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무엇하러 여기에 왔느냐?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한편 유다는 지금 스승이 어디에 있는지 알리기 위해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갔다.
어두운 밤, 횃불을 여기저기 켜놓은 중의회 마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유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경비대원들은 무장을 하고 있었다.
가야바는 제자가 스승을 배반했으니 스승이 오죽했겠냐고 민중을 납득시킬 수 있어 마음이 흡족했다.
유다가 도착하자 가야바는 성전 경비대를 끌고 겟세마네로 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경비대원들은 한 손에는 횃불을, 다른 손에는 칼이나 몽둥이를 들고 성문을 나서 겟세마네로 향했다.
유다는 스승이 어디에 있을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스승의 일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유다는 경비대원에게 “내가 입을 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잡아서 단단히 끌고가시오” 하고 말했다.
그는 예수에게로 달려가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하고 입을 맞추었다.
예수가 유다에게 말했다.


“친구여, 무엇하러 여기에 왔느냐?” 【마태복음서 26:50】


경비대원들이 예수를 체포하자 한 제자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내리쳐 그의 귀를 잘랐다.
요한은 귀를 자른 사람이 베드로라고 기록했다.
예수는 갑작스런 일에 놀라 제자를 꾸짖었다.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께, 당장에 열두 군단 이상의 천사들을 내 곁에 세워주실 것을 청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한 성경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마태복음서 26:52?4】


그리고는 경비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는 강도에게 하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서 가르치고 있었건만, 너희는 내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이렇게 되게 하신 것은, 예언자들의 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마태복음서 26:55?6】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자들은 스승을 버리고 달아났다.
이들이 달아났다는 것은 어딘가에 숨었다는 것이 아니다.
가야바가 예수까지 처형하는 마당에 제자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려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제자들이 예수의 처형지에 갈 수 있었고 그의 무덤에도 갈 수 있었다면, 그것은 가야바가 제자들의 행동을 일부러 제한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왜 가야바는 그들을 체포하지 않고 묵인했을까?
그것은 가야바와 제자들 사이에 모종의 묵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가야바는 겁쟁이 제자들을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스승을 위한 구명운동을 하지 말 것을 다짐받았을 것이다.
민중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키면 스승과 마찬가지로 가차 없이 십자가형에 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을 것이다.
구명운동만 하지 않는다면 신변을 보장해주고 스승의 시신을 내어주겠다고 회유했을 것이며, 겁쟁이 제자들은 스승의 시신만이라도 거둘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자위하고 비겁한 길을 택했을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했다는 것은 그가 가야바의 세 가지 주문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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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 대한 재판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예수에 대한 재판은 약식으로 치루어졌을 거라고 짐작하지만 누가 예수에게 사형이라는 무거운 죄를 내렸는지는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유대의 재판 규정에는 중범죄는 낮에 판결해야 한다고 되어 있으니 그의 재판도 낮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금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거나, 그가 금요일 오전에 처형되었다면 아무리 약식재판이라도 최후의 만찬은 수요일 저녁에 있었어야 한다.
또한 유대법에는 만장일치 판결은 무효라고 했는데 복음서는 예수가 만장일치로 사형판결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가야바는 유대법을 어기고 새벽에 예수에게 사형을 판결한 뒤 동이 트자마자 그를 처형한 것인지 모른다.
그렇듯 민첩한 가야바의 행위를 빌라도가 묵인해주었을 것이다.


경비대원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 끌고 가자 그곳에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율법학자들이 모여 있었다.
가야바의 장인이자 전 대제사장 안나스도 와 있었다.
안나스는 제 몸도 제대로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늙고 힘이 없었지만 아직은 중의회의 실권을 쥐고 있었다.
사위 가야바로부터 예수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던 안나스는 상석에 비스듬히 앉아서 붙들려온 예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저자가 그리스도라니? 망상에 사로잡힌 녀석이구만!”
아직 동이 트지도 않은 때 비공식 신문이 시작되었다.
재판에 회부할 사건인지 확인하는 신문이었다.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되면 대제사장이 최고법원을 대신하여 정식 재판에 회부하며, 소송은 공식적인 효력을 가지게 된다.


