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최초의 매너리스트 작품 <바쿠스>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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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로마 칸셀레리아의 전경


1495년 볼로냐에서 피렌체로 돌아온 미켈란젤로는 현재 이름만 전해지는 두 점의 조각 <세례 요한>과 <에로스>를 제작했습니다. 특히 1630년 초 영국 왕 찰스 1세에게 넘어갔다가 훗날 화이트홀 궁전의 화재로 소실된 <에로스>는 1496년 당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막 발굴해낸 고대 조각상 같은 이 작품은 중간상인들을 통해 골동품으로 판매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이 뛰어난 솜씨 때문에 미켈란젤로는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처음 로마로 간 건 1496년 6월 25일이었습니다. 그는 피에로 데 메디치의 소개장을 교황 다음으로 막강한 권력과 재력을 갖고 있었던 추기경 산 조르조 리아리오에게 건네며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로마에 도착할 무렵 리아리오는 새로운 궁전 칸셀레리아를 건립했는데 이곳에서 산 조르조의 식구 250명가량이 살았으며 미켈란젤로는 잠시 그의 식구가 되어 그곳에 묵었습니다. 리아리오는 골동품을 아주 많이 소장하고 있었고 미켈란젤로는 그것들을 통해 고대 미술에 대한 직접적인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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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바쿠스>, 1496-97, 대리석, 높이 184cm. 받침대를 포함하면 203cm.

성기가 잘려나갔는지 일부러 생략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성기가 없는 바쿠스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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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텐 판 헴스커크의 <갈리의 정원에 있는 바쿠스 드로잉>

이 드로잉에서 바쿠스의 오른손이 떨어져나갔는데, 다른 고대 작품들과 어울리게 하려고 일부러 떼 낸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후 손과 술잔은 복원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1497년 7월 1일 아버지에게 “추기경이 의뢰한 것을 제작하고 있으니 피렌체로 돌아가지 않아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만족스럽게 일을 마치고 그 대가를 받기 전에는 여기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대가들은 서두름이 없기 때문에 천천히 제작해야 합니다”라고 편지에 적었습니다. 이 작품은 <바쿠스>로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탄생시킨 것입니다. 하지만 리아리오는 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웃에 살면서 그의 일을 도와주는 야코포 갈리에게 주었습니다. 당시에는 예술의 내용을 결정하는 주체가 의뢰자였기 때문에 이 고전적인 현대 작품은 골동품을 선호하는 리아리오에게는 저급한 것으로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갈리의 정원에 로마 고대 조각들과 함께 장식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지난 8년 동안 조각을 대여섯 점밖에 제작하지 않았고, 그것들 모두 작은 것들이었으므로 실제 사람 크기보다 큰 <바쿠스>는 최초의 조각다운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패기와 더불어 대리석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충분했으며 스물두 살의 미켈란젤로에게 <바쿠스>는 야심적인 작품으로 대리석 깎는 솜씨가 탁월함을 시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것은 고대의 이상화하는 형식을 살려낸, 당대의 감각으로 보면 새로운 영감에 의한 고전적 작품입니다.

미켈란젤로는 리아리오, 갈리, 미래의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될 지울리아노 델라 로베레, 그리고 그 외의 후원자들이 소장한 고대 미술품을 보고 고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으며, 고대 조각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대 조각을 단지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재창조했습니다. <바쿠스>를 제작할 1496년 당시에만 해도 그가 제작한 것의 원형이 될 만한 고대 조각은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고대의 조각을 좋아했더라도 고스란히 모방한 것이 아니라 고대에 어울릴 만하게 창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조각이 그리스 조각을 빼닮은 것처럼 보여 고대 조각들과 나란히 놓을 경우, 멀리서 보면 고대 그리스인의 작품처럼 보이지만 근접해서 보면 그의 강렬한 표현 의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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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다윗>, 1501-04, 대리석, 높이 4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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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바쿠스>의 부분.

