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메시아인가
김광우의 저서 <예수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그리스어로 ‘크리스토스(Christos)’라고 번역된 ‘메시아’는 ‘기름을 붓다’라는 뜻의 헤브라이어 동사 ‘마샤하(Ma죚s∧ah)’에서 온 형용사로 ‘기름 부음을 받은’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메시아란 거룩한 직능을 부여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구약성서에서는 선지자들이나 때로는 대제사장, 이스라엘의 왕을 지칭하기도 했다.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에 관해 구약성서는 다양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메시아는 다윗이 세운 왕조와 관련이 있는데, 다윗의 자손 가운데 왕위에 오를 사람을 정하겠다는 신탁(시편 132:11)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예언자 이사야는 메시아를 고난 받는 종으로 묘사했다.


나의 종이 매사에 형통할 것이니,
그가 받들어 높임을 받고,
크게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이사야서 52:13】


예언자 스가랴는 메시아를 공의로운 왕이라고 부르면서 그가 구원을 베풀 것을 예언했다(스가랴서 9:9).
예수는 이사야와 스가랴가 예언한 ‘공의를 베푸는’ 메시아를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러기 위해 메시아는 지혜롭지 않으면 안 되며 그 지혜로움은 다니엘이 말한 지혜이다.


백성 가운데서 지혜 있는 지도자들이 많은 사람을 깨우칠 것인데, 얼마 동안은, 그 지혜 있는 지도자들 가운데 얼마가 칼에 쓰러지고, 화형을 당하고, 사로잡히고, 약탈을 당할 것이다. 【다니엘서 11:33】

지혜 있는 사람은 하늘의 밝은 빛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인도한 사람은 별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 【다니엘서 12:3】


그러나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라고 말하지 않고 인자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에게 인자, 곧 사람의 아들은 메시아와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자신이 본 환상을 증언하는 중에 인자라는 말을 사용한 바 있다.


“내가 밤에 이러한 환상을 보고 있을 때에
인자 같은 이가 오는데,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계신 분에게 나아가
그 앞에 섰다.”
【다니엘서 7:13】


다니엘의 인자는 이사야가 말하듯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은 아니지만 메시아를 언급한 것이라 해석된다.
시편에도 인자라는 말이 나온다.


주의 오른쪽에 있는 사람,
주께서 몸소 굳게 잡아주신 인자 위에
주의 손을 얹어주십시오.
【시편 8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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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생각한 메시아
김광우의 저서 <예수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예수가 생각한 메시아는 이사야서에 나온 것과 비슷하다.


“나의 종을 보아라.
그는 내가 붙들어주는 사람이다.
내가 택한 사람,
내가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가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다.
그는 소리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거리에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실 것이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
그는 쇠하지 않으며,
낙담하지 않으며,
끝내 세상에 공의를 세울 것이니,
먼 나라에서도 그의 가르침을 받기를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이사야서 42:1?】


로마의 탄압을 받는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는 나라를 구하고 왕으로 추대 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가 생각한 메시아는 “소리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거리에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진리를 가르치며 공의를 베푸는 사람이다.


예수는 가이사랴 빌립보에 있는 여러 마을로 갈 때 제자들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베드로가 대답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시기를, 자기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마가복음서 8:27?0】


예수는 사람들이 유대에 독립을 가져다주는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쳐서 자유를 깨닫게 하고 공의를 베풀어 속박당하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 메시아의 사명이라고 믿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메시아로 부르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하여 종말적인 왕의 칭호가 자신에게 붙여지는 것을 꺼려했다.
마태복음서와 누가복음서에서 메시아란 말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예수가 그러한 칭호를 삼가하도록 한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옹립하려고 하자 산으로 피했다는 요한의 기록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예수가 메시아를 논제로 삼은 적이 한 차례 있었다.


“어찌하여 율법학자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느냐?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친히 이렇게 말하였다.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다윗 스스로가 그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마가복음서 12:35?7】


예수는 시편 110편에서 다윗이 메시아를 주라고 부른 것을 지적하면서 다윗의 자손이 다윗의 주가 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율법학자들은 그의 말에 침묵을 지켰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유대를 건국한 다윗과 같은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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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그리스도(메시아)임을 선언했다
김광우의 저서 <예수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예수는 체포되자 그제서야 자신이 그리스도(메시아)임을 선언했다.
그대가 그리스도냐는 대제사장의 질문에 “내가 바로 그이요”라고 대답한 것이다(마가복음서 14:61?2).
그러나 누가는 다르게 기록했다.
누가는 예수가 간접적으로 대답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대제사장이 “네가 그리스도면, 그렇다고 우리에게 말해라”라고 하자 예수가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믿지 않을 것이며, 내가 물어보아도 너희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인자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게 될 것이다.” 【누가복음서 22:67-69】


장로단, 곧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물었다.
예수는 “내가 그라고 너희가 말하였다”(누가복음서 22:70)라고 대답했다.
마태도 그리스도냐는 질문에 예수는 “당신이 말하였소”(마태복음서 26:64)라고 간접적으로 대답했다고 기록했다.


