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방법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940년대 키슬러는 뉴욕을 활동 거점으로 하는 유럽계 초현실주의자들과 빈번한 교류를 가졌다.
물론 뉴욕에서는 일찍부터 재미 다다이스트 마르셀 뒤샹이 활약하고 있었는데, 개인적인 활동을 즐기는 타입인 그는 대규모의 조직적인 운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초현실주의 운동의 핵심 멤버였던 브르통이 미국에 망명한 이후에야 뉴욕 미술계는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전위예술의 거점으로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앞 절에서 논고한 ‘금세기 예술’화랑의 카달로그에도 브르통, 아르프, 몬드리안 등이 기고한 서문이 게재되어 있다.
키슬러도 부르통과 친분을 가지면서 1944년에 『오비드 Ovid』를 위한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기도 했으며, 1945에는 『찰스 푸리에에게 바치는 노래』의 표지장정을 맡기도 했다.
후에 발표한 ‘갤럭시(Galaxy)’ 시리즈에는 친구나 지인들의 초상이 많은데, 그 중에는 당시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초현실주의자-브르통, 뒤샹, 아르프 등-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한편 ‘공간전시’ 개념에 기초하여 미술관이나 화랑 전시공간을 하나의 아비타로 취급하는 혁명적인 방법론을 제안한 키슬러는 1947년에 이르러 동일개념에 기초한 두 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1947년에 디자인된 두 개의 초현실주의 계열 전람회가 그것이다.
초현실주의 계열의 전람회는 이미 1938년 파리의 보자르 화랑에서 개최된 ‘초현실주의 국제전’의 회장구성을 통해서 환경적 경향의 전시를 실천한 바 있다.
중심회장의 천장에는 1,200개의 종이를 채운 석탄주머니가 걸려 있고 축음기에서는 독일군의 행진곡이 흘러나온다.
또한 장식용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고 원두커피의 향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흐르고 있다.
화로에 설치된 단 하나의 빨간색 조명만이 회장을 비춰준다.
실제로 작품을 감상하고자 할 경우에는 전기 터치 램프가 사용될 계획이었으나, 대부분이 개막 당일 도난당했다고 한다.
이 회장 구성안은 뒤샹의 아이디어에 따른 것인데, 뒤샹은 1942년 뉴욕에서 개최된 ‘초현실주의의 첫 논문’의 회장구성6)에서도 실을 이용해 거미줄이 처져있는 듯한 미로를 만든 바 있다.
또한 여기에 인공의 풀을 심고, 당구대 위 등 실내 공간 여기저기에 마치 비가 오듯이 물을 뿌리기도 했다.7
그런데 이상의 두 전람회는 제대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그것들은 기능적인 조명설비와 청결한 전시공간에 그저 작품을 나열해서 보여주는 일상적인 전시방법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