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엔드리스 하우스>의 불과 물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의 말년 작품에는 종종 불과 물이 등장한다.
예루살렘의 언덕에 지어진 <바이블 성전>(1965)에도 포물선으로 된 곡면 돔이 사각형의 연못 위에 떠있다.
이 돔을 향하여 연못의 네 귀퉁이로부터 끊임없이 물이 주입되며 돔의 중앙에 있는 돌출구에도 분수가 설치되어 있다.
이 돔과 대칭되는 위치에는 사각형의 검은 석재 벽이 있는데, 그 상단에 모닥불 같은 것이 설치될 예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커다란 돌고래 모양을 한 건물인 <명상의 동굴>(1964)도 좁고 긴 연못에 놓여 있다.
키슬러는 물과 불을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근원적인 요소로 취급했다.
그는 물과 불이 지니는 상징적인 의미를 숙고하고, 그것들이 인간과 자연환경을 연계시킬 수 있는 기본열쇠라고 생각했다.
<명상의 동굴>에 대한 언급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물은 불과 함께 인간의 원천이라 할 수 있으며, 아이디어의 원천이라 할 수 있으며, 감각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인식에 근거하여 동굴 안의 물소리가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기를 희망한다.12


키슬러는 물과 불이 인간의 근본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서 소개한 <엔드리스 하우스> 드로잉 중에는 연못 위에 띄워놓은 구상이 있는가 하면, 내부공간에 커다란 연못을 둔 계획안도 있다.
또한 원형 난로가 그려진 드로잉도 있으며, 중앙에 불을 두고 그 주위를 물이 에워싸인 드로잉도 있다.
여기서 독자들은 자연환경을 구성하는 주요요소 중 하나인 불과 물이 생활공간 한가운데 커다랗게 위치하여 불꽃의 흔들림과 물에 비친 움직임이 곡면으로 된 주위 벽에 비쳐지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5)


<엔드리스 하우스>에 관한 키슬러의 해설에는 서양의 욕실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대목이 있다.
키슬러는 욕조 안에서 몸을 씻는 목욕방식 자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먼저 키슬러는 욕조에 물을 채우고 그 안에서 몸을 씻는 것은 대단히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자기로 된 욕조는 그 안에서 서거나 옆으로 누울 경우에 골절상을 입기 쉬울 뿐만 아니라 붙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목욕습관과 비교해보더라도 서구의 그것은 대단히 무미건조한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서양의 목욕탕에 대해 이같이 진지하게 비판한 근대 건축가는 없었다.
키슬러는 목욕탕은 계곡의 하천에서 물놀이를 할 때와 같이 물이 고여 있는 풀과 하천 바닥의 돌에 누운 것과 같은 편안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13
왜냐하면 물이 넘쳐흐르는 계곡의 하천은 개방적인 느낌을 주어 차겁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사크(sack)에 누워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생동감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키슬러가 일본의 온천에 있는 노천 욕장을 경험했다면, 이것이야말로 자기 뜻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기뻐했을 것이다.


