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바이블 성전>의 공간 유니트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는 <바이블 성전>의 외부와 내부를 16개의 유니트로 나누어 구성하고 있다.
다음 페이지의 그림 <‘바이블 성전’의 공간 유니트>에 명기된 각각의 항목에 대해서 키슬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긴 돌담을 따라 완만하게 펼쳐진 잔디 슬로프(slope).
낮은 나무 숲 사이를 통과하면 타원형의 돌계단이 있고, 그 옆에 네 개의 길고 좁은 돌 벤치가 있다.

(2) 넓은 대지.

(3) 사각 연못.

(4) 도자기 모양을 한 돔 위에 튀어나온 부분은 271,000개의 흰 타일로 덮여 있다.
때에 따라서 풀의 네 귀퉁이로부터 돔 중앙을 향해 냉각용의 분수가 뿌려진다.

(5) 검은 현무암 벽체는 돔에서 약 75피트 떨어진 위치에 있다.
폭 60피트, 높이 40피트, 두께 6피트로 된 이것 위에는 불꽃이 타오른다.

(6) 야외계단으로 내려가면 넓은 장방형 내부정원으로 들어간다.
정원 우측에 있는 (7)에는 조사연구도서관이 있다.

(8) 이 정원을 가로질러 가면 <바이블 성전>의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9)는 높은 천장을 지닌 전시 홀 입구인데, 지상에 있는 대지 밑으로 한층 반 정도 깊이에 검은 현무암 벽체와 만나게 된다.
여기 들어오기 위해서는 브론즈로 된 커다란 파이프가 달린 문의 사각형 입구를 통과해야 한다.

(10) 이 브론즈로 된 문을 통과하면 6인치 높이의 계단들을 만나 일곱 개의 플랫 홈을 지닌 통로에 들어서게 된다.

(11) 길이 75피트의 통로는 바닥과 벽면, 그리고 천장을 하나로 묶는 연속적인 아치에 의해 지지되며, 그 아치들은 서로 반대편으로 기울어져 있다.
발밑 쪽의 조명은 블루 그레이, 천장 조명은 블루 블랙으로 콘크리트를 채색한다.

(12) 맞은 편 위쪽에는 편편하게 다듬어진 벽과 반쯤 열리는 작은 브론즈 문이 있다.
문은 사람이 접근하면 자동으로 열린다.

안으로 들어가면 2,3단의 계단이 있고 그것을 오르면 도자기 형태의 돔 밑인 (13)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이 『사해사본』를 소장하는 곳이다.
이곳은 복합적인 파라볼릭 디자인에 의한 원형의 각체구조로 되어 있으며, 제일 위쪽에는 직경 6피트 3인치의 둥근 구멍이 있다.
이 구멍으로 햇빛이 들어와서, 낮은 쪽이 직경 80피트인 돔 아래의 요철로 된 실내공간을 비추게 된다.

(14) 손잡이 없는 돌로 된 2개의 계단이 도자기 형태의 중앙 돔 주위를 통해 밑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곳에 거친 돌로 장식된 직경 50피트의 지하실이 있는데, 여기에는 사해에서 발견된 귀중한 문서를 전시하기 위한 케이스가 있다.

(15) 돔에서 빠져나오는 출구. 브론즈 문을 지나면 28피트의 복도를 통과하게 되는데, 완만한 경사를 지닌 바닥을 따라가면 외부공간에 이른다.

(16) 야외인 이곳에는 약 200피트 정도 길이의 명상을 위한 좁은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세 군데로 나뉘어진 높은 벽 사이를 통과하면, 그 사이로 예루살렘의 전망과 의사당을 볼 수 있다.
좀더 걸어가면 마지막으로 미술관의 공공광장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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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바이블 성전>의 ‘도선(道線) 몽타주’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이상의 키슬러에 대한 언급을 통해 독자들은 18개로 구분되는 <바이블 성전>의 공간구성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각각의 유니트가 배치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필자는 <바이블 성전>의 연속적인 공간배치가 단지 건축상의 이유에 따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 성전을 찾는 관객의 심리적 정신적 체험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앞서 <바이블 성전>에 접근해가는 관객이 느낄 수 있는 외부환경의 극적 효과에 대해 논했다.
외부환경의 극적 효과는 <바이블 성전>을 중심으로 주위의 언덕, 나무와 바위, 예루살렘의 마을, 하늘, 구름과 태양 등에까지 확대되는 ‘원심적(遠心的)’인 효과를 의도한 것이다.
이것과 상반되게 <바이블 성전>의 영내(領內)에서는 방문객의 내적 세계로 파급되는 ‘구심적(求心的)’인 효과를 의도하고 있다.


