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나님의 아들-1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그리스도와 인자 외에 복음서 저자들이 즐겨 사용한 예수에 대한 또 다른 명칭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란 명칭을 자주 사용했으며(요한복음 1:34, 49, 5:25, 9:35, 10:36, 11:4, 27, 19:7, 20:31) 그냥 아들이라고 하기도 했다(요한복음 3:17, 35-36, 5:19-23, 26, 6:40, 8:36, 14:13, 17:1).
요한에게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였다(요한복음 3:16-17, 요한1서 4:9-10).
마가도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서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시위했다고 했다(마가복음 12:1-9).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를 심문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물었는데 예수는 그렇다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대답했다.


『사도신경 The Apostles?Creed』과 『니세노-콘스탄티노폴리탄 신경 The Niceno-Constantinopolitan Creed』 그리고 많은 기도문과 문헌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명칭이 발견된다.
신약성경 저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바울이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데살로니가전서 1:10)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5:28)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고린도후서 1:19)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라디아서 4:4-5)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1:3-4)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란 명칭을 17번 사용했다.
그러나 예수가 왜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가 설명을 생략한 것은 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이미 이 같은 명칭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굳이 설명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데살로니가전서 1:10)


예수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한 것이다.
바울은 부활의 의미를 말하면서 부활을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된다고 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로마서 4:25)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로마서 10:9)


부활에 대한 베드로의 신학은 바울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전서 1:3, 3:18)


마가와 마태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불렀다.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마가복음 5:7)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사랑받는 아들임을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로 설교하고 자신의 사역이 그분의 뜻임을 분명히 했다.
포도원 주인에 비유한 하나님 아버지가 도조를 받아 오라고 선지자로 상징되는 종들을 소작인 즉 유대인에게 보냈지만 유대인이 선지자를 구타하거나 살해했으므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신 것이다.


(주인이 보낼 사람이) 오히려 한 사람이 있으니
곧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가로되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저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어던졌느니라
(마가복음 12:6-8)


예수는 아들이란 말에 ‘사랑하는’이란 말을 보태서 유일한 아들임을 강조했다.
그는 외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죽임을 당할 것을 예고했으며 종말론적 아버지의 구원을 고대하였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직접 말한 것으로 증언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시위했음을 증언하였다.
마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대제사장과 율법학자 그리고 장로들이 그를 조롱한 말을 기록했는데 그를 비난한 사람들은 예수가 직접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으로 믿었다.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마태복음 27:43)


예수는 부활한 후에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제자들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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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의 아들-2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자식이 아버지를 부르듯이 하나님을 아바(abba) 아버지라고 부른 예수의 명칭은 독특했다.
이러한 명칭은 누가 듣더라도 개인적인 명칭이었으므로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처럼 들렸다.
이런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유대인에게 불경스러운 것이었다.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이 그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은 예수의 이런 태도 때문이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에 베드로가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는 아들이 아버지를 부르듯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면서 말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태복음 16:17)


구약성경 저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천사와 동격으로 이해했으며 하나님의 아들은 선택받은 민족인 자신들을 통치하는 왕이라고 믿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민족 전체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했지만 마태는 예수에 한해서만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을 사용했을 뿐이다.


(아기 예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2:15)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 (호세아 11:1)


예언자 나단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왕국이 영원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실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사무엘하 7:14)


솔로몬은 유대의 왕을 하나님의 아들로 노래하였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편 2:7)


솔로몬이 말한 하나님의 아들은 그분이 선택한 유대의 왕으로서 왕은 그분의 능력을 가지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사람을 의미하였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과 하나님의 관계를 부자관계로 묘사하면서 다윗이 하나님의 아들로 불릴 만한 이유로 그가 하나님을 구원의 바위로 믿은 것을 꼽았다.


다윗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는 다윗의 아들이므로 그리스도가 그분의 아들이라는 논리는 구약시대에 성립되지 않았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셔서 그리스도로 만드셨으며, 그를 가장 우수한 왕으로 만들었고, 그와 같은 사람을 아들로 삼으신다고 했다.
누가는 구약성경 저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명칭을 예수에게 적용하였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말하기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누가복음 1:32-35)


복음서 저자들은 하나님과 예수의 특별한 부자관계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묘사하였다.
요한은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불러서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수준의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음을 역설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마태복음 14:33)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가복음 15:39)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왕위를) 저에게 주시리니(누가복음 1:30-32)


마가와 누가는 하늘로부터 들린 소리를 예로 들어 하나님과 예수의 특별한 부자관계를 강조하였다.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11)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고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누가복음 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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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식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유대인을 하나님의 자식으로 묘사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이사야 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패역한 자식들이여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며 (내 뜻을 알아 보지도 아니하고)
맹약을 맺으나 나의 신으로 말미암아 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이사야 30:1)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예레미야 3:22)


유대인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 경우는 구약성경에 흔하다.


