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슬러는 같은 해에 발표된 「마술적 건축」 선언에서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가 페기 구겐하임의 위촉을 받고 ‘금세기 예술 화랑(Art of This Century Gallery)’의 전시공간설계에 착수한 것은 1940년이다.
이 화랑은 1942년 가을 개관했다.
이 시기는 뉴욕 미술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활동을 준비하던 기간이었다.
특히 1941년 8월 유럽으로부터 앙드레 브르통이 도착하고, 이것을 계기로 ‘초현실주의의 뉴욕시대’라고 일컬어지는 활동이 시작된다.
1941년 『뷔 View』지는 니콜라 칼라스 주관으로 초현실주의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이듬해 새롭게 단장한 『뷔』지에서도 막스 에른스트, 이브 탕기 등 초현실주의자의 활동이 중점적으로 소개된다.
1942년 피에르 마티스 화랑에서 개최된 ‘망명 예술가전’에는 에른스트, 마송, 마타, 셀리그만, 탕기, 브르통 등이 참가하여 초현실주의 계열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같은 해 6월에는 뉴욕의 초현실주의 조각가 데이비드 헤어의 책임 하에 브르통과 에른스트가 편집한 잡지 『트리플 브이 VVV』가 발간되기도 했다.
키슬러도 창간호에 6페이지에 걸쳐 「꿈의 이미지에 의한 약간의 증거가 되는 드로잉」(VVV, New york, Number One, 1942, pp.27-32)을 발표했다.
제2차 대전이 종료될 때까지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미국은 제1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전개된 전위예술운동의 열기를 계승하게 된다.
액션페인팅을 시작으로 하는 전후예술운동의 마그마가 1940년대 초 뉴욕을 강타한 것이다.


1940년대에 발생한 이 같은 주위상황의 변화는 키슬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에 키슬러는 1926년 유럽을 떠난 이후 직접적인 접촉이 거의 없었던 전위예술가 들과 다시 만나게 된다.
생애를 통한 그의 활동 중 후반기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키슬러가 보여준 ‘금세기 예술’화랑의 전시기법은 컬럼비아 대학 건축과 디자인 상호관련연구소에서의 연구 성과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
또한 1947년에 열린 초현실주의 계열 전람회인 ‘피의 불꽃’전과, 같은 해 파리의 매그 화랑에서 개최된 ‘국제 초현실주의전’의 <미신의 방>에서는 ‘금세기 예술’화랑보다 비정형적인 전시공간의 연출을 선보이고 있다.
키슬러는 같은 해에 발표된 「마술적 건축」 선언에서 <미신의 방>의 전시디자인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미신의 방>의 전시디자인이 단지 전람회의 회장구성 및 회화나 조각 등의 전시방법에 대한 제안 정도가 아니라, 키슬러가 제안한 ‘마술적 건축’의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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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세기 예술’ 화랑의 전시공간설계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는 ‘금세기 예술’화랑의 전시공간설계를 위해 많은 아이디어 스케치를 남기고 있다.
앞장의 6절에서 소개한 것도 그 중 일부이다.
또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노트를 남기고 있다.


(1) 모든 장치는 움직일 수 있으며 떼고 붙일 수 있다.
이것은 벽면, 칸막이, 조명설비, 그 밖의 기계장치를 포함하는 모든 것에 적용된다.


(2) 모든 구조와 설비는 경비 절약, 노동력 경감, 나아가서 화랑운영상 용이해야 한다는 법칙에 따라 좀더 실용적인 것으로 전환했다.


(3) 회화나 조각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건축, 나아가서 감상자와도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새로운 시스템의 개발에 주력했다.
이 같은 새로운 상호관련 시스템은 ‘공간전시’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 방법은 1924년 비인에서 시작되어, 1925년 파리, 1926년 뉴욕, 그리고 1933년과 1936년 컬럼비아 대학 등을 거치면서 연구된 것이다.
‘공간전시’은 그림을 걸어두기 위한 벽과 조각을 올려놓기 위한 좌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외형적 특징이다.
그 대신 이용 가능한 공간 전부를 사용하고, 회화나 조각 등을 자유롭게 배치한다.
또한 외팔보(cantilever)기술을 응용한 매달기 방식을 사용한다.
액자를 모두 배제한다는 것은 ‘공간전시’개념의 실천을 위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일부 특정인들의 기대와 다른 것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관객들이 각각의 작품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나아가서 작품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보다 좋은 조건에서 스스로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4) 상설전시장의 조명은 모든 그림을 비출 수 있는 간접조명을 기본으로 했다.
그러나 각각의 전시장별로 빛의 색, 강도, 확산각도 등을 조정해 새로운 방식의 상호관계를 창출하는 데 주력했다.
반사광을 측정하는 데도 전시 공간 전체의 광량이나 표면색 등의 모든 계수가 작품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유념했다.


