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프리-포름>의 다목적 기능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위의 노트 중 6번 항목에서 지적하고 있는 “관람자가 느끼는 피로의 문제”는 설계자가 등한시하기 쉬운 문제이다.
설사 관객의 피로에 대해 배려한다고 해도 대부분이 화랑과 화랑을 연결하는 통로에 벤치와 재떨이를 놓아두는 정도가 고작이다.
이 경우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는 작품을 볼 수 없다.
이 같은 문제점에 주목하여 고안한 세 종류의 의자 중에는 의자처럼 앉을 수 있는 유니트가 있는데, 이것은 후에 <프리-포름> 이라고 이름 지어진다.
이 흥미로운 유니트 <프리-포름>의 기능에 대해서 키슬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벽면, 작품, 감상자 사이의 상관관계를 적극적으로 의식한다면 다양한 결과를 유추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서서 보든 걸어가면서 보든 관람자가 피로를 느껴서는 안 된다.
작품을 앞에 두고 앉거나 몸을 기울이는 것은 물론 편안한 기분으로 옆으로 누울 수도 있어야 한다.
나는 이 같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걸상과 같은 형태를 고안했다.
<프리-포름>이 그것이다.2
사진이나 도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프리-포름>은 인간의 척추곡선을 연상시키는 인간공학적 형태를 띠고 있다.
<프리-포름>은 인간이 휴식을 취할 때 나타나는 두 종류의 곡선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하나는 앉은 자세의 곡선이고, 또 하나는 몸을 옆으로 뉘인 상태의 곡선이다.
이 두 가지 기본 형태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프리-포름>은 연속적 장력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물결과도 같은 몇 개의 굴곡이 반복되면 시작도 끝도 없는 형태가 만들어진다.
<프리-포름>도 같은 모양을 띠고 있는데, 요철 곡면에 몸을 묻고 쉴 수 있도록 설계했다.
<프리-포름>에는 팔걸이도 다리도 없다.
그러나 어떻게 놓더라도 스스로 지탱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의자로도, 조각이나 회화작품을 놓아두는 좌대로도, 책상으로도, 벤치로도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프리-포름>은 18가지 각각 다른 기능으로 사용할 수 있다.
처음에는 6가지 기능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 밖의 기능은 주변조건들과의 상호관계를 고려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들이다.
<프리-포름>은 의자, 팔걸이의자, 또는 스툴보다도 실용적이며 경제적이고 기능적으로도 만족할 만한 것이다.3
<프리-포름>은 이처럼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그것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곡면의 연속적 장력에 의해 인체와 같은 유연성을 띠게 된다.
키슬러는 여기에 언급된 18가지 기능을 앞 페이지의 그림과 같은 스케치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정도 기능이라면 <프리-포름> 하나만으로도 전람회장을 구성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람회장은 작품과 전시상태, 그리고 감상자와 연속적인 상관관계를 지니게 된다.
키슬러는 <프리-포름>의 기능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추가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상호현실주의’ 효과의 구체적인 일례를 보게 된다.
기능을 발생시키는 핵은 대단히 강력하게 농축되어 있으므로, 이 경우처럼 주요한 기능 이외에도 예상외의 실용적인 기능을 탄생시킨다.
여기에 제시하는 18가지 가능성은 단지 기술적 접근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계획되어 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차적 구조체인 원세포에 이미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인간이 아이를 잉태할 때 실제로는 아무런 형태도 띠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아는 모든 기관의 복잡한 기능을 이미 갖추고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4
<프리-포름>은 바우하우스의 영향 하에 있는 현대디자인의 원리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동시에 “기능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을 환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