콘디비는 비틀거리는 바쿠스는 독한 술의 은유이며, “포도와 포도주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자는 결국 자신의 삶을 망친다”는 걸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작품과 <다윗>에서 15세기 피렌체 자연주의 최후의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바쿠스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묘사하겠다는 생각은 도나텔로의 발상에 머문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바쿠스도 술에 취해 오른손으로 잔을 높이 들고 있고 왼손 가까이에는 반인반수이자 호색가로 알려진 사티로스가 포도를 훔쳐 먹으면서 관람자를 향해 미소 짓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이 술꾼이 발이 떨리고 가득 채워진 술잔을 높이 쳐든 채 게슴츠레한 눈길로 어린 사티로스에게 의지하는 순간을 포착했습니다. 사티로스가 훔쳐 먹는 포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고대 포도주 신인 바쿠스에게는 포도가 얼마든지 있고 그의 머리조차 포도송이로 되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통통한 사티로스를 모델로 삼아 개인적 특성과 거의 여자처럼 부드러운 신체를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환상적 효과를 위해 드릴을 사용해서 사티로스 발아래의 사자 생가죽과 포도송이를 제작했습니다. 미켈란젤로 이전에도 로마인들은 드릴을 사용했고, 그 후에도 17세기를 대표할 만한 조각가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가 드릴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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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바쿠스>의 부분.


최초의 매너리스트 작품으로 알려진 <바쿠스>에서는 미켈란젤로의 고전주의 요소뿐 아니라 자연주의의 요소도 발견됩니다. 이 작품이 콰트로첸토(15세기) 거장들의 작품보다 더욱 자유스럽고 명쾌한 이유는 그가 고전주의적 요소 외에도 이전 세대가 이룬 자연주의적 성과를 계승 발전시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회화에서도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이전 화가들의 작품들은 이들의 작품들에 비해 딱딱하고 어색한 느낌을 줍니다.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에 와서야 회화와 조각은 고전적이면서도 자연스러워졌습니다. 15세기의 자연주의적 노력은 16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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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 양자이론과 상대성이론을 조합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1980년에 처음 제기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넘어서 양자이론까지 고려한 결과였습니다. 호킹은 우리가 완전한 양자상대성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주의 인플레이션에 관한 세부사항들을 연구하는 중에 있으며, 물리학자들은 정확히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전통적인 빅뱅 이론의 예측과는 달리 완벽하게 균일하게 일어나지 않았고, 그 불균일성으로 인해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의 온도가 방향에 따라서 미세한 변이를 나타낸다고 말합니다. 그 변이가 너무 작아서 1960년대에는 관찰될 수 없었으나 1992년 나사의 우주배경복사 위성인 코비COBE 위성(Cosmic Obsever Background Explorer satellite)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2001년에는 COBE 위성의 뒤를 이은 WMAP(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 위성에 의해서 세밀하게 측정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가 우주의 인플레이션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주배경복사의 온도가 거의 완벽하게 균일하다는 점이 인플레이션이 중요한 개념이 되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체의 한 부분을 주변보다 더 뜨겁게 달군 후 방치하면, 뜨거운 부분은 식고 주변은 데워져서 결국 물체 전체의 온도가 균일해집니다. 이와 유사하게 우주의 온도 분포도 언젠가는 균일해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모형은 적어도 일반상대성이론에 입각한 전통적인 빅뱅 이론이 예측한 것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팽창이 인플레이션 기간에 일어났다고 기술한다는 의미에서 빅뱅의 돌연성을 설명합니다.

