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바이블 성전>의 ‘도선(道線) 몽타주’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이상의 키슬러에 대한 언급을 통해 독자들은 18개로 구분되는 <바이블 성전>의 공간구성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각각의 유니트가 배치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필자는 <바이블 성전>의 연속적인 공간배치가 단지 건축상의 이유에 따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 성전을 찾는 관객의 심리적 정신적 체험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앞서 <바이블 성전>에 접근해가는 관객이 느낄 수 있는 외부환경의 극적 효과에 대해 논했다.
외부환경의 극적 효과는 <바이블 성전>을 중심으로 주위의 언덕, 나무와 바위, 예루살렘의 마을, 하늘, 구름과 태양 등에까지 확대되는 ‘원심적(遠心的)’인 효과를 의도한 것이다.
이것과 상반되게 <바이블 성전>의 영내(領內)에서는 방문객의 내적 세계로 파급되는 ‘구심적(求心的)’인 효과를 의도하고 있다.
이것은 곧 건축이 본래 지니고 있던 정신적 제어기능을 이 성전을 통해서 되살려보자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엔드리스 하우스>는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기능을 중심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행위-키슬러의 표현을 빌면 ‘이벤트’-와 공간을 연속적으로 상호 관련시키고자 계획된 것이었다.
그러나 <바이블 성전>은 <엔드리스 하우스>와 같은 거주공간이 아니라 일종의 신전(神殿)이다.
따라서 사람이 거주하는 데 필요한 요소인 잠을 잔다거나 먹는다거나 목욕을 한다는 등의 행위를 충족시키는 공간은 없다.
그렇다고 단지 역사적인 자료를 적절히 배열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소도 아니다.
성서의 사본을 수장하는 공간은 결국 종교를 지닌 인류가 어떠한 생활을 영위했는지에 대해서 알고 생각하는 장소인 것이다.
묘지, 신전, 사원 등은 본래 인간이 일상적인 삶을 벗어나 정신적인 삶을 제어하는 기능이 필요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키슬러가 <바이블 성전>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이 같은 기능을 충족시킬 것인가에 있었다.
외부에 시공간을 초월하는 두 개의 심벌을 배치한 점과, 정신적 체험을 의도한 내부공간의 구성 등도 그 같은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것을 한마디로 함축하는 것이 키슬러가 말한 ‘재생’라는 개념이다.
필자는 건축에서의 심리적 정신적 체험을 위한 공간연출을 ‘도선(道線) 몽타주’라고 부른 바 있다.4)
이것은 건축공간을 이동하는 인간이 이미 준비된 공간구성과 그 연출의도에 의해 연속되는 어떤 경험을 하는 경우, 그 같은 과정을 통해 일종의 공간적인 몽타주가 성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도선 몽타주’의 예로는 계단에서 도리이(鳥居: 절입구에 세워두는 기둥문), 그리고 산몽(山門: 절의 정문)으로 이어지는 신사나 절의 참배와 같이 도선이 연출되는 경우나, 대불(大佛)의 태내(胎內)순례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서 경험하게 되는 공간체험의 원리가 <바이블 성전>의 경우와 유사한 점이 많다.
이 같은 ‘도선 몽타주’ 논리를 실내공간에 적용시킬 경우,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독립된 공간을 지닌 몇 가지 방이 기능상의 변화를 가지면서 모여 있는 경우이다.
이 경우 각각의 방이 공간적으로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간체험도 각각 완결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몇 개의 완결된 공간체험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과는 상반되게 하나의 공간이 몇 가지 공간기능을 지니고 연속적으로 관련되는 경우에는 각각의 공간체험이 다음의 체험과 관련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완결시켜 생각할 수 없다.
이 범주에 속하는 예로 다도(茶道)를 들 수 있는데, 여기에는 노로우(露路: 다실의 통로)에서 니지리아가리(躪りあがり: 다실 출입구)를 빠져나가 다실(茶室) 안으로 유도되는 공간연출수법이 응용되고 있다.
이 같은 공간연출이야 말로 ‘도선 몽타주’의 좋은 예이며, 일종의 정신적 체험을 위한 전형적인 유도장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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