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킹, 우리는 생물학적 기계일 따름이고 자유의지는 착각에 불과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과학적 결정론이 물리 과정들을 지배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행동만큼은 예외로 삼으려고 합니다. 왜냐면 우리에게 자유의지free will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데카르트는 자유의지의 개념을 보존하기 위해 인간의 정신은 물리세계와 다른 어떤 것이며, 그 세계의 법칙들을 따르지 않는다고 단언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신체와 영혼이라는 두 요소로 이뤄졌습니다. 신체는 평범한 기계일 뿐이지만, 영혼은 과학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해부학과 생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데카르트는 뇌의 중앙에 있는 松科腺(송과선, pineal gland)이라는 작은 기관을 영혼이 주로 머무는 장소로 간주했습니다. 송과선은 우리의 모든 생각이 형성되는 장소, 우리의 자유의지가 솟아나는 샘이라고 데카르트는 믿었습니다.

호킹은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과연 있느냐고 묻습니다. 자유의지가 있다면, 진화의 역사에서 언제 발생했느냐고 묻습니다. 남조류blue-green algae(1,500종으로 이뤄진 남조세균이라고도 한다)나 박테리아에게도 자유의지가 있을까? 아니면 그것들의 행동이 자동적이며 과학법칙의 유효 범위 안에 있을까? 다세포생물, 혹은 포유류에게만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호킹은 『위대한 설계 The Grand Design』(2010)에서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느끼지만, 생물학의 분자적 토대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생물학적 과정들이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들에 의해 지배되며 따라서 행성의 궤도와 마찬가지로 결정되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신경과학의 최근 실험들은, 알려진 과학법칙들을 따르는 우리의 물리적인 뇌physical brain가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지, 그 법칙들과 별개로 존재하는 어떤 행위자가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힘을 실어줍니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뇌수술을 받는 환자들을 연구한 결과, 뇌의 특정 구역들을 전기로 자극하면 환자가 손이나 팔, 발을 움직이고 싶은 욕구, 또는 입술을 움직이고 말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호킹은 우리의 행동이 물리법칙에 의해서 결정된다면, 어떻게 자유의지가 작동할 수 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물학적 기계일 따름이고 자유의지는 착각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행동이 진정 자연법칙들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행동이 워낙 많은 변수들에 의해서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결정되므로 실질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짓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예측을 아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몸을 이루는 무수한 분자들 각각의 초기 상태를 알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수많은 방정식들을 풀어야 합니다. 수십억 년이 걸릴 일입니다.

호킹은 물리법칙을 이용해 인간의 행동을 예측한다는 것이 매우 비현실적이므로, 이른바 유효이론effective theory을 채택한다고 말합니다. 물리학에서 유효이론이란 관찰된 특정 현상을, 그 바탕에 있는 모든 과정들을 자세히 기술하지 않으면서 모형화하기 위해 창조한 이론입니다. 유효이론은 세세한 상호작용들을 빠짐없이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원자들과 분자들이 화학 반응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적절하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방정식들을 풀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유효이론을 사용합니다. 우리의 의지와 그것에서 유발되는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이 심리학입니다. 경제학 또한 자유의지의 개념을 기초로 한, 그리고 사람들은 행동의 선택지들을 평가하고 최선의 것을 선택한다는 전제를 기초로 한 유효이론입니다. 이 유효이론은 인간의 행동을 예측함에 있어 제한적으로만 성공적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인간의 결정은 흔히 비합리적이거나 선택의 결과에 대한 불완전한 분석을 기초로 하기 때문입니다. 호킹은 이것이 세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요인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호킹은 법칙들이 자연을 지배한다면 세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면서 세 번째로 가능한 법칙들의 집합은 오직 하나뿐일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데카르트, 아인슈타인은 자연의 원리들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한 믿음의 근거는 현존하는 자연의 원리들만이 유일하게 논리적으로 이치에 타당하기 때문입니다.

