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가는 도중에 여러 번 쓰러졌다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빌라도는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는 군인들의 손에 넘겨주었다.
군인들은 총독 관저의 뜰에서 예수의 옷을 벗기고 주홍색 옷을 입힌 다음,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는 갈대를 들도록 했다.
그리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 만세!” 하고 조롱했으며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쳤다.
그렇게 희롱하고 나서 주홍색 옷을 벗기고 그의 옷을 도로 입힌 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그를 끌고 나갔다.(마태복음서 27: 27?1)


빌라도는 관저에서 부하를 시켜 보고서를 작성했다.
황제에게 보고하려면 죄명을 기록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유대 사람의 왕 나사렛 사람 예수’라고 헤브라이어, 그리스어, 라틴어로 명패를 적어 예수의 목에 걸게 했다.
그는 가야바의 계략에 보복하려고 그렇게 쓴 것이다.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유대 사람의 왕’이라고 쓰지 말고 ‘자칭 유대 사람의 왕’이라고 쓰라고 요구했으나 빌라도는 “나는 쓸 것을 썼다”(요한복음서 19:22) 하고 대답했다.


로마 사람들이 처형에 사용한 십자가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X자 형태의 십자가는 크로스 덱서트이고, T자 십자가는 크로스 코미서이며, 문자 그대로의 십자가 형태는 크로스 인미서라고 한다.
예수에게 사용된 것은 크로스 인미서였다.
예수는 자신의 처형에 사용될 십자가를 어깨에 지고 예루살렘 성벽 북서쪽에 있는 해골이라는 뜻의 골고다 언덕으로 향했다.
십자가는 그 횡목만으로 40kg이고 전체 무게는 약 70kg에 이른다.
심하게 매를 맞은 수형자에게 그것을 지고 언덕을 오르게 한다는 것은 대단한 체벌이다.
구경꾼들이 늘어선 길을 걸으며 예수는 갖은 조롱을 받으면서 언덕으로 향했다.
사형수들은 네 명의 로마 군병의 호송을 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백부장이 네 명의 군졸을 인솔한다.
백부장은 십자가에서 수형자의 사망을 확인하고 수형자의 고통이 길어지면 몽둥이로 일격을 가해 사망을 재촉할 임무를 띠고 있다.


예수는 가는 도중에 여러 번 쓰러졌다.
지난 밤 기도하느라고 잠을 못 잤으며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갖은 폭행과 희롱을 다 당했으니 그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거침없이 언덕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쓰러질 때마다 로마 군인에게 매를 맞았다.
자꾸 쓰러지는 그를 보다 못해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지고 언덕을 올랐다(마가복음서 15:21).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어디에 있었길래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지었을까?
제자들은 가야바와의 약속대로 어딘가에 숨어 활동을 중단하고 있었다.


십자가에 처형된 수형자들은 곧 사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래 고통을 겪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 군인이 창으로 찌르거나 백부장이 몽둥이로 무릎을 때려 죽음을 재촉한다.
수형자를 십자가에 매달기 전에 의식을 마취시키기 위해 몰약을 넣은 포도주를 먹이기도 한다.
언덕에 다다르자 군인들은 예수에게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들은 예수를 벌거벗기고 허리에 누더기를 걸치게 했는데 허용되어온 관례였다.
그들은 십자가 위에 예수를 눕히고 손에 못을 박았다.
그리고 끈을 사용하여 십자가를 세운 후 두 개의 못으로 두 발을 벌려놓고 박았다.
예수가 말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누가복음서 23:34】


군인들은 예수의 옷을 차지하려고 제비뽑기를 했는데 이 역시 로마의 관습이다.
마치 시편을 눈으로 보는 듯했다.


