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는 RNA을 합성하여 세포의 신진대사 활동을 관장한다


살아있는 세포는 은하의 별의 세계만큼 복잡하고 정교한 체계를 이룹니다. 세포라는 이름의 이 지극히 정교한 기구는 40억 년의 긴 세월을 거치면서 힘들게 걸어온 진화의 결정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 있는 영양분들은 세포라는 장치를 통해 그 모습과 성격이 계속해서 바뀝니다. 오늘의 백혈구 세포가 엊그제 먹은 시금치나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세포는 어떻게 이 일을 수행할까? 세포 안에는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물들이 미로같이 늘어져 있는데, 이것들이 세포 형태를 유지하고 준비하는 등 생명 현상에 필요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세포 안에 있는 분자 덩어리들은 거의 대부분 단백질입니다. 왕성하게 활동 중인 것들이 있는가 하면 대기 중인 것들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단백질은 세포 안에서 화학 반응을 조절하는 효소입니다. 효소는 공장의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숙련 노동자와 같아서 자신의 맡은 바 기능을 분자 수준에서 수행합니다. 효소가 공장의 주어진 기능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아닙니다. 그 주체는 핵산입니다. 효소들은 그저 핵산이라는 감독관이 보내는 지침에 따라 행동할 뿐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을 만들어내는 작업도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야 가능합니다. 핵산은 세포의 핵에 자리합니다. 『코스모스 Cosmos』(1980)의 저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은 핵이 세포 왕국에서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구궁궁궐과 같은 곳에 비유합니다.

세포의 핵 속에는 수많은 코일과 가닥이 서로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그것들이 DNA와 RNA라는 이름의 두 가지 핵산입니다. DNA는 무엇을 해야 할지 업무 수행의 구체적 단계를 알고 있으며, 그 내용을 기술하는 코드를 갖고 이에 따라 지침을 하달합니다. RNA는 DNA가 하달하는 지침들을 받아서 세포의 여기저기로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것들은 40억 년에 걸친 진화의 정수로서 세포가 또는 나무가, 혹은 인간이 생명 현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활동의 모든 정보를 자기 안에 담고 있습니다. 세이건은 인간의 언어로 기술할 경우 인간 DNA의 총 정보는 두꺼운 책 100권에 해당한다고 말합니다. 한술 더 떠서 DNA는 자신을 복제하는 데 필요한 정보도 모두 갖고 있으며, 복제는 아주 완벽하게 이뤄집니다. 복제 과정에서 차이가 생기는 경우는 비록 미소한 차이라도 지극히 드뭅니다. 그러므로 DNA는 참으로 엄청난 양과 질의 정보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DNA는 완벽한 자기 복제를 통해 유전형질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일을 합니다. 이와 더불어 핵의 DNA는 전달자 RNA라고 불리는 또 다른 핵산을 합성하여 세포의 신진대사 활동을 관장합니다. 전달자 RNA는 핵 밖으로 이동한 후 정확한 시간과 장소에서 특정 효소의 생성을 조절합니다. 결과적으로 효소가 하나 생성되고, 이 효소는 세포 내 화학 반응의 특정 단계를 관리합니다.

인간의 DNA는 10억 개의 뉴클레오티드로 연결된 두 개의 나선이 이루는 매우 긴 사다리처럼 생겼습니다. 즉 DNA 분자는 가로대를 10억 개나 가진 긴 사다리입니다. 뉴클레오티드들이 이룰 수 있는 조합의 대부분은 아무 쓸모도 없는 단백질을 합성하므로 생명의 관점에서 무의미합니다. 우리같이 복잡한 생물의 경우에도 유용한 핵산 분자는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용한 핵산을 조합하는 방법의 수는 우주에 존재하는 전자와 양성자의 수를 전부 합한 것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뉴클레오티드의 순서를 어떻게 바꾸어야 새로운 인류를 만들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바람직한 특성을 인간에게 부여하기 위해서 뉴클레오티드를 우리 맘대로 조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정신이 번쩍 들게 하면서 동시에 불안에 떨게 하는 우리 미래의 한 단면입니다.

