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편의 신학적 해석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시편에 나타난 저자들의 종교적 사상이 방대하기 때문에 신학적 해석을 한 마디로 정리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대부분의 사상이 여기에 담겨 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시종일관 반복해 나타나는 내용이 있는데 그것으로 시편 전체의 신학적 해석으로 삼을 수 있다.
이것은 작사자들이 우주를 탁월하게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공의로 통치하신다는 믿음이다.
이 같은 신앙은 시편의 두드러진 요소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악인이나 육체적 곤경으로 인한 난국에 직면하여 심판자 되시는 그분께서 구원하실 것을 의심치 않았으며 공의의 통치가 자신들의 생애에 이루어질 수 있기만을 기도했다.
그들이 꾸준히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토라를 묵상한 것을 보면 그분의 공의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확신에 차있었는지 가히 짐작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명료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 또는 계시에 대한 확신을 거듭 고백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악인의 팔을 꺾고(10:15), 이를 박살내며(58:6), 진노를 발하시기를(69:22-28) 기도하였다.
이런 표현들은 악인에 대한 개인의 복수심의 발로가 아니었다.
그들이 바란 것은 공의가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공의는 하나님께서 몸소 이루셔야 할 사항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시편에는 예언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부활에 대한 소망이 별로 없다.
몇 편이 이생 이후에도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갖고 싶어 하는 소망을 나타냈는데 이런 소망을 제16, 17, 49, 73편에서 본다.
하지만 본문들에 사용된 이런 표현들은 현세인 이 땅에서의 경험을 나타내는 다른 부분들에서도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저자들은 죽은 영혼이 거주하는 세계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스올(Sheol)을 사용했는데 스올은 무덤이나 극심한 위험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Sheol)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 (시편 49:15)


저자는 스올에서 구원받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소망을 노래했다.
저자에게 이것은 영광의 소망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현세의 구원과 예배의 지속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의 본질과 운명,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의 최선의 참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분과의 밀접한 교제는 현세에만 국한되거나, 갑작스러운 최후의 단절로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면 믿음은 무상한 상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명료하게 노래하지는 않았더라도 그들은 내세에서도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제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호한 표현 때문에 메시아의 시편으로 알려진 노래에서도 우리는 신학적 해석에 조심스러워진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다는 사실을 믿을 때 메시아의 시편은 아주 반가운 예언으로 이해될 수 있다.


유형론(typology)을 예언적 진술의 일종으로 받아들인다면 예수로 성취된 메시아로 인하여 예표론적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신약성경 저자들이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의 여러 측면을 나타내기 위해 시편의 구절들을 자주 인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다윗 혈통의 탁월하신 왕, 예수는 왕이 언급된 메시아 시편의 위대한 원형이 되었다.
하지만 메시아 시편의 모든 내용을 그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위험한 방법이다.
모든 내용을 유형적 방법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객관적이지 못하므로 우리는 이런 노래들이 일차적으로 저자 자신들의 경험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유형론적 해석을 하기에 앞서 그것의 역사적겧??그리고 문법적 의미 파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줄 안다.
필자가 본문에서 신약성경과 관련해서 가능한 한 유형론적 해석을 피하려고 한 이유는 시편 저자들의 경험에 더욱 초점을 두려고 한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제 1편 두 길
The Two Ways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조소하는)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 하리로다

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본래는 하나님과 더불어서 동행하는 의로운 길뿐이었는데 인류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악인의 길이 생겼다.
의인(righteous man)은 하나님의 계시 또는 가르침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며, 악인(unrighteous man)은 의인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의인의 길은 곧은길로 악인의 길은 구부러진 길로 묘사되었다.
저자는 의인의 길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수밖에 없는 점을 지적했다.


노래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엮은 편집자가 작자미상의 이 노래를 제1권 첫 편으로 수록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지혜의 가르침으로 이 노래가 가장 훌륭하다고 판단했기에 나머지 노래들의 요약이 될 만하다고 생각해서 첫 편으로 꼽았을 줄 안다.
이 노래는 지혜시로 분류된다.


