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엔드리스 하우스>의 역사적 의의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인류가 동굴을 벗어나서 ‘주택’이라는 자연으로부터의 피난처를 마련하기 시작한 이후 오늘날의 근대기능주의 건축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건축적 형식을 지녀왔다.
그런데 키슬러는 <엔드리스 하우스>를 필두로 하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입방체의 공간이 즐비한 마천루, 콘크리트의 감옥, 벽 대신 유리를 사용한 시스루 빌딩(see-through building) 등으로 대표되는 근대기능주의 건축을 비판했다.
그렇다면 역사상 존재해온 많은 건축들 중 <엔드리스 하우스>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키슬러는 세상을 떠나기 1주일 전 『아트 인 아메리카 Art in America』를 위해 쓴 글에서 이 문제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미래:조각으로서의 건축에 관한 수기 The Future: Notes on Architecture as Sculpture」라는 이 에세이에서 키슬러는 처음으로 ‘엔드리스’의 개념에 입각한 기념비적 건축 <엔드리스 하우스>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키슬러는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기둥과 미구조(楣構造)가 특징인데, 이것은 철골구조로 된 오늘날의 마천루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엔드리스 하우스>는 각체구조를 채택함으로서 그 같은 전통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키슬러는 파르테논 신전에 대한 연구 후 이틀 반 동안 가까운 건축가 친구들에게 측면에 배열되어 있는 기둥의 숫자를 물었는데 누구도 정확한 숫자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은 17개로 되어 있다.
이것은 그리스의 건축가 익티노스와 칼리라테스 그리고 유능한 조각가였던 피디아스가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17이라는 숫자는 기능적인 요인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그들은 건축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요인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에 보는 거리에 따라 환경과의 대응관계가 바뀐다.
파르테논 신전을 모방한 것이 이탈리아와 그 밖의 장소에 건설되는 것을 보고 그는 ‘창조’와 ‘적용’, 그리고 ‘모방’이라는 3가지 종류를 새롭게 지각했다.
나아가서 기존의 파르테논 류의 건축을 이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해보면 대략 1:100:1,000의 비율이 되므로 하나밖에 없는 원래의 것은 결국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14
그 밖에 인간은 항상 자연이 지니고 있는 양감과 현상으로부터 영감을 얻어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며, 그 예로서 페루의 잉카 유적(BC 1400년경)을 들면서 그것이 산의 양감으로부터 유추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기능을 넘어서는 인상과 영감의 필요성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1338년에 세워진 영국 <웰즈 대성당>의 거대한 아치의 양감과 구조를 들고 있다.
일본의 5층탑이 실질적으로 끝없는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든지, 동양건축의 지붕을 예로 들면서 위쪽을 향하여 솟아있는 동양적 곡선이 조각적 리듬을 지니고 있는 표현적인 건축이라는 등의 언급이 있다.
나아가서 그것들은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부분적으로 보더라도 ‘엔드리스’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과거의 예를 통해서 키슬러가 발견한 것은 미시적인 관점에서 추구되어온 기능적 건축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의 영향, 초월감각적 표현과 영감, 감각적인 연속성의 발명에 의해 만들어진 건축이었다.
그는 앞의 예에 공통되는 무엇인가가 창조자로서의 인간의 비전속에 이미 잉태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같은 비전을 지닌 ‘원래의 것’은 단 하나뿐이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