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갤럭시’의 초상


조각을 통한 갤럭시의 실현을 전후한 1947년부터 49년까지 키슬러는 평면으로 된 갤럭시를 제작했다.
키슬러의 절친한 친구들의 초상화가 그것이다.
<‘갤럭시’의 초상>은 1918년 처음으로 선보인 갤럭시 제작기법을 재시도한 것으로, 한 장으로 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복수 패널로 구성되었다.
키슬러는 갤럭시의 회화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혼자서 살고 있는 독신남이나 미혼여성과는 달리 가족이 있는 회화이다.13


이를 위해 유니트와 유니트 ‘사이’를 정확하게 측정할 필요가 있다.
각 유니트 사이의 간격은 작품 전체의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나의 유니트를 다른 유니트에 가까이 둘 것인가 멀리 둘 것인가, 또는 높게 할 것인가 낮게 할 것인가가 <갤럭시>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이것은 인간이 만든 ‘확장된 우주’에 몰입하고자 하는 관객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14


나는 <‘갤럭시’의 초상>에서 회화작품을 벽면에서 튀어나오거나 안으로 들어가도록 다양한 거리를 두고 설치했다.
그것들은 작품을 독립시켜주는 틀을 지니지 않는다.
작품들 사이가 정확한 간격을 지니는 공간이 있다면 틀이 필요 없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벽의 전체 또는 실내공간이라는 틀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니트와 유니트 사이의 공간은 어떤 코너도 지니지 않는 3차원의 틀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갤럭시’의 초상>은 최소 3개의 유니트로부터 10개 정도의 유니트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어떤 경우라도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실내공간에서 ‘무한성(Endless)’을 시도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보다 주의 깊게 발전시킨다면 ‘내부적 자력의 힘을 상실할 때까지’ 계속 첨가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만약 실제로(물리적으로) 끝이 온다고 해도 연속성을 환기시키는 능력은 여전히 크며, 이에 그치지 않고 감상자가 스스로의 상상력을 통해서 보다 많은 유니트를 불려나가는 것도 가능하다.
이 같은 행위를 통해 관객은 본래의 컨셉으로부터 파생된 새로운 자장(磁場)을 연장시킬 수 있게 된다.15


키슬러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갤럭시 회화를 통한 ‘상호관련’의 원리는 앞서 언급한 데 스틸의 반 뒤스브르크나 몬드리안의 생각과 일치한다.
그러나 몬드리안이 현실공간과의 조화를 추구했다고 해도, 그의 작품은 처음부터 2차원상의 화면을 표현 대상공간으로 한정한다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현실의 3차원 공간을 구성하는 벽면이나 실내공간을 적극적으로 의식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키슬러는 갤럭시 회화를 통해 현실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속성의 실현에 성공한다.
여기서 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감상자가 각 유니트의 상관관계에 관여하는 대목이다.
키슬러는 갤럭시를 관객의 상상력이 작용하는 장으로서 여겼던 것이다.


관객의 참가에 의해 성립되는 이 같은 경향의 작품은 오늘날 일반화한 것이다.
키슬러의 선구자적인 측면을 엿볼 수 있는 이 같은 경향은 수용자 측의 입장에 서서 사고하는 키슬러의 기본적인 태도로부터 유추된 것이다.5)


<‘갤럭시’의 초상>에는 이브 탕기, 앙드레 부르통, 알 하슈펠드, 머스 커닝햄, 존 케이지, e. e.커밍스, 줄리앙 레비, S. J. 페르망, 쿠르트 셀리그만, 마리 토이엔, 한스 아르프, 마르셀 뒤샹 등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 중 <장 아르프의 ‘갤럭시’초상>은 한 장의 종이에 연필로 그려져 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얼굴, 자신의 부조를 들고 있는 손, 무릎부터 왼쪽 발까지, 오른쪽 발목 등이 그려져 있으나 나머지 부분은 생략되었다.
필요한 부분만 종이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었는데, 각 유니트가 서로 잡아당기는 힘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존 케이지의 ‘갤럭시’초상>에서는 프리페어드 피아노 연주를 상기시키는 손가락과 다양한 얼굴표정이 피아노현 또는 악보로 보이는 선 위에 리드미컬하게 배열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직감에 의해 파악된 키슬러다운 유머감각을 엿볼 수 있다.
은 같은 크기의 종이패널 8장에 그려져 있다.
다양한 패널의 배치와 과감하게 생략된 묘사를 통해 키슬러의 갤럭시 개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르셀 뒤샹의 ‘갤럭시’ 초상>도 8장의 종이패널 위에 그려져 있는데, 뒤샹의 얼굴, 와이셔츠의 깃과 넥타이, 손, 바지, 짝짝이 구두를 신은 발 등이 섬세한 연필 선으로 묘사되었다.
이것은 1961년 필자가 키슬러를 방문했을 때 그의 아틀리에에 걸려 있던 것으로, 당시 커다란 이젤에 패널이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6)


