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압족과 암몬족의 유래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소금기둥이 되어버린 아내를 두고 두 딸과 함께 소알로 피신한 롯은 그 고장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것이 무서워서 산으로 들어가 딸들과 함께 굴속에서 살았다.
하루는 롯의 큰 딸이 동생에게 말했다. (19:31-34)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그날 밤 롯은 딸들이 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언니가 먼저 아버지와 동침했다.
아버지는 딸이 언제 들어왔다 나갔는지도 몰랐다.
이튿날 언니가 동생에게 말했다.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씨를 받자)”


그날 밤에도 롯은 딸들이 준비한 술에 취했고 이번에는 동생이 아버지와 동침했다.
역시 아버지는 딸이 언제 들어왔다 나갔는지 몰랐다.


이리하여 롯의 두 딸은 아버지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
큰 딸은 아들을 낳고 이름을 모압(Moab)이라 했는데 모압이란 “아버지로부터 얻은 From Father”이란 뜻이다.
모압의 후손이 오늘날 모압족(Moabites)이다. 둘째 딸도 아들을 낳고 이름을 벤암미(Ben-ammi)라고 했는데 “나의 혈족의 아들 Son of My Kinsman”이란 뜻이다.
벤암미의 후손이 오늘날 암몬족(Ammonites)이다.


여러분은 롯의 딸들의 부도덕한 행위에 당혹해 할 것이다.
일부 신학자들은 선민의식이 강한 유대인은 자기의 종족보존과 혼혈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이런 방법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일부 신학자들은 이 이야기가 유대인들이 늘 미워하는 모압과 암몬족을 조롱하기 위해서 꾸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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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아내를 누이라 속인 아브라함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브라함은 헤브론을 떠나 네겝(Negev) 사막 쪽으로 가다가 가데스(Kadesh)와 수르(Shur) 광야 사이의 서남쪽 그랄(Gerar)에 정착했다.
그랄은 브엘세바 서남쪽에 있는 불레셋(the Philistines)의 도시로 비옥한 평야를 가지고 있어 농경민과 유목민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탐내는 자에 의해서 목숨을 잃을 것이 두려워 이집트에서와 마찬가지로(12:11-19) 이번에도 사라에게 자기를 오빠라고 부르도록 다짐시켰다.
그 사실을 모르는 그랄 왕 아비멜렉(Abimelech)은 사라를 아내로 삼았는데 그날 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하셨다. (20:3-7)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


아비멜렉은 아침 일찍 일어나 신하들을 모두 불러 모으고 지난 밤 꿈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일을 낱낱이 들려주었다.
왕의 말을 들은 사람들 모두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불러 꾸짖었다. (20:9-16)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리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관대
네가 나와 내 나라로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치 않은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네가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를 인하여 사람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실로 나의 이복누이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
하나님이 나로 내 아비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아브라함은 생명을 잃을까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고 말한 것이라면서 실제로 사라가 자기에게 누이가 된다고 변명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보상으로 양떼와 소떼, 남종과 여종을 딸려서 사라를 돌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너 보기에 좋은 대로 거하라”


사라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풀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선히 해결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이 기도하니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들의 병을 고쳐 주셔서 그들은 다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되었다.
사라의 일로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집에 있는 모든 여자의 태를 닫으셨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누이라 속인 이야기는 이집트에서 바로 왕을 속인 이야기(12장)와 같고 이 같은 속임수를 이삭의 경우(26장)에서도 본다.
창세기에는 문장구성의 유사함이 있다.
아비멜렉은 죄를 범하지 않았지만 그와 온가족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았고 하나님이 간여했기 때문에 더 큰 죄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아브라함이 선지자로 알려졌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기도를 듣고 아비멜렉 가정의 병을 고쳐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군자로 등장한다.
비록 죄를 짓지 않았지만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고 아브라함과 사라를 후대하였으며 아브라함을 관용하고 자기 땅에 마음대로 자리 잡고 살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비겁하게도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반복해서 말한 것과 아비멜렉이 사라에게 아브라함을 가리켜 남편이라 하지 않고 오라비라고 지칭한 것은 익살맞다.
아브라함은 살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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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과의 계약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하루는 아비멜렉이 군사령관 비골(Phichol)을 데리고 아브라함에게로 와서 제안했다. (21:22)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자기의 우물을 빼앗은 일을 따져 물었다.
아비멜렉은 말했다. (21:26)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이야 들었노라”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끌어다가 아비멜렉에게 주며 계약을 맺고자 했다.
아브라함이 어린 암양 일곱 마리를 가려내자 이를 의아하게 여긴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물었다. (21:29-30)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쩜이뇨”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두 사람이 그곳에서 맹세했으므로 이 우물을 브엘세바(Beer-sheba)라고 명했는데 이는 “맹세의 샘 the Well of the Oath”이란 뜻이다.
브엘세바에서 계약을 맺은 아비멜렉은 군사령관 비골을 데리고 불레셋 땅으로 돌아갔다.
훗날 이 불레셋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바다 사람들 Sea Peoples’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이 기원전 1168년경에 애지안(Aegean) 섬에서 배를 타고 불레셋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드렸다.
아브라함은 불레셋 땅에서 한동안 살았는데 아비멜렉과 계약을 맺은 때부터 브엘세바가 영원히 이스라엘의 영토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남단에 있으며 동으로 약 20마일 되는 곳에 헤브론이 있다.