키슬러는 다른 무엇보다도 서양식 욕실의 세라믹으로 된 욕조 대신 어떤 형태라도 좋으니 목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옆으로 누워 있거나 앉아 있을 수도 있으며, 설사 미끄러져도 골절상을 당할 위험이 적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엔드리스 하우스>에는 목욕을 위해 물을 여유 있게 담을 수 있는 풀이 부부방, 아이방, 객실 등에 배치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같은 온도의 물을 공급시키는 자동다이얼 장치가 부착되어 있고, 자유로운 자세로 쉴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풀의 주변에는 식물을 두어서 녹색의 무성한 잎사귀가 커튼을 대신한다.
불이나 물과 같은 상징적인 요소의 취급방법 및 보다 자유롭게 목욕하기 위한 목욕탕의 문제 등을 통해서 우리는 키슬러가 구상한 <엔드리스 하우스>가 실제로 건설 가능한 지극히 현실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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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엔드리스 하우스>의 역사적 의의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인류가 동굴을 벗어나서 ‘주택’이라는 자연으로부터의 피난처를 마련하기 시작한 이후 오늘날의 근대기능주의 건축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건축적 형식을 지녀왔다.
그런데 키슬러는 <엔드리스 하우스>를 필두로 하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입방체의 공간이 즐비한 마천루, 콘크리트의 감옥, 벽 대신 유리를 사용한 시스루 빌딩(see-through building) 등으로 대표되는 근대기능주의 건축을 비판했다.
그렇다면 역사상 존재해온 많은 건축들 중 <엔드리스 하우스>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키슬러는 세상을 떠나기 1주일 전 『아트 인 아메리카 Art in America』를 위해 쓴 글에서 이 문제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미래:조각으로서의 건축에 관한 수기 The Future: Notes on Architecture as Sculpture」라는 이 에세이에서 키슬러는 처음으로 ‘엔드리스’의 개념에 입각한 기념비적 건축 <엔드리스 하우스>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키슬러는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기둥과 미구조(楣構造)가 특징인데, 이것은 철골구조로 된 오늘날의 마천루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엔드리스 하우스>는 각체구조를 채택함으로서 그 같은 전통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키슬러는 파르테논 신전에 대한 연구 후 이틀 반 동안 가까운 건축가 친구들에게 측면에 배열되어 있는 기둥의 숫자를 물었는데 누구도 정확한 숫자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은 17개로 되어 있다.
이것은 그리스의 건축가 익티노스와 칼리라테스 그리고 유능한 조각가였던 피디아스가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17이라는 숫자는 기능적인 요인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그들은 건축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요인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보는 거리에 따라 환경과의 대응관계가 바뀐다.
파르테논 신전을 모방한 것이 이탈리아와 그 밖의 장소에 건설되는 것을 보고 그는 ‘창조’와 ‘적용’, 그리고 ‘모방’이라는 3가지 종류를 새롭게 지각했다.
나아가서 기존의 파르테논 류의 건축을 이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해보면 대략 1:100:1,000의 비율이 되므로 하나밖에 없는 원래의 것은 결국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14


그 밖에 인간은 항상 자연이 지니고 있는 양감과 현상으로부터 영감을 얻어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며, 그 예로서 페루의 잉카 유적(BC 1400년경)을 들면서 그것이 산의 양감으로부터 유추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기능을 넘어서는 인상과 영감의 필요성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1338년에 세워진 영국 <웰즈 대성당>의 거대한 아치의 양감과 구조를 들고 있다.
일본의 5층탑이 실질적으로 끝없는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든지, 동양건축의 지붕을 예로 들면서 위쪽을 향하여 솟아있는 동양적 곡선이 조각적 리듬을 지니고 있는 표현적인 건축이라는 등의 언급이 있다.
나아가서 그것들은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부분적으로 보더라도 ‘엔드리스’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과거의 예를 통해서 키슬러가 발견한 것은 미시적인 관점에서 추구되어온 기능적 건축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의 영향, 초월감각적 표현과 영감, 감각적인 연속성의 발명에 의해 만들어진 건축이었다.
그는 앞의 예에 공통되는 무엇인가가 창조자로서의 인간의 비전속에 이미 잉태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같은 비전을 지닌 ‘원래의 것’은 단 하나뿐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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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에게 끊임없이 계속되는 ‘경쟁심’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건축가에게 끊임없이 계속되는 ‘경쟁심’은 건축가의 정신위생상 대단히 유해하다.
지난 동안 지나칠 정도로 자주 거론되어온 바와 같이 나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이들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재능은 그들의 생애를 통해서 단 한 번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지니게 된다.
그 같은 기회가 두 번 찾아온다고는 할 수 없다.
윌리엄 블레이크도, 제임스 조이스도, 에드가 발레스도 클라우드 N. 루도도 예외는 아니다.
누구든 하나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평생을 보낸다.
그 사람의 생애가 길던 짧던 결과는 마찬가지다.
언제 생명의 끈이 끊어진다고 해도 항상 같은 색의 피가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음 사실을 마음 속 깊이 담아둘 필요가 있다.


a. 만약 어떤 건축이 조각처럼 보인다면 결코 그것을 건축해서는 안 된다.

b. 건축에 관한 규정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 안에는 4개의 구성요소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⑴ 비전,
⑵ 구조적인 컨셉,
⑶ 진화에 필요한 기능, 그리고 모든 것의 근저에 흐르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로
⑷“미지의 세계(우주)에 인간이 어떠한 형태로 관련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신념에 찬 답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


이 같은 4가지 요소의 핵심을 통합하는 것만이 ‘건축’에 도달할 수 있다.
앞의 3가지는 과거와 현재의 환경변화에 따라 변화될 것이다.
그것들은 다양한 형태의 변화를 동반하면서 그 결정을 보게 된다.
그러나 네 번째 항목인 ‘내용’은 텔모피레의 그리스인과 같이 불변의 것이어야 한다.