진화는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DNA 중합체 효소가 복제 과정에서 실수를 범하면 돌연변이가 생깁니다. 그러나 중합체 효소가 실수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태양에서부터 오는 방사능 입자나 자외선 광자도 돌연변이의 요인이 됩니다. 또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높은 에너지의 우주선 입자나 주위 환경의 화학 물질 때문에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은 뉴클레오티드를 변화시키거나 핵산의 끈을 꼬거나 묶습니다. 돌연변이율이 너무 높으면 40억 년 동안 공들여 쌓아온 진화 유산의 탑이 송두리째 무너집니다. 반대로 너무 낮으면 미래의 환경 변화에 적응할 새로운 종이 모자랍니다. 생물의 진화는 돌연변이와 자연선택 사이의 정확한 균형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균형이 이뤄질 때 새로운 환경에 놀랄 만큼 잘 적응하는 생물들이 탄생합니다.

인간 세포 하나에 들어있는 뉴클레오티드의 총수는 대략 100억 개나 됩니다. 놀라운 점은 100억 개 중의 단 하나가 큰 차이를 낳는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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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점 돌연변이와 역위 그리고 의태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점 돌연변이point mutation’라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드문 경우로 책에서 단 하나의 문자 오식에 의한 오류와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드문 종류의 돌연변이를 ‘역위inversion’라고 하는데, 염색체의 일부가 양단으로 잘려서 반대의 위치에 다시 붙는 것입니다. 염색체의 일부가 단순히 거꾸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염색체의 전혀 다른 부분에 붙는 경우도 있고, 전혀 다른 염색체에 붙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 유전 단위는 미래의 개체군 내에 퍼질 것이고, 유전자 복합체는 세월이 지나는 사이에 이와 같이 큰 폭으로 재조립되어 편집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의태mimicry’로 알려진 현상이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나비는 구역질나는 맛이 있는데, 그 나비들은 선명하고 눈에 띠는 색깔을 하고 있어 새들이 그 경고 표지를 기억하여 그런 종류의 나비를 피합니다. 반면 맛이 나쁘지 않은 다른 종류의 나비는 잡혀 먹힙니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나비들은 나쁜 맛의 나비를 흉내 낸다고 합니다. 즉 나쁜 맛의 나비를 닮은 색깔과 형태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박물학자들도 종종 그것들에 속는 경우가 있으며, 심지어 새들도 속는다고 합니다. 의태의 유전자는 자연선택상 유리하게 됩니다. 이것이 의태가 진화하는 이유입니다. 어떤 나비는 A종에 의태하는 반면, 그 형제 나비는 B종에 의태합니다. 자연계에서는 중간형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사육하면 특수한 일이지만 중간형 나비를 볼 수 있습니다.

유전 물질의 최소 단위인 시스트론은 한 몸을 이탈하여 다른 몸으로 들어갈 때, 즉 다음 세대로 여행하기 위해 정자나 난자에 실릴 때 이전의 항해에서 이웃하던 자들인 먼 조상의 몸으로부터 긴 방랑의 여행을 같이 해온 옛 길동무와 한 조각배에 함께 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염색체상의 이웃한 시스트론은 단단히 뭉쳐 길동무를 이룹니다.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와 섞이지 않고 그대로 중간 세대를 통과하여 여행합니다. 유전자 입자성은 노쇠하지 않습니다. 유전자가 백만 년을 살았다고 해서 백 년쯤 산 유전자보다 쉽게 죽는 것은 아닙니다. 유전자는 자기의 목적에 따라 자기의 방법으로 몸을 조절하며, 몸이 노쇠하거나 죽음에 이르기 전에 죽을 운명에 있는 그들의 몸을 차례로 포기해버림으로써 세대를 거치면서 몸에서 몸으로 옮겨갑니다. 유전자는 불멸의 존재인 것입니다. 도킨스는 사람의 수명이 앞으로 연장되겠지만, 유전자의 예상 수명은 백만 년 단위로 측정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성생식은 자기복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자식은 우리의 절반밖에 안 되고, 우리의 손자는 우리의 4분의 1밖에 안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자손들은 우리의 아주 작은 부분만 지닙니다. 유전자는 교차에 의해 파괴되지 않고, 단지 파트너를 바꿔 행진을 계속할 따름입니다. 유전자들은 자기복제자이고, 우리는 유전자들의 생존기계인 것입니다. 물리적 DNA 분자의 생명은 수개월 정도입니다. 그러나 DNA 분자는 이론적으로 자신의 사본 형태로 1억 년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유전자는 사본 형태의 잠재적 불멸의 성질을 갖습니다.