이것은 곧 건축이 본래 지니고 있던 정신적 제어기능을 이 성전을 통해서 되살려보자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엔드리스 하우스>는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기능을 중심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행위-키슬러의 표현을 빌면 ‘이벤트’-와 공간을 연속적으로 상호 관련시키고자 계획된 것이었다.
그러나 <바이블 성전>은 <엔드리스 하우스>와 같은 거주공간이 아니라 일종의 신전(神殿)이다.
따라서 사람이 거주하는 데 필요한 요소인 잠을 잔다거나 먹는다거나 목욕을 한다는 등의 행위를 충족시키는 공간은 없다.
그렇다고 단지 역사적인 자료를 적절히 배열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소도 아니다.
성서의 사본을 수장하는 공간은 결국 종교를 지닌 인류가 어떠한 생활을 영위했는지에 대해서 알고 생각하는 장소인 것이다.
묘지, 신전, 사원 등은 본래 인간이 일상적인 삶을 벗어나 정신적인 삶을 제어하는 기능이 필요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키슬러가 <바이블 성전>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이 같은 기능을 충족시킬 것인가에 있었다.
외부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두 개의 심벌을 배치한 점과, 정신적 체험을 의도한 내부공간의 구성 등도 그 같은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것을 한마디로 함축하는 것이 키슬러가 말한 ‘재생’라는 개념이다.
필자는 건축에서의 심리적 정신적 체험을 위한 공간연출을 ‘도선(道線) 몽타주’라고 부른 바 있다.4)
이것은 건축공간을 이동하는 인간이 이미 준비된 공간구성과 그 연출의도에 의해 연속되는 어떤 경험을 하는 경우, 그 같은 과정을 통해 일종의 공간적인 몽타주가 성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도선 몽타주’의 예로는 계단에서 도리이(鳥居: 절입구에 세워두는 기둥문), 그리고 산몽(山門: 절의 정문)으로 이어지는 신사나 절의 참배와 같이 도선이 연출되는 경우나, 대불(大佛)의 태내(胎內)순례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서 경험하게 되는 공간체험의 원리가 <바이블 성전>의 경우와 유사한 점이 많다.


이 같은 ‘도선 몽타주’ 논리를 실내공간에 적용시킬 경우,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독립된 공간을 지닌 몇 가지 방이 기능상의 변화를 가지면서 모여 있는 경우이다.
이 경우 각각의 방이 공간적으로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간체험도 각각 완결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몇 개의 완결된 공간체험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과는 상반되게 하나의 공간이 몇 가지 공간기능을 지니고 연속적으로 관련되는 경우에는 각각의 공간체험이 다음의 체험과 관련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완결시켜 생각할 수 없다.
이 범주에 속하는 예로 다도(茶道)를 들 수 있는데, 여기에는 노로우(露路: 다실의 통로)에서 니지리아가리(躪りあがり: 다실 출입구)를 빠져나가 다실(茶室) 안으로 유도되는 공간연출수법이 응용되고 있다.
이 같은 공간연출이야 말로 ‘도선 몽타주’의 좋은 예이며, 일종의 정신적 체험을 위한 전형적인 유도장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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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런스 홀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필자는 키슬러가 <바이블 성전>에 적용한 공간구성수법이 일본의 차(茶) 문화에서 볼 수 있는 공간연출기법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마치 한 롤(roll)의 필름이 몇 개의 시퀀스(sequence)로 나뉘어져 각각의 시퀀스가 전후의 그것과 관련되는 것과 같이, <바이블 성전>의 공간 유니트도 입구에서부터 출구까지의 공간이 관객의 행위를 통해 몽타주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이 성전의 내부공간으로의 도입은 앞서 소개한 키슬러의 공간 유니트 항목(6)에 해당하는데, 탁 트인 외부경관이 거친 돌을 쌓아둔 오른쪽 벽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는 관객의 시야에서 사라지면 장방형의 내부정원에 이르게 된다.
사방이 에워 쌓여 있는 공간은 위쪽만이 하늘을 향해 열려 있을 뿐이다.
외부와 내부의 완충공간인 것이다.
이제 상징적인 흰 돔은 의식에서 일단 사라지고, 검은 모노리스 벽체도 거의 볼 수 없다.


