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피콜로미니 제단 조각>: 영혼은 몸짓을 통해 드러난다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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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피콜로미니 제단>, 1501-04, 시에나 대성당.


미켈란젤로는 1501년 6월 25일 다시금 갈리를 통해 추기경 프란체스코 피콜로미니로부터 열다섯 점의 조각을 제작할 것을 의뢰받고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그것들은 시에나 대성당의 피콜로미니 제단을 장식하기 위한 것들로 조각가 안드레아 브레뇨가 미처 제작하지 못한 것들입니다.

장차 1503년 교황 비오 3세가 될 피콜로미니로부터 이런 조각을 의뢰받은 것은 든든한 후원자를 둘 수 있는 기회로 미켈란젤로에게 매우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이는 3년 동안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작업으로 볼로냐에서 성 도미니크의 무덤을 장식한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바쿠스>와 <로마 피에타>를 제작한 그에게 이런 작업은 별로 어려운 것이 못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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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성 베드로>, 1501-04, 대리석, 높이 124cm. 피콜로미니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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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성 바울>, 1501-04, 대리석, 높이 127cm. 피콜로미니 제단

베드로는 오른발을 구부린 모습이고, 바울은 왼발을 앞으로 내밀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수염을 하고, 옷자락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입니다. 두터운 고수머리는 미켈란젤로의 특징으로 <다윗>과 <모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왼손에 사도들의 서한집을 들고 있으며, 오른팔을 옆으로 늘어뜨린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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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성 대 그레고리우스>, 1501-04, 대리석, 높이 135cm. 피콜로미니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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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성 비오 1세>, 1501-04, 대리석, 높이 135cm. 피콜로미니 제단


미켈란젤로가 스물아홉 살에 완성한 <성 베드로>와 <성 바울>은 매우 흥미로운 작품들입니다. 초기 기독교에 가장 중요한 인물인 베드로와 바울은 사도이자 순교자들로 보통 한 쌍으로 소개되곤 합니다. 미켈란젤로도 두 사람을 한 쌍으로 제작했는데, 베드로는 내성적인 인물로, 바울은 활기차고 외향성이 강한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두 사람의 깊은 신앙의 의미를 나타내는 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그의 위대한 적 레오나르도는 “영혼은 몸짓을 통해 드러난다”고 했으며 미켈란젤로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팔 다리가 특정한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에서는 활기 있게 나타났으며, 무의식적인 몸짓, 표현적인 머리 모양, 얼굴 표정, 실재처럼 주름 잡힌 옷자락은 이후 그의 작품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미켈란젤로는 <성 대 그레고리우스>와 <성 비오>도 제작했습니다. 그는 계약상 열다섯 점 모두 제작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제작하라는 절호의 기회를 얻자, 피콜로미니와의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네 점밖에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재임한 지 불과 28일 만에 죽은 비오 3세로 인해 피콜로미니 가문의 힘이 약화되었으므로 미켈란젤로는 작업에 우선순위를 매겨 그 작업을 서서히 중단하고 <다윗>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1508년에는 아버지 로도비코에게 피콜로미니의 소형 조각상을 제작할 예정이던 대리석의 일부를 팔도록 했습니다. 당시 계약의 중복은 비일비재했으며, 조각 제작기간도 계약과는 달리 예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의 판단은 일반적으로 용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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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 우리는 외계의 신호를 기다려야 한다