악한 일을 저지르는 무리가
나를 에워싸고
내 손과 발을 찔렀습니다.
뼈마디 하나하나가
다 셀 수 있을 만큼 앙상하게 드러났으며,
원수들이 나를 끊임없이 노려봅니다.
나의 겉옷을 원수들이 나누어 가지고
나의 속옷도
제비를 뽑아서 나누어 가집니다.
【시편 22: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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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것은 오전 9시였다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마가에 의하면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것은 오전 9시였다.
군인들은 예수의 양편에서 강도 두 사람을 같이 처형했다.
사람들이 예수를 쳐다보며 야유하기 시작했다.


“아하!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짓겠다던 사람아, 자기나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너라!” 【마가복음서 15:29?0】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도 함께 조롱하며 말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믿게 하여라!” 【마가복음서 15:31?2】


예수와 함께 매달린 한 수형자도 네가 메시아면 우리를 구원해보라고 예수를 모독하였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었다.


“똑같은 처형을 받고 있는 주제에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
그런 다음에 그는 예수께 말하였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그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서 23:39?3】


낮 12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을 덮어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다.
해는 빛을 잃었으며 성전의 휘장 한가운데가 찢어졌다.
예수가 갑자기 커다란 소리로 “엘로이 엘로이 레마사박다니?” 하고 외쳤는데 마가에 의하면 그 뜻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한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중 몇몇은 그가 외치는 ‘엘로이’라는 말을 듣고 그가 엘리야를 부르고 있다고 비웃었다.
그가 숨을 거두는 순간,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져 두 폭으로 갈라졌다.
그를 마주보고 서 있던 백부장은 예수가 숨을 거두는 것을 보고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마가복음서 15:39) 하고 말하였다.
예수의 마지막 외침은 시편과 관계가 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어찌하여 그리 멀리 계셔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나의 간구를
듣지 아니하십니까?
나의 하나님,
온종일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밤새도록 부르짖어도
모르는 체하십니다.
【시편 22:1?】


요한이 전하는 예수의 마지막은 다르다.
예수는 숨을 거두기 전 어머니를 보고 또 그 곁에 사랑하는 제자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에게 “여자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고 말하고 제자를 향해서는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가 목이 마르다고 하자 사람들은 해면을 신 포도주에 듬뿍 적셔 히솝 풀대에 꿰어 예수의 입에 대주었다.
예수는 신 포도주를 마시고 “다 이루었다”고 말한 후 머리를 떨어뜨리고 숨을 거두었다(요한복음서 19:30).

수형자의 시신을 묘지에 안장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예수의 시신이 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던 것은 중의회 의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노력에 의해서였다.
요셉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자신이 거둘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요셉은 예수를 따르면서도 유대인들이 무서워 그 사실을 숨겼던 사람이다.
스승이 숨을 거두자 부끄러워진 그는 스승의 시신이나마 거둠으로써 죄책감을 덜고 싶었다.
빌라도는 예수가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여 백부장을 불러 예수가 죽었는지 확인하고는 요셉의 청원을 들어주었다.


요셉은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렸다.
일찍이 예수를 밤중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100근쯤 가지고 왔다.
그들은 유대의 장례풍속대로 예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로 감았다.
예수가 처형당한 곳에 동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사람을 장사지낸 일이 없는 새 무덤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예수의 시신을 그곳에 모셨다.(요한복음서 19: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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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은 무덤을 뛰쳐나와 도망쳤다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십자가 처형을 멀리서 지켜보고 또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매장하는 것을 본 여인들이 안식일 다음 날인 일요일 동틀 무렵 무덤으로 갔다고 마가는 기록했다.
그들은 막달라 사람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였다.
그들은 예수의 시신에 바르려고 사두었던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향하면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러내 주겠는가?” 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무덤에 도착하자 엄청난 크기의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무덤 안으로 들어가니 웬 젊은 남자가 흰 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몹시 놀랐다.
놀란 여인들에게 천사가 말했다.


