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나 조각작품을 걸 수 있는 벽의 금지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집은 단지 간단한 도피처에 불과하다.
열과 바람과 비를 피하기 위한 방호물이거나, 야수나 외적의 공격을 막는 역할을 할 뿐이다.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장식을 첨가하는데, 방어벽의 단순함을 보완하기 위해 채색을 하거나 화려하거나 차분한 부조를 이용한다.
이 벽에 높고 낮은 창을 만들어 장식적인 창틀을 붙이기도 한다.
넓은 계단과 높은 천장, 그리고 하녀를 두고 있는 집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상자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아무리 살기 편안한 집이라 하더라도, 또는 오디오 세트, 텔레비전, 리모트컨트롤 시스템, 음향효과장치가 붙어있는 텔레스타 등이 구비되어 있다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16


우리가 20세기 건축에 기여한 것은 부유한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빅토리아풍의 악취미를 쇠퇴시켜 풍부한 건축적 진수성찬이 없어지게 했다는 데 있다.
그 결과 현대풍의 주택은 뼈대와 가죽, 편편한 벽과 천장, 입방체와 사각형만 남게 되었다.
산업공학 체계에 의해 지배되는 오늘날 우리는 계속해서 상자 쌓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50층, 60층 또는 그 이상의 것을 목표로 하는 소위 다세포 패션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근대적 주택디자인의 논리에 입각한 거주공간을 짓고 있다.
대형유리의 질은 높아졌고, 가격은 보다 저렴해졌으며, 보다 좋은 설비와 간편한 기계장치가 개발되었다.
회화나 조각작품을 걸 수 있는 벽의 금지-이것은 1920년대에 나 자신도 참가한 데 스틸의 신조이기도 했다-로 인해 우리는 실내와 실외에 순수한 추상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수직으로 긴 유리창 대신에 수평으로 된 유리창을,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긴 유리띠도 가능하게 되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몬드리안의 영향을 받아 차색, 녹색, 자주색 등의 사용이 터부시되고, 예외적으로 흰색과 삼원색으로 벽면을 덮는 것이 허용되게 되었다.
유일한 예외는 회색의 농담을 조절한 다양함이 있을 뿐이다.
공간영역을 구속하는 ‘무’를 유도하기 위해서 인간의 창조력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를 학습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17


근대건축의 기능성 추구와 순수한 추상미학은 본래의 목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될 위험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0~30년대를 거치면서 상호 유착하여 오늘날까지 무수히 많은 건축의 기초를 지탱해온 신조가 되고 있다.
나아가서 기능과 설비를 합리화하고 필요 이상으로 간편한 기계장치를 개발하면서 현대건축의 주류는 비대해져갔다.
이 같은 사실이 건축가의 신조로 그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을 때에는 그나마 그들의 귀착지는 있었다.
그러나 생산성의 향상과 그것으로 인한 이윤추구를 부동불멸의 목표로 하는 건축 산업의 논리가 대두되면서 데 스틸의 미학이나 바우하우스의 교육이념 등은 형태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 같은 추이를 예견한 키슬러는 그것이 현실화되기 이전인 1930년대부터 그것의 맹점을 지적해왔다.
그러나 감옥과도 같은 상자 속의 생활은 점점 가속화되어 오늘날까지도 세계 도처의 도시들과 그 주변에서 증식을 계속할 뿐이다.
CIAM(Congr럖 International de l’Architecture Moderne)6) 이후 건축가의 고뇌는 그들의 선배들이 신조로 삼아온 현대건축의 체계 자체가 근본부터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슬러가 지적한 것과 같은 모방 타입의 건축이 지금은 수천수만을 넘는 규모로 세계 도처에서 증식되고 있다.


이 같은 현대건축의 풍화현상의 와중에도 위대한 거장으로 대접받으면서 현대건축의 기초를 세우는 데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두 사람의 건축가 르 코르뷔제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대해 키슬러는 다음과 같이 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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