호킹은 우주의 기원을 기술하려면 일반상대성이론을 더 완전한 이론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양자이론의 지배를 받는 작은 규모의 물질 구조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호킹은 충분히 거슬러 올라간 과거에 우주의 크기는 플랑크 사이즈Planck size, 즉 10-33cm 정도였다고 말합니다. 호킹은 양자이론이 우주의 거시 구조에 대한 연구와는 대체로 무관하지만, 미시 규모의 자연을 기술할 때는 적용되므로 플랑크 사이즈의 규모에서는 양자이론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비록 완전한 양자중력이론이 아직 없더라도 우리가 우주의 기원이 양자적 사건이었다는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인플레이션 기간보다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우주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인플레이션 이론을 도출할 때 양자이론과 상대성이론을 조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조합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호킹은 중력이 공간과 시간을 휘어지게 한다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시간과 공간을 뒤섞어 시공으로 통합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여전히 공간과 달랐고 시작과 끝을 가졌거나,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에 양자이론의 효과들을 추가하면 시공이 아주 심하게 휘어져서 시간이 또 하나의 공간 차원처럼 행동하게 되는 극단적인 경우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호킹은 말합니다. 우주가 일반상대성이론의 지배는 물론 양자이론의 지배도 받을 정도로 작았을 때, 즉 우주 역사의 초기에는 공간 차원이 네 개였고 시간 차원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초기 우주에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호킹은 우주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는 미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우리가 통상적인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초기 우주에 적용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러한 우주는 우리의 경험을 벗어나지만, 우리의 상상력 혹은 수학을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호킹은 시간이 공간 차원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건 시간의 시작에 관한 문제를 제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주의 시작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고 말합니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을 조합하면 우주의 시작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이 무의미해집니다. 호킹은 우주의 역사가 경계가 없는 닫힌 곡면처럼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일컬어 무경계 조건no-boundary condition이라고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우주의 시작에 관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우주가 영원한 과거부터 존재했다고 믿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주의 시작이 있었다고 믿었고 그 믿음에 근거해 신의 존재를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공간처럼 행동한다는 깨달음에서 새로운 대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개달음은 우주의 시작이 있다는 생각에 대한 해묵은 반발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우주의 시작이 과학법칙들에 의해 지배되며 어떤 신의 손길도 필요로 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인플레이션에 의해 야기된 팽창이 완벽하게 균일하게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인플레이션 이론은 초기 우주가 약간의 불균일성irregularity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합니다. 그 불균일성이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에서 관찰된 작은 요동에 대응합니다. 호킹은 초기 우주의 불균일성이 우리에게는 행운이라면서 일부 구역이 다른 구역들보다 밀도가 약간 더 높았으므로 우주가 팽창할 때 그 구역의 물질이 중력 때문에 주변의 물질에 비해 더 느리게 흩어질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중력이 그러한 물질들을 천천히 모았고, 마침내 중력 붕괴가 일어나 물질들이 뭉치면서 은하와 별들이 형성되었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행성들이 형성되었으며, 적어도 한 우주에서는 인간이 출현할 수 있었습니다.

호킹은 우리가 역사를 역행적으로, 즉 현재에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추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가 우주론과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역사가 우리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찰을 통해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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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은 사실과 착각의 근원


 

세상에서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에너지의 형태로 이루어진 부분은 약 4%뿐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인간

이 감각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부분은 10억분의 1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시각이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와 가시광선의 상호작용을 통해 모인 정보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인간의 뇌는 이 정보를 편집하여 세상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냅니다.

눈과 뇌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청각보다는 시각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털처럼 생긴 귀 내부의 청각세포와 파동을 통해 그 세포를 진동시키는 소리의 상호작용 관계에 대한 비밀은 최근에 와서야 밝혀졌습니다.

황제펭귄은 알이 부화하면 수컷 홀로 새끼를 돌보고 암컷은 자신의 배를 채우러 돌아다닙니다. 자신과 새끼를 위해 먹이를 구하는 일은 수컷의 몫입니다. 수컷이 먹이를 물고 돌아올 때 새끼는 아비의 고유한 소리를 인식해야 하고, 수컷은 자기 새끼의 고유한 소리를 인식해야 합니다. 하지만 황제펭귄의 서식지에는 매서운 바람이 몰아칠 때가 많고 주위는 온통 수천 마리의 다른 수컷들과 새끼들이 서로를 찾는 아우성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가 소리를 예리하게 포착하지 못하면 새끼는 죽음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인간보다 민감한 청각을 가진 동물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리듬과 음조와 멜로디를 해석하고 실연의 추억이나 행불행, 심지어 애국심 같은 감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청각 정보를 처리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소리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시끄러운 방에서도 무언가에 집중하면 소리가 줄어들거나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껴집니다.

