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키슬러의 상업공간디자인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키슬러는 대략 1928년부터 1930년에 걸쳐 삭스 백화점의 윈도 디스플레이를 담당했다.
이것은 연극을 통해서 축적한 그의 캐리어와 관련시켜 생각할 수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공간전시’ 개념을 다시 한 번 실천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도 볼 수 있다.
그가 백화점 건축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뉴욕에 도착하기 이전인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키슬러는 1925년 파리에서 백화점건축에 관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우선 이 계획안의 특징으로 중앙의 원통 축에 건물 전체가 매달려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축에는 엘리베이터 샤프트나 냉온방설비 등이 내장된다.
건물 전체는 원통형 유리로 에워싸여 있고, 각층의 바닥은 나선형으로 빙빙 돌아가며 연속된다.
그 결과 보행자는 이 층에서 저 층으로 ‘끊임없이(Endless)’ 계속 이동할 수 있다.
이것으로 오늘날의 백화점이 안고 있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 중 하나를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중앙의 원통 축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했으므로 플로어의 어떤 부분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바닥의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보행자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몇 층을 오르내릴 수 있다.
모든 층이 메인 플로어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형태는 강철을 이용한 외팔보구조에 의해 가능하다.12
연속적인 사면(斜面)구조로 된 플로어를 지닌 이 계획안은 1959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설계에 의한 <솔로몬·R·구겐하임> 미술관으로 계승된다.11)
또한 1966에는 아시하라 요시노부가 설계한 <소니 빌딩>도 계단형으로 연속되는 플로어를 이용해 구매자의 유도에 성공하고 있다.
키슬러는 이 밖에도 몇 가지 백화점 프로젝트를 발표했는데, 1929년에 발표된 이것은 뉴욕 5번가의 백화점 프로젝트라고 하니 아마도 삭스 백화점을 위한 제안으로 보인다.12)
플로어는 유리판으로, 건물 벽은 외부 내부 모두 색유리로, 2층과 3층 바닥은 유백색 유리로. 각층은 두랄루민13)으로 된 띠로 표시한다.
이 건물에는 당연히 창문이 없다.
이중으로 된 벽 안에는 온방, 냉방, 환기 시스템 등이 내장되어 있어서 외부와 관계없이 상점 내부만 독립된 기후조건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건물 전체를 전시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건물 외부로부터 6피트 뒤로 물러나 철강으로 된 기둥이 서 있으므로 전시장에는 단 하나의 벽도 존재하지 않는다.
플로어는 외팔보구조로 되어 있다.
중앙의 수직선은 엘리베이터를 나타낸다.13
이 프로젝트가 실현되지 못한 것은 1929년 대공항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키슬러는 1928년에서 29년에 걸쳐 <삭스 5번가점>을 위한 쇼윈도를 디자인했다. 여기에서 키슬러는 일종의 전시용 유니트를 디자인했는데, 1924년 비인에서 고안한 시스템의 발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파사드와 쇼윈도 디스플레이에 관한 몇 가지 플랜도 남기고 있는데, 그 중에는 평면적인 상점 파사드를 요철이 있는 입체적인 것으로 만드는 아이디어가 있다.
이것은 쇼윈도의 전시를 보기 위해 발길을 멈추는 보행자의 행동을 분석한 결과 세워진 계획이다.
이와 때를 같이 해서 1929년에는 『현대 쇼윈도와 상점 프론트』(Brentano’s)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 책의 추천사는 삭스 5번가점의 부점장으로 판매담당지배인 H. L.레드맨이 썼다.
이것을 보면 키슬러는 당시 미국의 백화점경영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리서치를 거친 후에 이 책을 쓴 것으로 추측된다.
1920년대는 새로운 건축양식이 세계의 각 도시에 급속하게 퍼지기 시작한 시기이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에 의해 다양한 제품이 개발되었고, 상품의 구매층이 도시생활자인 일반대중에 이르기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백화점이나 체인 스토어도 이즈음부터 대규모화되기 시작했다.
나아가서 새로운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소매업종도 증가했으며, 영화관, 레스토랑, 커피 숍 등의 서비스산업도 크게 발전되었다.
이에 따라 상점디자인이나 쇼윈도의 대형화, 그리고 매장 디스플레이 방법 등이 경영자의 의식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데 스틸에서도 리트벨트가 디자인한 점포 <자우디>(Wesel 1928)와 야곱 J. P. 오우드의 <카페 유니>(Rotterdam 1925) 등 데 스틸의 조형원리를 적용한 새로운 실내디자인이 등장하고 유리와 스틸을 이용한 개방적인 파사드 디스플레이가 상점건축의 새로운 경향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더욱이 러시아 구성주의, 데 스틸, 바우하우스 등에서 개발된 새로운 타이포그래피가 서적, 잡지, 포스터 등과 같은 인쇄매체뿐만 아니라 상점 디스플레이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상점 파사드는 도시의 표정을 바꾸었으며, 그 자체가 마치 포스터처럼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 의식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