이상에서 소개한 갤럭시의 초상은 1969년 키슬러가 작고한 후 하워드 와이즈 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발표되었다.
또한 <‘갤럭시’의 초상조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으로는 1963-1964년에 제작된 <다윗 왕>을 꼽을 수 있는 데, 이것은 종이 위에 그려왔던 초상기법을 3차원의 공간에 재구성한 것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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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말의 ‘갤럭시’>


키슬러는 몇 번에 걸쳐 말을 테마로 하는 작품을 제작했다.
키슬러와 말이 만난 최초의 사례는 1925년 파리 박람회의 그랑 팔레에서 개최된 국제연극제에서이다.
여기서는 키슬러의 달걀형 <엔드리스 극장>과 피카소의 무대장치에 사용된 커다란 말이 동시에 사용되었다.
피카소의 말을 배경으로 촬영한 <엔드리스 극장>의 모형사진은 이후 종종 사용된다.
예를 들어 1949년에 발표된 「상호현실주의 선언」8)의 펼침 페이지와 『VVV』 제 4호의 펼침 페이지에도 같은 사진을 게재했다.
나아가서 1953년에서 54년에 걸쳐 키슬러는 벽화형식의 갤럭시를 제작한 바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작품의 모티브로 말을 사용한 적이 있다.


<말의 ‘갤럭시’>는 1954년 9월 27일부터 10월 19일까지 시드니 재니스 화랑에서 발표되었다.
말의 각 부분이 크기와 형태가 각각 다른 7장의 패널에 그려진 것인데, 한 장은 천장에 매달렸고, 5장은 벽면에 부착되었으며, 나머지 한 장은 바닥에 놓여졌다.
천장, 벽면, 바닥에 연속적으로 배치된 7장의 패널을 통해 키슬러는 회화를 액자틀로부터 해방시켜 공간상에서 서로 연관되는 갤럭시를 실현한 것이다.
<말의 ‘갤럭시’>는 후에 상대적으로 작은 화면을 통해서 반복 제작되었다.
<말의 ‘갤럭시’>는 만년에 이르러 제작된 거대한 말 <뷰세활러스> 조각을 통해 재시도되었다.
알렉산더 대왕과 원정한 명마로 유명한 뷰세활러스의 이름을 딴 이 조각은, 머리와 몸통, 그리고 다리가 6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고 커다란 몸통 안에는 한두 사람은 들어갈 만한 공간이 있다.
이 몸통 안은 동굴과 같은 공간으로 안벽에는 문자나 말의 형상이 마치 석기시대의 인간이 그린 동굴벽화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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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갤럭시’의 발전



키슬러는 1940년대 말부터 54년에 걸쳐 제작된 갤럭시 시리즈를 통해 화가와 조각가로서의 명성을 쌓게 된다.
물론 그가 구상한 건축에도 회화적 표현이나 조각가로서의 성격이 이미 내포되어 있었다.
아마도 키슬러는 환경예술가10)로서 보다 넓은 영역에 걸쳐 자유자재로 활동해왔다고 하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최종적으로 갤럭시는 금속그물을 구부려서 가능한 각체 구조 위에 시멘트를 발라 보다 튼튼한 장력을 지닌 유니트를 공간상에 연속적으로 배치하는 ‘엔드리스 조각’으로 진전된다.
<말의 ‘갤럭시’>가 벽면에 패널을 배치하여 기존의 벽면이 지니는 공간적 문맥을 해체시켰다면, ‘엔드리스 조각’은 천장, 벽, 바닥이라고 하는 기호화한 실내공간을 연속되는 조각공간으로 변환시킨다.
‘엔드리스 조각’은 애초에 <엔드리스 하우스> 모형제작에 사용된 적이 있는 금속 그물을 베이스로한 구조체를 조각품의 유니트에 사용한 것이다.
키슬러는 건축을 위한 유니트와 조각의 유니트를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며, 건축은 곧 조각이며 반대의 개념도 성립될 수 있다는 것에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않았다.


