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브뤼허 성모>: 절제된 조화미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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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브뤼허 성모>, 1504년경, 대리석, 높이 받침대 포함 128cm. 브뤼허 노트르담 성당

아기 예수가 왼쪽 다리로 몸무게를 지탱하면서 성모의 옷자락을 발로 누르는 바람에 주름져 흘러내린 옷자락이 팽팽해졌습니다. 성모는 책을 읽다가 아기가 와서 몸을 의지하는 바람에 잠시 독서를 중단하고 책이 떨어지지 않도록 오른손으로 책을 누르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성모와 아기 예수에 관한 작품을 구상하고 1504년경 <브뤼허 성모>로 불리는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성모와 아기 예수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여섯 살에 어머니를 여읜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통해 어쩜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머니와 자신을 상상해 표현했는지도 모릅니다. <로마 피에타>의 마리아와 이 작품의 마리아가 닮은 것은 당연합니다. 성 모자는 성모 제단화에서 수없이 변화를 겪은 주제지만 피렌체에서는 조각품의 주제로는 자주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대리석보다는 일반적으로 테라코타로 제작된 작품을 더 자주 접하게 되는데, 테라코타는 그 자체로 매력이 없는 까닭에 매우 세밀하게 채색되었습니다. 하지만 16세기가 시작되면서 테라코타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는데, 사람들이 기념비적인 특성을 요구하면서 돌로 된 작품을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반투명한 대리석은 <로마 피에타>에서 볼 수 있듯 미켈란젤로의 손 안에서 인간의 살과 주름진 옷자락을 표현하는 데 매우 적합한 재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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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브뤼허 성모>의 부분

머리에 올린 천이 가냘픈 얼굴을 더욱 강조해주고 <로마 피에타>에서와 같이 이마 위의 주름진 천은 머리 위에 빛나는 영광처럼 보입니다. 이마에는 빛에 의한 베일의 효과를 내기 위해 선이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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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브뤼허 성모>의 부분


미켈란젤로는 아기 예수를 상당한 크기와 힘을 지닌 형상으로 어머니의 두 무릎 사이에 세워놓음으로써 과거 성 모자의 형태를 완전히 넘어섰습니다. ‘걸음마하는 아기’라는 모티프를 이용하여 조각에 새로운 형식을 부여한 것입니다. 아기는 어머니의 두 다리 사이에 걸터앉아 어머니의 왼쪽 허벅지에 몸을 기대고 있습니다. 성모는 바위처럼 굳건한 모습으로 앉아 있습니다. 아기는 왼팔을 어머니의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어머니의 손을 잡아당겨 쥔 채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무의식적 행동은 미켈란젤로 작품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그는 마음의 상태를 무심한 몸짓을 통해 표현합니다. 미켈란젤로에게 성모는 오직 청순하고 기품 있는 불멸의 존재입니다. 통통하게 살이 찐 아기의 모습과 가냘픈 성모의 얼굴이 대조를 이룹니다. 성모의 이목구비가 선으로 분명하게 그린 듯이 보입니다. <로마 피에타>와 더불어 아름다운 성모의 모습에서 관람자가 영적인 순수함을 느끼도록 의도했습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침묵한 채 앉아 있는 성모의 두 발의 높이가 동일하지 않음을 통해 새로운 형태를 표현한 것도 특징입니다. <로마 피에타>의 성모와 <브뤼허 성모>는 서로 닮은 모습이지만, <로마 피에타>의 성모에게 드리워진 우수가 여기서는 사라지고 평온한 모습입니다.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와 함께 이십대 중 후반의 처녀 같은 성모는 영원히 늙지 않을 모습입니다. 뵐플린은 이 작품의 수직구성을 특성으로 꼽았습니다.

새로운 미술의 정신이 절제된 조화를 이루면서 강력하고도 고귀한 모습으로 <브뤼허 성모>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렇다. 머리 자세가 보여주는 수직구성의 특성만 해도 ‘위대성’이라는 면에서 모든 15세기의 요소를 완전히 넘어서는 모티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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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성모와 아기, 천사들: 맨체스터 성모>, 미완성, 패널, 105-76.5cm.


