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공간전시’의 탄생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키슬러가 공간과 구조에 대한 그의 생각을 처음으로 구체화한 것은 1924년 빈에서 개최된 음악과 극장예술축제의 ‘새로운 극장기술 국제전’ 회장구성을 통해서였다.
새로운 극장기술에 관한 스케치나 사진 등의 평면적인 자료를 전시하기 위하여 그는 실내공간에 각재(角材)와 목재 패널을 이용한 입체구성물을 만들었다.
이것은 데 스틸의 조형원리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예임과 동시에 실용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것이었다.
또한 건축기술 측면에도 장력과 외팔보구조를 전시공간구성에 응용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키슬러는 이것을 ‘배치와 지지(Leger und Tr둮er)’수법이라고 불렀다.
‘L’은 공간상의 장력을 의식한 입체구조를, ‘T’는 봉의 한쪽 끝을 지지하는 움직이는 패널의 외팔보 구조를 지칭한다.


키슬러의 ‘공간전시’가 처음으로 실현을 본 것은 ‘국제장식미술과 현대산업박람회’의 오스트리아 섹션에서 발표한 <공중도시>안의 모형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이 전람회의 네덜란드 섹션에는 데 스틸 그룹의 출품작이 제외되어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 반 뒤스브르크를 필두로 하는 데 스틸의 멤버는 물론 그로피우스, 마리네티, 루스 등도 『데 스틸』지를 통해 공식적으로 항의한다.
그런데 데 스틸의 조형이념을 완벽하게 소화한 예로 키슬러의 <공중도시>가 화제가 된다.
<공중도시>가 데 스틸이 출품을 못함으로써 생긴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한 것이다.
배넘은 여기에 대해서 키슬러가 『데 스틸』지 6호에 발표한 노트를 참고로, <공중도시>는 데 스틸의 사상과 ‘프로운’으로부터 얻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공중도시>의 공간적 구조는 미학적 가능성을 철저하게 탐구한 결과물로 1918년 말레비치가 발표한 <백색 위의 백색>에 필적하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나아가서 데 스틸 및 요소주의에서 행해진 분석과 이에 따른 종합을 이룩한 예라고 찬사하고 있다.11
이 전람회를 본 반 뒤스브르크는 “우리가 하고 싶었는데도 하지 못했던 것을 결국 당신이 해냈다”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데 스틸이 출품하지 못해 실의에 차있던 반 뒤스브르크는 키슬러를 통해 위안을 받았던 것이다.


키슬러가 ‘공간전시’기법을 응용해 보여준 방법은 1929년에 개최된 ‘공예가연맹 국제전’의 회장구성을 담당한 리시츠키에 의해 답습되기에 이른다.
전후관계야 어쨌든 오늘날 증가한 인쇄물이나 사진과 같은 복제 미디어의 전시를 위한 방법론 또는 기본개념이 데 스틸과 리시츠키, 그리고 키슬러의 아이디어에 의해 1920년대에 완성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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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키슬러의 상업공간디자인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키슬러는 대략 1928년부터 1930년에 걸쳐 삭스 백화점의 윈도 디스플레이를 담당했다.
이것은 연극을 통해서 축적한 그의 캐리어와 관련시켜 생각할 수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공간전시’ 개념을 다시 한 번 실천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도 볼 수 있다.
그가 백화점 건축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뉴욕에 도착하기 이전인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키슬러는 1925년 파리에서 백화점건축에 관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우선 이 계획안의 특징으로 중앙의 원통 축에 건물 전체가 매달려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축에는 엘리베이터 샤프트나 냉온방설비 등이 내장된다.
건물 전체는 원통형 유리로 에워싸여 있고, 각층의 바닥은 나선형으로 빙빙 돌아가며 연속된다.
그 결과 보행자는 이 층에서 저 층으로 ‘끊임없이(Endless)’ 계속 이동할 수 있다.
이것으로 오늘날의 백화점이 안고 있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 중 하나를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중앙의 원통 축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했으므로 플로어의 어떤 부분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바닥의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보행자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몇 층을 오르내릴 수 있다.
모든 층이 메인 플로어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형태는 강철을 이용한 외팔보구조에 의해 가능하다.12