“놀라지 마십시오.
그대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습니다만, 그는 살아나셨습니다.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그를 안장했던 곳입니다.
그러니 그대들은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십시오.
그는 그들보다 앞서서 갈릴리로 가십니다.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거기에서 그를 볼 것이라고 하십시오.” 【마가복음서 16:6?】


여인들은 무덤을 뛰쳐나와 도망쳤다.
그들은 벌벌 떨며 넋을 잃었으며 천사의 말을 누구에게도 전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마가복음서는 사실상 끝이 난다.
그 후의 일에 대한 마가복음서의 기록은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났다는 에피소드를 비롯한 몇 가지 내용이다.
외경에는 이와 같은 에피소드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먼저 예수의 생애가 천사의 알림으로 시작해서 천사의 알림으로 끝난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의 생애는 이미 예정된 생애였던 것이다.
베드로와 함께 그리스도교를 창시한 사도 바울도 예수의 생애를 구약성서에 나온 대로 이루어진 사건으로 보았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내가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베드로)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그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태어난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3?】


예수가 처형되고 시신이 무덤에 안장될 때까지 제자들이 아무 활동을 하지 않자 가야바는 안심했다.
제자들의 부도덕한 도망과 은신은 예수의 평판을 나쁘게 하는 데 기여했으므로 가야바는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었다고 만족했다.
그런데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 일어나서 자신들에게 나타났다고 주장하자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제자들도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여인들에게 일어난 사건은 겁쟁이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부도덕함을 뉘우치게 했고 부활의 신앙으로 무장하게 했다.
부활신앙이 숨어 있던 예수의 제자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다.
그리고 불과 수주일 만에 힘 있는 초대 그리스도 교회가 출범하였다.
여러 파벌로 나뉘긴 했지만 예수의 부활을 인정하고 그를 메시아로 신격화하는 데는 한결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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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에 대한 기록은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겁쟁이 제자들이 예수를 신격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갖은 조롱을 당하면서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으며, 십자가에 매달려 여섯 시간 동안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겨우,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 말하고 숨을 거둔 스승을 메시아라고 그들이 확신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예수처럼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예언자라는 말을 들은 종교지도자들은 많았다.
에세네파와 쿰란 지도자들이 그러했고 세례자 요한 또한 그러했다.
그러나 그들은 신격화되지 못했다.
또한 에세네파와 쿰란, 요한의 세력은 쇠퇴한 반면 예수의 제자들이 결성한 그룹이 성행한 것도 놀라운 일이다.
전자가 유대인들에 한해 종교 활동을 벌인 데 반해 예수의 제자들은 이방인들을 상대로 활동한 것이 성행요인이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제자들의 힘을 고취시켰을까?


다른 그룹의 제자들과 달리 스승을 버리고 달아난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통렬한 자책감과 굴욕감, 그리고 회개하는 마음이 강했을 것이 당연하다.
시간이 갈수록 도망치던 날을 생각하면 양심에 가책이 느껴져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들은 예수가 왜 스스로 십자가 처형을 선택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으며 예수의 생애를 차근차근 돌이켜보았다.
그리하여 그의 행적과 가르침의 주요내용이 사랑에 근거한 것이었으며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그의 사역 목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 없이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의 출생이 사람들 사이에 전해져온 이야기이듯이 그의 부활 또한 전해져온 이야기이다.
부활에 대한 기록은 역사적 보도 형식을 취하고 있지 않으므로 그것이 실제 일어난 사건이었는지 의심스러워진다.
그러나 사람들을 더 놀라게 한 것은 겁쟁이 제자들이 갑자기 용감해져 부활을 증언하고 예수가 메시아였음을 주장하기 시작한 일이다.
예수가 체포되던 날 단 한 번의 저항을 했을 뿐 모두 도망쳐 숨었던 그들은, 이제 목숨을 걸고 예수가 하나님의 예정된 생애를 살았음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설교했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능력과 기이한 일과 표적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증언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서 이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 예수가 버림을 받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을 따라 미리 알고계신 대로 된 일이지만, 여러분은 그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그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22?4】