도킨스는 유전자의 수준에 있어 이타주의는 열세하고 이기주의가 우세한 것에 주목합니다. 유전자는 생존 중에 그 대립 유전자와 직접 경쟁합니다. 유전자 풀 내의 대립 유전자는 다음 세대의 염색체상의 한 자리를 놓고, 이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경쟁자입니다. 대립 유전자를 희생하여 유전자 풀 속에서 자기의 생존 기회를 증가하도록 행동하는 유전자는 어느 것이든, 오래 살아남는 경향이 있습니다. 유전자는 이기주의의 기본단위인 것입니다. 대립 유전자는 생명이 걸린 경쟁 상대이지만 다른 유전자는 온도, 먹이, 포식자 혹은 동료와 같은 환경의 일부입니다. 유전자의 작용은 이와 같은 환경에 좌우됩니다.

‘우리는 왜 늙어서 죽는가’라는 의문에 대해 도킨스는 성공한 유전자는 자기 생존기계의 죽음을 적어도 생식활동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는 것으로 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지니고 있는 개체를 죽게 하는 유전자를 ‘치사 유전자lethal gene’라고 합니다. 치사 유전자는 유전자 풀에서 제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후기에 작용하는 치사 유전자가 초기에 작용하는 치사 유전자에 비해 유전자 풀 속에서 더 안정적입니다.

유성생식하는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 모두를 자기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조작합니다. 교차하는 유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다른 유전자 복제의 오차율을 조작하는 돌연변이 유전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DNA의 진정한 목적은 생존하는 것뿐입니다. 여분의 DNA는 기생자로서 다른 DNA가 만든 생존기계에 편승하고 있는 무해하고 무용한 길손에 불과합니다. 성과 염색체 교차에 의해 유전자 풀은 잘 섞여지며 유전자는 부분적으로 옮겨 다닙니다. 진화는 유전자 풀 속에서 어떤 유전자는 수를 늘이고 어떤 유전자는 수를 줄이는 과정입니다. 도킨스는 이타적 행동과 같은 어떤 형질의 진화를 설명하려고 할 때 ‘이 형질은 유전자 풀 속에서 유전자의 빈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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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회화는 정신이 표출하고자 하는 점을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나타낸다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미술과 학예를 연결시킨 최초의 인물을 꼽으라면 레오나르도라 할 것입니다. 그는 『회화에 관한 논문』에서 드로잉을 시에 비유하면서 느낌, 인상,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매개여야 한다고 했으며, 드로잉의 기능은 기교적·과학적 화제에 시각적으로 시사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드로잉을 시인의 언어에 비유하면서 객관적 실재를 가장 정확하게 서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드로잉하는 사람은 이야기식 회화를 구성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의 외양을 예리한 선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억제해야 하며, 대부분 화가들이 목탄으로 세심하게 묘사하는데 이런 방법을 삼가야 한다. 세심하게 묘사하는 것이 완벽하게 보일런지는 몰라도 예술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살아 있는 생명체가 갖고 있는 사고나 감정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드로잉을 완성시키고, 아름답게 하며, 모양을 잘 배열하기 위해서 화가는 터무니없는 모양을 그리기도 하고 높거나 낮게 또는 멀리 있거나 바로 앞에 있는 것인 양 그려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그가 보여주는 지식에 대해 칭찬받을 자격이 없다. 자, 시인들이 어떻게 시를 짓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가? 아름다운 언어로 시를 쓴 시인들에게는 몇 구절을 삭제해서 나은 문장으로 새롭게 쓰는 게 문제될 게 없다. 그러므로 화가는 대상의 부분을 대충 그려야 하며, 인물의 아름다움과 장점을 깊이 생각하기 전에 인물의 동작을 적절하게 재현하는 데 숙고해야 하고, 이야기식 회화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정신적인 점을 유지해야 한다.

