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편 아침 기도
A Morning Prayer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2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자리에 들면 자나 깨나)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꺽으셨나이다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이것을 포함해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노래가 열세 편이 있는데 그것들은 제7, 18, 34, 51, 52, 54, 56, 57, 59, 60, 63, 142편이다.
이것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Absalom)의 반역을 피해 도피하는 상황에서 비참한 심경을 토로한 노래이다.


제사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counselor) 길로(Giloh) 사람 아히도벨(Ahithophel)을 그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사무엘하 15:12)


아들의 반역을 피해 피난 가는 아비의 처절한 모습을 사무엘은 묘사했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 (사무엘하 15:30)


사울의 족속 중 하나인 시므이(Shimei)가 다윗을 저주하면서 아들의 칼에 달린 그의 운명은 다윗 자신이 자초한 것이라고 했다.
다윗의 참혹상이 사무엘하 16:5-14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스스로 적대관계를 만들고서는 하나님께서 비참한 상황을 방관하시고 돕지 않으신다고 원망한다.
게다가 이런 적대관계를 제 탓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탓으로 돌린다.
어린 아이와도 같은 어처구니없는 이 같은 태도는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이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믿음의 표상으로 이해되곤 한다.
어린 아이와도 같은 불평이 오히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왕궁을 쫏겨난 다윗은 많은 대적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There is no help for him in God)”(2절)고 푸념했는데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말이다.
이는 다윗이 더 이상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shield)이며, 영광(glory)이라는 말로 자신이 여전히 그분의 아들임을 내세웠다.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머리를 들어 주시는 분이라고 노래했는데 “나의 머리를 드신다(lift up my head)”는 말은 직위와 위엄을 회복한다는 뜻이다.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하리니
당신이 이왕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 손에 받들게 되리이다 (창세기 40:13)


제삼일은 바로의 탄일이라 바로가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할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으로 머리를 그 신하 중에 들게 하니라 (창세기 40:20)


4-5절에 다윗의 확신이 나타나 있다.
히브리어에는 시제가 없기 때문에 “내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응답하시는도다”(4절)라는 말은 “내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응답하셨도다”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다음 구절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라는 과거 시제가 더욱 잘 어울린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붙드셨으므로 다윗에게 두려움이 남아 있을 리 없다(6절).


하나님이 악인의 이를 꺾으셨다(7절)는 표현에서 확신에 찬 다윗의 모습이 상상된다.
구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을 그의 신앙고백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는 모든 유대인과 크리스천의 신앙고백이기도 한데 바울이 말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로마서 9:16)


셀라(Selah)라는 말이 이 노래에 세 번 사용되었고 시편 전체에서는 71번이나 사용되었다.
셀라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주석서 『시편 Psalms』의 저자 조지 나잇(George A. F. Knight)은 셀라의 의미를 “잠시 쉰 후 심벌즈와 다른 악기에 맞추어서 커다랗게 부르라”는 뜻으로 짐작했는데 그렇다면 악보의 부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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