베드로는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천사의 말과 예수의 시신이 무덤에서 없어졌다는 증언을 전해 들었다.
그는 실제로 목격하진 못했지만 그 증언을 신뢰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말한 대로 예수가 “죽은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이 영생하기 위해서는 예수는 사랑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제자들은 생전에 예수가 부활에 관해 한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마가가 기록한 사건이다. 예수가 하얗게 빛나면서 예수 앞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목격한 것이다.
그때 예수는 그들에게 자신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 목격한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서로서로 부활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다가 궁금증을 풀 수가 없어 스승에게 율법학자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한 말의 뜻을 설명해달라고 했다.
그때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한다.
그런데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것이라고 기록한 것은, 어찌 된 일이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런데 그를 두고 기록한 대로, 사람들은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 【마가복음서 9:12?3】


제자들은 스승이 엘리야가 이미 왔다고 한 말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한 말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예수는 요한을 부활한 엘리야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후세의 예언자에게서 과거 예언자의 부활을 보는 것이 진정한 부활의 의미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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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은 성령의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제자들은 예수가 성서에 기록된 대로 고난 받고 멸시 당했음을 떠올렸다.
그의 생애가 모두 예언과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예언한 부활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 자신의 체험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일을 생각하자,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부활이란 목격의 대상이 아니라 예언과 신앙의 대상임을 알았다.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몸소 행하고 전함으로써 예수의 부활이 가능해진 것이다.
즉 예수의 부활은 제자들에게서 완성되는 것이며, 제자가 스승의 신념과 신앙을 전파할 때 스승은 제자를 통해 부활한다.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부활을 믿고 있었으며 바리새파 또한 부활을 믿었지만, 그들은 부활이란 최후의 날에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유대인들에게 부활신앙이 예전부터 있었던 것은 구약성서에 부활에 관한 예언이 있기 때문이다.
부활한 자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 또한 상식에 속했다.
예수 당시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세례자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난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부활 개념이 일반적으로 존재했음을 보여준다(마가복음서 6:14).
바리새파 사람에게서 교육을 받은 바울도 그러한 신학을 이어받았는데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의 신학이 드러난다(데살로니가전서 4:16).
예수의 부활이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도래할 근거가 된다는 것이 바울의 기본 신학이다(고린도전서 15장).


그러나 부활신앙을 부활 사건과 동일시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이미 존재했던 부활신앙이 부활 사건이라는 결과를 낳은 것이지, 부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부활신앙이 생긴 것이 아니다.
예수는 제단에 자신의 피를 뿌림으로써 부활신앙이 엄연한 사실임을 드러냈다.


부활신앙은 성령의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복음서 저자들은 세례자 요한의 입을 빌어 장차 오실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줄 것이라고 말하여 예수가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자신의 사역을 성취했다고 기록했다.


예수는 사역 말기에 제자들에게 자주 성령에 관해 가르쳤다.
예수는 성령이 변호인처럼 제자들에게 나타날 것이니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요한복음서 14:26】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요한복음서 16:7】


베드로는 예수의 생애가 하나님의 예정된 생애였음을 말할 때 예언자 요엘의 예언을 인용했다.


“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종들에게까지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의 영을 부어주겠다.”
【요엘서 2:28-29】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선언하며 성령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성령의 시대는 메시아의 도래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의 바램이었다.
베드로는 그러한 바램을 부활신앙과 연관 지어 하나의 거대한 사건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했음을 요한은 이렇게 증언한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성령)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분을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안다.
그것은 그분이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조금 있으면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요한복음서 14:15?1】


요한의 증언은 훗날 삼위일체론의 근거가 되었다.
예수가 자신을 진리라고 말한 것은 성령이 곧 진리의 영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한마디로 지극한 사랑이었다.
사랑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고 성령을 동시에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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