호킹은 과학자로서 첫 번째 질문인 법칙들의 기원이 무엇인가?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인 법칙의 예외, 즉 기적이 존재할까? 하는 질문에 대해 기적 혹은 자연법칙의 예외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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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 동물인 나와 식물인 참나무의 조상은 같다



생명의 탄생 이후 40억 년의 거의 대부분 기간 동안, 지구의 생명계는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던 청록색의 藻類(조류)들이 지배했습니다. 대략 6억 년 전부터 조류의 독과점 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새로운 형태의 생물들이 폭발적으로 지구에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캄브리아기 대폭발Cambrian Great Explosion이라고 불리는 사건입니다. 지구가 만들어지자마자 생명이 탄생했다고 해도 크게 잘못된 표현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출현은 지구와 같은 행성의 환경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화학 반응들의 필연적 결과일 것입니다. 그러나 생물은 30억 년이나 되는 긴긴 세월을 녹조류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만 했습니다.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시작되자마자 다양한 형태의 생물들이 바다에 우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억 년 전쯤 지구에는 삼엽충이 엄청나게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곤충과 비슷한 그것들은 아름다운 동물이었습니다. 그중에는 해저에서 무리를 지어 사냥하면서 살아가는 종들도 있었습니다. 삼엽충들은 편광을 감지할 수 있는 수정체의 겹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에서는 살아있는 삼엽충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2억 년 전에 모두 멸종했기 때문입니다.

캄브리아기 대폭발 이전에도 새로운 종들의 출현과 멸종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 속도가 느렸던 것 같습니다. 캄브리아기 대폭발 이후에는 환경에 놀랍도록 잘 적응하는 새로운 형태의 생물들이 숨 막힐 정도로 급하게 속속 나타났습니다. 최초의 어류에서 최초의 척추동물로 빠르게 이어졌습니다. 바다에서만 살던 식물 중에 차츰 서식지를 육지로 옮기는 식물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최초의 곤충이 태어났고, 그 후손들이 이 땅에서 사는 陸棲(육서) 동물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뒤이어 날개 가진 곤충이 양서류와 함께 나타났습니다. 肺魚(폐어)를 닮은 양서류는 바다와 육지 양쪽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구에 최초의 나무가 등장했고, 최초의 파충류가 출현해 공룡으로 진화해갔습니다. 그리고 포유류가 지상에 출현했습니다. 그 후 최초의 새와 최초의 꽃이 생겨났습니다. 공룡이 멸종하고 돌고래와 고래의 조상인 가장 초기의 고래 류가 나타났습니다. 같은 시기에 원숭이, 유인원, 인간의 공동 조상인 영장류가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천만 년 전에 인간과 아주 비슷한 생물이 처음 나타났으며, 그들이 진화함에 따라 뇌의 크기도 현저하게 커졌습니다. 그리고 그 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겨우 수백만 년 전에 최초의 인간이 나타났습니다.

『코스모스 Cosmos』(1980)의 저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은 현재 알려진 유기분자의 수는 100억 개가 넘지만, 이 중에서 생명 현상의 필수 요원으로 활동하는 건 약 50종뿐이라고 말합니다. 동일한 조합의 분자들이 여러 가지의 기능을 발휘하는 데 반복해서 사용됩니다. 분자들의 조합이 하나의 모듈module로 쓰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구 생명은 주어진 기능을 수행하는 데 최대의 경제성을 유지하는 아주 영리한 존재입니다.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생명 현상의 뿌리에는 세포의 화학 반응을 조절하는 단백질 분자와 유전 설계도를 간직한 핵산이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본질적으로 같은 단백질 분자와 핵산 분자가 모든 동물과 식물에 공통적으로 관여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생명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참나무와 나는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세이건은 좀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동물인 나와 식물인 참나무의 조상은 같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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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티, 훈련의 힘으로 대가를 능가하게 된다

 