온스타인이 제시한 사례는 후각과 미각의 중요성과 후각과 미각이 인간의 인지력과 기억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오페라를 관람한 후 베어네이즈 소스를 얹은 스테이크를 먹은 한 남성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이 음식은 그 남성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였지만 그날 밤 몸이 아픈 이후로 그는 가장 좋아하던 소스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오페라나 스테이크, 함께 식사를 즐긴 아내, 그에게 감기를 옮긴 친구에 대해서는 반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물이나 사람보다 소스의 맛과 냄새를 감기라는 부정적인 경험과 더 강력하게 연결시킨 것이었습니다.

맛과 냄새는 분자들(유픽셀의 집합체)이 만들어냅니다. 우리의 혀와 비강에 있는 감각 수용체들은 분자에 대한 정보를 감지하고 그 정보를 뇌로 보냅니다. 그리고 뇌는 감각을 생성하여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킵니다. 맛과 냄새는 뇌를 통해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고 싶고, 먹고 싶지 않은지를 결정합니다. 이는 청각과 시각으로는 알 수 없는 정보입니다.

『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도서출판 知와 사랑)의 저자 레오킴Leo Kim은 감각이 생존의 도구일 뿐 진실을 알려주진 않는다고 말합니다. 오감(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그보다 광활한 우주에 대한 정보들 가운데 아주 일부분만을 일러줍니다. 인간의 몸과 뇌는 빛의 스펙트럼에서 일부분을 감지하고, 공기 중에 파동치는 소리의 조각을 듣고, 수백 종의 분자에서 냄새와 맛을 느끼고, 우리와 소통하는 분자와 진동과 파동의 일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능적 후각 유전자는 생쥐가 가진 기능적 후각 유전자 수의 1/3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눈은 호랑이의 눈만큼 광범위한 빛의 스펙트럼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감각에 이처럼 한계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오킴은 인간의 대뇌피질이 더 섬세한 감각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은 활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주에서 가장 진화했다고 알려진 현대인의 뇌라 해도 우죽 ‘저편’ 세상에서 오는 모든 정보와 감각을 다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뇌는 일종의 여과장치입니다. 뇌는 우주의 극히 일부만을 인식하거나 파악합니다. 뇌는 우주에 관한 모든 정보의 10억분의 1 중에서 다시 100분의 1에 해당하는 정보를 분석하는 데 역량을 집중합니다. 레오킴은 우리의 감각이 현실에 대한 참된 그림을 보여주지 않고, 보여줄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몸과 뇌는 현실에 대한 나의 관점과 지각과 착각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어떨까? 뇌가 마음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만약 세상의 실체가 마음이라면, 그리고 만약 오고가는 분자와 유픽셀들에 의해 내가 우주와 함께 서서히 융합된다면 나의 마음과 의식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마음은 ‘저편’에 있을까, 아니면 내 머리 속에 있을까? 이런 화두는 철학자, 종교인, 과학자들이 수세기 동안 씨름해온 마음-물질의 문제, 그리고 의식의 문제입니다. 그는 과학과 영성의 불화를 진정으로 치유하려면 이 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알베르트 쇤트-죄르지Albert Szent-GyOrgyi는 말했습니다.