이탈리아 북쪽에 위치한 플랑드르의 도시 브뤼허의 상인회가 이 작품을 의뢰했으므로 도시 이름을 따서 <브뤼허 성모>가 되었으며, <성 모자>라고도 합니다. 콘디비와 바사리는 이 작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청동으로 제작되었다고 잘못 기술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에서 처음으로 이탈리아 반도 바깥으로 수출된 이 작품은 금세 유명세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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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암컷과 수컷의 다툼


리처드 도킨스는 이론적으로 말해서 개체라는 건 가능한 한 많은 이성과 교미하고 자식의 양육은 모두 상대에게 떠맡기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많은 종에 있어 주로 수컷이 그런 습성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밖의 종에서는 암수가 동등하게 양육의 부담을 집니다. 성적 협력을 상호 불신과 상호 착취의 관계로서 보는 관점을 특히 트라이버스가 강조했습니다. 이런 관점은 새로운데, 일반적으로 동물 행동학자들은 성행위, 교미, 그리고 이에 선행하는 구애행동 등을 상호 이익 혹은 심지어 종의 이익을 위해 수행되는, 본질적으로 협력적인 행위로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컷과 암컷을 규정함에 있어서 페니스의 존재, 임신, 특수한 젖샘에 의한 수유, 일부 염색체의 모양 등으로 두 성을 구분합니다. 그러나 동식물을 대상으로 확대하면 이런 기준은 옷을 입는 경향으로 남녀 판정의 기준을 삼는 것과 같이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예를 들면 개구리 같은 것은 암수 어느 쪽도 페니스가 없습니다. 수컷과 암컷을 명명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특징은 수컷의 성세포가 암컷에 비해 매우 작고 그 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는 동식물 어느 것을 취급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동물에게는 난세포 하나가 충분히 커서 발육하는 새끼에게 몇 주 동안에 걸쳐 충분한 먹이를 공급할 만합니다. 알이 현미경에서 볼 수 있는 크기밖에 안 되는 사람에게도 난세포는 정자보다 훨씬 큽니다. 모든 성의 차이는 이 하나의 기본 차이에서 파생한 것입니다.