비공식 신문은 미리 수집한 자료에 따라 아주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안식일인 내일 밤에는 유월절 예식이 공식적으로 행해진다.
예수에 관한 신문과 재판 그리고 처형을 오늘 중으로 끝내야 내일 편안한 마음으로 유월절 예식을 치를 수 있다.
빌라도 총독이 요구할 법적 증거들을 완벽하게 구비해두어야 차질이 없다.
가야바 일당은 아주 서둘러 신문을 마치려고 했으며, 늙고 간교한 안나스는 사위가 실수 없이 일을 끝마치도록 지혜를 빌려주었다.


가야바는 예수가 성전을 헐어버리고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말한 데서 성전의 안전과 신성을 모독한 죄를 적용하려 했다.
그렇게 되면 유대법뿐 아니라 성전의 안전과 신성을 책임지고 있는 로마법에도 저촉이 되므로 사형은 당연해진다.
그러나 예수가 성전을 모독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을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했으며 증인을 구하는 데도 실패했다.
그러자 가야바는 예수가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말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유대의 왕을 자처하는 것은 반로마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왕의 임명은 로마 황제의 권한이므로 그것은 황제에게 반역하는 행위가 된다.
멀리서 스승을 따라왔던 베드로는 가야바의 안마당에서 신문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이 뜰 한가운데 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있는데 베드로도 그들 가운데 끼어 앉아 있었다.
그때에 한 하녀가 베드로가 불빛을 안고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를 빤히 노려보고 말하기를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어요” 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을 부인하여 말하기를 “여보시오, 나는 그를 모르오” 하였다.
조금 뒤에 다른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서 “당신도 그들과 한패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여보시오, 나는 아니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 때에 또 다른 사람이 강경하게 주장하기를 “틀림없이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소. 이 사람은 갈릴리 사람이니까요” 하니, 베드로는 “여보시오, 나는 당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소” 하고 말하였다.
베드로가 아직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곧 닭이 울었다.
주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똑바로 보셨다.
베드로는 주께서 자기에게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서, 바깥으로 나가서 몹시 울었다.
【누가복음서 22: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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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 서로 엇갈린 증언을 했다.
가야바가 예수에게 사람들이 불리하게 증언하는 데도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예수가 여전히 침묵을 지키자 가야바는 다시 물었다.


“그대는 찬양을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내가 바로 그이요. 당신들은 인자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마가복음서 14:62】


마가가 베드로의 말을 듣고 기록했을 거라고 짐작되는 이 증언을 신빙성 있는 증언이라고 하긴 어렵다.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죄책감과 존경심이 훗날 이와 같은 기록을 남기게 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만 사형을 전제로 열린 중의회 재판에서 예수가 스스로를 그리스도라고 말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과거에는 메시아에 대한 사람들의 그릇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알리기 꺼려했지만,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대제사장 앞에서, 그것도 빈정거리는 그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마가는 대제사장이 예수의 대답을 듣자 자신의 옷을 찢었다고 썼는데, 슬픔을 못 이길 때 자신의 옷을 찢는 것은 유대인들의 오랜 관습이었다(욥기 2:12).
가야바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들이 더 필요하겠소?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오?” 【마가복음서 14:63-64】


중의회 의원들은 한결같이 예수가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정죄했다.
그들은 예수에게 달려들어 침을 뱉었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면서 “알아 맞춰보아라” 하고 놀려댔다.
하인들은 예수를 손바닥으로 쳤다.


가야바에게는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를 보내 로마에 반역한 정치범으로 사형에 처해줄 것을 요청해야 했다.
아침 해가 막 떠오를 무렵 대제사장들과 군중들은 예수를 끌고 다윗 문 근처에 있는 빌라도의 관저로 갔는데 가야바의 집에서 걸어서 약 7?분 거리였다.