세포는 에너지로 움직이는 일종의 기계장치이다. 따라서 세포에 대한 연구는 물질이나 에너지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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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사람이 새처럼 날 수는 없을까?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1496년 1월 2일 “내일 아침 나는 쇠띠를 만들겠다”고 적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비행도구를 처음 고안하려고 했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비행도구를 염두에 두기 시작한 건 피렌체에서부터였으며, 아마 사춘기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우피치에 소장되어 있는 드로잉을 보면 <동방박사의 경배>를 그릴 시기에 이미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482년 레오나르도는 롬바르디아에서 “사람이 새처럼 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적었습니다. 또한 1490년대에 새를 관찰했으며, 일종의 비행원리를 정립하면서 몇 가지 비행기구들을 스케치북에 디자인했습니다. 그는 “새는 수학적 법칙을 따르는 기능을 하는 기구이며, 인간은 이와 같은 모든 운동을 하는 기구를 재생할 능력이 있다”고 적었으며, 1495년 혹은 이듬해에 이 기구를 물리적으로 실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이 새와 같은 날개를 달고 싶어 한 건 고대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일찍이 선각자들이 불투명하게나마 생각한 비행운동에 대한 자료를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중세에 바이드 드 오네쿠르가 인간이 부착할 수 있는 낙하산 같이 생긴 날개를 고안했는데, 레오나르도의 고안과 유사한 것으로 봐서 레오나르도가 그의 드로잉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레오나르도는 헬리콥터처럼 프로펠러를 빠르게 회전하여 상승하는 원리로 날아 낙하산의 원리로 땅에 무사히 내리는 것에 관해 연구했습니다. 그가 생각한 프로펠러의 지름은 10m였고, 날개의 길이는 12m였습니다. 문제는 프로펠러를 돌릴 수 있는 기계였습니다. 그는 새 날개의 무게와 면적에 관한 상관관계를 연구했으며, 따라서 사다새 같은 일부 커다란 새의 경우 날개가 아주 짧은 데 반해 박쥐의 경우 몸체에 비해 아주 커다란 날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절대적인 원리가 적용될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드로잉을 보면 그는 실재 크기로 고안하면서 지레를 이용해 박쥐와 같은 커다란 날개를 사용했는데, 나무로 된 날개의 무게가 200파운드였습니다. 그는 여기서부터 출발하여 무게를 줄일 수 있는 다른 재료와 함께 다양한 날개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가볍고 강한 재료로써 날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에 관해 연구하여 석회를 바른 강질의 소나무, 반수를 먹인 실크, 털을 덮은 캔버스, 기름이나 명반을 바른 가죽, 밑판에 갈대를 엮은 어린 소나무를 생각했고, 탄력을 위한 금속과 기구를 디자인했습니다. 그 중 가장 염두에 둔 건 카누처럼 생긴 것으로 노를 젓듯이 운전하는 것으로 나비 모양의 패달, 키, 등삭, 돛, 핸들, 멜빵, 곤돌라, 승강구, 조종 케이블, 완충물과 발판을 안으로 들여놓을 수 있는 착륙장치 등을 갖춘 것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이 발명에 신념을 갖고 연구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는 높은 곳에서 비행도구를 실험하고서 자신 있게 적었습니다. “기다란 포도주용 가죽부대를 허리띠에 부착하고 이 기구를 탄 채 호수 위를 날 경우 호수에 빠지더라도 물에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기구에는 날개를 움직이는 엔진이 부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직접 비행하는 실험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의 친구 파지오 카르다노의 아들 지롤라모 카르다노의 기록에 의하면 레오나르도는 이 기구를 몇 차례 실험했지만, 비행물체의 무게를 감소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데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서 발명을 포기해야 했지만, 수년 후 피렌체에서 다시금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496년 프란체스코 수도외 소속 수도승 루카 파치올리라는 인물이 밀라노로 왔습니다. 토스카나의 보르고 산 세폴크로에서 태어난 그는 한때 알베르티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에게 배웠고, 수학을 가르치는 일로 생활했습니다. 그가 밀라오에 온 건 루도비코의 부름을 받아 가르치기 위해서였는데, 바사리에 의하면 파치올리는 고전에 능통했으며, 유클리드로부터 레지몬타누스에 이르기까지 수학에 관한 모든 지식을 겸비했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도는 그에게 매료되어 그의 논문을 연구했으며, 논문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적으면서 그를 ‘마스터 루카’라고 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당시 화가, 건축가, 공학가가 아는 정도의 실질적 기하에 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수학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은 결여하고 있었습니다. 대수학에 관해선 문외한이었던 그는 그보다 서너 살 많은 파치올리를 통해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의 노트북에는 제곱근, 곱하기, 나누기, 복잡한 공식, 공준postulate, 등식, 기하학적 형상들인 정삼각형, 정사각형, 육각형, 동그라미, 자른 구면 등이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갖가지 수학의 부호를 적으면서 “수학자가 아니면 나의 기록을 읽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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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원형 De divina pro-portione』의 삽화, 1509년 베네치아에서 출간.