연속적인 사면(斜面)구조로 된 플로어를 지닌 이 계획안은 1959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설계에 의한 <솔로몬·R·구겐하임> 미술관으로 계승된다.11)
또한 1966에는 아시하라 요시노부가 설계한 <소니 빌딩>도 계단형으로 연속되는 플로어를 이용해 구매자의 유도에 성공하고 있다.
키슬러는 이 밖에도 몇 가지 백화점 프로젝트를 발표했는데, 1929년에 발표된 이것은 뉴욕 5번가의 백화점 프로젝트라고 하니 아마도 삭스 백화점을 위한 제안으로 보인다.12)


플로어는 유리판으로, 건물 벽은 외부 내부 모두 색유리로, 2층과 3층 바닥은 유백색 유리로. 각층은 두랄루민13)으로 된 띠로 표시한다.
이 건물에는 당연히 창문이 없다.
이중으로 된 벽 안에는 온방, 냉방, 환기 시스템 등이 내장되어 있어서 외부와 관계없이 상점 내부만 독립된 기후조건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건물 전체를 전시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건물 외부로부터 6피트 뒤로 물러나 철강으로 된 기둥이 서 있으므로 전시장에는 단 하나의 벽도 존재하지 않는다.
플로어는 외팔보구조로 되어 있다.
중앙의 수직선은 엘리베이터를 나타낸다.13


이 프로젝트가 실현되지 못한 것은 1929년 대공항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키슬러는 1928년에서 29년에 걸쳐 <삭스 5번가점>을 위한 쇼윈도를 디자인했다. 여기에서 키슬러는 일종의 전시용 유니트를 디자인했는데, 1924년 비인에서 고안한 시스템의 발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파사드와 쇼윈도 디스플레이에 관한 몇 가지 플랜도 남기고 있는데, 그 중에는 평면적인 상점 파사드를 요철이 있는 입체적인 것으로 만드는 아이디어가 있다.
이것은 쇼윈도의 전시를 보기 위해 발길을 멈추는 보행자의 행동을 분석한 결과 세워진 계획이다.
이와 때를 같이 해서 1929년에는 『현대 쇼윈도와 상점 프론트』(Brentano’s)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 책의 추천사는 삭스 5번가점의 부점장으로 판매담당지배인 H. L.레드맨이 썼다.
이것을 보면 키슬러는 당시 미국의 백화점경영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리서치를 거친 후에 이 책을 쓴 것으로 추측된다.


1920년대는 새로운 건축양식이 세계의 각 도시에 급속하게 퍼지기 시작한 시기이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에 의해 다양한 제품이 개발되었고, 상품의 구매층이 도시생활자인 일반대중에 이르기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백화점이나 체인 스토어도 이즈음부터 대규모화되기 시작했다.
나아가서 새로운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소매업종도 증가했으며, 영화관, 레스토랑, 커피 숍 등의 서비스산업도 크게 발전되었다.
이에 따라 상점디자인이나 쇼윈도의 대형화, 그리고 매장 디스플레이 방법 등이 경영자의 의식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데 스틸에서도 리트벨트가 디자인한 점포 <자우디>(Wesel 1928)와 야곱 J. P. 오우드의 <카페 유니>(Rotterdam 1925) 등 데 스틸의 조형원리를 적용한 새로운 실내디자인이 등장하고 유리와 스틸을 이용한 개방적인 파사드 디스플레이가 상점건축의 새로운 경향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더욱이 러시아 구성주의, 데 스틸, 바우하우스 등에서 개발된 새로운 타이포그래피가 서적, 잡지, 포스터 등과 같은 인쇄매체뿐만 아니라 상점 디스플레이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상점 파사드는 도시의 표정을 바꾸었으며, 그 자체가 마치 포스터처럼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 의식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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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쇼윈도와 상점 프론트』의 제목을 보면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를 응용한 커다란 문자가 조형적으로 처리되어 상점정면을 장식하고, 쇼윈도가 차지하는 면적이 커지면서 쇼윈도 내의 상품전시도 새로운 조형수단에 의해 처리될 필요성이 생겼다.
앞서 언급한 반 뒤스브르크의 <아우베테 시네마-댄스 홀>과 같이 실내공간의 구성에 있어서도 새로운 방법론이 요구되기에 이른다.
인테리어디자인이 단순한 장식개념에서 벗어나 공간연출의 한 방법으로 발전된 것도 이때이다.