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함을 입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 (예레미야 31:9)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시편 103:13)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잠언 3:1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내 백성으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말라기 3:17)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와 동등한 존재로 묘사된 경우는 다음과 같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들이, 그리스어 번역으로는 ‘하나님의 천사들’이다)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욥기 1:6)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욥기 38:7)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하나님을 모시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권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시편 29:1)


대저 궁창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권능 있는 자 중에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시편 89:6)

(느부갓네살)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째의 모양은 (저 네째 사람의 모습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다니엘 3:25)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서 자신이 하나님의 자식임을 시사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사랑이 충만한 아버지였고 자신은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은 자식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기쁨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태복음 11:25-27, 누가복음 10:21-22)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를 하늘과 땅의 주인이며 구원의 지식을 가진 분이라고 했으며 자신이 아버지의 모든 지식을 위임받은 사랑받는 자식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예수에게도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마가복음 13:32-33, 마태복음 24:36-37)


예수는 누구라도 하나님의 자식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2:50)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누가복음 6:35)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누가복음 20:36)


유대인은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지만 민족 전체에 대한 아버지라는 뜻으로 불렀다.
하지만 예수가 아버지라고 부를 때는 단지 명칭으로 부른 것이 아니라 사랑을 베푸시는 아버지를 향해 자식이 부르듯이 부르셨다.
초대교회 교인들도 평화를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면 하나님의 자식이 되어 천사들과 동등하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가복음 14:36)


제자들은 예수에게 세례 요한이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 같이 자기들에게도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예수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록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9)


바울은 기도할 때 예수가 가르친 대로 기도하라고 했다.
그는 예수의 영을 받은 교인는 자식이 아버지를 부르듯이 하나님을 친근하게 부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라디아서 4:6-7)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15)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신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신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공동번역)


공관복음서 저자들이 사용한 하나님에 대한 명칭 아버지, 나의 아버지, 너희의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는 51번이나 된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마태복음 10:32)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2:50)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20:23)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29)


예수는 나의 아버지와 너희의 아버지를 구별했다.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우리 아버지라고 말하라 한 것은 제자들에게만 해당하는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었다.
누가는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누가복음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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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자식의 차이 1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자식과 아들은 신학적으로 상이한 개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식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뿐이라는 것이 자식과 아들의 차이다.
자식은 여러 명일 수 있지만 아들은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그분의 마음에 드는 사랑하는 아들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마태복음 17:4-6)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특별한 부자관계의 명칭으로 맺은 것은 예수가 처음이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태복음 11:27)


예수의 나의 아버지와 너희의 아버지의 구별은 부자관계의 수준이 같지 않음을 나타낸다.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자식이 될 수 있을 뿐 교인 스스로 그분의 자식이 될 수는 없음을 나타낸 말이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누가복음 22:29-30)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로워질 수는 있더라도 의인으로 인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면서 의인으로 정해진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고 했다(로마서 1:3-4).
바울은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라고 했는데 그의 말은 초대교회 지도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예수가 부활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로 확인된 것처럼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성육신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주장했다.
부활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했다는 해석은 오류임을 알 수 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로마서 8:3)


인간의 본성이 약하기 때문에 율법이 이룩할 수 없었던 것을 하나님께서 이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어 그 육체를 죽이심으로써 이 세상의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공동번역)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하나님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로마서 8:32)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다음과 같은 말에서 그가 아들과 자식을 신학적으로 구별했음을 본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 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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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자식의 차이 2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은 태초에 하나님과 더불어 존재하셨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했다(고린도전서 8:6).
아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스스로 현존함이며, 아들은 만물에 앞서 아버지로부터 태어났고, 만물은 아버지에 의해서 아들을 통해 창조되었다.
이는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만물을 자신과 아버지를 위하여 창조했음을 말하다.
바울은 아들과 자식을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설명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골로새서 1:13-14)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용서받고 흑암과 같은 죄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게 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대속 또는 몸값을 치룬 것은 아담에 의해서 저주받은 원죄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여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인류를 하나님의 자식이 될 수 있도록 했다(로마서 5:10-11).


마가도 이러한 일을 하고자 하나님의 아들이 몸소 자신이 창조한 지상으로 오신 것이라고 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45)



자식 된 우리의 삶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며 또 장차 닥칠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부활한 하나님의 아들이 자식들을 구원해 낼 것을 믿는 것이다(갈라디아서 2:20, 데살로니가전서 1:10).
바울은 아들과 자식의 관계를 신학의 대상과 그분을 섬기고 믿는 자의 관계로 정립하였다.


또한 제2의 아담에 비할 수 있는 독생자가 죽었다가 부활함으로써 자식들로 하여금 부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으며, 아들은 모든 원수를 자신의 발아래 굴복시킬 때까지 군림하실 터인데 아들이 마지막으로 물리쳐야 할 원수는 죽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아들은 죽음을 굴복시키고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한 하나님께 자신을 굴복시킴으로써 그분으로 하여금 만물을 온전히 지배할 수 있도록 하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저의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15:20-28)


예수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특별한 부자관계로 맺게 해 주었지만 교인과 하나님의 부자관계는 예수와 하나님의 관계에는 미치지 못한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로마서 8:14-17)


바울과 요한은 예수가 강조한 하나님과의 특별한 부자관계와 교인과 하나님과의 부자관계를 명료하게 구별하였다.
요한은 복음서에서 어버이에 해당하는 아버지의 호칭을 100번도 더 사용했다.
바울은 교인들에게 편지를 쓸 때 인사말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깃들기를 빕니다”라고 써서 우리의 아버지와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했다(로마서 1:7, 고린도후서 1:3, 고린도전서 1:2, 갈라디아서 1:3, 빌립보서 1:2, 데살로니가전서 1:2, 빌레몬서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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