레오나르도는 원근법의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자연계의 원인과 이유를 탐구하다 보면 주로 빛이 관람자를 사로잡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학의 특성 중에서 증명의 확실성이야말로 탐구자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그러므로 원근법은 인간의 모든 지식 체계와 학설 중에서 으뜸으로 인정되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술이 문학보다 수작업이 훨씬 많이 요구되기 때문에 품격이나 권위 면에서 시에 비해 뒤떨어진 대접을 받은 건 사실입니다. 미술은 정신보다는 육체적 노동을 더 요구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레오나르도는 반박했습니다.

회화가 그 어떤 것보다도 손으로 하는 일이라고 해서, 또 상상을 통해 착상한 것을 손으로 만든다고 해서 회화를 기계적인 일로 보는데, 작가들 역시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펜을 이용해 손으로 적지 않는가.

레오나르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화가의 창조력이 시인에 못하지 않음을 역설하면서 회화가 어떤 의미에서는 시보다 더 완벽하게 재현해내며, 특히 시가 뽐내는 도덕적 목적을 회화도 시만큼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시인이 ‘내가 대단한 이야기를 하나 짓겠다’고 말한다면, 화가라고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 아펠레스가 ‘비방’이란 주제의 작품을 그렸듯이 시가 도덕철학에 관련되었다면 회화는 자연철학과 관련이 있다. 시는 정신활동을 묘사하며 회화는 정신이 표출하고자 하는 점을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나타낸다. 시가 무시무시한 이야기로 겁을 준다면 회화도 같은 이야기를 재현함으로써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레오나르도는 회화가 동작과 얼굴표정을 통해 인간의 행위를 보여주기 때문에 도덕적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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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여섯 명의 인물과 늙은 남자의 옆모습>, 16.6-26.5cm.


레오나르도의 사고와 감정은 그가 말한 대로 인물의 제스처, 태도, 행위 등으로 나타났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 글을 쓰듯 신속하게 손을 놀렸습니다.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궁전 소속 시인 베르나르도 벨린치오니Bernardo Bellincioni(1492년에 사망)는 레오나르도가 작업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사람입니다. 1493년에 출간한 『서리 Rime』에서 그는 레오나르도의 드로잉을 먼저 칭찬하고 다음에 채색을 칭찬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주장에 의하면 회화는 일종의 정밀한 자연과학이며 또한 모든 학문 위에 군림합니다. 그 이유는 학문이 “모방되어질 수 있는 것”, 즉 비인격적인 것인 데 반해 예술은 개인 및 개인의 타고난 재능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화가에게는 수학적 지식뿐 아니라 시인의 천재성에 필적할 만한 재능까지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의 말로 전해온 “회화는 말없는 시이고 시는 말하는 회화”라는 격언을 인용하면서 예술 간의 서열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이 회화의 결점이라면 시 역시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결점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이러한 논쟁 속에서 예술가들의 새로운 자아의식과 독자적인 창작활동은 그들의 지위를 한층 고양시켰습니다. 주문받은 일에 충실하지 않기도 했고, 예술적 문제를 주문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했으며, 리피는 수공업적 작업을 하듯 지속적으로 일한 것이 아니라 종종 하던 일을 제쳐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습니다. 페루지노는 발주자에게 배짱을 부리는 오만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자기가 맡은 일을 완수하지 않은 경우는 미켈란젤로에서 두드러집니다. 예술가의 지위가 얼마나 상승되었는지는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의 생애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베로키오의 공방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베로키오의 작업장은 마스터 예술가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은 상태로 마음만 먹으면 베로키오를 도와 부수입을 올릴 수 있었고, 가능하다면 자신의 독단적인 사업에 매진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안토니오와 피에로 폴라이우올로 형제의 작업장과도 관련을 맺었습니다. 그는 형제의 작업장에서 인체운동에 따른 근육의 변화와 뒤틀린 인체의 근육을 배웠습니다. 그는 폴라이우올로의 <벌거벗은 남자들의 전투>를 보고 해부학의 필요성과 근육의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자기발전을 위해 남의 작업장 찾기를 거리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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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우첼로의 <산 로마노 전투에서의 니콜로 마우루지 다 톨렌티노>, 1450년대, 패널에 에그 템페라, 182-320cm.

