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런스 홀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필자는 키슬러가 <바이블 성전>에 적용한 공간구성수법이 일본의 차(茶) 문화에서 볼 수 있는 공간연출기법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마치 한 롤(roll)의 필름이 몇 개의 시퀀스(sequence)로 나뉘어져 각각의 시퀀스가 전후의 그것과 관련되는 것과 같이, <바이블 성전>의 공간 유니트도 입구에서부터 출구까지의 공간이 관객의 행위를 통해 몽타주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이 성전의 내부공간으로의 도입은 앞서 소개한 키슬러의 공간 유니트 항목(6)에 해당하는데, 탁 트인 외부경관이 거친 돌을 쌓아둔 오른쪽 벽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는 관객의 시야에서 사라지면 장방형의 내부정원에 이르게 된다.
사방이 에워 쌓여 있는 공간은 위쪽만이 하늘을 향해 열려 있을 뿐이다.
외부와 내부의 완충공간인 것이다.
이제 상징적인 흰 돔은 의식에서 일단 사라지고, 검은 모노리스 벽체도 거의 볼 수 없다.


이 작은 정원은 강력한 극적 효과를 띠고 있었던 성전외부의 이미지를 말끔히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입구에 있는 브론즈 문을 경계로 성전의 안과 밖을 구별시키는 공간이기도 하며, 관객의 의식을 내부공간에 집중시키는 역할도 한다.
앞 페이지의 사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브론즈로 된 이 파이프 문은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을 완전히 차단시키고 있지는 않다.
파이프와 파이프 사이의 틈을 통해 외부와 내부공간이 교류한다.
따라서 내부정원에서 엔트런스 홀에 이르는 공간체험은, 영화의 몽타주수법에 비유하여 말하자면 커트(cut)가 아니라 오버랩(overlap) 기법과 흡사하다.
또한 빛의 양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페이드 인(fade-in)에 가까운 효과를 느끼면서 성전 내부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이 엔트런스 홀의 공간적인 기능은 방금 통과한 내부정원과는 상대되는 개념이다.
엔트런스 홀은 전시공간이 아니라 외부공간으로부터 내부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을 위한 완충공간인 것이다.
한쪽에서는 외광(外光)이 흘러 들어오는 입구의 문이 보이며, 홀의 전방에는 어두운 복도가 계속되며 그 끝에 작은 문이 보인다.
여기서 관객들은 결코 돌아보아서는 안 되는 외부세계를 뒤로하고 머나먼 어둠의 세계를 앞에 둔 오르페우스(Orpheus)5)의 심경에 가까운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엔트런스 홀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다만 거의 눈에 띠지 않는 입구 쪽 벽면 위의 천장 가까운 곳에 색유리를 옆으로 배열한 ‘분광기(Spectroscope)’가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높은 천장 위에 투명한 색광의 비단무늬가 드리워진다.
엔트런스 홀의 극적 공간의 연출은 색유리에 의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색채와 바닥의 어두운 신비감의 대비에 의한 것으로, 여기에 들어온 관객은 마치 연극무대 위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관객은 오르페우스가 되어 어둠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브론즈로 된 파이프 문을 통과하면 외부세계와의 관련은 없어지게 된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일곱 개의 플랫폼으로 된 연속공간은 거의 눈에 띠지 않을 정도의 적은 단차(段差)를 지닌 긴 계단으로 되어 있다.
이것으로 인해 심리적으로는 아래로 대단히 깊이 내려간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또한 각각의 플랫폼의 경계에는 바닥에서 벽으로, 벽에서 천장으로 연계되는 부정형(不定形)의 프레임을 통과하게 되기 때문에 복도를 지나는 관객은 복잡한 동굴을 지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같이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좁은 공간은 엔트런스 홀과 돔을 연결시키면서 일종의 정신적 집중력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 공간을 통과하면 맞은편에 반쯤 열 수 있는 문이 있는데, 이 문 앞에서 관객들은 공간의 연속성을 의식하면서 다음 공간으로의 이동을 암시받게 되고 다시 한 번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간다.


위로 올라가면 맞은편에 반쯤 열리는 자동문이 있다.
이 자동문이 좌우로 열리면 직경 약 80피트의 커다란 돔 공간이 나타나는데, 여기가 도선 몽타주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 돔 공간의 전시 플로어는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위층과 아래층의 디자인은 대비효과를 노려 계획되어 있다.
위층의 디자인 포인트는 다른 무엇보다도 중앙에 위치한 원형 유리 케이스와 그 중심에 우뚝 솟은 남근형의 추상형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앙에 위치한 원형 유리 케이스에는 『사해사본』 중의 ‘이사야(isaiah) 서’가 전시되어 있으며, 플로어 주위에 배치된 8개의 유리 케이스에 각각 다른 『사해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외곽의 유리 케이스 앞에 관객이 서면 자동적으로 조명이 켜지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이것도 키슬러 독자적인 디스플레이 기법이다.
이 플로어는 돔 주위를 에워싸는 도넛 모양의 복도와 중앙에 위치한 전시공간을 위한 원형 플랫폼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아가서 도넛 모양의 복도에서 안쪽으로 굽어지는 곡선의 길을 따라 거친 돌로 만든 계단이 아래층의 전시공간을 향하고 있다.
성전의 내부공간에서는 이 플로어만이 유일하게 바깥의 흙담과 같은 돌로 쌓아올리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을 도선 몽타주라는 시점에서 파악한다면 이질적인 시퀀스가 커트 인(cut-in)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이미지는 지하창고에 적합한 침울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개방적인 위층의 플로어 공간에 폐쇄적인 아래층 공간을 대비시킴으로써 연출되는 효과는 또 하나의 극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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