예수가 그리스도냐는 질문에 간접적으로 대답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메시아에 대한 이해는 그의 일생에 대한 이해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생애를 통해 메시아의 역할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메시아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일생에 걸쳐 그 사명을 완수한다.
예수의 생애에 대한 이해가 바로 메시아에 대한 이해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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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에 메시아가 출현한다는 것은
김광우의 저서 <예수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분봉왕 안디바의 귀에도 예수에 관한 갖가지 소문이 들어가지 않았을 리 없다.
죽은 요한이 살아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엘리야가 나타난 것이거나 또 다른 옛 예언자가 부활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소문들이 돌았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부활신앙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안디바는 소문의 주인공을 만나고 싶어 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어 죽였는데 내게 이런 소문이 파다하게 들리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복음서 9:9】


다시 유월절이 찾아왔다.
아마 29년 봄일 것으로 생각된다.
유월절에 메시아가 출현한다는 것은 유대인의 전통적인 믿음이자 바램이었다.
지난해부터 유대인에 대한 로마의 압력이 심해졌으므로 그들은 더욱더 메시아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었다.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가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제물과 뒤섞인 사건이 일어나자(누가복음서 13:1)
제로테 당원들은 거사의 날을 앞당기려고 했다.
실로암 탑이 무너져 18인의 희생자가 난 것도 그때였다(누가복음서 13:4).
정치적 사회적 불안이 커지자 사람들은 메시아의 출현을 더욱 고대하였고 예수를 메시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수도 부쩍 늘었다.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에게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남자들만도 약 오천 명에 이르렀다.
예수가 그들을 먹이려고 하니 준비된 것은 고작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다.
그는 그것으로 그들 모두를 먹이는 기적을 행했다.
사람들은 그가 행한 기적을 보고 “이분이 참으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다”라고 입을 모으며 그의 결단을 촉구했다.
예수는 사람들이 자신을 앞세워 혁명을 일으키려 한다는 것을 알고 혼자 산으로 갔다.(누가복음서 6:4?5)


오천 명의 남자들이 예수에게로 간 사실은 당시 고조되던 유대인의 민족감정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요한은 그들이 예수를 유대의 왕으로 옹립하려 했다고 증언했다.
굶주린 오천 명이 그에게로 갔다는 것은 속박당하는 유대인들의 처지를 잘 드러내준다.
예수가 그들에게 사랑의 음식물로 배를 채워주었다는 것이 에피소드의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유대의 독립을 위해 일어나줄 것을 요구하며 예수가 앞장을 선다면 죽음을 무릅쓰고 따르겠다고 외쳤을 것이다.
유월절이라서 사람들은 흥분해 있었다.
홀로 산으로 피한 예수는 결단의 벼랑에 서서 더욱 고독을 느꼈을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과 유대인들의 요구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는 장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심히 괴로웠을 것이다.
그가 체포되었을 때 빌라도에게 한 말에서 그가 겪었던 큰 괴로움을 알 수 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내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서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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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자신을 왕으로 옹립하려는
김광우의 저서 <예수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예수는 자신을 왕으로 옹립하려는 군중들에게 그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설교를 했다.
그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으며, 미워하는 사람들을 선대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주며, 모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오른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왼뺨을 돌려대고, 겉옷을 달라는 사람에게 속옷도 주라고 말했다.
유대인들은 율법학자나 사제들에게서 사랑의 가르침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며 예수에게서 그러한 말을 처음 들었다.
율법학자가 예수를 시험하려고 율법 가운데 어느 계명이 중요하냐고 물었을 때도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셨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에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본뜻이 달려 있다.” 【마태복음서 22:37?0】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준 설교였다.
혁명을 꿈꾸던 사람들은 여간 실망하지 않았다.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바랬던 사람들은 그날 예수가 그들이 기대하던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예수가 자신들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판단했으므로 열광했던 만큼이나 환멸을 느꼈다.
제자들 가운데도 예수에게 환멸을 느낀 사람이 있었는데 훗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에게 소망을 걸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서 24:21】


드디어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이 기다리던 때가 온 것이다.
민중 속에 섞여 예수를 감시하던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은 그날의 일을 예루살렘 중의회에 보고했고, 가야바는 제사장들과 앞으로의 대책을 협의했다.
제자들조차 예수를 기대에 어긋나는 예언자라 생각하게 되었다면, 반란을 일으키기에 턱없이 모자란 남자라고 느꼈다면, 이제 교란공작만 하면 그를 체포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감시원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자들을 교란시켰다.
예수는 홀로 산으로 가서 기도하는 일이 잦았다.


제자들은 예수가 왜 괴로워하는지, 왜 그토록 자주 산으로 가서 오랫동안 기도하는지 알지 못했다.
예수는 자기가 많은 기적을 보였던 마을 사람들이 아직도 회개하지 않는 것을 야속해했다.
가버나움, 고라신, 벳새다 고을 사람들을 원망했다.


“고라신아, 너에게 화가 있다.
벳새다야, 너에게 화가 있다.
너희에게서 행한 기적들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치솟을 셈이냐?
지옥에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 가버나움에서 행한 기적들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도시는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마태복음서 11:21?4】


예수는 여태까지 노력한 성과가 없음을 한탄했다.
그토록 사람들에게 사랑을 쏟았건만, 사람들은 그가 로마에 대한 혁명을 주모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그를 떠났다.
예수는 어머니가 계신 나사렛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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