『온리 예스터데이: 1920년대 미국』14의 저자 F. L.알렌은 이 시대의 특징을 일상생활을 에워싼 환경과 사람들의 의식변화를 들고 있다.
이 시기의 동향을 보면 1960년대와 너무나도 흡사한 점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는데,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캘빈 크릿지가 대통령이 되면서 이른바 번영의 시대에 접어들어 대량소비와 이에 따른 선전과 광고가 범람하게 된다.
이 같은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키슬러는 ‘공간전시’ 개념을 실천하기 위한 새로운 장으로 백화점이나 상점 등 도시환경 속의 상업공간을 선택한 것이다.


앞서 소개한 『현대의 쇼윈도와 상점 프론트』의 제목을 보면 상업공간디자인의 실용서라도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을 보면 대단히 폭 넓은 문제를 취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에 의해서 유럽은 실제로 모든 리더십을 잃어버렸다.
단 예술은 예외다.
미국은 이미 모든 종류의 리더십을 잡았다.
단 예술은 예외다.”15라든가, “1928년 미국에서는 소매와 제조의 신시대가 열렸다.
구시대의 현대미술은 이제 신세계의 소유가 되기 시작한다.
미국의 비즈니스 업계는 예술의 새로움을 이해하고, 그것을 판매에 직결시키는 방법을 발견했다.
미국은 이것을 커다란 목적을 위해 사용할 것이다.
판매의 증가와 이에 따른 번영을 위해서.”16라는 식의 선언조의 문장이 계속되고, 백화점을 통해서 현대미술이 대중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방편의 하나로 “먼저 여성의 패션과 텍스타일 디자인을 통해서, 두 번째로 쇼윈도의 장식을 통해서, 세 번째로 상점의 장식과 전람회를 통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테리어디자인이 일반가정에 도입되면서 현대미술이 일상생활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위대한 공헌을 하게 될 것이다.”17라고 적고 있다.
키슬러의 이러한 예상은 오늘날의 백화점에서 별다른 변화 없이 실천되고 있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의 백화점보다는 일본의 경우와 일치한다.
다만 여기에는 40년 이상의 시차가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우선 유럽의 새로운 미술의 흐름을 소개하면서, 건축, 극장, 주택 등에 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사진, 타이포그래피, 포스터디자인, 조명기술, 댄스의 동작구성에 이르기까지를 언급하면서 마네킹의 스타일 및 포즈 등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새로운 형태의 연극상연방식에 대한 소개와 그 중에서 쇼윈도 디스플레이에 응용 가능한 것들도 제시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영화, 텔레비전, 라디오 등의 새로운 시청각 미디어가 현대의 쇼윈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가까운 시일 내에 패션 정보를 소개하는 ‘윈도 데일리 뉴스(window daily news)’의 역할을 하게 될 텔레비전은 소매점이나 백화점 등의 강력한 광고매체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윈도 내부에 스크린을 설치해 보행자에게 중요 뉴스를 방송하고 방송이 끝나면 스크린을 말아 올려 본래의 윈도 디스플레이를 보여준다는 아이디어도 소개되고 있다.
오늘날의 백화점에서 적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모니터를 이용한 디스플레이 기법을 키슬러는 1929년에 제안했던 것이다.
특히 모니터의 이용방법에 대한 제안 중에 눈에 띠는 것은 쌍방향 영상을 통한 정보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방송시설을 이용해 원거리 디자인 회의가 가능하다는 등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18


어쨌든 이 책의 타이틀에서는 예상할 수 없는 내용과 미래에의 제안이 다양한 각도에서 언급되고 있다.
만약 키슬러가 당시 백화점의 판매촉진담당 디렉터가 됐었다면 지금쯤은 백화점업계의 영웅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키슬러의 백화점관련 작업은 이후에는 찾아볼 수 없다.


