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금세기 예술’화랑과 ‘공간전시’

야마구치 가쓰히로의 <공간연출 디자인의 원류>(도서출판 미술문화) 중에서


1930년대 키슬러는 컬럼비아 대학 건축학부에 개설된 ‘디자인 상호관련연구소’의 객원교수로 일하면서 그의 디자인 이론의 중심이 되는 ‘상호현실주의(Correalism)’를 발표하는 등 산업디자인 관련분야의 연구를 시작한다.
‘상호현실주의’도 ‘공간전시’의 연장선상에 위치시킬 수 있는 개념인데, 여기에 관해서는 제6장 「디자인 상호관련: 기능주의를 넘어서서」에서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키슬러의 ‘공간전시’는 컬럼비아 대학에서의 ‘상호현실주의’연구를 거쳐 미술관의 설계와 회화나 조각 등의 전시방법에 관한 실험으로 발전된다.
그 연구결과가 지금부터 소개할 페기 구겐하임의 ‘금세기 예술’ 화랑의 전시공간설계 및 전시디자인이다.
여기에 관해서 키슬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미개인들은 눈에 비친 세계와 현실세계를 나누어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두 세계가 매일 경험하는 패턴 속에서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세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동굴 벽이나 절벽에 그림을 새기거나 그릴 때, 그것만을 위한 특정 공간 또는 일상생활공간과 예술 공간을 구별하기 위한 틀이나 테두리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일상생활의 공간과 시간 속에 동물도, 귀신도, 인간도 공존했던 것이다.


그것은 ‘통일원리’, 원시시대의 ‘통일원리’이다.
인간의 창조적인 의식과 일상 환경을 연결하는 원리이다.
이 같은 통일 원리를 회화, 조각, 가구, 그리고 주위를 포함하는 4개의 갤러리 전체에 적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과거에 이 같은 통일이 성취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이 파괴되어버렸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우리는 현재 엄청난 시련을 맞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한 번 통일을 꾀해야 한다. 예술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인간생활에 활력을 주는 당초의 그것으로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가가 비전을 투영한 조각이나 캔버스의 그림을 감상한다는 사실-또는 수용한다는 사실-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관객은 예술가가 직접 느끼는 것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창조과정에 참여하고 감상할 필요가 있다.19


키슬러는 자신의 생각을 많은 스케치로 남기고 있다.
이 스케치들은 그가 생각했던 회화나 조각 등의 미술작품을 ‘본다’는 행위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해준다.
키슬러에게 화랑이란 그림을 걸기 위한 벽과 조각을 놓아두는 좌대 등의 설비를 갖춘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었다.
최종적으로는 벽면이나 좌대를 디자인했다고 해도, 시작부터 기존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택하고 있다.
키슬러가 이 화랑을 디자인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우선 액자에서 그림을 떼어내는 일이었다.
화랑을 디자인하면서 그림으로부터 액자를 떼어내는 것을 전제한 건축가는 그가 최초일 것이다.
액자 없는 그림의 전시가 많은 오늘날에도 이 같은 조건을 내는 건축가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키슬러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건축가’였다는 사실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회화나 조각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감상을 통해서 창조과정에 참가하는 관객의 입장에 주목했던 키슬러는 감상자를 위하여 다양한 장치를 고안하기에 이른다.


예를 들어 회화란 벽에 걸어두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키슬러는 그림을 벽으로부터 떨어뜨려야 했다.
따라서 그림을 벽면으로부터 떨어뜨리기 위한 지지대가 필요했다.
그는 여러 가지 지지대의 형태를 생각해냈다.
나아가서 그는 일어서기도 하고 앉기도 하는 관람객이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화면이 수직으로 걸려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화면과 지지대의 연결부분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뿐만 아니라 그림을 앉아서 감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장치가 필요한가를 생각한 결과 책장과 비슷한 그림장(藏)과 그림을 놓을 수 있도록 이동 가능하게 설계된 일종의 ‘픽쳐 스탠드’를 고안한다.
또한 지지대의 형태가 변형된 예의 하나로 ‘접을 수 있는 감상대’도 있다.
이것도 감상자의 신장이나 화면의 밝기에 따라 자유롭게 그림의 각도를 조절하여 조명상태를 바꿀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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