이스라엘 전지역을 말할 때 보통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한다.
단은 북쪽 헐몬(Hermon) 산 중턱에 있는데 그곳의 바위 사이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물은 갈릴리 호수와 요단강의 수원이 된다.
이 고원지대는 비가 풍부하게 내리고 토지가 비옥해서 농경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고란 고원은 유대인과 P. L. O. 사이에 영토를 다투는 분쟁의 지역이 되곤 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자주 찾으시던 가이샤라 빌립보도 이곳에 있다.
이곳의 경치가 아름다워 헤롯왕이 로마 황제의 아들 빌립을 위해 별궁을 지어 주었는데 빌립의 이름을 따서 이 지역을 가이샤라 빌립보라 부른다.


오늘날 브엘세바 평야의 약간 경사진 고지에는 성채의 유지가 있고 또한 샘이 있다.
지금은 샘이 파괴된 채 물이 없다. 그리고 사방으로 아직도 평야인 브엘세바에서 양떼를 몰고 다니는 베두인족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베두인족은 천막을 친 시장을 만들고 그곳에서 물건을 사고파는데 아브라함 당시를 어렴풋하게 상상하게 해 준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계약을 맺었다는 내용의 창세기 21장 22-34절은 훗날 누군가에 의해서 삽입되었다는 느낌이다.
이 내용은 20장에서 종료되었어야 전후문맥이 더 잘 어울렸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가정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느닷없이 아비멜렉에 관한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어 전체 문장의 맥이 부자연스워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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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과 이스마엘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하나님이 사라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셔서 사라가 아들을 낳았다.
아브라함은 아들의 이름을 이삭(Isaac)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분부대로 아브라함은 이삭이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베풀었다.
사라가 말했다. (21:6-7)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이삭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잘 자라 이윽고 젖을 뗄 때가 되었다.
젖을 떼던 날 아브라함은 집안 식구들을 모두 모으고 잔치를 베풀어 이삭을 얻은 기쁨을 나누었다.
이스마엘은 어린 동생을 무등태우며 함께 놀았다.
사라는 몸종이 낳은 이스마엘이 자기 몸으로 난 아들과 한 곳에서 노는 것을 보고 매우 못마땅해 하며 적자와 서자 사이에 차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말했다. (21:10)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을 듣고 몹시 우울했다. 비록 이집트 여인에게서 난 자식이지만 이스마엘도 자기의 소생이고 하나님도 이스마엘을 축복하셨기 때문이다.
이삭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스마엘은 늘 자기에게 위로가 되주었기에 자기의 뒤를 이을 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아내가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를 내쫓으라고 하니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아브라함이 괴로워하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21:12)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양식 얼마와 물 한 부대를 하갈에게 메어 주며 이스마엘을 데리고 떠나게 했다.
아브라함은 관습상 혼혈아를 적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갈은 아들의 손을 잡고 고향 이집트로 향했다.
열네 살 난 아들과 함께 걸어서 한 달도 더 걸리는 먼 여정에 오른 하갈의 가슴은 메어질 것만 같았다.
아버지를 영영 볼 수 없게 된 것도 모르는 아들을 데리고 떠나는 여인의 마음이 오죽 했을까.


하갈은 얼마쯤 가다가 길을 잃고 브엘세바의 빈 들을 헤매게 되었다.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지자 하갈은 덤불 한 구석에 이스마엘을 두고 “자식의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탄식하며 화살이 날아갈 수 있는 거리만큼 가서 털썩 주저앉아 이스마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갈은 목말라 울어대는 이스마엘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 이스마엘이 빈들에서 죽어가야 한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때 하나님이 천사를 시켜 하늘에서 말씀하셨다. (21:17-18)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난 하갈이 주위를 살펴보니 맑은 저만치 물이 솟는 오아시스 샘이 눈에 들어왔다.
하갈은 이제 살았구나 싶어 하나님에게 감사드리고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 이스마엘에게 먹였다.
지금도 네겝 사막을 자동차로 달리면 군데군데 오아시스 샘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갈은 이집트로 가지 않고 그곳에 정착했다.
이스마엘은 사막에서 씩씩하게 성장하여 활쏘는 사냥꾼이 되었다.
하갈은 바란(Paran) 사막에서 살면서 이스마엘이 성장하자 며느리감을 유대인이 아닌 이집트 여인 중에서 골랐다.


