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바울의 행적

바울의 고향은 소아시아 남동쪽 길리기아(Cilicia)의 다소(Tarsus)이다.
다소는 학문이 매우 발달한 도시로서 당시 제2의 아테네로 불리었다.


내가 팔 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빌립보서 3:5-6)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바리새파에 속했기 때문에 바울은 어려서부터 바리새파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사도행전 23:6).
바리새파는 학파라기보다는 형제단과 같았다.
부자 아버지가 로마 시민권을 취득했으므로 바울은 자연히 로마 시민이 되었다.


바울(Paul)은 개종 후의 이름이고 본명은 사울(Saul)이었다.
유난히 그리스도교에 미움이 많았던 그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변모하기까지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바울은 최초의 순교자로 알려진 스데반(Stephen)이 33-34년경 순교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유대인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어가는 스데반은 오히려 빛나는 얼굴로 하늘을 향해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사도행전 7:60)라고 했는데 바울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 시기에 예루살렘 교인들은 유대인의 심한 박해를 피해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바울도 교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으며 가가호호 다니면서 남자와 여자를 닥치는 대로 잡아 투옥시켰다(사도행전 8:1-3).


34-35년경 그날도 바울은 교인들을 체포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교인들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호송하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 다마스커스에 거의 다달았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렸다(사도행전 9:4).
이 일이 있은 후 그는 사흘 동안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했다.
그 후 바울은 세례 받고 개종하여 남은 인생을 그리스도의 사도로 사는 데 박차를 가했다.


바울을 가르친 가말리엘(Gamaliel)은 예루살렘의 덕망 높은 바리새인이면서 교법사였으며 모세의 율법에 정통한 학자로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사도행전 22:3).


1세기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푸스(Josephus)는 예수 당시 바리새인의 수를 6천 명으로 어림했다.
바리새인(Pharisee)은 히브리어 perusim(아람어 perisayya)에서 온 말인데 그 뜻은 신성을 지닌 율법에 관한 ‘해설자들’이란 뜻이다.
그들에게는 분리주의적 특성이 있어 자신들만이 거룩하다고 생각했다.
바리새인은 육체의 부활, 최후의 심판, 선한 영과 악한 영들 즉 천사와 마귀들의 계급조직을 믿었으며, 제사의 정결 문제나, 음식 먹는 법, 안식일 법 등을 엄격히 지키면서 토지 소출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에게 바치는 고대 규정을 지켰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누가복음 18:12)


예수는 바리새인이 율법은 지키면서도 정의와 자비, 믿음과 같은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서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마태복음 23:24),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고(마태복음 23:26) 했다.


하지만 바리새인 모두가 위선자는 아니었다.
예수는 바리새인의 장점을 칭찬한 적도 있다.
대제사장과 원로들이 사도들을 잡아 죽이려고 할 때 가말리엘이 한 말은 바리새파의 특징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사도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사도행전 5:38-39)


바울은 아라비아로 가서 3년가량 지냈는데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오 일을 유할 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갈라디아서 1: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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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세 차례에 걸쳐 유렵으로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바울은 베드로와 야고보로부터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린도전서 11:23, 15:3).
바울이 그리스어를 말하는 유식한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우수함을 역설하자 유대인들은 그를 죽이려고 덤벼들었다.
생명의 위험을 느낀 크리스천들은 바울을 살리기 위해 그를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 그곳에서 다소로 보냈다(사도행전 9:29-30).
바울은 고향 다소에서 수년 동안 천막을 제작하는 일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천막은 당시 다소의 특산품이었다.


바울은 다소를 중심으로 수리아와 길리기아의 여러 지역을 방문하여 전도활동을 폈다(갈라디아서 11:25).
안디옥 교회에서 목회하던 마가의 아저씨 바나바(Barnabas)가 다소로 가서 바울을 데려와 가르치는 일을 하게 했다.
안디옥 교회는 모범적인 교회였다.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 교인들을 크리스천이라고 불렀으므로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생겼다(사도행전 11:25).