이 작은 정원은 강력한 극적 효과를 띠고 있었던 성전외부의 이미지를 말끔히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입구에 있는 브론즈 문을 경계로 성전의 안과 밖을 구별시키는 공간이기도 하며, 관객의 의식을 내부공간에 집중시키는 역할도 한다.
앞 페이지의 사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브론즈로 된 이 파이프 문은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을 완전히 차단시키고 있지는 않다.
파이프와 파이프 사이의 틈을 통해 외부와 내부공간이 교류한다.
따라서 내부정원에서 엔트런스 홀에 이르는 공간체험은, 영화의 몽타주수법에 비유하여 말하자면 커트(cut)가 아니라 오버랩(overlap) 기법과 흡사하다.
또한 빛의 양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페이드 인(fade-in)에 가까운 효과를 느끼면서 성전 내부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이 엔트런스 홀의 공간적인 기능은 방금 통과한 내부정원과는 상대되는 개념이다.
엔트런스 홀은 전시공간이 아니라 외부공간으로부터 내부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을 위한 완충공간인 것이다.
한쪽에서는 외광(外光)이 흘러 들어오는 입구의 문이 보이며, 홀의 전방에는 어두운 복도가 계속되며 그 끝에 작은 문이 보인다.
여기서 관객들은 결코 돌아보아서는 안 되는 외부세계를 뒤로하고 머나먼 어둠의 세계를 앞에 둔 오르페우스(Orpheus)5)의 심경에 가까운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엔트런스 홀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다만 거의 눈에 띠지 않는 입구 쪽 벽면 위의 천장 가까운 곳에 색유리를 옆으로 배열한 ‘분광기(Spectroscope)’가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높은 천장 위에 투명한 색광의 비단무늬가 드리워진다.
엔트런스 홀의 극적 공간의 연출은 색유리에 의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색채와 바닥의 어두운 신비감의 대비에 의한 것으로, 여기에 들어온 관객은 마치 연극무대 위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관객은 오르페우스가 되어 어둠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브론즈로 된 파이프 문을 통과하면 외부세계와의 관련은 없어지게 된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일곱 개의 플랫폼으로 된 연속공간은 거의 눈에 띠지 않을 정도의 적은 단차(段差)를 지닌 긴 계단으로 되어 있다.
이것으로 인해 심리적으로는 아래로 대단히 깊이 내려간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또한 각각의 플랫폼의 경계에는 바닥에서 벽으로, 벽에서 천장으로 연계되는 부정형(不定形)의 프레임을 통과하게 되기 때문에 복도를 지나는 관객은 복잡한 동굴을 지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같이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좁은 공간은 엔트런스 홀과 돔을 연결시키면서 일종의 정신적 집중력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 공간을 통과하면 맞은편에 반쯤 열 수 있는 문이 있는데, 이 문 앞에서 관객들은 공간의 연속성을 의식하면서 다음 공간으로의 이동을 암시받게 되고 다시 한 번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간다.


