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에게 율법주의는 배설물과도 같았다
김광우의 저서 <성경 이야기>(지와 사랑) 중에서
규범의 설정과 선행의 목록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우월감을 줄 수 없다는 바울의 사상은 유대교를 신봉하는 유대인과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을 낙담시켰지만 이방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쁜 소식이었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는 엄격한 율법주의자였음을 교인들에게 상기시킨 후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만이 의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가르쳤다.
바울에게 율법주의는 배설물과도 같았다.
바울은 유대교가 표방하는 엄격한 율법주의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구원은 그리스도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영광도 그와 함께 누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1)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도서 2: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로마서 8:14-17)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영광이란 육체의 영광이 아니라 영혼의 영광이었다.
멸할 수밖에 없는 육체가 불멸하는 영광을 누린다는 것은 그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린도전서 15:50)
바울은 예수의 죽음에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써 인류가 원죄가 되는 사망을 상속받았는데 예수가 하나님께 순종하셔서 죽음으로써 원죄를 말끔히 씻어냈다는 것이다.
바울은 예수가 인류를 죄가 없는 상태 즉 의로운 상태로 환원시켰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구원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로마서 3:24-25)
바울은 예수가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르라고 제자들에게 준 가르침을 받아들여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아바(abba)로 부를 것을 당부하였다.
아바는 ‘아버지’ 또는 ‘아빠(daddy)’라는 뜻인데 회당에서 유대인이 기도할 때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아비누, abinu)라고 부르는 말과는 뜻이 다를 뿐만 아니라 개인적이고 가정적인 범주 안에서 애정 어린 친밀성을 가지고 부르는 호칭 나의 아버지(아비, abi)와도 그 뜻이 같지 않다.
예수는 하나님을 3인칭 아바로 불렀는데 아바는 자신의 애정 어린 친근감과 전적인 신뢰를 나타내는 말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를 때 그리스도의 영 곧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주는 영을 받게 된다고 했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라디아서 4:6-7)
바울은 예수의 이름을 거명하기보다는 3인칭 그리스도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를 선호했다.
그는 예언자들이 오래 고대하던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였다는 사실을 유대인에게 역설했으며 그리스도는 유대인만을 의롭게 하는 분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마찬가지오 의롭게 하는 분임을 강조했으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의를 깨닫는 것은 오로지 믿음으로만 가능할 뿐이라고 했는데 이는 그의 신학의 근본이다.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또는 은총)이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6-17)
바울은 선지자 하박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의인은 믿음으로 살 뿐이며 의인으로 인정하시는 분은 그리스도라고 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2:4)
믿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그의 사상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후견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3:23-24)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로마서 4:16)
사도란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지만 바울은 자신에게도 사도의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했다.
그는 자칭 열세 번째 사도가 되었다.
그가 스스로 사도라 칭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그리스도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는 것을 의미했다.
신학에 기여한 바로 말하면 그는 사도들 중의 사도로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열세 권이 그의 저서인 데다 신약성경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사도행전 대부분이 그에 활약에 관한 기록이다. 바울의 저서가 가장 먼저 쓰여졌기 때문에 그는 신학의 개척자였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린도전서 4:1-2)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란 하나님의 심오한 진리를 맡은 특권에 해당하지만 또한 하나님께 충성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온전한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