거의 모든 선사시대의 주거지는 예외 없이 조각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또한 원형이나 원추형을 띠고 있다. 모든 것이 둥근 지구 위에 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a. 임시주택:밀집이나 나뭇잎이 이어 붙여져 있다.

b. 방호물:나뭇가지로 엮거나 풀로 덮여있다.

c. 벌집

d. 돌맨

e. 동굴 속에서의 거주

f. 텐트

g. 스톤헨지

h. 고분 또는 매장총


그러나 이 같은 것들을 ‘건축’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매장총과 각종 모뉴멘트는 차츰 ‘건축’에 가까운 것이 된다.
물론 그것들은 생활에 직접관계가 있는 실용적인 목적을 전혀 지니지 않는다.
그것들은 육체와는 분리된 영혼의 추상적인 관념에 바쳐진 것이기 때문이다.15


지난 역사상 인류가 지녔던 위대한 기념비는 전부 죽음에 바쳐진 구조물이다.
또한 세계 도처에 깔려 있는 사원이나 신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모두는 삶과 죽음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위해 건설된 것이다.
키슬러는 피라미드, 파르테논,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필라델피아 유태인 교회> 등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아직까지도 근대적인 표현방법을 빌어 신이 아니라 삶과 죽음 자체에 바쳐진 건축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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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 조각작품을 걸 수 있는 벽의 금지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집은 단지 간단한 도피처에 불과하다.
열과 바람과 비를 피하기 위한 방호물이거나, 야수나 외적의 공격을 막는 역할을 할 뿐이다.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장식을 첨가하는데, 방어벽의 단순함을 보완하기 위해 채색을 하거나 화려하거나 차분한 부조를 이용한다.
이 벽에 높고 낮은 창을 만들어 장식적인 창틀을 붙이기도 한다.
넓은 계단과 높은 천장, 그리고 하녀를 두고 있는 집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상자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아무리 살기 편안한 집이라 하더라도, 또는 오디오 세트, 텔레비전, 리모트컨트롤 시스템, 음향효과장치가 붙어있는 텔레스타 등이 구비되어 있다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16


우리가 20세기 건축에 기여한 것은 부유한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빅토리아풍의 악취미를 쇠퇴시켜 풍부한 건축적 진수성찬이 없어지게 했다는 데 있다.
그 결과 현대풍의 주택은 뼈대와 가죽, 편편한 벽과 천장, 입방체와 사각형만 남게 되었다.
산업공학 체계에 의해 지배되는 오늘날 우리는 계속해서 상자 쌓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50층, 60층 또는 그 이상의 것을 목표로 하는 소위 다세포 패션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근대적 주택디자인의 논리에 입각한 거주공간을 짓고 있다.
대형유리의 질은 높아졌고, 가격은 보다 저렴해졌으며, 보다 좋은 설비와 간편한 기계장치가 개발되었다.
회화나 조각작품을 걸 수 있는 벽의 금지-이것은 1920년대에 나 자신도 참가한 데 스틸의 신조이기도 했다-로 인해 우리는 실내와 실외에 순수한 추상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수직으로 긴 유리창 대신에 수평으로 된 유리창을,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긴 유리띠도 가능하게 되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몬드리안의 영향을 받아 차색, 녹색, 자주색 등의 사용이 터부시되고, 예외적으로 흰색과 삼원색으로 벽면을 덮는 것이 허용되게 되었다.
유일한 예외는 회색의 농담을 조절한 다양함이 있을 뿐이다.
공간영역을 구속하는 ‘무’를 유도하기 위해서 인간의 창조력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를 학습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17


근대건축의 기능성 추구와 순수한 추상미학은 본래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될 위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0~30년대를 거치면서 상호 유착하여 오늘날까지 무수히 많은 건축의 기초를 지탱해온 신조가 되고 있다.
나아가서 기능과 설비를 합리화하고 필요 이상으로 간편한 기계장치를 개발하면서 현대건축의 주류는 비대해져갔다.
이 같은 사실이 건축가의 신조로 그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을 때에는 그나마 그들의 귀착지는 있었다.
그러나 생산성의 향상과 그것으로 인한 이윤추구를 부동불멸의 목표로 하는 건축 산업의 논리가 대두되면서 데 스틸의 미학이나 바우하우스의 교육이념 등은 형태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 같은 추이를 예견한 키슬러는 그것이 현실화되기 이전인 1930년대부터 그것의 맹점을 지적해왔다.
그러나 감옥과도 같은 상자 속의 생활은 점점 가속화되어 오늘날까지도 세계 도처의 도시들과 그 주변에서 증식을 계속할 뿐이다.
CIAM(Congr럖 International de l’Architecture Moderne)6) 이후 건축가의 고뇌는 그들의 선배들이 신조로 삼아온 현대건축의 체계 자체가 근본부터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슬러가 지적한 것과 같은 모방 타입의 건축이 지금은 수천수만을 넘는 규모로 세계 도처에서 증식되고 있다.