작품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1404-72)는 “예술에 대한 견습은 이성과 방법으로 익히는 것이며, 훈련의 힘으로 대가를 능가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알베르티가 말한 대로 레오나르도는 이성과 훈련을 통해 스승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를 능가할 수 있는 경지로 나아갔습니다. 레오나르도는 피렌체 출신의 화가로 관념적 전통 회화를 극복하여 입체감과 실재감을 표현하는 기법을 창시하여 중세 미술을 종말에 이르게 한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1267년경-1337)를 존경했습니다. 조토는 시골에서 혼자 외롭게 성장하면서 눈앞에 있는 대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린을 그렸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조토에 대해 “그는 자연으로부터 자신의 예술로 나아갔다”, “그는 당대의 화가들만 능가한 것이 아니라 이전 세기의 많은 화가들을 능가했다”, “조토는 스승 치마부에의 작품을 모방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고 적었습니다.

조토는 서양회화에 새로운 지평을 연 인물로 평가받는데, 비잔틴 회화 양식으로부터 새로운 이상, 즉 자연주의와 회화적 공간을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조토의 친구 단테는 『신곡』에서 조토가 스승 치마부에를 능가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1400년경 첸니노 첸니니는 “조토가 회화 예술을 그리스어로부터 라틴어로 바꾸어놓았다”고 적었습니다. 조토의 이전 작품은 전해오지 않고 파도바의 아레나 예배당에 프레스코를 그린 후부터 그의 독특한 양식이 나타났습니다. 이 예배당은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악명 높은 고리대금업자인 아버지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 건립했습니다. 1305-06년경 조토는 이곳에 오른쪽 방향으로 성서의 에피소드를 연결시켜 그렸습니다. 여기에 <최후의 심판>이 포함되고 성상 안치소 아치 위에는 <수태고지>가 있습니다. 그는 도덕적으로 교훈을 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조토는 화가로 유명했지만, 건축에도 조예가 깊어 1334년에는 피렌체 대성당의 건축가로 선임되었습니다. 그의 타계 후에도 그의 양식은 피렌체 회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레오나르도 외에도 마사초와 미켈란젤로 등 많은 화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과거 대가의 작품을 단지 모방하는 것으로는 대가를 능가할 수 없다는 생각을 일찍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중세의 화가와 조각가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사람들을 교육하는 목적으로 작품을 제작했지만, 이런 식으로 정해진 형상을 좇아 반복하는 것이 그에게는 재능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조토가 처음으로 대가를 모방하는 전통을 깨뜨린 사실을 이해했으며, 조토 이후의 화가들이 새로운 발견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의 작품을 모방함으로써 회화의 질이 저하됐다고 보았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마사초 이전까지만 해도 화가들이 자연보다는 대가를 모델로 삼아 작업함으로써 무모한 데에 온 힘을 쏟았다”고 말했습니다. 또 “화가가 다른 사람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게 되면 작품은 평범하게 된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최초로 스승의 작품을 모방하는 대신 자연의 연구를 내세워 이론적으로 정리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오래 전에 이뤄진 사고로 전통에 대한 자연주의와 합리주의의 승리를 강도 높게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연에 대한 연구를 기초로 성립된 그의 예술론은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에 큰 변화가 생겼음을 알게 해줍니다. 미술이 수공업적 정신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선행되어야 했던 건 낡은 교육 체제의 변혁과 길드에 의한 교육 독점의 지양이었습니다. 이제는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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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키오와 레오나르도의 합작, <규범을 위한 습작 (혹은 큐피드와 님프)>, 14.7-25.8cm.