백화점관련 작업과는 인연이 없었으나, 그 이후에도 몇 가지 상점디자인에 관한 프로젝트를 남기고 있다.
1934년 뉴욕의 버팔로에 있는 <제이 제화점 파사드 디스플레이>도 그 중 하나이다.
여기서 키슬러는 좌우가 유리로 된 쇼윈도의 안쪽에 점포의 입구를 위치시킨 일종의 구심적인 유도수법을 응용한 디자인을 채택했는데, 이 프로젝트로 키슬러는 다음 해 우수 디자인상을 받게 된다.
또한 1935년의 서점 인테리어디자인은 키슬러의 ‘공간전시’ 개념과 1947년의 ‘피의 불꽃’전에서 보여준 실내공간의 연속적 구성을 결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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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금세기 예술’화랑과 ‘공간전시’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930년대 키슬러는 컬럼비아 대학 건축학부에 개설된 ‘디자인 상호관련연구소’의 객원교수로 일하면서 그의 디자인 이론의 중심이 되는 ‘상호현실주의(Correalism)’를 발표하는 등 산업디자인 관련분야의 연구를 시작한다.
‘상호현실주의’도 ‘공간전시’의 연장선상에 위치시킬 수 있는 개념인데, 여기에 관해서는 제6장 「디자인 상호관련: 기능주의를 넘어서서」에서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키슬러의 ‘공간전시’는 컬럼비아 대학에서의 ‘상호현실주의’연구를 거쳐 미술관의 설계와 회화나 조각 등의 전시방법에 관한 실험으로 발전된다.
그 연구결과가 지금부터 소개할 페기 구겐하임의 ‘금세기 예술’ 화랑의 전시공간설계 및 전시디자인이다.
여기에 관해서 키슬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미개인들은 눈에 비친 세계와 현실세계를 나누어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두 세계가 매일 경험하는 패턴 속에서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세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동굴 벽이나 절벽에 그림을 새기거나 그릴 때, 그것만을 위한 특정 공간 또는 일상생활공간과 예술 공간을 구별하기 위한 틀이나 테두리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일상생활의 공간과 시간 속에 동물도, 귀신도, 인간도 공존했던 것이다.


그것은 ‘통일원리’, 원시시대의 ‘통일원리’이다.
인간의 창조적인 의식과 일상 환경을 연결하는 원리이다.
이 같은 통일 원리를 회화, 조각, 가구, 그리고 주위를 포함하는 4개의 갤러리 전체에 적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과거에 이 같은 통일이 성취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이 파괴되어버렸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우리는 현재 엄청난 시련을 맞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한 번 통일을 꾀해야 한다. 예술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인간생활에 활력을 주는 당초의 그것으로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가가 비전을 투영한 조각이나 캔버스의 그림을 감상한다는 사실-또는 수용한다는 사실-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관객은 예술가가 직접 느끼는 것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창조과정에 참여하고 감상할 필요가 있다.19


키슬러는 자신의 생각을 많은 스케치로 남기고 있다.
이 스케치들은 그가 생각했던 회화나 조각 등의 미술작품을 ‘본다’는 행위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해준다.
키슬러에게 화랑이란 그림을 걸기 위한 벽과 조각을 놓아두는 좌대 등의 설비를 갖춘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었다.
최종적으로는 벽면이나 좌대를 디자인했다고 해도, 시작부터 기존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택하고 있다.
키슬러가 이 화랑을 디자인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우선 액자에서 그림을 떼어내는 일이었다.
화랑을 디자인하면서 그림으로부터 액자를 떼어내는 것을 전제한 건축가는 그가 최초일 것이다.
액자 없는 그림의 전시가 많은 오늘날에도 이 같은 조건을 내는 건축가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키슬러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건축가’였다는 사실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회화나 조각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감상을 통해서 창조과정에 참가하는 관객의 입장에 주목했던 키슬러는 감상자를 위하여 다양한 장치를 고안하기에 이른다.