곰팡이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원시적인 생물에서 유성생식을 볼 수 있으나 암수의 성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형 배우자 접합sogamy으로 알려진 이 시스템에서는 개체를 암수로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어느 개체도 다른 개체와 교배되기 때문입니다. 동형 배우자가 융합할 경우, 새로운 개체에 기여하는 두 배우자의 유전자가 동수인 것은 물론 두 배우자가 기여하는 음식물 비축량도 같습니다. 정자와 난자의 경우도 유전자에 대한 기여도는 같습니다. 그러나 음식물 비축에 대해서는 난자의 기여도가 정자를 훨씬 능가합니다. 실제로 정자의 기여는 전혀 없고 다만 정자는 유전자를 가급적 빨리 난자로 운반하는 데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개의 정자는 아주 작아서 수컷은 매일 수백만 개의 정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암컷이 만들 수 있는 아이의 수는 일정한 한도가 있는 반면 수컷이 만들 수 있는 아이의 수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습니다. 수컷이 암컷을 상대로 한 착취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원래의 동형 접합의 상태로부터 비대칭성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도킨스는 모든 성세포가 쉽게 융합할 수 있고 또한 거의 같은 크기를 갖고 있던 시대에서도 그중에는 우연히 다른 세포보다 큰 성세포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큰 동형 배우자는 평균 크기의 배우자에 비해 어떤 면에서 유리했을 텐데, 남보다 다량의 먹이 공급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다 큰 배우자의 방향으로 진화가 이뤄졌을 것입니다. 작아서 활발히 운동하는 배우자를 만드는 개체의 유리한 점은 더 많은 배우자의 생산을 가능하게 한 것이고, 따라서 새끼를 가질 수 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도킨스는 자연선택은 대형의 배우자를 융합 상대로 활발하게 찾아다니는 소형의 배우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양쪽으로 벌어진 성 전략의 진화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 전략이 소투자 착취 전략의 진화에 스스로 문을 열었습니다. 착취적인 전략의 배우자는 점점 소형으로 되어 민첩한 운동성을 가진 배우자로 진화되어 갔습니다. 성실한 전략이 만들어내는 배우자는 착취적인 배우자의 투자량이 점점 축소되어 가는 것을 메우기 위해 계속 대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착취적인 배우자 쪽은 항상 적극적으로 대형 배우자를 추적하여 후자는 결국 운동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성실한 배우자는 난자가 되고 착취적인 배우자는 정자가 되었습니다. 이론적으로 한 마리의 수컷은 암컷 100마리 정도의 하렘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의 정자를 만들 수 있게 때문에 동물 집단 중에서 암컷의 수는 수컷의 100배 정도가 있어야 합당합니다. 종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수컷은 더욱 무가치적이고 암컷은 더욱 가치 있는 존재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바다코끼리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관찰된 모든 교미 가운데 88%가 겨우 4%의 수컷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이 사례뿐만 아니라 다른 예에서도 전 생애에 걸쳐 교미의 기회가 없는 독신 수컷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종의 이익이란 관점에서 보면 이는 놀랄 만한 낭비인 것입니다. 수컷 중에서 실제로 번식에 참여하는 놈이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더라도 암수의 수는 같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암수가 각각 얼마나 많이 태어나느냐 하는 문제는 부모의 전략이 가진 문제의 특수한 경우입니다. 귀중한 유전자를 아들에게 맡기는 것이 이익인가, 아니면 딸에게 맡기는 것이 이익인가? 정상 조건에서의 최적 성비는 50 대 50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 결정의 메커니즘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포유류의 경우 모든 난자는 암수 어느 쪽으로도 발달할 수 있습니다. 성을 결정하는 염색체는 정자로서 수컷이 만드는 정자의 반은 딸을 만드는 X정자이고 나머지 반은 아들을 만드는 Y정자입니다. 정자는 같은 외양을 하고 있지만, 두 정자는 하나의 염색체만을 달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비에게 딸만 만들게 하려는 유전자는 수컷이 X정자만을 만들도록 하여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어미에게 딸만 낳게 하려는 유전자는 어미가 Y정자를 선택적으로 죽이는 물질을 분비하게 하거나 아들이 될 태아를 유산하도록 하여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체가 문자 그대로 아이의 성별을 선택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암수를 동수로 낳는 전략은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입니다. 이 전략에서 벗어나는 유전자는 손해를 입게 됩니다. 평균적인 유전자는 수많은 세대를 경과하는 사이에 경과 시간의 약 반을 수컷의 몸, 나머지 반을 암컷의 몸속에서 지낸 셈입니다. 유전자 효과 중에는 한쪽의 성에서만 발현되는 것이 있는데, 이를 ‘제한적 성유전자 효과’라고 합니다. 페니스의 길이를 지배하는 유전자는 수컷의 몸에서만 이 효과가 발현됩니다.

도킨스는 몸이 이기적 유전자들에 의해 맹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 기계라고 말합니다. 어느 개체든지 생존하는 자식의 수를 가능한 한 늘리려고 합니다. 이 바람직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데 이용되는 명백한 수단은 파트너로 하여금 어떤 자식에게나 그의 공평한 부담량 이상의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고 자기는 그 사이에 다른 파트너와 새로운 자식을 얻는 수법입니다. 이 전략은 암수 어느 쪽이든 바람직하지만, 암컷이 이를 성취하는 것은 수컷에 비해 매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암컷은 대형이고 영양을 많이 가진 난자의 형태로 처음부터 수컷보다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미는 이 때문에 수태를 할 때 이미 어느 자식에 대해서도 아비보다 더 깊은 정성을 쏟습니다. 이 자식이 죽을 경우 어미는 아비보다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어미가 자식을 아비에게 맡기고 다른 수컷을 찾아 도망치는 전술을 취하면 아비 편에서도 별 부담 없이 자식을 버리는 방법으로 보복합니다. 그러므로 아비가 자식을 버리는 건 일반적인 일이지만 어미가 자식을 버리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암컷이란 착취당하는 성이고 착취를 낳게 한 근본적인 진화적 기초는 난자가 정자보다 큰 데 있습니다.