(5) 자연광에 의존하는 전시의 경우-실제로 그것은 일종의 ‘그림 도서관’에 불과한 것이기는 하나-관객이 이동하는 스탠드 앞에 앉아 스스로 그림의 각도를 움직여 자신의 관심사에 적당한 조건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준비된 책장의 그림을 다른 것과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6) 전시장을 둘러볼 때 관람자가 느끼는 피로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3종류의 이동 가능한 좌석을 마련한다.
ⓐ 등받이가 있는 접는 식 가벼운 의자.
ⓑ 안락의자 형.
ⓒ 7가지로 사용 가능한 유니트.
이것은 휴식을 위해서도 사용할 수 있으나 필요에 따라서는 회화나 조각을 전시하는 데도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보다 대규모의 전람회에 이 유니트를 사용할 경우 관객을 쉬게 하기 위한 의자나 칸막이디자인에 필요한 추가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7) 초현실주의자의 화랑은 모두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벽을 사용하였으며, 그림을 지탱시키기 위해 특별제작한 지지대를 설치했다.
이 지지대는 관객이 그림을-앉은 자세든 선 자세든-보기 좋은 각도로 조절할 수 있게 해준다.
구부러진 벽면은 조명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구부러진 벽면은 건축, 회화, 조각, 그리고 관객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관계를 컨트롤하는 역할을 한다.


(8) 그 밖의 전시장은 그림을 고정시키기 위한 3각형의 지지대를 설치했는데, 이것을 이용하면 전시물의 양이나 성격에 따라 증설이나 위치변경 등을 간단하게 할 수 있다.


(9) 또 하나의 전시장은 자동으로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한다.
여기에는 파울 클레의 회화작품을 위한 연속현가장치(連續懸架裝置)가 있어서 방문객이 직접 손으로 조작해가면서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자동안전장치도 달려 있다. 또한 특별히 복제한 마르셀 뒤샹의 회화작품 14점과 디자인을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보여주기 위해 두루마리 그림의 형식을 빌려 전시했다.
이상의 두 가지 방법은 작은 면적에서 보다 많은 작품을 전시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다.1


키슬러가 이상에서 소개한 아이디어의 설계를 마친 것은 1942년 4월이다.
같은 해 10월 설계도면을 뉴욕의 한 업자에게 발주했는데, 기성품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전부 키슬러의 디자인 상호관련을 집대성하는 프로토타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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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리-포름>의 다목적 기능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위의 노트 중 6번 항목에서 지적하고 있는 “관람자가 느끼는 피로의 문제”는 설계자가 등한시하기 쉬운 문제이다.
설사 관객의 피로에 대해 배려한다고 해도 대부분이 화랑과 화랑을 연결하는 통로에 벤치와 재떨이를 놓아두는 정도가 고작이다.
이 경우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는 작품을 볼 수 없다.
이 같은 문제점에 주목하여 고안한 세 종류의 의자 중에는 의자처럼 앉을 수 있는 유니트가 있는데, 이것은 후에 <프리-포름> 이라고 이름 지어진다.
이 흥미로운 유니트 <프리-포름>의 기능에 대해서 키슬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벽면, 작품, 감상자 사이의 상관관계를 적극적으로 의식한다면 다양한 결과를 유추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서서 보든 걸어가면서 보든 관람자가 피로를 느껴서는 안 된다.
작품을 앞에 두고 앉거나 몸을 기울이는 것은 물론 편안한 기분으로 옆으로 누울 수도 있어야 한다.
나는 이 같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걸상과 같은 형태를 고안했다.
<프리-포름>이 그것이다.2


