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엔드리스 하우스>의 발표
키슬러에게도 어김없이 만년이 다가왔다.
1950년부터 임종직전까지 15년간 그는 ‘엔드리스’의 구상을 될 수 있는 한 현실에 가까운 것으로 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주택형식을 빌린 <엔드리스 하우스>는 결국 실현을 보지 못했으나, ‘엔드리스’ 개념에 기초한 그 밖의 작업이 이 시기에 빛을 보게 된다.
뉴욕에 건설된 ‘월드 하우스’ 화랑의 설계도 그 중 하나이다.
또한 1950년부터 1960년에 걸쳐 그의 사상을 종합하는 <엔드리스 하우스>의 아이디어가 모형과 설계도를 통해 발표되면서 그의 구상은 보다 현실적이 되었다.
전후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한 전개를 보인 근대기능주의 건축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양식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전후 미국 건축계에 1950년 발표된 키슬러의 <엔드리스 하우스> 제1안2)의 모형은 작지만 예사롭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엔드리스’는 1923년 비인에서 발표된 타원형의 극장안(案)을 통해서 제안된 바 있다.
따라서 키슬러에게 ‘엔드리스’는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1924년 발표된 <‘엔드리스’극장 Endless Theatre>은 2중의 각체구조로 된 연속적인 곡면체가 쉘터의 역할을 하는 건축물이었다.
이것의 부분이었던 <공간무대 Raumb웘ne>(1924)의 설계 및 실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의 키슬러는 극장공간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거주공간을 중심으로 한 ‘엔드리스’의 아이디어는 찾아 볼 수 없다.
키슬러는 건축이라는 대상물을 언제나 사용하는 측, 다시 말하면 거주자의 입장에 서서 파악하고자 했다.
‘엔드리스’가 극장공간을 통해 실천된 것이든 거주공간을 통한 것이든 여기에는 변함이 없다.
키슬러가 ‘엔드리스’를 실천하기 위하여 거주공간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미 소개한 <공간주택>(1933)이후이다.
또 키슬러는 이 <공간주택>의 설계를 계기로 그의 독자적인 디자인론인 ‘바이오테크닉’을 발표하게 되었다.
‘바이오테크닉’은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하나의 쉘터에서 생활하게 되는 경우를 기준으로 제기된 이론이다.
한편 이 <공간주택>의 구조는 금속 정밀주조법의 하나인 다이 캐스트(die cast) 공법에 의한 각체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이 주택 내부가 항공기, 배, 자동차와 같이 연속장력에 의해 자립하는 공간연출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채택된 구조였다.
물론 이 경우 가볍고 조립과 분해가 쉬워야 한다.
키슬러는 새로운 거주공간에 대한 제안이기도 한 <공간주택>의 설계를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근대기능주의를 비판한 셈이다.
그러나 ‘엔드리스’개념을 사회적으로 피력할 수 있는 기회는 1950년이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뉴욕의 쿠츠 화랑에서 개최된 ‘벽화가와 현대건축가’전3)에 키슬러는 조각가인 데이빗 헤어와 공동 프로젝트로 <엔드리스 하우스> 제1안의 모형을 발표했다.
헤어는 초현실주의의 기획자 앙드레 브르통이 뉴욕에 체제하는 동안 초현실주의 기관지에 발표된 『ⅤⅤⅤ』의 편집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헤어는 생물체를 연상시키는 유기적인 형태를 한 조각작품을 제작했다.
언뜻 계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키슬러는 <엔드리스 하우스>의 모형을 올려놓았는데, 사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두 작품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모형은 길이 1피트, 폭 8-9인치, 높이 7-8인치였다.
키슬러의 회고록4)에 의하면 이 모형을 본 헤어는 내부계단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약 5배 크기의 모형을 다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키슬러가 만든 5배 크기의 모형은 분명히 같은 크기와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것과는 다르게 보였다.
결국 작은 모형 옆에 큰 스케일의 계단을 만들어놓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