위로 올라가면 맞은편에 반쯤 열리는 자동문이 있다.
이 자동문이 좌우로 열리면 직경 약 80피트의 커다란 돔 공간이 나타나는데, 여기가 도선 몽타주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 돔 공간의 전시 플로어는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위층과 아래층의 디자인은 대비효과를 노려 계획되어 있다.
위층의 디자인 포인트는 다른 무엇보다도 중앙에 위치한 원형 유리 케이스와 그 중심에 우뚝 솟은 남근형의 추상형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앙에 위치한 원형 유리 케이스에는 『사해사본』 중의 ‘이사야(isaiah) 서’가 전시되어 있으며, 플로어 주위에 배치된 8개의 유리 케이스에 각각 다른 『사해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외곽의 유리 케이스 앞에 관객이 서면 자동적으로 조명이 켜지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이것도 키슬러 독자적인 디스플레이 기법이다.
이 플로어는 돔 주위를 에워싸는 도넛 모양의 복도와 중앙에 위치한 전시공간을 위한 원형 플랫폼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아가서 도넛 모양의 복도에서 안쪽으로 굽어지는 곡선의 길을 따라 거친 돌로 만든 계단이 아래층의 전시공간을 향하고 있다.
성전의 내부공간에서는 이 플로어만이 유일하게 바깥의 흙담과 같은 돌로 쌓아올리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을 도선 몽타주라는 시점에서 파악한다면 이질적인 시퀀스가 커트 인(cut-in)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이미지는 지하창고에 적합한 침울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개방적인 위층의 플로어 공간에 폐쇄적인 아래층 공간을 대비시킴으로써 연출되는 효과는 또 하나의 극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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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사본』에서 받은 각양각색의 상념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이 대형 돔 내부에서 관객의 동선(動線)은 도넛 모양의 보행공간에서 발생하는 회유식(回遊式)에 의존하고 있다.
나아가서 상하를 연결하는 두 개의 계단을 포함하는 3차원 회유동선(回遊動線)을 시도하고 있다.
이 원형 돔 내부에서 발생하는 관객의 움직임을 분석해보면, 초기의 아이디어인 <엔드리스 극장> 계획안(1923)과 <공간무대>(1924)에서 보여준 공간연출 기법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바이블 성전>이라는 일종의 박물관건축을 디자인하면서 여기에도 그의 사상적 기저가 되는 ‘엔드리스’개념을 이용하여 관객이 직접 연기하는 극적 공간을 실현시킨 것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는 키슬러에게 <바이블 성전>은 ‘엔드리스’ 자체를 실현하기 위해 선택된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바이블 성전>은 단순히 『사해사본』을 보관하기 위한 뮤지엄이 아니라, 살아 있으면서 ‘재생’을 경험하기 위한 일종의 ‘극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대형 돔에서 관객이 겪는 체내회귀의 체험이 끝나면, 다시 좁고 긴 복도를 통과하게 된다.
돔에 전시된 『사해사본』에서 받은 각양각색의 상념을 긴 복도를 지나면서 가능한 한 정신을 집중시켜 내면적으로 심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복도의 끝에는 바깥의 빛이 새어 들어오는 돌담이 있다.
여기에서 오르페우스는 저승에서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키슬러는 관객을 성전 내부에서 외부로 복귀시키기 위해 또 다시 도선 몽타주 기법을 도입한다.
돌을 쌓아 만든 벽을 좌우에 둔 좁은 돌길이 그것이다.
이것은 입구의 정원이 했던 역할, 다시 말하면 위쪽을 개방시켜 내부와 외부를 상호 관련시키는 일종의 완충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좌측 벽에는 세 군데에 틈이 있어서 여기를 통과하면서 관객들은 멀리 예루살렘의 마을을 볼 수 있다.
키슬러는 이곳을 ‘명상의 돌길’로 생각했다. 이 좁고 긴 돌길을 지나면서 <바이블 성전>의 내부공간에서 경험한 사실들을 돌이켜 생각해보게 된다.
나아가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전개된 유태인의 역사, 그것을 포함하는 지구라는 천체(天體)의 유동적인 역사, 그리고 인간의 문화와 역사의 복잡한 양상 등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는 다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는 키슬러가 이 성전을 위해 마련한 16개의 공간 유니트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각각의 유니트가 연속적으로 몽타주 되어 그 안을 지나는 관객의 정신세계 속에는 극적 체험이 가능하다.
그것은 극문학적 일화성(story)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어떤 움직임을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것은 키슬러가 줄곧 생각하고 있었던 인간의 잠재적인 에너지와 환경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 다시 말하면 ‘디자인 상호관련’의 개념에 입각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인간과 환경, 그리고 역사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디자인 상호관련’을 실현하는 장(場). 이것이야말로 <바이블 성전>에서 키슬러가 실천하고자 했던 것이다.
키슬러는 이 건축을 위해 많은 생각을 했고 그에 따른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굳이 이 건축물을 ‘성전(Shrine)’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지 않은가.
<바이블 성전>은 지금까지 설명한 공간적 구조를 통해서 진정한 의미에서 ‘성전’ 기능을 지니고 있는 건축물이다.
또한 이것은 최초의 컨셉이었던 ‘재생’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바이블 성전>이 완성된 것은 1965년 4월 20일이다.
3년 전 키슬러는 빈 시절 이후 예술적 동반자였던 부인 스테피를 잃었다.
키슬러도 이미 70대 중반이 되었다.
그러나 키슬러는 체력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환경조각’의 새로운 시리즈에 착수하고 있었다.
<바이블 성전>의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키슬러는 두 번째 부인 릴리안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했다.