행성 지구에서 가장 큰 전파, 레이더 천문관측 시설은 푸에르토리코 섬에 있는 아레시보Arecibo 전파, 레이더 천문대입니다. 이것은 코넬 대학이 미국 과학재단의 위촉을 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푸에르토리코 섬 오지에 있던 거의 반구형의 넓은 골짜기를 여러 개의 반사판으로 덮어서 이 망원경의 주사반경을 만들었는데, 그 지름이 무려 305m에 이릅니다. 구조상 이 망원경으로는 전 하늘을 마음대로 둘러볼 수가 없습니다. 주반사경면이 바로 지표면이기 때문입니다. 주반사경은 우주 깊은 곳으로부터 오는 전파 신호를 받아서 주반사경 위에 높이 매달려 있는 부반사경으로 보내 거기에 초점을 맺게 한 뒤, 그곳에 모인 신호를 전기선을 이용해 제어실로 보내면 제어실에서 이 신호를 분석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주 저 멀리에 있는 천체를 이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습니다. 이 시설은 레이더로도 쓰입니다. 이때에는 부반사경이 전파 신호를 주반사경으로 쏘아주면 주반사경이 그 신호를 우주로 내보냅니다. 아레시보 전파 천문대는 우주로부터 오는 외계 문명의 신호를 검출하는 데 실제로 쓰였을 뿐 아니라 단 한 번뿐이었지만, 우리의 신호를 외계로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전파 이외의 방법도 물론 여러 장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간을 항해할 수 있는 우주선, 가시광선이나 적외선 레이저, 중성미자 펄스, 중력파의 변조파 등이 있습니다. 앞으로 1000년이나 더 지난 후에야 발견될지 모르는 다양한 송신 방법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앞선 단계에 있는 외계 문명에서는 그들의 통신 수단으로 전파를 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전파가 매우 뒤떨어진 통신 수단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파가 갖고 있는 장점들은 만만치 않습니다. 즉 강력한 신호를 발생시킬 수 있고 비용이 적게 들고 전달이 빛의 속도로 지극히 빨리 이뤄지며 게다가 조작, 발신, 수신, 해석 등 모든 것이 간단합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기술적으로 앞서 있다면, 그들은 우리같이 후진 문명권에서는 우선적으로 전파 기술에 의존할 것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외계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싶어 한다면, 당연히 전파 신호에 관심을 집중시킬 것입니다. 그들의 ‘고대 기술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전파 망원경을 다시 꺼내서 우리 쪽을 향해 설치하고 작동시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코스모스 Cosmos』(1980)의 저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은 과연 우주에 이야기할 상대가 있을까? 우리 은하수 은하에만 물경 3000억 내지 5000억 개의 별들이 있다고 하는데, 지적 생물이 거주할 수 있는 행성을 거느린 별이 어찌 태양 하나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행성계마다 우리 태양계와 마찬가지로 행성들이 열 개씩 있다면, 우리 은하에 존재하는 행성들의 총수는 무려 1조3천억 개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생물들은 일단 태어나기만 하면 주위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집요한 생명력으로 개체 수를 증가시키며 서식지를 급속히 넓혀갑니다.

수백만 개에 이르는 문명사회가 은하수 은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면, 문명사회들 사이의 평균 거리는 대략 200광년이 됩니다.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라디오 전파라고 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이웃까지 가는 데 2세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현 수준은 범은하적 관점에서 볼 대 뒤쳐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세이건은 우리가 그들에게 신호를 보내려고 애를 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낸 신호를 받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은하에는 고도의 기술 문명권이 수백만 개나 있을지 모르는데 현재까지 전파를 이용하여 조사한 별은 겨우 수천 개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더 해야 할 일이 지금까지 해놓은 일의 1000배나 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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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전문 공학가로 활동한 레오나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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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미상의 <체사레 보르지아의 초상>