키슬러는 만년에 이르러 갤럭시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엔드리스 조각’이나 ‘갤럭시 회화’의 개념이 일반적인 내부 장식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모든 유니트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데 있다.
커튼이나 벽화 등과 같이 모든 것이 서로 전혀 무관하게 흩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엔드리스 조각’은 그것이 놓인 환경과 밀착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연속체에의 의지에 따라 고정된 것으로부터 불연속적으로 성장을 지속하는 지구적인 유기체를 구성한다.16


금세기에 들어서 회화와 조각은 여전히 2차원의 캔버스 위에 3차원 또는 4차원의 환상을 표현하는 데 머물러 있다.
인물과 나무 또는 하늘과 땅 사이의 실제공간에서 경험한 사실을 단지 재수집하는 것이다.
허구의 세계를 창출하는 것을 통해 화가는 마치 신처럼 행동한다.
마치 이카루스와 같이. 아직도 회화는 이 같은 원칙을 기준으로 하며, 그것의 다양함을 존속시키고 있을 뿐이다.
네덜란드의 초상화가 얼굴주름이나 커튼을 세부에 이르기까지 묘사하는 것과, 몬드리안이 완전히 추상적인 비대상 그림을 그리는 것의 차이점은 단지 스타일이나 패션의 문제에 불과하다.17


내가 제작한 몇몇 유니트의 회화, 다시 말하면 갤럭시는 각각 다른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것은 어떤 구체적인 대상의 환상을 그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 자체를 만들어내려는 의지의 결과이다.
갤럭시는 하나의 회화를 연속되는 몇 가지 이미지로 나눈다.
그 결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밑에서 위로, 안에서 밖으로, 어떤 방향에서라도 볼 수 있게 된다.
이들 유니트를 연계시키는 힘은 원근법과 같은 구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 자신에게 있다.
감상자들은 화랑에서 멈추어 서거나 빙빙 돌아다니며 그림을 볼 것이고, 그림을 집 안에 들여놓은 수집가라면 팔걸이의자에 앉아 석간신문을 보면서 쳐다보게 될 것이다.
어떤 형태로 감상하든지 그들은 ‘상호관련’의 한 요소이다.18


이 같은 갤럭시와 가까운 개념에 기초한 예로 한스 아르프의 부조작품을 들 수 있다.
아르프는 몇 개의 부정형을 편편한 받침대 위에 무작위로 배열했다.
아르프는 부정형을 의식적으로 배치하지 않고 우연하게 배치했으나, 결과는 부정형한 형태가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을 통해 연계되었다.
예술에 있어서 우연과 필연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루치오 폰타나도 불규칙적인 형태의 캔버스를 벽면 위에 그룹으로 구성한 적이 있는데, 키슬러와 같이 그도 벽면에 각기 다른 간격을 두고 구성했다.
폰타나도 일찍부터 일련의 ‘공간주의’11)선언문을 통해 공간을 직접적 표현매체로 의식하는 환경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작품을 제작한 적이 있다.
그의 작품에도 타원형의 캔버스를 사용한 것이 있는가 하면 세라믹을 이용한 달걀형의 조각작품도 있다.
폰타나는 의외로 키슬러의 갤럭시와 비슷한 사상을 지닌 작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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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모빌로이드>의 구상

 

키슬러는 갤럭시의 개념을 진전시킨 <모빌로이드>에 관한 구상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다음 단계로 이 같은 회화나 조각, 또는 분할된 건축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이 조용히 옆으로 눕거나 일어설 수 있는 것처럼.
나아가서 걷고, 달리고, 뛰어다니고, 그리고 휴식하는 것과 같이 운동하는 것을.19

이 같은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메카니즘으로 그는 자력장(磁力場)을 지닌 벽을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벽면의 앞뒤에 자력을 지닌 오브제가 떠있고 자유자제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정해진 궤도 위에서 정지하거나, 빠르게 움직이기도 하며, 마치 시계바늘과 같이 천천히 움직이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관객은 자력에 의한 움직임을 분(分) 사이클, 시(時) 사이클, 낮과 밤의 사이클로 변환시킬 수 있어서, 마치 듣고 싶은 음악을 들려주는 뮤직박스와 같이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연한 움직임조차도 기계장치를 부착하여 감상자의 요구에 따라 조작할 수 있다.
말하자면 고도의 키네틱 아트라고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키슬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회화도 조각도 오브제도 아닌 <모빌로이드>야말로 실내공간에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다.
<모빌로이드>의 움직임은 다름 아닌 혹성이 괘도 위를 맴도는 것처럼 ‘살아 있는’것이다.
마치 회화가 우리의 자연환경에 대한 일상적인 경험에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20