베로키오에게는 개척자의 정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했으며, 이성적·과학적 방법으로 작업하면서 제자들도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작업하게 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베로키오로부터 배운 건 과학이었습니다. 과학적으로 관망하고 대상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초기 콰트로첸토quattrocento(15세기)에서도 이미 도제들에게 손으로 하는 일과 병행해서 기하학, 원근법, 해부학의 초보적 지식이 교수되었고, 실재 모델을 정확하게 스케치하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과학적 예술관은 알베르티로부터 비롯했습니다. 광범위한 지식과 합리적이고 과학적 사고방식을 가진 알베르티는 전형적인 초기 인문주의자였습니다. 건축가, 조각가, 화가 그리고 작가인 알베르티는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이론가입니다. 1404년 제노바에서 망명 중이던 작가인 피렌체 상인의 사생아로 태어나 파도바와 볼로냐에서 교육을 받았고, 라틴어에 정통했습니다. 스물네 살 때 피렌체로 가서 당시의 유명 예술가 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 기베르티, 마사초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승마에 뛰어났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철학자, 수학자, 공학가이기도 했습니다. 1432-64년까지 교황청에서 서기관 직을 맡았고, 철학, 과학, 고전, 예술 등 각 분야를 골고루 탐구하면서 윤리학, 사랑, 종교, 사회학, 법학, 수학,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에 관한 논문과 소책자를 펴냈습니다. 1436년에 첫 이론서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의 회화론』을 출간했고, 『조각론』은 1464년 직전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가 디자인한 건물들 중에는 만토바의 산 안드레아와 산 세바스티아노 성당이 있으며, 피렌체 대성당과 루첼라이 궁전의 외관을 장식했습니다. 그는 화가와 조각가로서도 활약했지만 현존하는 건 없고 1450년경에 제작한 것으로 추측되는 자화상을 기념 명판으로 제작한 것이 두 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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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바사리의 <자화상>, 1566-68, 패널에 유채, 100.5-80cm.


알베르티는 처음으로 수학이 예술과 학문의 공통적인 근본이라고 주장했는데, 비례론과 원근법 이론이 모두 수학에 속하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알베르티의 논술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생각을 덧붙이지 않았고 단지 선배 화가의 주장을 더욱 강조하고 확대했을 뿐입니다. 레오나르도는 “과학이 명장이고 군인을 훈련시킨다”고 보았고 “훈련에만 집착하고 과학이 없으면 조종 장치나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선원과도 같아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결코 알지 못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바사리에 의하면 베로키오의 작업장에서는 자연으로부터 드로잉하는 걸 배울 때 근사치는 용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특정한 모델 앞에서 작업하면서 석고를 뜰 때 손, 발, 다리, 몸통을 모델과 똑같이 떠야 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드로잉한 우미한 주름들을 보면 실제처럼 정확하게 묘사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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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정면을 바라보며 서 있는 인물의 우미한 주름, 습작>, 린넨에 브라운 잉크, 28.2-15.8cm.


099

레오나르도의 <앉아 있는 사람의 우미한 주름, 습작>, 린넨에 회색 템페라, 26.6-23.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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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은 법칙들이 자연을 지배한다면, 세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고 말한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1942-)은 저서 『위대한 설계 The Grand Design』(2010)에서 우리가 아는 자연법칙의 개념을 최초로 명확하게 제시한 인물로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1596-1650)를 꼽습니다. 데카르트는 방법론적 회의를 거쳐 철학의 출발점의 되는 제1원리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Gogito ergo sum”의 명제를 선언하여 근대 이성주의 철학의 정초를 닦았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방정식의 미지수에 x를 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모든 물리현상은 운동하는 질량들의 충돌을 통해 설명해야 하며, 세 법칙이 그 운동을 지배한다고 믿었습니다. 세 법칙은 유명한 뉴턴의 운동법칙들의 선구적 존재였습니다. 데카르트는 그 자연법칙들이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유효하다고 단언했으며, 운동하는 물체들이 그 법칙들에 복종한다고 해서 그 물체들이 정신을 지녔다고 할 수는 없다고 명시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오늘날 우리가 ‘초기조건’이라 부른 것의 중요성을 이해했습니다. 예컨대 시간 0에서 비둘기가 여러분의 머리 위에서 배설한다면 배설물의 낙하 궤도는 뉴턴의 법칙에 의해 결정되지만, 시간 0에 비둘기가 전깃줄에 앉아 있었느냐 아니면 시속 30km로 날아가고 있었느냐에 따라 최종 결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물리학의 법칙들을 적용하려면, 시스템의 초기상태를 알아야 합니다.


