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쇼윈도와 상점 프론트』의 제목을 보면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를 응용한 커다란 문자가 조형적으로 처리되어 상점정면을 장식하고, 쇼윈도가 차지하는 면적이 커지면서 쇼윈도 내의 상품전시도 새로운 조형수단에 의해 처리될 필요성이 생겼다.
앞서 언급한 반 뒤스브르크의 <아우베테 시네마-댄스 홀>과 같이 실내공간의 구성에 있어서도 새로운 방법론이 요구되기에 이른다.
인테리어디자인이 단순한 장식개념에서 벗어나 공간연출의 한 방법으로 발전된 것도 이때이다.


『온리 예스터데이: 1920년대 미국』14의 저자 F. L.알렌은 이 시대의 특징을 일상생활을 에워싼 환경과 사람들의 의식변화를 들고 있다.
이 시기의 동향을 보면 1960년대와 너무나도 흡사한 점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는데,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캘빈 크릿지가 대통령이 되면서 이른바 번영의 시대에 접어들어 대량소비와 이에 따른 선전과 광고가 범람하게 된다.
이 같은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키슬러는 ‘공간전시’ 개념을 실천하기 위한 새로운 장으로 백화점이나 상점 등 도시환경 속의 상업공간을 선택한 것이다.


앞서 소개한 『현대의 쇼윈도와 상점 프론트』의 제목을 보면 상업공간디자인의 실용서라도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을 보면 대단히 폭 넓은 문제를 취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에 의해서 유럽은 실제로 모든 리더십을 잃어버렸다.
단 예술은 예외다.
미국은 이미 모든 종류의 리더십을 잡았다.
단 예술은 예외다.”15라든가, “1928년 미국에서는 소매와 제조의 신시대가 열렸다.
구시대의 현대미술은 이제 신세계의 소유가 되기 시작한다.
미국의 비즈니스 업계는 예술의 새로움을 이해하고, 그것을 판매에 직결시키는 방법을 발견했다.
미국은 이것을 커다란 목적을 위해 사용할 것이다.
판매의 증가와 이에 따른 번영을 위해서.”16라는 식의 선언조의 문장이 계속되고, 백화점을 통해서 현대미술이 대중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방편의 하나로 “먼저 여성의 패션과 텍스타일 디자인을 통해서, 두 번째로 쇼윈도의 장식을 통해서, 세 번째로 상점의 장식과 전람회를 통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테리어디자인이 일반가정에 도입되면서 현대미술이 일상생활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위대한 공헌을 하게 될 것이다.”17라고 적고 있다.
키슬러의 이러한 예상은 오늘날의 백화점에서 별다른 변화 없이 실천되고 있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의 백화점보다는 일본의 경우와 일치한다.
다만 여기에는 40년 이상의 시차가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우선 유럽의 새로운 미술의 흐름을 소개하면서, 건축, 극장, 주택 등에 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사진, 타이포그래피, 포스터디자인, 조명기술, 댄스의 동작구성에 이르기까지를 언급하면서 마네킹의 스타일 및 포즈 등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새로운 형태의 연극상연방식에 대한 소개와 그 중에서 쇼윈도 디스플레이에 응용 가능한 것들도 제시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영화, 텔레비전, 라디오 등의 새로운 시청각 미디어가 현대의 쇼윈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가까운 시일 내에 패션 정보를 소개하는 ‘윈도 데일리 뉴스(window daily news)’의 역할을 하게 될 텔레비전은 소매점이나 백화점 등의 강력한 광고매체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윈도 내부에 스크린을 설치해 보행자에게 중요 뉴스를 방송하고 방송이 끝나면 스크린을 말아 올려 본래의 윈도 디스플레이를 보여준다는 아이디어도 소개되고 있다.
오늘날의 백화점에서 적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모니터를 이용한 디스플레이 기법을 키슬러는 1929년에 제안했던 것이다.
특히 모니터의 이용방법에 대한 제안 중에 눈에 띠는 것은 쌍방향 영상을 통한 정보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방송시설을 이용해 원거리 디자인 회의가 가능하다는 등의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18


어쨌든 이 책의 타이틀에서는 예상할 수 없는 내용과 미래에의 제안이 다양한 각도에서 언급되고 있다.
만약 키슬러가 당시 백화점의 판매촉진담당 디렉터가 됐었다면 지금쯤은 백화점업계의 영웅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키슬러의 백화점관련 작업은 이후에는 찾아볼 수 없다.


백화점관련 작업과는 인연이 없었으나, 그 이후에도 몇 가지 상점디자인에 관한 프로젝트를 남기고 있다.
1934년 뉴욕의 버팔로에 있는 <제이 제화점 파사드 디스플레이>도 그 중 하나이다.
여기서 키슬러는 좌우가 유리로 된 쇼윈도의 안쪽에 점포의 입구를 위치시킨 일종의 구심적인 유도수법을 응용한 디자인을 채택했는데, 이 프로젝트로 키슬러는 다음 해 우수 디자인상을 받게 된다.
또한 1935년의 서점 인테리어디자인은 키슬러의 ‘공간전시’ 개념과 1947년의 ‘피의 불꽃’전에서 보여준 실내공간의 연속적 구성을 결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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