키슬러의 유일한 독립건축물이기도 한 <바이블 성전>의 완성은 필립 존슨이 지어준 ‘건축을 짓지 않은 건축가’라는 별명을 반납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바이블 성전>을 배경으로 촬영한 키슬러 부부의 사진에서 키슬러는 너무도 슬픈 표정을 하고 있다.
이 글이 잡지에 연재 중이던 1977년 일본을 방문한 혈액학자이며 화가이기도 했던 알코플레이를 통해 우연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키슬러의 친구이기도 한 알코플레이는 예술적인 면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키슬러의 상담상대였던 인물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바이블 성전> 개막식이 진행되는 동안 단 한 번도 키슬러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건물은 자선사업가 고테스만 부부의 재정적인 협력을 얻어 완성된 것으로 개막식 내내 그들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시(市)에 기부되었다는 사실만 부각되었던 것이다.
알코플레이는 키슬러가 몹시 불쾌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이 건물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미국에서의 반응은 물론 유럽의 신문 잡지 등에 <바이블 성전>을 소개하는 기사가 게재되기 시작했다.
키슬러의 이름이 점점 세계적인 찬사를 얻게 된 것이다.
1965년 드디어 미국의 건축가 연맹은 <바이블 성전>의 설계 및 기술적 성과를 평가하여 키슬러에게 골드 메달을 수상했다.
키슬러에게는 마지막이 되는 해에 미국은 근대건축의 아웃사이더인 그에게 수상을 결정한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인에서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가 1926년 뉴욕의 스탄웨이 홀에서 개최된 국제 극장박람회의 디렉터로 일하기 시작한지 40년이 지나서야 키슬러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해 말, 향년 75세의 키슬러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난다.
키슬러다운 극적 엔딩(ending)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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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슬러는 역사 속에서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가 세상을 등진 후 이미 20년이 지나고 있다.
미망인 릴리안 키슬러는 그간 몇몇 사람들이 키슬러의 조형세계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다 할 결과를 남기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2)
키슬러의 조형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사실 필자도 키슬러에 관해서 적지 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으나, 이제야 키슬러가 어떠한 인물이었는가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이른 것도 생애를 통한 키슬러의 조형활동을 시대에 따라 하나씩 검토해온 작업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특히 키슬러가 자신의 작품에 관한 개념이나 기법 등을 적어놓은 문헌을 이번 기회에 정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 같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과정을 밟은 것도 그렇게 하지 않고 키슬러에 관해 논고한다는 것은 그에 관한 오해를 가중시킬 뿐이라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키슬러에게는 그의 생전부터 여러 가지 ‘명예로운’ 오해가 뒤따랐다.
그 같은 오해가 그를 건축계의 스타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20세기가 가장 20세기다웠던 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고 있던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시종일관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던 인간이 어떠한 삶을 영위했는지, 또 어떠한 작업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행한 작업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명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집필을 마치고 필자는 본래 목표의 90%는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10%는 무엇인가?
키슬러의 자료는 미망인 릴리안 키슬러가 보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원고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그녀로부터의 전폭적인 자료제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슬러부인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는 아직 정리된 상태가 아니었다.
우선 자료를 정리해야 했다. 특별히 감사드릴 점은 필자가 원고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키슬러 부인이 선견지명을 갖고 필요한 자료들을 보내주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요청하는 사항을 찾아 자료를 뒤적이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자료를 새롭게 발견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것 역시 아직 정리단계에 있다.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애초 목적의 90%는 달성했다는 생각은 조금은 과장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키슬러는 사화산(死火山)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증거로 사후에도 키슬러의 작업을 소개하는 전람회가 빈번하게 개최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최근 파리에 개관된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파리-뉴욕 1908-1968’ 전에서도 키슬러의 전시디자인 관련분야 활동이 소개되었다.3)
이 전람회에서 ‘금세기 예술’화랑의 전시공간 설계(1942)와 그 밖의 전시디자인이 재현되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키슬러의 ‘공간전시’ 개념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키슬러는 역사 속에서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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