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세기 예술’ 화랑의 전시공간설계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는 ‘금세기 예술’화랑의 전시공간설계를 위해 많은 아이디어 스케치를 남기고 있다.
앞장의 6절에서 소개한 것도 그 중 일부이다.
또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노트를 남기고 있다.


(1) 모든 장치는 움직일 수 있으며 떼고 붙일 수 있다.
이것은 벽면, 칸막이, 조명설비, 그 밖의 기계장치를 포함하는 모든 것에 적용된다.


(2) 모든 구조와 설비는 경비 절약, 노동력 경감, 나아가서 화랑운영상 용이해야 한다는 법칙에 따라 좀더 실용적인 것으로 전환했다.


(3) 회화나 조각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건축, 나아가서 감상자와도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새로운 시스템의 개발에 주력했다.
이 같은 새로운 상호관련 시스템은 ‘공간전시’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 방법은 1924년 비인에서 시작되어, 1925년 파리, 1926년 뉴욕, 그리고 1933년과 1936년 컬럼비아 대학 등을 거치면서 연구된 것이다.
‘공간전시’은 그림을 걸어두기 위한 벽과 조각을 올려놓기 위한 좌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외형적 특징이다.
그 대신 이용 가능한 공간 전부를 사용하고, 회화나 조각 등을 자유롭게 배치한다.
또한 외팔보(cantilever)기술을 응용한 매달기 방식을 사용한다.
액자를 모두 배제한다는 것은 ‘공간전시’개념의 실천을 위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일부 특정인들의 기대와 다른 것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관객들이 각각의 작품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나아가서 작품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보다 좋은 조건에서 스스로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4) 상설전시장의 조명은 모든 그림을 비출 수 있는 간접조명을 기본으로 했다.
그러나 각각의 전시장별로 빛의 색, 강도, 확산각도 등을 조정해 새로운 방식의 상호관계를 창출하는 데 주력했다.
반사광을 측정하는 데도 전시 공간 전체의 광량이나 표면색 등의 모든 계수가 작품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유념했다.


(5) 자연광에 의존하는 전시의 경우-실제로 그것은 일종의 ‘그림 도서관’에 불과한 것이기는 하나-관객이 이동하는 스탠드 앞에 앉아 스스로 그림의 각도를 움직여 자신의 관심사에 적당한 조건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준비된 책장의 그림을 다른 것과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6) 전시장을 둘러볼 때 관람자가 느끼는 피로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3종류의 이동 가능한 좌석을 마련한다.
ⓐ 등받이가 있는 접는 식 가벼운 의자.
ⓑ 안락의자 형.
ⓒ 7가지로 사용 가능한 유니트.
이것은 휴식을 위해서도 사용할 수 있으나 필요에 따라서는 회화나 조각을 전시하는 데도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보다 대규모의 전람회에 이 유니트를 사용할 경우 관객을 쉬게 하기 위한 의자나 칸막이디자인에 필요한 추가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7) 초현실주의자의 화랑은 모두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벽을 사용하였으며, 그림을 지탱시키기 위해 특별제작한 지지대를 설치했다.
이 지지대는 관객이 그림을-앉은 자세든 선 자세든-보기 좋은 각도로 조절할 수 있게 해준다.
구부러진 벽면은 조명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구부러진 벽면은 건축, 회화, 조각, 그리고 관객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상호관계를 컨트롤하는 역할을 한다.


(8) 그 밖의 전시장은 그림을 고정시키기 위한 3각형의 지지대를 설치했는데, 이것을 이용하면 전시물의 양이나 성격에 따라 증설이나 위치변경 등을 간단하게 할 수 있다.


(9) 또 하나의 전시장은 자동으로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한다.
여기에는 파울 클레의 회화작품을 위한 연속현가장치(連續懸架裝置)가 있어서 방문객이 직접 손으로 조작해가면서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자동안전장치도 달려 있다. 또한 특별히 복제한 마르셀 뒤샹의 회화작품 14점과 디자인을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보여주기 위해 두루마리 그림의 형식을 빌려 전시했다.
이상의 두 가지 방법은 작은 면적에서 보다 많은 작품을 전시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다.1


키슬러가 이상에서 소개한 아이디어의 설계를 마친 것은 1942년 4월이다.
같은 해 10월 설계도면을 뉴욕의 한 업자에게 발주했는데, 기성품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전부 키슬러의 디자인 상호관련을 집대성하는 프로토타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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