바울이 안디옥에 머문 기간은 1년가량 된다.
안디옥 사람 아가보(Agabus)가 예언한 대로 유대에 흉년이 들자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의 교인들을 돕기 위해 성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였다.
두 사람은 안디옥으로 돌아올 때 마가를 데리고 왔다(사도행전 11:30, 12:25).


바울은 세 차례에 걸쳐 유렵으로 전도여행을 떠났는데 모두 안디옥 교회로부터 시작했다.
48-49년의 1차 여행은 예루살렘을 방문한 직후였으며(사도행전 13-15장), 2차 여행은 50년부터 52년까지였고, 3차 여행은 53년 봄부터 57년 5월까지였다.
3차 여행 때는 한동안 에베소에 머무르면서 목회했는데 에베소에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바울의 가르침으로 인해 우상제조업자들이 생계에 위협을 받게 되자 그들은 바울을 축출하는 운동에 앞장을 섰으며(사도행전 19:23-41)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야 했다(사도행전 20:2-3).


3차 여행을 마친 바울은(사도행전 18:18-21:6) 58년 누가와 함께 배로 가이사랴에 도착했다.
그는 가난한 크리스천들을 돕기 위해 모금한 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려고 했다.
바울에 대한 유대인의 반감이 고조되었음을 알고 있는 가이사랴의 크리스천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간곡히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사도행전 21:13)고 하면서 누가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는 야고보와 원로들을 만나 그동안의 전도 결과를 보고하였다(사도행전 21:18).


어느 날 한 떼의 유대인이 몰려 와서 성전에 있는 바울을 밖으로 끌어내며 이방인까지 데리고 와 거룩한 성전을 더렵혔다면서 그를 죽이려고 했다.
폭동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고 달려온 로마 파견대장은 유대인의 폭동으로 바울이 희생될 것을 우려해서 그를 감금시켰다(사도행전 21:27-36).
파견대장이 그를 투옥시키지 않았더라면 바울은 유대인에 의해 죽었을 것이다.


바울은 가이사랴의 벨릭스 총독에게로 보내져 그곳에서 57년부터 59년까지 감금되었다.
새로 부임해 온 총독 베스도가 풀어 줄 기미를 나타내지 않자 바울은 60년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내세워 황제에게 상소하였다(사도행전 25:12).
베스도 총독은 그해 가을 바울을 276명이 승선한 상선에 태워 로마로 보냈는데 항해 도중 태풍을 만나 14일 동안 표류했다.
배는 파선되었으며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린 군인들과 죄수들은 다행히 멜리데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구출되었다.
섬에서 겨울을 난 석 달 후 61년 봄 바울은 디오스구로라는 배에 실려 로마에 압송되었다(사도행전 28:1-14).
바울은 로마에서 셋집을 얻고 2년 동안 가택연금 상태로 지냈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 전도에 전력했다.
그때는 네로가 크리스천을 탄압하기 전이었다.


바울이 가택연금에서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유대인 중에 그를 기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빌립보서 1:19, 25, 2:24).
자유로운 몸이 되자 그는 에베소로 갔다가 함께 간 디모데를 그곳에 남겨 두고(디모데전서 1:3) 골로새로 향했다(빌레몬서 1:22).
그는 골로새로부터 마게도니아로 갔고 그곳에서 디모데에게 보내는 첫 번째 서신을 썼다(디모데전서 1:3).
그때 바울은 서바나(스페인)로 가고 싶어 했다(로마서 15:28).


바울은 다시 동쪽으로 가서 크레테섬을 방문했으며(디도서 1:5), 그곳에 디도(Titus)를 남겨 두면서 그로 하여금 교회를 건립하도록 했는데 그때가 66년이었다.
바울은 소아시아로부터(디모데후서 4:13, 20) 니고볼리(Nicopolis)로 떠나기 바로 전에 디도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가 해야 할 일에 관하여 충고했다.
바울은 니고볼리에서 66년과 67년 겨울을 보내고(디도서 3:12) 마게도니아와 그리스에서 67년 봄과 가을을 지냈다(디모데전서 14:2, 디모데후서 4:20).
그때 다시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었으며 68년 봄 네로에 의해 참수되었다.