1432년 피렌체가 시에나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역사적인 사건을 그린 것입니다. 세 개의 패널에 그려졌는데, 뿔뿔이 흩어져 현재 하나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 또 하나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 마지막 것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품입니다.


레오나르도는 늙은 파올로 우첼로Paolo Uccello(Paolo di Dono, 1396/7-1475)의 작업장에도 갔는데, 기하와 투시법에 관심이 많은 우첼로로부터 과학적·자연적 묘사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사리에 의하면 과학을 사랑한 우첼로는 연거푸 밤을 새다시피 하며 연구에 정진했습니다. 화가, 모자이크 제작자, 상감 세공가, 장식가로 초기 르네상스의 주요 예술가들 가운데 하나인 우첼로는 ‘새’란 뜻으로 바사리에 의하면 이런 별명을 얻게 된 건 그가 동물을 좋아했고, 특히 새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이 처음 기록된 건 1412년경 기베르티의 작업장에서였으며, 조각가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425년에 베네치아로 이주해 모자이크 작품을 주로 제작했지만, 현존하는 건 없습니다. 1432년 피렌체로 돌아와 1436년 피렌체 대성당에 커다란 크기의 프레스코를 그렸습니다. 양식의 특징은 원근법에 의한 균형에 있습니다. 그는 1430년대와 40년대에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딸린 수도원에 구약성서를 주제로 두 점의 커다란 프레스코 시리즈를 그렸으며, 1455년경에는 메디치 궁전을 장식하기 위해 세 개의 패널에 <산 로마노 전투에서의 니콜로 마우루지 다 톨렌티노> 시리즈를 그렸습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피렌체 대성당의 시계 장식과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이 있으며, 두 점의 매혹적인 그림은 말년에 그린 것들로 <성 조지와 용>과 <숲속의 사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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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뒷다리로 선 말>, 15.3-14.2cm.


레오나르도는 우첼로를 닮아갔습니다. 두 사람 모두 수학을 좋아했고, 흥미로운 형상에 관심이 많았으며, 자연과 동물의 세계를 연구했고, 특히 말을 좋아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지나칠 정도로 정밀함과 단색주의, 그리고 스펙트럼의 끝을 어둡게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1470년대의 우첼로의 작품은 유럽에 익히 알려진 고딕 스타일이라서 유행이 지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때문에 바사리는 알베르티와 동시대인인 그를 브루넬레스키, 그리고 마사초와 동시대인으로 기술하면서 사망한 해를 1475년이 아닌 1432년이라고 적는 우를 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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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톨레마이오스의 모형과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의 모형


 

 

몇 년 전 이탈리아 몬차 시의 시의회는 금붕어를 둥근 어항에서 키우는 행위를 금지했습니다. 이 조치를 주창한 사람의 설명에 따르면, 금붕어를 둥근 어항에서 키우는 건 잔인한 행위인데, 그런 어항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금붕어는 실재의 왜곡된 상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호킹이 묻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실재의 참되고 왜곡되지 않은 상을 본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우리도 거대한 어항 속에서 거대한 렌즈에 의해 왜곡된 상을 보는 건 아니냐고 묻습니다.