파치올리가 저술하고 레오나르도의 삽화가 삽입된 책의 서문에서 파치올리는 레오나르도를 “화가, 투사화가, 건축가, 음악가들에게 가장 소중한 재능을 타고난 피렌체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 적었습니다.



파치올리는 레오나르도에게 유클리드와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설명했고, 레오나르도는 자신이 발명한 것들이 기록된 노트북을 보여주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삽화가 삽입된 파치올리의 『인체 원형 De divina pro-portione』이 출간되기 전인 1498년 두 사람은 사본을 루도비코와 갈레아조 다 산세베리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바사리는 파치올리가 레오나르도의 지식을 자신의 것인 양 책에 적었다고 비난했습니다. 바사리의 말이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파치올리와 레오나르도는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으며,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레오나르도가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에 파치올리의 수학적 지식이 기하학적 구성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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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에 따른 아동기 주요 행동


 

인간의 아기는 자궁 속에서부터 소리를 듣고 출생 후에는 음악을 인지합니다. 아기들은 음의 높낮이와 리듬도 구별합니다. 그 때문에 아기들이 원래부터 음악적 소질을 타고 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몬트리올 신경학연구소의 신경학자 로버트 자토르Robert Zatorre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기들은 놀랍도록 세련된 작은 음악가들이다. 녀석들은 음계와 화음을 구별할 수 있고 불협화음보다는 잘 어울리는 화음을 좋아한다. …… 며칠이나 몇 주에 걸쳐 가락을 들려주면 아기들은 그 가락을 알아듣는다.

0~1개월의 아이는 불규칙한 행동과 반사 행동을 합니다. 아이는 반사적으로 사물을 빱니다. 1~4개월이 된 아이는외형과 형태를 구분허고, 사물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사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4~8개월이 되면 보다 복잡한 행동 모방을 하고, 사물에 직접 접근하지는 못하는 단계가 됩니다. 손에 닿은 물건을 움켜쥡니다. 아이는 총 869개의 소리와 음소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 능력은 이 시기가 지나면 천천히 사라집니다. 8~12개월의 아이는 사물에 직접 접근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보여주기를 반복하는 놀이인 까꿍 놀이를 즐깁니다. 까꿍 놀이를 할 때 아이는 얼굴이 다시 나타난다는 사실을 예상합니다. 12~18개월의 아니는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장난감을 탐구합니다. 의도적으로 물체를 떨어뜨리고, 떨어지는 물체를 관찰합니다. 같은 행동을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하는 방법을 터득합니다. 18~24개월의 아이는행동을 하기 전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행동에 따른 반응을 예상하려고 합니다.

2~4살의 아이는언어와 심상을 사용하고, 논리적 일반화를 시도하며, 무생물에 생명이 있다고 믿습니다. 3살 난 아이는 약 1천 개의 어휘를 알고 있습니다. 침팬지의 한계는 약 150개인 것과 비교가 됩니다. 이 시기 아이는 자연적인 현상을 인공적 현상이라고 믿습니다. 4~5살의 아이는 사물의 논리적 귀결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4살 난 아이는 약 4천 개의 어휘를 알고 있습니다. 6살 이후부터는 고유한 말투가 나타납니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주위 어른들의 얼굴과 몸짓, 음성을 인지합니다. 8개월 된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면 크게 당황해합니다.

인간의 뇌가 세상에 적응할 준비를 한다는 사실은 아이들의 발달과정에서 대부분 드러납니다. 뇌는 10대에도 계속 발달합니다. 뇌 세포 사이의 구조적 연결은 우리의 정체성과 잠재력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지각과 착각, 그리고 현실을 이해하려면 뇌가 바깥세상으로부터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감각은 우리를 세상과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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