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편의 신학적 해석
김광우의 저서 <시편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시편에 나타난 저자들의 종교적 사상이 방대하기 때문에 신학적 해석을 한 마디로 정리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대부분의 사상이 여기에 담겨 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시종일관 반복해 나타나는 내용이 있는데 그것으로 시편 전체의 신학적 해석으로 삼을 수 있다.
이것은 작사자들이 우주를 탁월하게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공의로 통치하신다는 믿음이다.
이 같은 신앙은 시편의 두드러진 요소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악인이나 육체적 곤경으로 인한 난국에 직면하여 심판자 되시는 그분께서 구원하실 것을 의심치 않았으며 공의의 통치가 자신들의 생애에 이루어질 수 있기만을 기도했다.
그들이 꾸준히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토라를 묵상한 것을 보면 그분의 공의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확신에 차있었는지 가히 짐작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명료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 또는 계시에 대한 확신을 거듭 고백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악인의 팔을 꺾고(10:15), 이를 박살내며(58:6), 진노를 발하시기를(69:22-28) 기도하였다.
이런 표현들은 악인에 대한 개인의 복수심의 발로가 아니었다.
그들이 바란 것은 공의가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공의는 하나님께서 몸소 이루셔야 할 사항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시편에는 예언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부활에 대한 소망이 별로 없다.
몇 편이 이생 이후에도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갖고 싶어 하는 소망을 나타냈는데 이런 소망을 제16, 17, 49, 73편에서 본다.
하지만 본문들에 사용된 이런 표현들은 현세인 이 땅에서의 경험을 나타내는 다른 부분들에서도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저자들은 죽은 영혼이 거주하는 세계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스올(Sheol)을 사용했는데 스올은 무덤이나 극심한 위험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Sheol)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 (시편 49:15)
저자는 스올에서 구원받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소망을 노래했다.
저자에게 이것은 영광의 소망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현세의 구원과 예배의 지속을 뜻하기도 한다.
인간의 본질과 운명,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비추어 볼 때 인간의 최선의 참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분과의 밀접한 교제는 현세에만 국한되거나, 갑작스러운 최후의 단절로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면 믿음은 무상한 상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명료하게 노래하지는 않았더라도 그들은 내세에서도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제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호한 표현 때문에 메시아의 시편으로 알려진 노래에서도 우리는 신학적 해석에 조심스러워진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다는 사실을 믿을 때 메시아의 시편은 아주 반가운 예언으로 이해될 수 있다.
유형론(typology)을 예언적 진술의 일종으로 받아들인다면 예수로 성취된 메시아로 인하여 예표론적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신약성경 저자들이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의 여러 측면을 나타내기 위해 시편의 구절들을 자주 인용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다윗 혈통의 탁월하신 왕, 예수는 왕이 언급된 메시아 시편의 위대한 원형이 되었다.
하지만 메시아 시편의 모든 내용을 그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위험한 방법이다.
모든 내용을 유형적 방법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객관적이지 못하므로 우리는 이런 노래들이 일차적으로 저자 자신들의 경험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유형론적 해석을 하기에 앞서 그것의 역사적겧??그리고 문법적 의미 파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줄 안다.
필자가 본문에서 신약성경과 관련해서 가능한 한 유형론적 해석을 피하려고 한 이유는 시편 저자들의 경험에 더욱 초점을 두려고 한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