호킹은 금붕어의 시각이 우리의 것과 다르더라도 금붕어도 둥근 어항 바깥의 물체들의 운동을 지배하는 과학법칙들을 정식화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힘을 받지 않는 물체의 운동을 우리는 직선운동으로 관찰하겠지만, 금붕어는 곡선운동으로 관찰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금붕어는 자기 나름의 왜곡된 기준 틀frame of reference을 토대로 삼아 과학법칙들을 정식화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법칙들은 항상 성립하면서 금붕어로 하여금 어항 바깥의 물체들의 미래 운동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해줄 것입니다. 금붕어가 세운 법칙들은 우리의 틀에서 성립하는 법칙들보다 더 복잡하겠지만, 호킹은 복잡함이나 단순함은 취향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금붕어가 그런 복잡한 이론을 구성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타당한 실재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호킹은 말합니다.

다른 실재상의 유명한 예가 기원후 150년경 프톨레마이오스Claudios Ptolemaeos(85?-165?)가 천체들의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도입한 모형입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그는 자신의 연구를 13권의 책으로 출간했는데, 아랍어 제목이 『알마게스트 Almagest』입니다. 아라비아 천문학자들이 그의 책을 ‘최고’라는 뜻의 『메지스테 Megiste』라고 불렀고, 후에 접두어로 정관사 al이 붙어 Almagest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백과사전적입니다. 이 책은 지구가 공 모양이고 움직이지 않으며, 우주의 중심에 있고, 천체들까지의 거리에 비해 미미할 정도로 작다는 생각의 근거를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모형에서 지구는 중심에 멈춰 있고 행성들과 별들이 주전원이 포함된 복잡한 궤도를 따라서 지구 주위를 돌았습니다. 주전원이란 큰 바퀴에 붙어있는 작은 바퀴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 지식인들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생각을 따랐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비주의적인 이유에서 자구가 우주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생각이 유럽 사상의 대부분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모형은 가톨릭에 의해서 1,400년 동안 공식 교리로 채택되었습니다. 폴랜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Niclaus Copernicus(1473-1543)가 저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De revolutionbus orbium coelestium, libri VI』에서 대안 모형을 제시한 건 1543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연구한 내용을 담은 그의 저서는 그가 타계한 해에 비로소 출간되었습니다. 지동설을 주장하여 근대 자연과학의 획기적인 전화,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을 가져온 그는 지구와 태양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지구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천명했는데, 이는 당시 누구도 의심하지 않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는 관측 결과와 완전히 부합한 것이 아니어서 이후 많은 과학자들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 등에 의해 수정되고 보완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는 성서와 충돌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성서에는 그런 명확한 진술이 없습니다. 성서가 쓰일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평편하다고 믿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는 지구가 멈춰있는지 여부에 관한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고, 그 논쟁의 정점은 1633년에 갈릴레오가 받은 재판이었습니다. 갈릴레오는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를 옹호하고 “성서에 반한다고 선언되고 명시된 견해를 개연성 있는 견해라고 주장하고 옹호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단 혐의의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여생이 가택연금에 처해지는 유죄판결을 받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습니다. 그는 “에푸르 시 무오베 Eppur si muove”, 즉 “그래도 그것은 돈다”라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1992년에야 갈릴레오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것이 잘못이라고 인정했습니다.