이 <모빌로이드>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키슬러는 1961년 레오 카스텔리 화랑에서 새롭게 제작한 <갤럭시>와 <엔드리스 하우스>의 모형을 발표했다.
그때 발표된 <갤럭시>는 몇 장의 패널로 구성되었는데, 패널과 패널의 접합점에는 목재 조인트를 사용했었다. 화면의 추상적인 묘사선의 강도만 보더라도, 자기장을 이용한 <모빌로이드>의 구상을 구체화하고자 의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키슬러가 생각한 자기장에 의한 움직임은 물리학적인 장력구조에 의존했던 ‘연속성’의 아이디어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갤럭시>에 관한 마지막 시도라고 할 수 있는 <모빌로이드>의 구상을 통해 그는 1918년 이후 품고 있었던 ‘갤럭시’의 사상을 보다 명확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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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엔드리스 하우스>의 발표


키슬러에게도 어김없이 만년이 다가왔다.
1950년부터 임종직전까지 15년간 그는 ‘엔드리스’의 구상을 될 수 있는 한 현실에 가까운 것으로 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주택형식을 빌린 <엔드리스 하우스>는 결국 실현을 보지 못했으나, ‘엔드리스’ 개념에 기초한 그 밖의 작업이 이 시기에 빛을 보게 된다.
뉴욕에 건설된 ‘월드 하우스’ 화랑의 설계도 그 중 하나이다.
또한 1950년부터 1960년에 걸쳐 그의 사상을 종합하는 <엔드리스 하우스>의 아이디어가 모형과 설계도를 통해 발표되면서 그의 구상은 보다 현실적이 되었다.


전후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한 전개를 보인 근대기능주의 건축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양식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전후 미국 건축계에 1950년 발표된 키슬러의 <엔드리스 하우스> 제1안2)의 모형은 작지만 예사롭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엔드리스’는 1923년 비인에서 발표된 타원형의 극장안(案)을 통해서 제안된 바 있다.
따라서 키슬러에게 ‘엔드리스’는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1924년 발표된 <‘엔드리스’극장 Endless Theatre>은 2중의 각체구조로 된 연속적인 곡면체가 쉘터의 역할을 하는 건축물이었다.
이것의 부분이었던 <공간무대 Raumb웘ne>(1924)의 설계 및 실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의 키슬러는 극장공간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거주공간을 중심으로 한 ‘엔드리스’의 아이디어는 찾아 볼 수 없다.


키슬러는 건축이라는 대상물을 언제나 사용하는 측, 다시 말하면 거주자의 입장에 서서 파악하고자 했다.
‘엔드리스’가 극장공간을 통해 실천된 것이든 거주공간을 통한 것이든 여기에는 변함이 없다.


키슬러가 ‘엔드리스’를 실천하기 위하여 거주공간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미 소개한 <공간주택>(1933)이후이다.
또 키슬러는 이 <공간주택>의 설계를 계기로 그의 독자적인 디자인론인 ‘바이오테크닉’을 발표하게 되었다.
‘바이오테크닉’은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하나의 쉘터에서 생활하게 되는 경우를 기준으로 제기된 이론이다.
한편 이 <공간주택>의 구조는 금속 정밀주조법의 하나인 다이 캐스트(die cast) 공법에 의한 각체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이 주택 내부가 항공기, 배, 자동차와 같이 연속장력에 의해 자립하는 공간연출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채택된 구조였다.
물론 이 경우 가볍고 조립과 분해가 쉬워야 한다.


키슬러는 새로운 거주공간에 대한 제안이기도 한 <공간주택>의 설계를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근대기능주의를 비판한 셈이다.
그러나 ‘엔드리스’개념을 사회적으로 피력할 수 있는 기회는 1950년이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뉴욕의 쿠츠 화랑에서 개최된 ‘벽화가와 현대건축가’전3)에 키슬러는 조각가인 데이빗 헤어와 공동 프로젝트로 <엔드리스 하우스> 제1안의 모형을 발표했다.
헤어는 초현실주의의 기획자 앙드레 브르통이 뉴욕에 체제하는 동안 초현실주의 기관지에 발표된 『ⅤⅤⅤ』의 편집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헤어는 생물체를 연상시키는 유기적인 형태를 한 조각작품을 제작했다.
언뜻 계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키슬러는 <엔드리스 하우스>의 모형을 올려놓았는데, 사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두 작품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모형은 길이 1피트, 폭 8-9인치, 높이 7-8인치였다.
키슬러의 회고록4)에 의하면 이 모형을 본 헤어는 내부계단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약 5배 크기의 모형을 다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키슬러가 만든 5배 크기의 모형은 분명히 같은 크기와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것과는 다르게 보였다.
결국 작은 모형 옆에 큰 스케일의 계단을 만들어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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