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미술관과 커뮤니케이션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한편 ‘금세기 예술’화랑의 전시공간설계 및 전시디자인을 보면 키슬러가 미술작품을 ‘연구대상’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회화와 조각을 단지 보기 위한 대상물이 아니라 책을 읽고 학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끈기 있게 연구하는 대상물로 취급하고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도서관과 같은 기능을 하는 전시공간을 연출하고, 연구를 위해 필요한 설비들을 고안한 것이다.
<프리-포름> 이외에도 클레의 그림이나 뒤샹의 복제품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 장치는 감상자 스스로가 필요한 그림을 선택할 수 있는 감상용 장치였다.
미술감상 행위는 미술관측이 일방적으로 정한 전시계획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 같은 미술감상 방법에 따르지 않고, 보는 이에게 보는 방법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한 것은 키슬러가 최초일 것이다.
미술관건축을 미술이라는 제도화된 기존개념에 의존해 설계할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사고의 중심에 두고 설계해야 한다는 태도가 이 같은 디자인을 가능하게 했다.
키슬러는 미술관도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 인식했다.
회화나 조각 같은 미술작품도 문자로 구성된 서적과 마찬가지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사상은 1926년 브루클린 미술관 계획안에서도 시도된 바 있다.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개최된 ‘현대회화전’을 계기로 익명의 협회에 의해 위촉된 이것은 어떻게 하면 미술관이 주위의 환경과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3)
그것은 결국 회화와 조각과 실내공간을 어떻게 서로 관련지울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그의 스케치는 실내공간을 장식하는 요소 중 하나로 회화와 조각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방송되고 있는 회화작품의 수신면(受信面) 역할을 하는 감광 패널을 이용하는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오리지널 명화를 놓아두는 가상의 신전(神殿)이었다.
또한 이것들은 벽 안쪽에 눈에 띠지 않도록 설치해두고 필요할 때 가끔씩 볼 수 있게 한다.
키슬러는 벽면을 장식해왔던 회화작품의 전시방법이 앞으로는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5
미술관 측의 의도는 어떻게 하면 현대미술을 일반가정의 실내장식의 하나로 응용할 수 있겠는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키슬러의 제안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그림이 실내공간의 구성요소로서 보이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었다.
이른바 감상자에게 선택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에 주된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생각을 실천하는 미술관안의 또 다른 예로 1929년에 제안한 <텔레뮤지움>이 있다.4)


오늘날 오페라가 전파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것과 같이 멀지 않은 미래에 화랑에 걸려있는 그림도 같은 방법으로 전송될 것이다.
루브르에서 당신이 있는 곳까지, 프라드(Prades)5)에서 당신이 있는 곳까지.
어디서든 어디로든 송출이 가능하다.
당신에게는 그림을 선택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무드에 맞는 것이라든가, 특별히 축하할 일이 있을 때 그 목적에 맞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은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는 것만으로 세계 도처에 있는 위대한 작품들의 소유주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다.6


이 언급에서 키슬러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이용자가 주체가 되는 열린 개념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 간주하고 있다.
이 같은 이용방법의 한 예로 <텔레뮤지움>이 제시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텔레비전은 정보관리자 측인 방송국에 위탁되어 있어 수신자는 무엇 하나 선택할 권리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텔레비전 수신자는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 회로에 갇혀있다.
최근 들어 CATV와 같은 유선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늘어나 키슬러가 구상했던 <텔레뮤지엄>의 꿈이 실현을 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아직까지 본격적인 이용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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