아비가 근면하고 충실하게 자식을 동보는 종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동물의 경우에도 자식에 대한 투자를 조금 덜 하고 다른 암컷과 더 많은 자식을 만들게 하는 진화적 압력이 어느 정도 수컷에게 작용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이 진화적 압력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나타나는가는 종에 따라 크게 다릅니다. 처자를 버리는 것이 수컷에게 유리할 때는 암컷이 단독으로 자식 양육에 성공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존재할 때입니다.

트라이버스는 배우자에게 버림받은 암컷이 그 후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를 고찰했습니다. 어미로서 가장 유리한 행동은 다른 수컷을 속여서 그에게 자기의 자식을 친자라고 여기도록 해 입양시키는 것입니다. 자식이 아직 뱃속에 있을 때라면 이 방법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연선택은 이처럼 쉽게 속는 수컷에게는 불리합니다. 자연선택은 새로운 암컷을 취한 직후, 잠재적인 의붓자식을 모두 죽여 버리는 방법을 취하는 수컷에게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이를 ‘브루스 효과 Bruce effect’라고 하는데, 이 효과는 쥐에게서 알려진 것으로 수컷이 분비하는 화학 물질을 임신 중의 암컷이 맡으면 유산을 일으키는 현상입니다. 암컷이 유산하는 경우는 이전의 배우자의 것과는 틀린 냄새를 맡았을 때로 한정됩니다. 사자에게서도 유사한 예가 알려졌는데, 한 무리 속에 새로운 수사자들이 끼게 되면 그들은 거기에 있는 새끼를 모조리 죽여 버립니다. 수컷은 의붓자식을 죽이지 않고도 같은 효과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즉 암컷과의 교미에 앞서 수컷은 암컷에게 긴 구애기간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교미에 앞서 암컷 역시 긴 ‘약혼 기간’을 요구하는 이유는 수컷 또한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는 하나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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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오 카쿠의 올베르스의 역설Olbers' Paradox


