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슬러는 역사 속에서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가 세상을 등진 후 이미 20년이 지나고 있다.
미망인 릴리안 키슬러는 그간 몇몇 사람들이 키슬러의 조형세계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다 할 결과를 남기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2)
키슬러의 조형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사실 필자도 키슬러에 관해서 적지 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으나, 이제야 키슬러가 어떠한 인물이었는가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이른 것도 생애를 통한 키슬러의 조형활동을 시대에 따라 하나씩 검토해온 작업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특히 키슬러가 자신의 작품에 관한 개념이나 기법 등을 적어놓은 문헌을 이번 기회에 정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 같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과정을 밟은 것도 그렇게 하지 않고 키슬러에 관해 논고한다는 것은 그에 관한 오해를 가중시킬 뿐이라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키슬러에게는 그의 생전부터 여러 가지 ‘명예로운’ 오해가 뒤따랐다.
그 같은 오해가 그를 건축계의 스타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20세기가 가장 20세기다웠던 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고 있던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맞서 시종일관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던 인간이 어떠한 삶을 영위했는지, 또 어떠한 작업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행한 작업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명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집필을 마치고 필자는 본래 목표의 90%는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10%는 무엇인가?
키슬러의 자료는 미망인 릴리안 키슬러가 보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원고를 쓸 수 있었던 것은 그녀로부터의 전폭적인 자료제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슬러부인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는 아직 정리된 상태가 아니었다.
우선 자료를 정리해야 했다. 특별히 감사드릴 점은 필자가 원고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키슬러 부인이 선견지명을 갖고 필요한 자료들을 보내주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요청하는 사항을 찾아 자료를 뒤적이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자료를 새롭게 발견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것 역시 아직 정리단계에 있다.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애초 목적의 90%는 달성했다는 생각은 조금은 과장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키슬러는 사화산(死火山)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증거로 사후에도 키슬러의 작업을 소개하는 전람회가 빈번하게 개최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최근 파리에 개관된 퐁피두센터에서 열린 ‘파리-뉴욕 1908-1968’ 전에서도 키슬러의 전시디자인 관련분야 활동이 소개되었다.3)
이 전람회에서 ‘금세기 예술’화랑의 전시공간 설계(1942)와 그 밖의 전시디자인이 재현되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키슬러의 ‘공간전시’ 개념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키슬러는 역사 속에서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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