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을 향하여 하늘의 축복이 시온으로부터 그들에게 임하기를 기원한다.
그는 두 손을 들고 태양이 떠오르듯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해서 그는 시온의 산 언덕을 오른 것이다.
이것은 성전에 오른 순례자의 마지막 노래이다.
이 날은 가을 축제의 마지막 날이다.
남녀노소가 한 데 모여 산 위로 빛이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성전에는 흥분이 가득하다.
그들은 하늘을 껴안듯이 두 팔을 벌리고 산너머를 바라본다.


불과 3절로 된 짧은 노래지만 예배의 부름과 설교 그리고 축도를 갖춘 노래이다.
1절은 예배의 부름(the call to worship)이다.
히브리어에는 오라(Come)라는 말이 없고 Hinneh라는 말이 있는데 영어로 Behold(보라)라고 번역한다.
RSV 성경은 “Come, bless the Lord(오라 여호와를 송축하라)”라고 시작하는데 보라는 말이 더욱 적절하다.
순례자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라고 했는데 제사장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종이다.
제사장들은 이미 하나님께 드릴 제사 준비를 마쳤다.
양들을 불에 태워 연기로 하나님께 바칠 준비를 마쳤다.


2절은 설교이다. 가장 짧은 설교지만 궁극적인 내용이다.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했는데 바꾸어 말하면 기도하라는 말이다.
제127편의 첫 절처럼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헛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도록 준비하라는 설교이다.


3절은 축도(benediction)에 해당한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거처하시는 시온에 온 순례자들을 축복하신다는 위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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