두 길에 관한 좀더 구체적인 내용이 신명기에 기록되어 있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으로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악인의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신명기 30:16-18).
모든 선지자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는데 선(good)은 의(righteousness)를 뜻한다.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아모스 5:14-15)


노래가 ‘복 있는(Blessed)’ 또는 ‘복되어라’라는 말로 시작되는데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상기하게 한다.
복이 있다는 말은 행복하다(happy)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마태복음 5:3-12, 공동번역 성경).


좇는다(walk), 선다(stand), 앉는다(sit)라는 동사는 악한 행위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
선지자 미가(Micah)는 의가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고 행동으로 나타내야 한다고 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의인은 악인, 죄인, 오만한 자의 꾀나, 길이나, 자리에 앉거나, 서거나, 그것을 좇지 않는다고 했다.
대구가 운율을 타고 반복되면서 표현이 점차 강렬해짐을 본다.
본래부터 의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 모두에게는 조상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가 있기 때문이다.
의인이란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 또는 “거역한 죄 용서받고 죄 허물 벗겨진 자”(시편 32:1)이다. 스승이 학생에게 가르친다.


내 아들아 악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잠언 1:15)


예레미야(Jeremiah)도 지혜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이 노래를 인용했는데 당시 이 노래가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전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니라 (예레미야 17:5-8)


율법(law)은 히브리어로 토라(Torah)이다.
가르침(teaching)과 계시(revelation)란 뜻을 함축한 말이다.
구약성경 첫 다섯 권을 모세오경(Pentateuch)이라고 하는데 pente는 그리스어로 다섯이란 뜻이다.
오경을 율법서라고도 부른다.


묵상(meditate)은 율법을 암송(recite)한다는 뜻이다.
의인은 하나님의 가르침과 계시를 암송하면서 늘 기억했다가 행동으로 옮겨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사람이다.
이사야(Isaiah)가 율법에 관해 말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이사야 55:10-11)


파종했다(planted)는 말은 옮겨 심었다(transplanted)는 뜻으로 하나님의 가르침과 계시가 마음에 옮겨 심어진 것을 말하며 그분의 가르침과 계시를 묵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의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15:16)


의인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했는데(3절) 하나님께서 그곳에 파종하셨으며 그분께서 직접 선택하셨다.
예수님이 이 점을 지적하셨다.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마태복음 15:13)


의인이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을 말하는데 이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악인은 의인과는 반대로 율법을 묵상하지 않음으로써 그 마음에 가르침과 계시가 파종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신세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방법이 없다.
심판이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행복의 반대되는 개념 즉 저주를 뜻한다.


말라기(Malachi)는 의인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고 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말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라기 3:17-4:2)



선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나님은 의인을 인정하시지만 악인에게는 등을 돌리신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영원히 인자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제 2편 메시야의 궁극적 승리
The Messiah? Ultimate Victory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술렁대는가?)
민족들이 허사를 (헛일을) 경영하는고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왕족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4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철퇴)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깨달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정신을 차려라)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전편은 ‘복 있는’이란 말로 시작되었지만 이 노래는 ‘복이 있도다’라는 말로 종료된다.
이것은 전편과 더불어 시편 전체의 주제가 되는 노래로 의인과 악인을 복과 심판, 순종과 대적에 비유한다.


왕이 불렀다고 해서 이것은 제왕의 노래로 알려졌는데 이것 외에 제18, 20-21, 45, 72, 89, 101, 110, 132, 144편이 제왕의 노래로 분류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즉위를 축하하는 노래라서 제왕의 노래라고 일컫는다.