이 초상화를 보면 자신만만하고 사나운 모습이 사자의 얼굴을 닮았는데, 보르지아는 사자사냥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1502년 로마에서 체사레 보르지아의 군사전문 공학가로 선임되었습니다. 오십의 나이에 자신이 꿈꾸던 일을 맡게 된 것입니다. 교황 알렉산더 6세와 로마의 고급 창녀 사이에 태어난 보르지아는 열여섯 살에 추기경이 되었지만, 스물두 살 때 성직을 박탈당했습니다. 로마를 수호하는 일을 맡은 그는 잔인했고, 속임수에 능했으며, 신앙심이 없었고, 근친상간을 범한 인물로 르네상스의 어두운 면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현혹시키거나 부패시킬 수 없을 때는 죽이고 약탈하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민들을 탄압하는 전제군주들을 공격하여 시민들의 권익을 찾아주고 상당한 평화를 누리게 했으므로 특히 부르주아들이 그를 영웅으로 추켜세웠습니다. 그는 스물일곱 살 때 이탈리아 중부를 정복함으로써 아버지인 교황 알렉산더가 원했던 교회의 슬로건 아래 이탈리아가 하나로 통일되는 과업을 거의 달성했으며, 나머지 지역에 대한 정복은 프랑스·스페인 전쟁으로 잠시 미뤄두고 있었습니다.

프랑스군이 롬바르디아를 점령할 때 보르지아는 프랑스군과 행동을 함께 했습니다. 보르지아는 프랑스 왕 루이 12세로 하여금 교황이 원하는 대로 영국의 앤 공주와 결혼하도록 거들었습니다. 루이는 보르지아에게 작은 군대를 주고, 수입원을 제공했으며, 프랑스 시민권을 주고 발렌티노이스의 공작에 임명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그를 처음 만난 건 1499년 밀라노였던 것 같습니다. 성격이 강한 레오나르도와 보르지아는 서로의 지성에 경의를 표하며 독특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보르지아의 거칠고 당당한 성격에 매력을 느낀 것 같습니다.

레오나르도는 1502년 7월 토스카나 국경에 위치한 피옴비노에서 요새화와 습지의 수로에 관해 연구했습니다. 보르지아가 계략을 써서 쉽게 우르비노를 점령하자 레오나르도는 7월 말 그곳으로 가서 그를 만났습니다. 우르비노에서 레오나르도는 여행자들처럼 프란체스코 마르티니가 디자인한 계단을 드로잉하고 치수를 적어 넣었으며 요새를 신속하게 스케치했습니다. 그는 아드리아 해에 있는 페사로로 갔다가 리미니로 갔습니다. 며칠 후에는 로마냐의 수도 체세나로 갔습니다. 보르지아는 8월 18일 파비아에서 프랑스 왕과 책략을 꾀한 후 레오나르도에게 여권을 보내면서 자신이 그를 선임했음을 사람들에게 확인시켰습니다.

이 서류를 읽는 모든 상관 대리, 성주, 통솔자, 용병대장, 공무원, 군인,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한다. 이 서류를 소지한 우리의 총애를 받는 건축가이자 공학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는 우리 나라의 요새와 곳곳을 살펴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고, 그의 충고에 따라서 그것들을 보존할 것이므로 그와 그의 동료들에게는 어떤 세금도 부과해서는 안 되며, 그를 우호적으로 환영하고, 조사하고 측량하는 어떤 일에도 협조하라. 그가 작업을 하고자 할 때는 원하는 인력을 제공해주고 원하는 어떠한 도움이나 협력에도 응하라. 공학가는 자국 내에서 집행되는 어떤 작업이라도 사전에 레오나르도의 승낙을 받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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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빙어하는 육군을 공격하는 두 기병, 무기에 대한 드로잉>, 29.3-20.8cm.