이 같은 현대건축의 풍화현상의 와중에도 위대한 거장으로 대접받으면서 현대건축의 기초를 세우는 데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두 사람의 건축가 르 코르뷔제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대해 키슬러는 다음과 같이 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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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슬러에게 있어서 <엔드리스 하우스>는 교회와 미술관 이상의 것이었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르 코르뷔제는 그야말로 기적을 낳았다. 그가 생애를 통해 축조를 거듭해온 높고 낮은 사각형의 건축이라는 장화의 끈을 풀고 롱샹의 하늘을 향해 치솟은 건축7)을 세운 것이다.
르 코르뷔제에게 일어난 이 같은 이륙의 성공은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통해서 공간의 연속성을 거론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스타일이 혼합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롱샹 교회는 티벳풍의 지붕과 몬드리안풍의 벽면, 그리고 탑처럼 보이는 두개의 사료저장고 등이 혼란스런 영혼의 모순을 상징하는 듯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건축의 본래 모습이라 할 수 있는 종교적 분위기를 잃지 않고 있다.18

라이트가 설계한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1956-1959)에 대해서도 키슬러는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그의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건축·조각인 -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의 설계를 의뢰받게 된다.
그러나 기구하게도 그는 건물 준공식 3개월 전에 세상을 등진다.
현대미술이라는 막강한 적을 상대로 그는 만족할 만한 전시가 가능한 가변식 전시공간을 연출하기 위해 노력했다.
커다란 실내공간은 방문자들이나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로 가득차면 생기를 띠게 된다.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관람자의 시야에 작품이 들어오지 않는 경우 관객들은 마치 언제나 다른 속도로 움직이게 설계되어 있는 조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생애를 표준화된 다양함으로 점철되고 있는 건축업계에 대한 반역으로 일관한 인물이다.
그는 언제나 개미처럼 올망졸망 모여 있는 건축가들을 짓밟는 공룡과 같은 주인공으로 존재해왔다.

라이트는 발코니를 이용해 연속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발코니의 리드미컬한 난간은 회화나 조각을 전시하기 위한 실질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공간 전체의 무한성은 회화나 조각에 대한 친밀감의 결핌을 잊게 해주며, 동시에 그것들을 용서하고 싶을 정도로 충분한 만족감을 주고 있다.19

두 거장이 만년에 제작한 두 작품을 통해 키슬러는 그들이 근대기능주의의 주된 조류를 넘어서서 마치 조각과도 같은 건축을 지향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키슬러는 그것들을 ‘입방체 감방’에서 벗어난 주요작품으로 평가했다.
단 이 두 작품은 모두 예술과 종교를 위해 헌정된 것으로 일상생활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
키슬러 자신도 인류의 역사를 위한 건축 <바이블 성전>을 설계했고 일련의 환경조각도 발표했다.
그러나 그가 보다 강력하게 원한 것은 인간의 일상생활을 대상으로 하는 건축, 즉 <엔드리스 하우스>를 짓는 일이었다.

만약 사람들이 <엔드리스 하우스>를 감각에 의존하는 좁은 시각으로 보지 않고 전체상을 파악하고자 노력한다면 그것이 지극히 현실적인 주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시적 감성이 매일 일어나는 해프닝의 연속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면 더욱이 현실적인 주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20

마지막으로 키슬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리하여 우리와 가까운 곳에 ‘인공적 우주’를 창조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단지 ‘살기 쉽게 하기 위한 장치’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대신에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각성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작용하고 있는 우주의 힘이 우리를 끊임없이 성장시켜 물질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무한하게 발전시켜줄 것이다.21

키슬러에게 있어서 <엔드리스 하우스>는 교회와 미술관 이상의 것이었다.
왜냐하면 종교도, 예술도 <엔드리스 하우스>에서의 생활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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