이것은 기원전 1047년(사무엘하 7:8-16) 때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누가는 노래의 저자로 다윗 왕을 지목하였다.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사도행전 4:25)


‘기름부음 받은 자(Anointed One)’란 히브리어로 마시아(Mashiach)인데 메시아(Messiah)로 표기하고, 그리스어로는 크리스토(Christo)로 번역하며, 영어로 그리스도(Christ)가 된다.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으로 이스라엘의 왕을 지칭하는 말인데 ‘하나님의 아들’을 뜻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선물이다.
근동의 민족과 달리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심을 성전에서 발견하려고 하지 않았다.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집 성전을 건립한 후 말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열왕기상 8:27)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더불어 계심을 사람에게서 발견하려고 했다.
선지자 나단(Nathan)은 다윗에게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라고 했다(사무엘하 7:11).
나단이 말한 집이란 왕국(kingdom)을 의미하며 이룬다(establish)는 말은 후손을 의미한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신다고 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 9:7)


누가는 1-2절을 인용한 후 베드로와 요한을 따른 초대교회 교인들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했는데 노래에 잘 어울리는 해석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사도행전 4:25-28절)


초대교회 교인들이 이 노래를 인용하고 해석한 것으로 미루어 우리가 아리랑과 같은 민요를 부르듯 이스라엘 백성이 시편을 즐겨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세상의 군왕이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한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한 행위였다.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4절)라는 말에서 다윗이 하나님을 의인화했음을 본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을 대적한 자를 가소롭게 여기신다는 말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6절)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왕권을 손수 세우셨다고 했다.


시온(Zion)은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로 시편에 40번이나 언급된다.
시온은 성전이 건립된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나중에 예루살렘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내가 영(the decree)을 전하노라”(7절)라고 했는데 영이란 칙령을 말한다.
이 구절에서 칙령은 다윗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사무엘하 7:14)


누가는 이 노래를 인용했다.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사도행전 13:33)


메시아의 권한은 이스라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땅 끝에까지 이른다.
메시아로 인정받은 다윗의 권한은 그러므로 지상에서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10절)는 깨닫고 정신차리란 말로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뜻한다(욥기 28:28).
구체적으로 말하면 메시아 혹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입을 맞추라는 말인데 입 맞추는 것은 경의를 표하고 복종할 것을 시인하는 행위이다.
엘리야가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바알(Baal)에게 입 맞추지 않은 자가 7,000명이나 된다고 하셨다(열왕기상 19:18).
저자는 지혜를 강조하며 지혜로운 자는 행복하다 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제 3편 아침 기도
A Morning Prayer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2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자리에 들면 자나 깨나)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꺽으셨나이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이것을 포함해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노래가 열세 편이 있는데 그것들은 제7, 18, 34, 51, 52, 54, 56, 57, 59, 60, 63, 142편이다.
이것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Absalom)의 반역을 피해 도피하는 상황에서 비참한 심경을 토로한 노래이다.


제사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counselor) 길로(Giloh) 사람 아히도벨(Ahithophel)을 그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사무엘하 15:12)


아들의 반역을 피해 피난 가는 아비의 처절한 모습을 사무엘은 묘사했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 (사무엘하 15:30)


사울의 족속 중 하나인 시므이(Shimei)가 다윗을 저주하면서 아들의 칼에 달린 그의 운명은 다윗 자신이 자초한 것이라고 했다.
다윗의 참혹상이 사무엘하 16:5-14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스스로 적대관계를 만들고서는 하나님께서 비참한 상황을 방관하시고 돕지 않으신다고 원망한다.
게다가 이런 적대관계를 제 탓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탓으로 돌린다.
어린 아이와도 같은 어처구니없는 이 같은 태도는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이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믿음의 표상으로 이해되곤 한다.
어린 아이와도 같은 불평이 오히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왕궁을 쫏겨난 다윗은 많은 대적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There is no help for him in God)”(2절)고 푸념했는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말이다.
이는 다윗이 더 이상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shield)이며, 영광(glory)이라는 말로 자신이 여전히 그분의 아들임을 내세웠다.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머리를 들어 주시는 분이라고 노래했는데 “나의 머리를 드신다(lift up my head)”는 말은 직위와 위엄을 회복한다는 뜻이다.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하리니
당신이 이왕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 손에 받들게 되리이다 (창세기 40:13)


제삼일은 바로의 탄일이라 바로가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할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으로 머리를 그 신하 중에 들게 하니라 (창세기 40:20)


4-5절에 다윗의 확신이 나타나 있다.
히브리어에는 시제가 없기 때문에 “내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응답하시는도다”(4절)라는 말은 “내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응답하셨도다”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다음 구절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라는 과거 시제가 더욱 잘 어울린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붙드셨으므로 다윗에게 두려움이 남아 있을 리 없다(6절).