레오나르도는 보르지아의 명을 받고 로마냐를 요새화하는 일에 적극 동참했으며, 특히 체세나와 포르토 체세나티코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습다. 로마냐에서는 공공·군사적 건물 건설을 주로 했고, 나머지 두 군데서는 많은 일을 했으며 마을과 항구를 연결하는 운하를 설립한 것이 특기할 만합니다. 보르지아와 함께 하면서 레오나르도는 당시 로마냐에 옵서버로 온 피렌체의 국무장관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1469-1527)를 알게 되었습니다. 위트 있는 시인이기도 한 마키아벨리는 1502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석 달 이상 보르지아의 측근에 있었습니다. 기나긴 겨울 별로 할 일도 없을 때라서 레오나르도는 열일곱 살 아래인 젊은 마키아벨리와 많은 대화를 나눴겠지만, 두 사람이 각자에 관해 기록을 남기지 않아 서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보르지아의 개성과 행위는 마키아벨리로 하여금 걸작 『군주론 The Prince』를 쓰는 데 영감을 주었습니다. 볼테르와 몽테스키외는 『군주론』을 비난하고, 마키아벨리가 발렌티노이스의 공작을 우상으로 삼은 것을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그 책은 유일하게 읽을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의 탁월한 예술, 정치 이론가였습니다. 1498년 사보나롤라가 처형당하고 피렌체 정부는 공화국으로 개편되었으며, 금욕주의자들은 당국에 정치적, 종교적으로 과격한 재구성을 요구했습니다. 이런 요구를 촉구한 당파가 득세하여 마키아벨리는 스물아홉 살의 나이로 고등법원의 우두머리가 되어 외교문제와 국방문제들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1500년에 첫 임무를 띠고 프랑스로 가서 5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한 군주의 집권 하에 나라가 부강해진 걸 직접 목격했습니다. 프랑스 왕 샤를 8세는 1494년부터 이탈리아를 침공하기 시작했으며, 이탈리아를 넘보던 스페인과 힘을 겨루면서 프랑스는 유럽의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이제 오랜 과거사였으며, 이탈리아는 이 시기에 볼품없는 나라로 전락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의식을 가진 지성인이라면 분노할 일이었고, 마키아벨리가 조국의 역사에 분통을 터뜨릴 만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철학은 공무원 생활에서 얻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경험적인 것입니다. 즉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목적이 좋든 나쁘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극도의 개인주의였습니다. 그의 철학을 비판하기 전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당시 이탈리아 상황을 상기한다면, 열광적인 그의 국수주의는 이탈리아 역사의 산물임을 알게 됩니다. 정치가는 사기꾼 같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오히려 지성적이었으며, 그 시대상에서는 약소국이 강대국들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 상식적인 논리와도 같았습니다. 1513년 초에 방역모의로 체포되어 메디치 가에 의해 피렌체 부근 자택에 가택연급되어 있는 동안 유명한 『군주론』을 집필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피렌체로 돌아온 건 1503년 3월이었습니다. 노트북에는 그가 왜 보르지아의 측근에서 물러나 피렌체로 돌아왔는지에 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는 보르지아의 난폭한 행위에 진력이 났고 또한 그의 몰락을 예감하고 일찌감치 그의 곁을 떠났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마키아벨리의 충고를 받아들여 피렌체로 돌아왔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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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 M이론은 5개의 초끈이론들을 통합하기 위해 제안된 마스터이론


가시적인 우주의 차원과 관련하여 M이론은 시공이 공간 차원 10개와 시간 차원 1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공간 차원 7개는 아주 작게 감겨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알아채지 못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세 개의 공간 차원만 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호킹은 M이론이 미해결로 남긴 핵심 중 하나가 왜 우리의 우주에는 감기지 않은 공간 차원이 3개뿐이며, 왜 차원들이 감겼느냐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M이론은 5개의 초끈이론들을 통합하기 위해 제안된 마스터이론입니다. M이론은 미완성이지만 여러 상황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물리학자 에드워드 위튼Edward Witten(1951-)은 M이론의 일반 구성이 새로운 수학적 언어의 개발을 요구한다고 주장했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M이론이 미완성의 상태로 오래 남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주에 수천억 개의 은하가 있고, 우리 은하에 수천억 개의 별이 있으며, 그중 상당수가 행성을 거느렸다는 것을 압니다. 이는 우리 우주가 많은 우주들 중 하나이며 우리 우주의 가시적인 법칙들이 유일하지 않다는 걸 시사합니다. 언젠가 궁극의 이론, 즉 만물의 이론을 개발하여 우리에게 익숙한 물리법칙들을 예측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실망할 것입니다. 호킹은 우리가 가시적인 공간 차원의 개수, 또는 우리가 관찰하는 물리량들, 예를 들면 전자를 비롯한 기본입자들의 질량과 전하량을 결정하는 내면 공간 등의 두드러진 특징들도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관찰을 통해 알게 된 차원의 개수나 물리량들의 값을 이용해 파인만 합Feynman sum over histories, 즉 모든 가능한 역사들의 합에 포함시킬 수 있는 역사들을 선택한다고 말합니다.

