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구주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구주(Savior)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분을 뜻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지 않고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으므로 구주는 주,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에 해당하는 신학적 개념이다.


신약성경 저자들은 예수를 구주라고 믿었기 때문에 구약성경을 새 방법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수의 생애를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고난 받는 하나님의 종과 관련해서 이해하려고 했는데 고난 받는 종의 이미지는 유대교 신학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
신약성경 저자들은 예수의 죽으심을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구원과 관련해서 해석했고 인류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한 그분에 의한 그분의 구원의 역사로 이해했다.


누가는 구주를 주와 그리스도와 동격으로 사용하면서 예수의 탄생을 구주의 탄생으로 묘사했다.
요한도 구주를 하나님의 아들과 동격으로 사용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누가복음 2:11)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요한1서 4:14-15)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다(요한복음 3:17).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가에서 예수와 대화하던 중 그가 주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여인은 그 사실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에게 간청하여 마을에 이틀 동안 묵어가게 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여인에게 말했다.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요한복음 4:42)


예수는 구주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관해 언급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38-40)


구주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으며(요한복음 12:47) 죽은 사람을 부활시켜 영생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6:44)


베드로와 요한이 전도하다가 붙들려 법정에 섰을 때 베드로는 예수를 집짓는 사람들 즉 유대인으로부터 버림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면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입지 않고서는 구원될 방법이 없다고 했다(사도행전 4:12).
베드로는 말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사도행전 5:31)


원죄를 상속받은 인류를 사랑하는 분은 예수 한 분뿐이다(로마서 5:8).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디모데전서 1:1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브리서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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