호킹은 저서 『위대한 설계 The Grand Design』(2010)에서 흥미로운 논점을 제시합니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체계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체계 모두 우주의 모형으로 쓰일 수 있다고 역설적으로 말합니다. 그는 천체들에 관한 우리의 관찰 자료들을 지구가 멈춰있다는 전제하에서 설명할 수 있고, 태양이 멈춰있다는 전제하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둥근 어항 속의 금붕어의 시각으로도 우리의 시각으로도 우주의 모형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호킹은 코페르니쿠스의 모형이 우리 우주의 본성에 관한 철학적 논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모형의 진정한 장점은 단지 태양이 멈춰있는 기준 틀에서 운동 방정식들이 훨씬 더 간단하다는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호킹은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가상실재인지를 묻는 ‘莊子(장자)의 나비’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실재에서보다는 웹사이트들의 모조된 실재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더 선호하는 점을 지적하면서 우리가 혹시 어떤 컴퓨터가 창조한 연속극의 등장인물들에 불과한 것이 아닐지, 어떻게 알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는 우리가 가상실재에 살고 있다면, 사건들이 어떤 논리나 일관성이 없이도 발생하고 법칙들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상실재에 사는 사람들은 그 세계 바깥으로 나가 그 세계를 바라볼 수 없는 한 그들로서는 그들의 실재를 의심할 근거가 없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나비의 꿈에 등장하는 허구적인 존재라는 莊子(장자)의 버전입니다.

호킹이 이렇게 말하는 건 독자들로 하여금 다음의 결론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림이나 이론에 의존하지 않는 실재의 개념은 없다.” 이 입장에 서면, 물리학적 이론 혹은 세계상은 수학의 성격을 띤 모형과 그 모형의 요소들을 관찰 자료와 연결하는 규칙들입니다. 이 입장은 현대 과학의 해석에서 기본 골격의 구실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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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터 람스의 디자인 10계명을 본 소감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어제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인사동으로 향했습니다. 이른 봄날에 연휴라서 길엔 놀라울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인사동에서 갈비탕을 먹고 남들처럼 줄을 서서 찹살떡을 하나 사 먹었습니다. 이것저것 사진을 찍으며 인사동을 한가롭게 거닐다가 택시를 타고 통의동에 있는 대림미술관으로 갔습니다.

영어 제목은 Less and More: The Design Ethos of Dieter Rams입니다. Less and More가 디자인의 개념을 한 마디로 잘 말해줍니다. 디터 람스Dieter Rams(1932-)는 산업디자인계의 전설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전시회는 작년 12월 17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전시회는 오사카와 도쿄를 거쳐 런던의 디자인 미술관과 프랑크푸르트에서 전시되었고, 3개월의 전시가 끝나면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중요한 전시회임을 말해줍니다.

디터 람스는 1955년부터 1995년까지 독일 BRAUN사의 디자인 팀을 이끌어 온 산업디자인계의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Less and More는 그가 스스로 정의한 디자인 철학입니다. 그는 디자인의 익명성과 프로세스를 매우 중시하여 엔지니어, 마케터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미학적 내구성과 기능성을 합리적으로 추구했습니다.

전시회에는 디터 람스 외에 바우하우스와 울름조형대학으로 상징되는 독일 디자인의 연장선상에서 디터 람스의 디자인 철학을 잇는 Jomatham Ive, Jasper Morrison, Fukasawa Naoto의 최근 디자인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것이 디터 람스의 작품인지 어느 것이 그의 추종자들의 것인지 살펴보는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다음은 디터 람스의 좋은 디자인을 위한 10계명입니다.


1 Good design is innovative.

2 Good design makes a product useful.

3 Good design is aesthetic.

4 Good design makes a product understandable.

5 Good design is honest.

6 Good design is unobtrusive.

7 Good design is long-lasting.

8 Good design is thorough down to the last detail.

9 Good design is environmentally friendly.

10 Good design is as little design as possible.


이상의 10계명을 마음에 두고 다음의 작품들을 감상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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