전승에 의하면 바울은 로마 남문 교외의 세 줄기 지하수가 솟아나는 곳(Tre Fontane)에서 참수되었고 지금의 바울 대성당 자리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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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신학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바울은 크리스천을 탄압하는 일에 앞장섰던 부끄러운 과거 때문에 개종한 후에도 늘 죄책감에 빠져 있었다.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죄책감에서 비롯한 그의 신학이 발견된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 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립보서 3:4-11)


바울 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구원은 부활을 통한 영원한 생명을 뜻한다.
여러 차례에 걸쳐서 신비적인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신비주의를 옹호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가 인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분임을 이성적인 방법으로 입증하려고 했다.
그는 그리스도가 태초에 하나님과 더불어 존재했고, 때가 이르러 나사렛 예수로 성육신했으며,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죽었다가 부활했고, 부활한 후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높이 들림을 받아 심판자의 자격으로 재림하실 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 이방인, 자유인, 종, 남자, 여자, 모두가 평등하다고 했다.
이는 당시 과격한 사고였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라디아서 3:28-29)


그의 만인평등 사상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유대인에게 반감을 불러일으켰는데 유대인만 바울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영적 엘리트라고 우월감을 가진 지식인, 성령을 받고 방언하게 되었다고 우쭐대는 교인, 동료 크리스천보다 잘났다는 자만심에 빠진 사람들도 그의 가르침에 불만을 나타냈다.
그들은 바울을 제거해야 할 적으로 여기면서 물리적으로 괴롭혔다.
과격한 유대인은 그를 살해하려고 했다.
바울은 자신이 받은 수난에 관해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서신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린도후서 11:29-27)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바울도 예수의 부활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인식했으며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용서받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사도행전 13:38-39)


개종하기 전 바울은 율법을 지킴으로서만 의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개종한 후에는 율법을 지킨다고 해서 의로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는데 이는 예수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따른 것이다.
그는 613가지나 되는 율법을 모두 지킨다고 하더라도 의인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율법과 전통에 매이는 것은 스스로를 구속하는 행위이며 예수의 가르침만이 참다운 자유를 제공한다고 믿었으므로 교인들에게 율법과 전통에 매이지 말 것을 당부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이런 신학은 불경스럽기 짝이 없었고 사도들조차 지나친 그의 사상에 우려를 표명했다.
사도들은 개종하는 이방인에게 할례를 포함해서 모세의 율법을 전적으로 따를 것을 요구했지만 바울은 할례는 물론이려니와 음식규례와 여타의 율법까지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과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로마서 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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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에게 율법주의는 배설물과도 같았다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규범의 설정과 선행의 목록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우월감을 줄 수 없다는 바울의 사상은 유대교를 신봉하는 유대인과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을 낙담시켰지만 이방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쁜 소식이었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는 엄격한 율법주의자였음을 교인들에게 상기시킨 후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만이 의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가르쳤다.
바울에게 율법주의는 배설물과도 같았다.


바울은 유대교가 표방하는 엄격한 율법주의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구원은 그리스도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영광도 그와 함께 누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1)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도서 2: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로마서 8:14-17)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영광이란 육체의 영광이 아니라 영혼의 영광이었다.
멸할 수밖에 없는 육체가 불멸하는 영광을 누린다는 것은 그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린도전서 15:50)


바울은 예수의 죽음에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인류가 원죄가 되는 사망을 상속받았는데 예수가 하나님께 순종하셔서 죽음으로써 원죄를 말끔히 씻어냈다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가 인류를 죄가 없는 상태 즉 의로운 상태로 환원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구원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로마서 3:24-25)


바울은 예수가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르라고 제자들에게 준 가르침을 받아들여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아바(abba)로 부를 것을 당부하였다.
아바는 ‘아버지’ 또는 ‘아빠(daddy)’라는 뜻인데 회당에서 유대인이 기도할 때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아비누, abinu)라고 부르는 말과는 뜻이 다를 뿐만 아니라 개인적이고 가정적인 범주 안에서 애정 어린 친밀성을 가지고 부르는 호칭 나의 아버지(아비, abi)와도 그 뜻이 같지 않다.