호킹은 우리가 과학사의 전환점에 도달했다면서 물리이론의 목표와 조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가시적인 자연법칙들에 등장하는 근본적인 수들의, 그리고 심지어 자연법칙들의 형태는 물리학의 원리나 논리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자연법칙에 등장하는 매개변수들은 다양한 값들을 가질 수 있으며, 자연법칙들은 수학적 일관성만 유지된다면 어떤 형태라도 취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다양한 우주들에서 다양한 값들과 형태들을 자유롭게 취한다고 말합니다. 호킹은 우리가 특별한 존재이기를 원하고 모든 물리법칙을 담은 깔끔한 꾸러미를 발견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불만스러울지 모르나 이것이 자연의 실상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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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의 노래는 보통 15분 정도 지속된다


우주의 저 광막한 암흑의 심연에는 우리 태양계보다 더 젊거나 늙은 별과 행성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합니다.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지구에 생명이 태어나서 지적 능력을 갖추기까지 있었던 일련의 진화 과정이 코스모스 도처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은하수 은하 하나에만도 100만 개의 다른 세상이 존재합니다. 거기에서는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의 지적 존재들이 살면서 우리보다 훨씬 앞선 기술 문명을 키우고 있을 것입니다. 박학하다는 것과 현명하다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지적 능력은 단순히 축적된 정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지적 능력은 주어진 정보에서 연관성을 읽어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코스모스 Cosmos』(1980)의 저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은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 자체가 우리의 지적 능력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 구실을 한다면서, 지적 능력을 잴 수 있는 잣대, 즉 정보의 단위로 이진법의 ‘비트’가 사용된다고 말합니다. 던져진 질문에 대한 답인 ‘예’, ‘아니오’가 1비트를 이루며, 이때 질문은 물론 묻는 내용이 확실한 질문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알파벳 스물여섯 글자 중에서 하나를 지칭하는 데 5비트가 필요하다면서, 가부 두 가지 가능성 중에서 하나씩 택하기를 다섯 번 반복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합니다.(2×2×2×2×2=32) 26은 분명히 32보다 적은 수이므로 알파벳 스물여섯 글자 각각은 5비트로 충분히 구별된다면서 세이건은 자신의 저서 『코스모스』에 실린 언어 정보의 총량을 1000만 비트(107)가 채 못 되며 한 시간짜리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평균 정보량이 1012비트 정도라고 말합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도서관에 보관된 책과 그림에 언어와 화상의 형태로 담겨있는 정보의 총량을 대략 1016 내지 1017비트라고 말합니다. 그중 대부분은 중복된 정보이지만 이 숫자가 인류가 갖고 있는 지식의 총량을 얼추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렇지만 지구보다 오래된 문명 세계가 보유한 정보량은 비트 단위로 1020, 아니 1030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보의 양뿐 아니라 그 질적 내용의 측면에서도 지구와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세이건은 고등한 지적 생물이 살고 있다고 생각되는 세상이 은하수 은하에만도 100만 개에 이른다면서, 이렇게 많은 수의 세상들 중에서 지구는 표면이 온통 물로 덮인 아주 진귀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물이 풍부한 지구에는 지능을 가진 생물이 몇 종 살고 있는데, 개중에는 뭘 쥐는 데 필요한 팔다리가 여덟 개나 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자기 몸의 밝고 어두운 무늬를 변화시켜 저희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놈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육지에서 그러모은 나무나 금속으로 배를 만들어 바다로 타고 나가 약탈을 일삼는 덩치는 작지만 머리가 아주 영리한 인간이란 생물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적 생물들 중에서 가장 우월하고 행성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몸체를 자랑하며 깊은 바다의 우아한 주인으로서 고도의 지능을 소유한 존재는 고래입니다.