하나님이 악인의 이를 꺾으셨다(7절)는 표현에서 확신에 찬 다윗의 모습이 상상된다.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을 그의 신앙고백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는 모든 유대인과 크리스천의 신앙고백이기도 한데 바울이 말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로마서 9:16)


셀라(Selah)라는 말이 이 노래에 세 번 사용되었고 시편 전체에서는 71번이나 사용되었다.
셀라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주석서 『시편 Psalms』의 저자 조지 나잇(George A. F. Knight)은 셀라의 의미를 “잠시 쉰 후 심벌즈와 다른 악기에 맞추어서 커다랗게 부르라”는 뜻으로 짐작했는데 그렇다면 악보의 부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제 4편 하나님과의 대화
A Dialogue with God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불쌍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거짓을) 구하겠는고 (셀라)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 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 지어다 (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 지어다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 하니이다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이 노래는 표현과 구성에 있어 전편과 유사하므로 같은 저자가 비슷한 시기에 지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전편이 환난 중에 쓴 것이라면 이것은 환난의 소용돌이가 지난 후 당시를 회고하며 쓴 것이다.
다윗은 대적이 자신을 해침으로써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으며, 그분에게 올바른 제사를 드리고 신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것을 포함해서 55편의 표제에 ‘성가대 대장을 위한 곡.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곡(For the director of music. With stringed instruments)’이라고 적혀 있다.
예루살렘 성전 밖에는 악기와 악보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는데 55편은 창고에 보관되었다가 의식이 있을 때 꺼내 사용되었다.


“의의 제사(right sacrifices)”(5절)라고 했는데 King James Version(이하 KJV로 약칭함)에는 ‘sacrifices of righteousness’라고 적혀 있어 개역성경이 KJV 번역을 따랐음을 알 수 있다. 미가는 의의 제사를 정의했다.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6-8)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1절)는 전편 5절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라는 말을 의미한 듯하다.

“인생들아(O men)”는 인간의 아들들아(sons of man)라는 뜻이다.
“궤휼을 구하겠는고(seek false gods)”(2절)는 거짓 신들 즉 헛일을 구하겠느냐는 뜻이다.
다윗은 스스로 경건한 자라고 자부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란 뜻이다.
그는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확신했다(3절).
이런 확신을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심어주셨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누가복음 18:7)


다윗은 대적에게 잠잠하라고 했는데(4절) 고요를 깨지 말라는 뜻으로 하나님에게 대한 적대 행위를 당장 중단하라는 뜻이다.
오로지 침묵하며 행동을 더 이상 진행시키지 말라는 말이다.


그가 아들 압살롬에게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5절)라고 한 말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제사를 드리지 말고(사무엘하 15:12) 올바른 제사를 드리라는 뜻이다(신명기 33:19).
속제물을 하나님께 바쳐 죄를 벗으라는 말이다.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Let the light of your face shine upon us)”(6절)라고 했는데 KJV에는 Lift up the light of Thy countenance라고 적혀 있어 하나님이 호감을 나타내시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이 말을 제사장들이 예배에 참석한 회중의 축복을 기원할 때 사용했다.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수기 6:25-26)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마지막절)라는 찬양으로 노래를 마쳤다.
안전하다(safe)는 것은 행복하다는 뜻이 아니다.
행복은 일정한 시기에만 유효한 상태지만 안전은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 것으로 그분이 함께 하는 영구적인 상태를 뜻한다.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이제 다윗에게는 대적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