유대인으로부터 박대 받은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정신적으로 종교적으로 차별받다가 모하메드(Muhammad)에 의해서 이슬람교(Islam, 또는 Muslims)를 가지게 되었다.
모하메드(또는 마호멧)는 믿음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의 정통성을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유일신은 아랍어로 알라(Al-Llah)인데 이는 El, Elohim으로 히브리어로는 하나님이고 영어로는 God이다.
이렇게 하여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하는 종교가 셋이 되었다.
이삭을 정통으로 하는 유대교, 이스마엘을 정통으로 하는 이슬람교, 그리고 유대교에서 파생된 기독교가 그것이다.
현존하는 예루살렘 성전은 7세기경 이슬람교도들이 세운 건물로 세 종교 모두의 성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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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희생

<창세기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아브라함이 하갈과 아들 이스마엘을 내쫓은 얼마 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22:1-2)


“아브라함아”

“내가 여기 있나이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에게는 청천병력과도 같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만한 말씀이었을 것이다.
한동안 그는 혹시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인 사랑하는 아들을 불에 태워서 제물로 바치라니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보다 귀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재산은 물론이려니와 자기 생명보다도 귀중한 것은 이삭뿐이었다.
아브라함은 차라리 자기의 몸을 이삭대신 바칠 수 없겠느냐고 하소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엄하신 명령을 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 또한 알았다.
하나님이 주셨으니 그분이 도로 찾아 가겠다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이며 그 외에 다른 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모리아(Moriah) 산에는 장남을 제물로 바치는 제단이 있었던 듯하다.
실제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은 옛 셈족과 기타 민족에게도 있었다.
유대인들은 이런 관습을 대신해서 동물을 제물로 바쳤다.
장자를 죽일 수 없어 양과 소 같은 동물의 첫 새끼를 대신해서 바쳤던 것이다.


사람을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살인행위이며 유대인은 살인을 가장 큰 죄라고 생각했으므로 이 이야기에서 아브라함이 최대 신앙행위로서 자기 아들을 죽여서 하나님에게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동물을 번제물로 바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바치라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희생의 뜻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희생정신이란 자기의 모든 소유를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를 위해서는 자기의 목숨도 자식의 목숨도 바쳐야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 정신을 바로 이해했을 때 미리 마련해 두신 양을 번제물로 그에게 주셨다.


이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롯이 하나님의 천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의 결혼하지 않은 두 딸을 불량배들에게 내어 주려고 했던 사례가 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희생정신이다.


사사기(Judges)에 등장하는 사사 길르앗 사람(Gileadite) 입다(Jephthah)는 “만일 하나님이 저 암몬 군을 제 손에 붙여 주신다면 암몬 군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 제 집 문에서 가장 먼저 저를 맞으러 나오는 사람을 여호와께 번제물로 바쳐 올리겠습니다” 하고 맹세했다.
입다가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소구를 들고 춤을 추며 그를 맞이한 사람은 사랑하는 그의 외동딸이었다.
입다는 “아이고, 이 자식아, 네가 내 가슴에 칼을 꽂는구나. 내가 입을 열어 여호와께 맹세했는데 천하없어도 그 말은 돌이킬 수 없는데 이를 어쩐단 말이냐!”(사사기 11:35) 하고 통곡하자 딸이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를 두고 여호와께 맹세하셨다면 그대로 하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버지의 적수인 암몬 사람에게 복수해 주셨는데 저야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딸은 자기에게 두 달만 여유를 달라고 했다.
두 달 후 입다는 딸을 하나님에게 제물로 바쳤는데 딸은 처녀로 죽는 것을 애통해 하며 실컷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사기에는 한 노인이 자기 집에 온 손님을 불량배들이 폭행하려고 할 때 자기의 처녀 딸을 내어 줄 테니 마음대로 하는 대신 손님에게는 고약한 짓을 하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사사기 19:24).
이같이 당시 유대인은 손님을 천사처럼 대접했으며 자기의 귀중한 딸까지도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신라 때 에밀레종을 만들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민가의 귀중한 외동딸을 제물로 바쳤다는 이야기가 전래된다.
그리고 심청전도 바다의 용왕을 달래기 위해 뱃사람들이 심봉사의 외동딸을 사다가 제물로 바쳤다는 이야기이다.


유대인은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은 자기의 소유 가운데서 가장 귀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욥은 열 명의 자녀와 모든 재산을 잃고서도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돌아간다며 주는 자도 여호와이고 가지는 자도 여호와이니 여호와께 찬양 드릴 뿐이라고 말했다.
이방인 욥의 신앙은 널리 알려져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동방사람도 모범적인 신앙의 교훈으로 삼았다.
구약성경의 저자는 이 같은 사건들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시험으로 묘사했다.
시험의 원래 뜻은 Temptation으로 유혹이나 시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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