자연법칙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되살아나면서 자연법칙과 신의 개념을 조화시키려는 노력도 새로 등장했습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신은 윤리적 명제나 수학 정리의 참 혹은 거짓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지만, 자연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신은 자연법칙을 정했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신의 권위를 침해한 면이 있지만, 데카르트는 자연법칙이 변경 불가능한 까닭은 그것이 신의 고유한 본성을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신의 권위를 옹호했습니다. 그가 보기에 세계는 신에 의해 작동하기 시작했지만, 그 다음에는 신의 개입 없이 완전히 혼자서 작동합니다.


영국의 물리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자연철학자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1643-1727)도 비슷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가 1687년에 발간한 세 권짜리 저작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는 고전역학의 기본 바탕을 제시하며 과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저서에서 뉴턴은 다음 3세기 동안 우주의 과학적 관점에서 절대적이었던 만유인력universal gravitation과 세 가지의 운동 법칙을 저술했습니다. 그의 만유인력과 세 가지의 운동 법칙은 근대적 과학 개념으로 널리 수용되었습니다. 그의 법칙은 지구와 달 그리고 행성들의 궤도를 설명했으며, 밀물과 썰물 등의 현상을 설명했습니다. 그가 창조한 방정식들과 그것들에서 우리가 도출한 정교한 수학적 개념들의 체계는 현재도 가르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할 때, 기술자가 자동차를 설계할 때, 물리학자가 화성에 갈 로켓의 발사 방향을 결정할 때 항상 이용되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에서 자연법칙은 대개 수학의 언어로 표현됩니다. 자연법칙은 모든 사례에서 보편적으로 성립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규정된 조건들에 맞는 사례들에서는 예외 없이 성립해야 합니다. 스티븐 호킹은 물체들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운동하는 사례들에서는 뉴턴의 법칙들이 수정되어야 하지만, 뉴턴의 법칙들을 법칙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광속보다 훨씬 느린 속도들만 등장하는 일상세계의 조건에서는 매우 훌륭한 근사적 법칙으로 성립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호킹은 법칙들이 자연을 지배한다면, 세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고 말합니다.


1. 법칙들의 기원이 무엇인가?

2. 법칙의 예외, 즉 기적이 존재할까?

3. 가능한 법칙들의 집합은 오직 하나뿐일까?


세 가지 중요한 질문에 대해 과학자와 철학자 그리고 신학자들은 다양하게 대답합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전통 대답은 법칙들이 신의 작품이라는 것으로 케플러, 갈릴레오, 데카르트, 뉴턴이 이런 입장을 취했습니다. 호킹은 이러한 대답은 신을 자연법칙들의 화신으로 정의하는 것이나 다름 아니라고 일축합니다. 이런 대답은 하나의 수수께끼를 다른 수수께끼로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통적으로 선명하게 양분되는데, 고대 그리스의 저자들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칙에 예외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성서의 관점을 채택할 경우, 신은 법칙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예외를 허락해달라는 기도를 들어주는 존재입니다. 신은 죽음이 임박한 환자를 치유하고, 가뭄을 서둘러 끝내며, 축구 경기에서 우리나라는 승리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기독교 사상가들은 신이 법칙들을 일시적으로 무력화하고 기적을 성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뉴턴도 그런 기적을 믿었습니다. 뉴턴은 신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행성들의 궤도가 불안정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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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이 제기하는 시민의 미덕과 법의 문제



『정의란 무엇인가?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의 저자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1953-)은 정치철학의 중대한 문제 하나로 정의로운 사회라면 시민의 미덕을 장려해야 하는가? 아니면 법이 미덕에 관한 서로 다른 개념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시민 스스로 최선의 삶을 선택하도록 해야 하는가?를 꼽습니다.