예를 들어 회화란 벽에 걸어두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키슬러는 그림을 벽으로부터 떨어뜨려야 했다.
따라서 그림을 벽면으로부터 떨어뜨리기 위한 지지대가 필요했다.
그는 여러 가지 지지대의 형태를 생각해냈다.
나아가서 그는 일어서기도 하고 앉기도 하는 관람객이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화면이 수직으로 걸려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화면과 지지대의 연결부분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뿐만 아니라 그림을 앉아서 감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장치가 필요한가를 생각한 결과 책장과 비슷한 그림장(藏)과 그림을 놓을 수 있도록 이동 가능하게 설계된 일종의 ‘픽쳐 스탠드’를 고안한다.
또한 지지대의 형태가 변형된 예의 하나로 ‘접을 수 있는 감상대’도 있다.
이것도 감상자의 신장이나 화면의 밝기에 따라 자유롭게 그림의 각도를 조절하여 조명상태를 바꿀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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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슬러다운 아이디어가 또 하나 있다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그림을 주시하는 사람을 위해 얼굴 앞에 타원형의 프레임을 놓아두는 것이다.
이 프레임도 그림의 형태에 따라 상하좌우로 움직일 수 있게 설계되었다.
그림으로부터 액자를 떼어내는 대신에 감상자에게 프레임을 부여하고, 이것으로 관객은 그림과 1:1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전장에서 논고한 사르트르의 <출구 없음>(1946)에서 시도한 ‘시인의 무대’와 맥락을 같이하는 발상이다.

프레임에 관한 발상 중 하나로 옥외에 놓여진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흥미로운 스케치가 있다.
‘들여다보기’ 위한 원통형 창의 디자인과 작품의 세부를 보기 위한 망원경이 그것이다.
그런데 위의 그림 오른쪽에 있는 평면도를 보면 옥외에 놓여진 작품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도록 에워싸여 있다.
왜 키슬러가 이 같은 조건의 전시방법을 생각했을까?
이 스케치를 본 순간 나는 후에 마르셀 뒤샹이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설치한 유작 <주어진 상태>14)와 같은 ‘엿보기 장치’ 가 떠올랐다.
키슬러와 뒤샹이 절친한 친구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뒤샹이 1942년에 뉴욕에 도착한 후 얼마동안 7번가 56번지에 있는 키슬러의 아파트에서 같이 생활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또한 키슬러는 뒤샹의 <대형 유리>, 일명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벌거벗겨긴 신부조차도>(1915-1923)에 대해 1937년 잡지 『아키텍추얼 레코드』(1937년 5월호 p.53-60)에 발표한 ‘디자인 상호관련’에 관한 일련의 논문에서 직접 다룬 적이 있다.15)
‘금세기 예술’화랑이 개관한 1942년 이 화랑의 기획 중에는 여기에 언급된 ‘엿보기 장치’와 관계있는 작품의 전시가 있었다.
하나는 뒤샹의 <가방상자> 복제품을 전시한 것인데, 회전벨트를 이용해 감상자에게 작품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방법을 채용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엿보기 장치’는 앙드레 브르통의 <배우 A, B의 초상>이 전시된 ‘어두운 상자’를 위한 것으로, 키슬러가 고안한 개폐가 자유로운 조리개가 달려 있었다.
키슬러의 ‘공간전시’개념이 환경적 경향을 띠며 확대되었다고 한다면, ‘엿보기 장치’를 이용한 전시는 폐쇄된 어두운 상자형 무대와도 같은 경향을 띠며 발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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