예수는 하나님을 3인칭 아바로 불렀는데 아바는 자신의 애정 어린 친근감과 전적인 신뢰를 나타내는 말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를 때 그리스도의 영 곧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주는 영을 받게 된다고 했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라디아서 4:6-7)


바울은 예수의 이름을 거명하기보다는 3인칭 그리스도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를 선호했다.
그는 예언자들이 오래 고대하던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였다는 사실을 유대인에게 역설했으며 그리스도는 유대인만을 의롭게 하는 분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마찬가지오 의롭게 하는 분임을 강조했으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의를 깨닫는 것은 오로지 믿음으로만 가능할 뿐이라고 했는데 이는 그의 신학의 근본이다.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또는 은총)이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6-17)


바울은 선지자 하박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의인은 믿음으로 살 뿐이며 의인으로 인정하시는 분은 그리스도라고 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2:4)


믿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그의 사상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후견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3:23-24)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로마서 4:16)


사도란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지만 바울은 자신에게도 사도의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했다.
그는 자칭 열세 번째 사도가 되었다.
그가 스스로 사도라 칭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그리스도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는 것을 의미했다.


신학에 기여한 바로 말하면 그는 사도들 중의 사도로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열세 권이 그의 저서인 데다 신약성경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사도행전 대부분이 그에 활약에 관한 기록이다. 바울의 저서가 가장 먼저 쓰여졌기 때문에 그는 신학의 개척자였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린도전서 4:1-2)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하나님의 심오한 진리를 맡은 특권에 해당하지만 또한 하나님께 충성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온전한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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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서신들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바울이 쓴 열세 편의 서신은 51년과 64년 사이에 쓴 것들이다.
로마서, 고린도전서와 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 디모데전서와 후서, 디도서, 그리고 빌레몬서에 나타난 그의 신학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그리스도는 예수로 성육신되기 전에 하나님과 더불어 계신 분이셨으며(빌립보서 2:6, 골로새서 1:15,17, 디모데후서 1:9)

2.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고(로마서 1:3, 디모데후서 2:8)

3. 우리와 같은 인생을 사셨으며(빌립보서 2:7, 디모데전서 3:16, 디모데후서 1:10)

4.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로마서 5:8, 8:3, 고린도전서 1:23, 15:3, 고린도후서 5:21, 갈라디아서 1:4, 2:20, 3:1, 6:14, 에베소서 1:7, 빌립보서 2:8, 디도서 2:14)

5.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는데(로마서 1:3, 골로새서 3:1)

6. 부활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다(로마서 14:9, 골로새서 2:12,13).

7. 예수 그리스도는 제2의 아담이다(로마서 5:14, 고린도전서 15:22).

8. 만인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할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으며, 믿음은 하나님의 은총이다(로마서 3:24, 5:10, 갈라디아서 2:16, 에베소서 2:8, 빌립보서 1:11, 디모데후서 2:10, 3:15).

9.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사람은 그와 함께 영광도 받을 수 있다(로마서 5:1, 8:17, 고린도후서 1:7, 골로새서 3:4, 데살로니가전서 3:13, 4:17, 데살로니가후서 1:10,12).


다음의 두 구절에서 함축된 그의 신학을 본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왕권들이나) 주관들이나 (주권들이나) 정사들이나 (여러 천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로새서 1:15-17)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립보서 2:6-9)


바울은 태초에 하나님과 더불어 존재한 그리스도는 본체 또는 본질에서 하나님과 동등하기 때문에 신성이 있음은 당연하고 나사렛 예수로 성육신하여 우리와 같은 인생을 사셨기 때문에 또한 인성이 있다고 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사람이라는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양성론을 주장했는데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데는 역점을 두었지만 인성에 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예수와 어울린 적이 없는 바울은 예수를 머리에 떠올릴 때 십자가 위에서의 모습만이 생생하게 보였을 뿐이었다.
그에게는 죽었다가 부활한 그리스도로 충분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순종으로 죽으신 것, 부활하셔서 하나님으로부터 높임을 받으신 것, 그리고 그분에 의해서 인류의 구원이 되셨다는 것이 바울 신학의 주요 내용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로마서 8:32)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19-20)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2:2)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라디아서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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