고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몸을 가질 수 있도록 진화한 동물입니다. 심지어 공룡보다 훨씬 큽니다. 다 자란 흰긴수염고래 중에는 길이가 30m, 몸무게가 150톤에 이르는 것도 있습니다. 흰긴수염고래들은 바다 여기저기를 조용히 떠다니면서 방대한 양의 바닷물을 들여 삼켜 거기에 있는 미세한 생물을 걸러 먹고 삽니다. 또 어떤 고래는 물고기와 크릴krill을 먹습니다. 고래라는 거대한 동물이 바다에 출현한 건 지구 역사에서 아주 최근의 사건입니다. 고래의 조상은 7000만 년 전까지만 해도 육식성의 포유동물로서 지상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서서히 바다로 이주했습니다. 어미 고래는 새끼를 젖을 먹여 키우고 정성껏 보살필 줄 압니다. 긴 양육기를 통해서 어린 고래들은 어른 고래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합니다. 고래들끼리의 놀이가 그들의 전형적인 소일거리입니다. 이는 포유동물 모두에서 볼 수 있는 공통된 특성입니다. 학자들은 놀이가 포유동물의 지능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바다 속은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둡고 침침하기 때문에 땅에 사는 포유동물에게 반드시 필요한 시각과 후각이 바다에서는 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각과 후각에 의존하여 짝짓기의 상대, 자신의 새끼, 약탈자의 위치를 알아내던 고래들은 크게 번식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래들은 진화를 통해 다른 의사소통 방식을 완벽하게 터득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청각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소리를 이용한 이 방법은 아주 효과적이어서 청각은 고래들끼리의 의사소통에 중추적 기능을 담당합니다. 고래들이 내는 소리 중에 노래라고 불리는 것이 있지만 사실 그것이 노래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 소리의 정체와 의미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래가 활용하는 소리의 주파수는 아주 넓은 대역에 걸쳐 분포합니다. 낮은 주파수 대역은 사람의 청각이 감지할 수 있는 최소 주파수보다 훨씬 낮습니다. 고래의 노래는 보통 15분 정도 지속됩니다. 가장 긴 노래는 1시간 정도나 계속되기도 합니다. 음, 박자, 리듬, 소절 등이 정확하게 반복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고래는 함께 노래를 부르던 고래들과 겨울이 되어 헤어졌다가 6개월 만에 만나도 똑같은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도 계속 함께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아주 정확하게 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이로 미루어 고래는 대단한 기억력의 소유자로 보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발성법이 좀 변해서 돌아오게 마련이며, 그 경우 고래들의 관병식에서는 새로운 노래가 울려 퍼지게 됩니다.

또 구성원 전체가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모종의 협의를 하거나 공동으로 작곡한 것처럼 곡의 내용이 매달 조금씩 천천히 변해갑니다. 그렇지만 그 변화는 예측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고래의 발성법은 복잡합니다. 흑등고래의 노래를 음성 언어로 간주한다면 거기에 담긴 정보량은 106비트에 이릅니다. 이 정도라면 인간의 대서사시인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를 쓸 만한 분량입니다. 고래나 고래의 사촌인 돌고래가 무슨 이야기를 하며 왜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고래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그들은 사냥을 즐기고 유유히 헤엄치며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여가를 즐기는 하면 떠들썩하게 장난치며 짝짓기도 하고 친구와 어울려 놀다가 약탈자를 만나면 재빨리 도망칠 줄도 압니다. 그렇다면 그들도 수많은 말을 서로 주고받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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