사진이나 도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프리-포름>은 인간의 척추곡선을 연상시키는 인간공학적 형태를 띠고 있다.
<프리-포름>은 인간이 휴식을 취할 때 나타나는 두 종류의 곡선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하나는 앉은 자세의 곡선이고, 또 하나는 몸을 옆으로 뉘인 상태의 곡선이다.
이 두 가지 기본 형태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프리-포름>은 연속적 장력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물결과도 같은 몇 개의 굴곡이 반복되면 시작도 끝도 없는 형태가 만들어진다.
<프리-포름>도 같은 모양을 띠고 있는데, 요철 곡면에 몸을 묻고 쉴 수 있도록 설계했다.
<프리-포름>에는 팔걸이도 다리도 없다.
그러나 어떻게 놓더라도 스스로 지탱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의자로도, 조각이나 회화작품을 놓아두는 좌대로도, 책상으로도, 벤치로도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프리-포름>은 18가지 각각 다른 기능으로 사용할 수 있다.
처음에는 6가지 기능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 밖의 기능은 주변조건들과의 상호관계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들이다.


<프리-포름>은 의자, 팔걸이의자, 또는 스툴보다도 실용적이며 경제적이고 기능적으로도 만족할 만한 것이다.3


<프리-포름>은 이처럼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그것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곡면의 연속적 장력에 의해 인체와 같은 유연성을 띠게 된다.


키슬러는 여기에 언급된 18가지 기능을 앞 페이지의 그림과 같은 스케치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정도 기능이라면 <프리-포름> 하나만으로도 전람회장을 구성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람회장은 작품과 전시상태, 그리고 감상자와 연속적인 상관관계를 지니게 된다.


키슬러는 <프리-포름>의 기능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추가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상호현실주의’ 효과의 구체적인 일례를 보게 된다.
기능을 발생시키는 핵은 대단히 강력하게 농축되어 있으므로, 이 경우처럼 주요한 기능 이외에도 예상외의 실용적인 기능을 탄생시킨다.
여기에 제시하는 18가지 가능성은 단지 기술적 접근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계획되어 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차적 구조체인 원세포에 이미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인간이 아이를 잉태할 때 실제로는 아무런 형태도 띠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아는 모든 기관의 복잡한 기능을 이미 갖추고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4


<프리-포름>은 바우하우스의 영향 하에 있는 현대디자인의 원리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동시에 “기능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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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술관과 커뮤니케이션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한편 ‘금세기 예술’화랑의 전시공간설계 및 전시디자인을 보면 키슬러가 미술작품을 ‘연구대상’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회화와 조각을 단지 보기 위한 대상물이 아니라 책을 읽고 학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끈기 있게 연구하는 대상물로 취급하고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도서관과 같은 기능을 하는 전시공간을 연출하고, 연구를 위해 필요한 설비들을 고안한 것이다.
<프리-포름> 이외에도 클레의 그림이나 뒤샹의 복제품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 장치는 감상자 스스로가 필요한 그림을 선택할 수 있는 감상용 장치였다.
미술감상 행위는 미술관측이 일방적으로 정한 전시계획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 같은 미술감상 방법에 따르지 않고, 보는 이에게 보는 방법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한 것은 키슬러가 최초일 것이다.
미술관건축을 미술이라는 제도화된 기존개념에 의존해 설계할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사고의 중심에 두고 설계해야 한다는 태도가 이 같은 디자인을 가능하게 했다.
키슬러는 미술관도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 인식했다.
회화나 조각 같은 미술작품도 문자로 구성된 서적과 마찬가지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사상은 1926년 브루클린 미술관 계획안에서도 시도된 바 있다.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개최된 ‘현대회화전’을 계기로 익명의 협회에 의해 위촉된 이것은 어떻게 하면 미술관이 주위의 환경과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3)
그것은 결국 회화와 조각과 실내공간을 어떻게 서로 관련지울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의 스케치는 실내공간을 장식하는 요소 중 하나로 회화와 조각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방송되고 있는 회화작품의 수신면(受信面) 역할을 하는 감광 패널을 이용하는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오리지널 명화를 놓아두는 가상의 신전(神殿)이었다.
또한 이것들은 벽 안쪽에 눈에 띠지 않도록 설치해두고 필요할 때 가끔씩 볼 수 있게 한다.
키슬러는 벽면을 장식해왔던 회화작품의 전시방법이 앞으로는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5
미술관 측의 의도는 어떻게 하면 현대미술을 일반가정의 실내장식의 하나로 응용할 수 있겠는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키슬러의 제안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그림이 실내공간의 구성요소로서 보이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었다.
이른바 감상자에게 선택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에 주된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생각을 실천하는 미술관안의 또 다른 예로 1929년에 제안한 <텔레뮤지움>이 있다.4)


