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에 대한 기록은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겁쟁이 제자들이 예수를 신격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갖은 조롱을 당하면서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으며, 십자가에 매달려 여섯 시간 동안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겨우,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깁니다” 말하고 숨을 거둔 스승을 메시아라고 그들이 확신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예수처럼 많은 제자를 거느리고 예언자라는 말을 들은 종교지도자들은 많았다.
에세네파와 쿰란 지도자들이 그러했고 세례자 요한 또한 그러했다.
그러나 그들은 신격화되지 못했다.
또한 에세네파와 쿰란, 요한의 세력은 쇠퇴한 반면 예수의 제자들이 결성한 그룹이 성행한 것도 놀라운 일이다.
전자가 유대인들에 한해 종교 활동을 벌인 데 반해 예수의 제자들은 이방인들을 상대로 활동한 것이 성행요인이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제자들의 힘을 고취시켰을까?
다른 그룹의 제자들과 달리 스승을 버리고 달아난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통렬한 자책감과 굴욕감, 그리고 회개하는 마음이 강했을 것이 당연하다.
시간이 갈수록 도망치던 날을 생각하면 양심에 가책이 느껴져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들은 예수가 왜 스스로 십자가 처형을 선택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으며 예수의 생애를 차근차근 돌이켜보았다.
그리하여 그의 행적과 가르침의 주요내용이 사랑에 근거한 것이었으며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그의 사역 목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 없이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의 출생이 사람들 사이에 전해져온 이야기이듯이 그의 부활 또한 전해져온 이야기이다.
부활에 대한 기록은 역사적 보도 형식을 취하고 있지 않으므로 그것이 실제 일어난 사건이었는지 의심스러워진다.
그러나 사람들을 더 놀라게 한 것은 겁쟁이 제자들이 갑자기 용감해져 부활을 증언하고 예수가 메시아였음을 주장하기 시작한 일이다.
예수가 체포되던 날 단 한 번의 저항을 했을 뿐 모두 도망쳐 숨었던 그들은, 이제 목숨을 걸고 예수가 하나님의 예정된 생애를 살았음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설교했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께서 능력과 기이한 일과 표적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증언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서 이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 예수가 버림을 받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을 따라 미리 알고계신 대로 된 일이지만, 여러분은 그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그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22?4】
베드로는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천사의 말과 예수의 시신이 무덤에서 없어졌다는 증언을 전해 들었다.
그는 실제로 목격하진 못했지만 그 증언을 신뢰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말한 대로 예수가 “죽은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이 영생하기 위해서는 예수는 사랑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제자들은 생전에 예수가 부활에 관해 한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마가가 기록한 사건이다. 예수가 하얗게 빛나면서 예수 앞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목격한 것이다.
그때 예수는 그들에게 자신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 목격한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들은 서로서로 부활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다가 궁금증을 풀 수가 없어 스승에게 율법학자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한 말의 뜻을 설명해달라고 했다.
그때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한다.
그런데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할 것이라고 기록한 것은, 어찌 된 일이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
그런데 그를 두고 기록한 대로, 사람들은 그를 함부로 대하였다.” 【마가복음서 9:12?3】
제자들은 스승이 엘리야가 이미 왔다고 한 말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한 말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예수는 요한을 부활한 엘리야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후세의 예언자에게서 과거 예언자의 부활을 보는 것이 진정한 부활의 의미임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