빌라도는 이탈리아 동남부 삼니테 출신으로 그의 일가 가운데 누키우스, 폰테이우스, 아그니스가 가에살 암살에 가담한 바 있으며,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에 집정관에 취임했던 사람도 있었다.
빌라도가 아내 프로그라를 데리고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해온 것은 26년이었다.
빌라도는 자신을 후원하던 로마의 세이아누스가 처형당한 후 스스로의 힘으로 총독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는 시리아의 감독을 받고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세심히 관찰해야 했다.
중의회와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해야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의 처지를 잘 알고 있던 가야바는 빌라도가 자신의 판결을 추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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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는 갈릴리의 통치자 안디바가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그들이 예수를 끌고 빌라도의 관저에 도착하자 빌라도는 무슨 일로 고소하는 건지 물었다.
그들은 예수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사람들을 선동했으며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을 자칭하고 유대 전역을 다니면서 사회적 정치적 소요를 일으킨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대답을 들은 빌라도는 “그를 데리고 가서 당신들의 법대로 재판하시오”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에겐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다고 버티었다.
그러자 빌라도가 예수에게 물었다.


“네가 유대 사람의 왕이냐?”

“네가 하는 그 말은 네 생각에서 나온 말이냐?
그렇지 않으면 나를 두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여준 것이냐?”

“내가 유대인이란 말이냐?
네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다.
너는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내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 네가 왕이냐?”

“네가 말한 대로 나는 왕이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는다.”

“진리가 무엇이냐?”
【요한복음서 18:33?8】


예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한편 누가는 빌라도가 군중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적었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목도 찾지 못하겠소.”
그러자 그들은 강경하게 “그 사람은 갈릴리에서 시작해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온 유대를 누비며 가르치면서, 백성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누가복음서 23:4?】


빌라도는 갈릴리의 통치자 안디바가 예루살렘에 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골치 아픈 종교재판을 그에게 넘겨야겠다는 꾀가 생겼다.
갈릴리 출신인 예수는 안디바의 통치영역에 속한 사람이므로 마땅히 그가 재판해야 할 것이다.
가야바는 그러한 빌라도의 처사를 묵인했는데, 세례자 요한을 죽였던 안디바는 예수에게도 혹독한 벌을 내릴 것이고, 중의회와 안디바가 모두 예수의 처형을 바란다면 빌라도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수를 끌고 빌라도의 관저 옆에 있는 안디바의 관저로 갔다.


빌라도가 예수를 안디바에게 보낸 것은 안디바에 대한 정중한 제스처였다.
안디바는 부왕 헤롯 대왕의 유언대로 자신의 통치지역에 관한 한 도주범을 인도받을 수 있는 권리를 비롯해 몇 가지 특권을 로마 황제로부터 부여받았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안디바를 대우하여 요청이 없더라도 예수를 넘겨주었던 것이다.
안디바는 이를 자신에게 정치적 호의를 보인 것으로 받아들여 흐뭇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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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바의 계략에 빌라도가 말려든 것이다

김광우의 <예수 이야기> 중에서


예수가 부활한 세례자 요한이라는 소문을 들었던 안디바는 예전부터 그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안디바는 예수가 어떤 표적이라도 보여주기를 바래서 여러 가지를 물었으나 예수는 침묵만을 지킬 뿐이었다.
안디바는 그가 소문과 달리 무력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알자 마음이 놓였다.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안디바의 엉뚱한 질문을 듣다 못해 예수의 죄목들을 일일이 고발했다.
안디바는 호위병들과 함께 예수를 모욕하고 조롱한 후 화려한 옷을 입혀 도로 빌라도에게 보냈다.(누가복음서 23:6?2)
교활한 안디바는 빌라도의 정중한 제스처를 정중하게 사양할 줄 알았던 것이다.