오늘날 오페라가 전파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것과 같이 멀지 않은 미래에 화랑에 걸려있는 그림도 같은 방법으로 전송될 것이다.
루브르에서 당신이 있는 곳까지, 프라드(Prades)5)에서 당신이 있는 곳까지.
어디서든 어디로든 송출이 가능하다.
당신에게는 그림을 선택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무드에 맞는 것이라든가, 특별히 축하할 일이 있을 때 그 목적에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은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는 것만으로 세계 도처에 있는 위대한 작품들의 소유주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다.6


이 언급에서 키슬러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이용자가 주체가 되는 열린 개념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 간주하고 있다.
이 같은 이용방법의 한 예로 <텔레뮤지움>이 제시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텔레비전은 정보관리자 측인 방송국에 위탁되어 있어 수신자는 무엇 하나 선택할 권리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텔레비전 수신자는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 회로에 갇혀있다.
최근 들어 CATV와 같은 유선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늘어나 키슬러가 구상했던 <텔레뮤지엄>의 꿈이 실현을 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아직까지 본격적인 이용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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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방법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940년대 키슬러는 뉴욕을 활동 거점으로 하는 유럽계 초현실주의자들과 빈번한 교류를 가졌다.
물론 뉴욕에서는 일찍부터 재미 다다이스트 마르셀 뒤샹이 활약하고 있었는데, 개인적인 활동을 즐기는 타입인 그는 대규모의 조직적인 운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초현실주의 운동의 핵심 멤버였던 브르통이 미국에 망명한 이후에야 뉴욕 미술계는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전위예술의 거점으로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앞 절에서 논고한 ‘금세기 예술’화랑의 카달로그에도 브르통, 아르프, 몬드리안 등이 기고한 서문이 게재되어 있다.
키슬러도 부르통과 친분을 가지면서 1944년에 『오비드 Ovid』를 위한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기도 했으며, 1945에는 『찰스 푸리에에게 바치는 노래』의 표지장정을 맡기도 했다.
후에 발표한 ‘갤럭시(Galaxy)’ 시리즈에는 친구나 지인들의 초상이 많은데, 그 중에는 당시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초현실주의자-브르통, 뒤샹, 아르프 등-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한편 ‘공간전시’ 개념에 기초하여 미술관이나 화랑 전시공간을 하나의 아비타로 취급하는 혁명적인 방법론을 제안한 키슬러는 1947년에 이르러 동일개념에 기초한 두 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1947년에 디자인된 두 개의 초현실주의 계열 전람회가 그것이다.
초현실주의 계열의 전람회는 이미 1938년 파리의 보자르 화랑에서 개최된 ‘초현실주의 국제전’의 회장구성을 통해서 환경적 경향의 전시를 실천한 바 있다.
중심회장의 천장에는 1,200개의 종이를 채운 석탄주머니가 걸려 있고 축음기에서는 독일군의 행진곡이 흘러나온다.
또한 장식용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고 원두커피의 향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흐르고 있다.
화로에 설치된 단 하나의 빨간색 조명만이 회장을 비춰준다.
실제로 작품을 감상하고자 할 경우에는 전기 터치 램프가 사용될 계획이었으나, 대부분이 개막 당일 도난당했다고 한다.
이 회장 구성안은 뒤샹의 아이디어에 따른 것인데, 뒤샹은 1942년 뉴욕에서 개최된 ‘초현실주의의 첫 논문’의 회장구성6)에서도 실을 이용해 거미줄이 처져있는 듯한 미로를 만든 바 있다.
또한 여기에 인공의 풀을 심고, 당구대 위 등 실내 공간 여기저기에 마치 비가 오듯이 물을 뿌리기도 했다.7


그런데 이상의 두 전람회는 제대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그것들은 기능적인 조명설비와 청결한 전시공간에 그저 작품을 나열해서 보여주는 일상적인 전시방법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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