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마지막 아담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제2의 아담 또는 마지막 아담이란 명칭은 바울이 만든 신학의 개념이다.
바울은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원죄를 인류에게 유산으로 남겼으나 예수가 하나님께 순종하여 자신을 대속물로 바치시고 부활했기 때문에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아담으로부터 인류가 사망이라는 원죄를 받은 것처럼 마지막 아담 예수로부터 인류는 영생이라는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
바울은 예수를 본래의 아담과 비교하여 상이한 점을 지적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또 이 선물은 범죄 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5:12-21)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20-22)


바울은 본래 아담을 예수의 원형으로 이해하면서 예수를 이상적인 제2의 아담으로 인식했다.
제2의 아담은 하늘로부터 왔기 때문에 본래 아담처럼 흙으로 빚어진 존재가 아니라 성령이므로 제2의 아담을 닮아야 한다고 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아담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린도전서 15:47-49)


바울은 인류가 조상 아담으로부터 원죄를 받았지만 예수가 의를 나타냄으로써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죄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을 의미하며 의란 순종이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로마서 5: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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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안식일의 주인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안식일의 주인이란 명칭은 숭배의 대상이라는 말이다.
안식일은 모세의 율법을 의미하지만 나아가서 유대교 자체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유대인에게 율법은 오늘날 교리의 정도를 넘어서 선민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하늘나라의 통치 방법이었다.
안식일의 기원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세기 2:3)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히브리서 4:4)


예수는 율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율법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다.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마가복음 2:27-28)


마태도 안식일의 주인이 되는 분은 예루살렘 성전보다 크신 분이라고 하여 예수가 예배를 받으실 분이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마태복음 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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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구주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구주(Savior)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분을 뜻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지 않고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으므로 구주는 주,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에 해당하는 신학적 개념이다.


신약성경 저자들은 예수를 구주라고 믿었기 때문에 구약성경을 새 방법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수의 생애를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고난 받는 하나님의 종과 관련해서 이해하려고 했는데 고난 받는 종의 이미지는 유대교 신학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
신약성경 저자들은 예수의 죽으심을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구원과 관련해서 해석했고 인류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한 그분에 의한 그분의 구원의 역사로 이해했다.


누가는 구주를 주와 그리스도와 동격으로 사용하면서 예수의 탄생을 구주의 탄생으로 묘사했다.
요한도 구주를 하나님의 아들과 동격으로 사용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누가복음 2:11)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요한1서 4:14-15)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다(요한복음 3:17).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가에서 예수와 대화하던 중 그가 주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여인은 그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에게 간청하여 마을에 이틀 동안 묵어가게 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여인에게 말했다.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요한복음 4:42)


예수는 구주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관해 언급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38-40)


구주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으며(요한복음 12:47) 죽은 사람을 부활시켜 영생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6:44)


베드로와 요한이 전도하다가 붙들려 법정에 섰을 때 베드로는 예수를 집짓는 사람들 즉 유대인으로부터 버림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면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입지 않고서는 구원될 방법이 없다고 했다(사도행전 4:12).
베드로는 말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사도행전 5:31)


원죄를 상속받은 인류를 사랑하는 분은 예수 한 분뿐이다(로마서 5:8).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디모데전서 1:1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브리서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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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심판자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그리스도 신화는 태초에 하나님과 더불어 존재한 그리스도가 만물을 창조한 것으로 시작되므로 만물을 창조한 분이 최후의 날에 심판하는 것으로 종료될 수밖에 없다.
신화의 처음과 끝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핀 대로 그리스도 또는 인자에게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으므로 최후의 날에도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요한복음 5:27).
예수를 최후의 심판자로 극적으로 묘사한 사람은 요한이다.
요한은 자신이 본 환상을 기록했는데(요한계시록 22:15) 그가 기록한 심판자는 누가의 심판자와 다르지 않았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누가복음 3:17)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6:2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누가복음 17:34)


의인과 불의한 자를 누가는 알곡과 쭉정이에 비유했고 마태는 양과 염소에 비유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마태복음 25:31-33)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리라 하리라 (마태복음 13:30)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마태복음 13:49, 24:40)


바울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설교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그분이 선택한 분을 통하여 심판할 날을 정하셨다고 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사도행전 17:31)


야고보는 실용주의 신학을 말했다.
불우한 사람을 돌보고 자기 자신을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며(야고보서 1:27),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므로 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야고보서 2:26).
야고보 역시 예수를 심판자라고 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야고보서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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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처음과 나중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그리스도 신학에는 처음과 나중 또는 알파(Alpha)와 오메가(Omega)가 있다.
예수가 처음도 되고 나중도 된다는 신학을 강조한 사람은 요한인데 하나님이 스스로를 가리켜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1:8)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이사야 41:4)


요한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묘사했다.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요한계시록 1:17-18)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요한계시록 22:12-13)


요한은 계시록을 쓰게 된 동기를 처음과 나중이 되는 하나님이 친히 기록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한은 하나님이 환란을 이겨낸 성도에게 영생을 주어 아들로 삼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증언하며(요한계시록 5-7장) 하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임을 지적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요한계시록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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