빌라도는 안디바가 불쌍한 남자를 자기에게 도로 돌려보내자 예수의 무죄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 군중들을 불러 모아놓고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들은 이 사람이 백성을 오도한다고 하여 내게로 끌어왔으나, 보다시피 내가 당신들 앞에서 친히 신문해보았지만, 당신들이 고소한 것과 같은 죄목은 아무것도 이 사람에게서 찾지 못하였소.
헤롯(안디바)도 또한 그것을 찾지 못하고 그를 우리에게 도로 돌려보낸 것이오.
이 사람은 사형을 받을 만한 일을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소.
그러므로 이 사람을 매질이나 해서 놓아주겠소.” 【누가복음서 23:14?6】


빌라도는 그저 혼이나 내어 앞으로 말조심하고 자숙하도록 가벼운 체형을 가하겠다고 하며 한 가지 안을 내놓았다.
유월절의 관례였던 특사를 예수에게 적용시키겠다는 것이다.
특사란 제사드리는 기간 동안 죄인 한 사람을 석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관례에 관해 복음서 외에는 기록이 없다.
마가는 빌라도가 명절 때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주곤 했다고 하여(마가복음서 15:6) 사면이 사람들의 요구에 의한 것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요한은 빌라도가 “내가 여러분에게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소”(요한복음서 18:39)라고 말했다고 기록하여 사면이 빌라도의 고유한 권한인 것으로 언급했다.
어쨌든 빌라도는 예수를 처형했다가 민중의 폭동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염려하여 결백한 예수를 사면해주려고 한 것이다.


중의회의 조작극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군중들은 바라바의 석방을 요구했다.
요한은 바라바를 강도라고 기록했는데(요한복음서 18:40), 요한이 말한 강도란 요세푸스에 따르면 제로테당 폭도를 뜻한다.
마가는 바라바가 폭동 때 살인을 저지른 폭도들과 함께 감옥에 갇혀 있었다고 했으며(마가복음서 15:7) 예수와 함께 십자가 처형을 당한 두 강도에게도 같은 ‘폭도(le죚stai)’라는 말을 사용했다.
바라바는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얼마 전 일어난 민중봉기 때 검거되어 감옥에 갇혔던 것이다.
빌라도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가야바는 바라바의 추종자들은 과격해서 그가 특사에서 빠진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점을 빌라도에게 상기시켰다.
군중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이 자를 없애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주시오.” 빌라도는 예수를 풀어주고자 다시 그들에게 말했으나 그들은 계속 외쳤다.


“그 자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누가복음서 23:21】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사형에 처할 죄를 찾지 못하였으니 매질이나 해서 놓아주겠다고 세 번 째로 말했다.
그러나 군중들은 떼를 쓰듯 우기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큰 소리를 질렀다.
마침내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에 따르기로 결정하여, 감옥에 갇힌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넘겨주었다.
마태의 기록에는 빌라도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되어 있다.


“내가 누구를 놓아주기를 바라오?
바라바 예수요?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요?” 【마태복음서 27:17】


복음서에서 예수와 바라바는 로마에 대한 두 가지 대조되는 저항방법을 상징한다.
무저항과 무력사용이 그것이다. 예수는 무력으로 저항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 반면, 바라바는 무저항이란 아주 비겁한 행위라고 여겼다.
군중들은 바라바를 선택함으로써 예수의 입장에 냉소를 던진 것이다.


빌라도는 여론재판으로 결정하는 것이 폭동을 예비하는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하여 아예 처형방법까지 여론에 따르기로 했다.
군중들은 십자가 처형을 요구했다.
그것은 로마의 처형방법이며 유대인들은 돌팔매로 처형했다.
가야바의 사수를 받은 군중은 십자가형을 요구했는데 예수의 처형을 로마에 귀속시키려는 속셈이었다.
가야바는 예수가 이단자가 아니라 정치범으로 처형되길 바랐다.
이단자로 처형했다가 후에 예수의 신학이 구제를 받게 되면 오히려 자신이 이단자가 되기 때문이다.
정치범으로 처형하면 나중에 무죄로 밝혀지더라도 책임은 빌라도에게 돌아가게 된다.
가야바의 계략에 빌라도가 말려든 것이다.
그것을 안 빌라도의 아내는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 있을 때 사람을 보내 이렇게 전했다.

“당신은 그 옳은 사람에게 아무 관여도 하지 마십시오.
지난 밤 꿈에 내가 그 사람 때문에 몹시 괴로움을 받았으니까요.” 【마태복음서 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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