마이클 샌델은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John Rawls(1921-2002)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 Liberalism and the Limits of Justice』(1982)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습니다. 샌델은 1980년부터 하버드대학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민의 미덕과 관련하여 법이 강제성을 띠어야 하는가 아니면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샌델을 가격폭리처벌법에 대한 찬성론자와 반대론자의 입장을 예로 듭니다. 그는 가격폭리처벌법에 찬성하는 주장이 대개 행복이나 자유보다는 더 본능적인 것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가격폭리처벌법에 대한 찬성론자와 반대론자의 입장 모두 세 가지 항목, 즉 행복의 극대화, 자유의 존중, 미덕의 추구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 셋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정의를 규정합니다. 그리고 이는 샌델이 강의를 통해 꾸준히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절박함을 이용해먹는 약탈자에게 분노하고, 횡재라는 포상을 내리기는커녕 그들을 처벌하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정서는 공공정책이나 법에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원초적 감정으로 무시되곤 합니다. 가격폭리에 대한 분노는 자격 없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얻는다고 생각될 때 느끼는 특별한 종류의 화, 즉 부당함에 대한 화, 즉 도덕적 주장의 표현입니다.

탐욕은 악덕, 즉 나쁜 태도이며, 특히 타인의 고통을 망각하게 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는 개인의 악덕으로 끝나지 않고 시민의 미덕과 충돌합니다. 사회는 탐욕스러운 행동에 벌을 내림으로써 공동선common good을 위해 다 같이 희생을 감수하는 시민의 미덕을 지지합니다. 샌델은 미덕 주장의 도덕적 효력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다른 주장에 우선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건 아니라고 말합니다.

가격폭리처벌법에 찬성하는 사람들조차 미덕 주장은 불편한데, 그것이 행복과 자유에 호소하는 논리적 주장이라기보다는 심판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누구나 적은 소득보다는 많은 소득을 원하고, 사람들이 돈을 어떻게 쓰든 그것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강요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는지 알아볼 수는 있지만, 그들의 선택을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샌델은 중요한 점으로 “강요받기보다는 직접 선택했는가, 직접 선택했다면 어느 정도까지 그렇게 했는가”를 꼽습니다. 그는 미덕을 주장하는 것은, 탐욕이 악덕이니 주정부가 나서서 억제해야 한다는 심판을 기초로 한다면서 과연 누가 미덕과 악덕을 판단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다원화 사회의 시민들은 그런 판단에 반대합니다. 미덕에 대한 판단을 법으로 규정하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이런 우려에 맞닥뜨렸을 때 사람들은 대개 정부가 미덕과 악덕에 관해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선한 마음가짐을 주입하거나 악한 마음가짐을 억제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샌델은 정치철학의 중대한 문제 가운데 하나로 가격폭리에 반응하는 우리의 이중적 모습을 꼽습니다. 자격 없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얻을 때 모든 사람이 분노하고, 인간의 불행을 이용하는 탐욕은 포상이 아닌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법을 만들어 미덕을 옹호하려 할 때는 우려를 표하는 이중적 모습을 예로 듭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을 정의라고 가르쳤습니다. 누가 무엇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결정하려면, 어떤 미덕에 영광과 포상을 주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바람직한 삶의 방식부터 심사숙고해야만 무엇이 정의로운 법인지 알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법은 좋은 삶을 묻는 질문에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반면 18세기에 이마누엘 칸트로부터 20세기의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정치철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권리를 규정하는 정의의 원칙은 미덕과 최선의 삶에 관한 주관적 견해에 좌우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 각자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대의 정의론은 미덕에서 출발하는 데 반해 근현대의 정의론은 자유에서 출발하는 것이 다릅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대조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데, 오늘날 정치를 움직이는 정의에 관한 주장들, 특히 철학자들이 아닌 일반인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더욱 복잡한 그림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샌델은 우리가 내세우는 주장은 언뜻 보기에는 경제적 풍요를 지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그런 주장에 찬성하거나 맞서면서 어떤 미덕이 영광과 포상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좋은 사회가 장려해야 하는 생활방식은 무엇인지에 관해 슬쩍 다른 신념을 넘보기 일쑤라고 말합니다. 즉 풍요로움과 자유를 굳건히 지지하면서도 정의에서 심판이라는 한 가닥 끈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정의에 선택뿐 아니라 미덕도 포함된다는 생각은 뿌리가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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