다섯 개의 혜성comet과 두 개의 소행성 팔라스Pallas(올베르스가 1802년에 발견한 소행성으로 아테나Athena의 호칭에서 이름을 따왔고, 알려진 소행성 중 두 번째로 큰 소행성이며 소행성 중 두 번째로 발견)와 베스타Vesta(올베르스가 1807년 4월 3일에 발견하여 로마 신화의 부엌의 여신에서 이름을 따왔고, 소행성 중 네 번째로 발견된 이것의 크기는 소행성 중 세 번째로 큼)를 발견한 독일의 천문학자이자 의사인 하인리히 빌헬름 올베르스Heinrich Wilhelm Olbers(1758~1840)가 제기한 역설은 “밤하늘은 왜 검게 보일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7세기 초에 요하네스 케플러를 비롯한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무한히 크고 균일하다면 어떤 방향을 바라보아도 그곳에는 무한히 많은 별들이 보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무한한 양의 빛이 관측자에게 도달해야 하고, 따라서 밤하늘은 엄청난 빛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밤하늘이 어둠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일까? 올베르스의 역설은 벤틀리의 역설과 마찬가지로 언뜻 보기에 간단하지만 그 속사정은 매우 복잡 미묘하여 오랫동안 천문학자들을 괴롭혀왔습니다. 벤틀리와 올베르스의 주장이 역설로 간주되는 이유는 무한히 큰 우주에서 무한히 많은 천체로부터 발생하는 중력이나 빛이 서로 더해지면 무한히 강한 위력을 발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케플러는 이 역설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결국 우주가 유한하다는 속 편한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올베르스는 1779년 새로운 혜성의 궤도 계산법을 고안했습니다. 2년 뒤에 브레멘에서 병원을 개업했는데, 자기의 집 위층을 천문대로 사용하기 위해 장비를 갖추고 매일 밤 많은 시간을 천문학에 전념하면서 화성과 목성 사이의 행성을 찾는 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801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수학자, 테아티노회Theatines 수도사인 주세페 피아치Giuseppe Piazzi(1746~1826)가 소행성 세레스Ceres(태양계에서 가장 큰 소행성, 로마 신화의 신의 이름을 땄습니다)를 발견했지만 병에 걸려 앓아 누워있는 동안 그 행적을 잃었는데, 1년 후 올베르스가 그것을 다시 발견했습니다. 1802년 3월 팔라스를 발견하고 이 소행성이 한때 소행성대 영역(소행성이 많이 모여 있는 화성과 목성 사이의 지역)에서 궤도를 돌던 중간 크기의 행성의 잔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1811년에는 혜성의 꼬리가 태양의 복사압radiation pressure 때문에 항상 태양으로부터 멀어지는 쪽을 향한다는 이론을 세웠는데, 빛의 복사압은 20세기에 실험실에서 증명되었습니다. 4년 뒤 오늘날 올베르스 혜성으로 알려진 천체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1832년에 오스트리아의 천문학자 빌헬름 폰 비엘라Wilhelm von Biela(1782-1856)가 1826년에 발견한 6.6년마다 되돌아오는 주기혜성 비엘라 혜성Biela's Comet을 관측한 뒤 이 혜성의 꼬리가 지구를 통과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이 예측으로 인해 유럽에서 혼란이 일어났지만, 꼬리가 통과하는 동안 어떤 재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비엘라 혜성은 1846년에 두 조각으로 갈라지는 것이 관측되었으며, 1852년에는 그 조각들이 쌍혜성으로 되돌아왔으나 그 후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구가 이 혜성의 궤도와 교차할 때인 1872년, 1885년 밝은 안드로메다 유성우Andromeda's meteoric shower(혹은 비엘라 유성우)가 관측되었고, 이는 몇몇 유성들이 부서진 혜성의 잔해들로 이루어졌다는 천문학자들의 가정을 강하게 뒷받침했습니다.

올베르스가 제기한 역설 “밤하늘은 왜 검게 보일까?”는 너무 난해하여 현대 과학자들도 종종 그 핵심을 놓치곤 합니다. 1987년에 조사된 바에 의하면 천문학 관련서적의 70%가 잘못된 답을 제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답은 “멀리 있는 별에서 방출된 빛은 지구로 여행하는 동안 먼지와 가스층에 흡수되기 때문에 지구에 모두 도달하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올베르스는 자신이 주장한 역설을 1823년에 책으로 출간하면서 가스층gas reservoir 흡수이론을 해답으로 제시했습니다. “그 많은 별에서 방출된 빛이 지구에 모두 도달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먼지와 가스층이 빛을 흡수해주지 않는다면 지구에는 지금보다 9만 배나 강한 빛이 도달하여 모든 생명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올베르스는 우주공간의 먼지와 가스구름이 빛의 상당부분을 차단해준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수the Milky Way의 중심부는 엄청난 빛과 열을 방출하면서 맹렬하게 타고 있지만 먼지구름에 가려 있기 때문에 맨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은하수의 중심은 궁수자리Sagittarius(황도십이궁黃道十二宮 중 하나로 그리스 신화의 반인반마의 케이론Chiron에서 이름이 유래했고 한국과 중국에서는 남두육성南斗六星으로 불렀습니다)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망원경으로 바라봐도 맹렬한 불꽃은 관측되지 않습니다.

『Parallel worlds 평행우주』(2005)의 저자 미치오 카쿠Michio Kaku(加來道雄 1947~)는 먼지구름이론만으로 올베르스의 역설이 해결될 수는 없다면서, 먼지와 가스층이 우주공간을 메우고 있다고 해도 오랜 세월동안 무한히 많은 별들로부터 방출된 빛에 고스란히 노출되다보면 먼지구름은 결국 별의 표면처럼 강렬한 빛을 발산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지금쯤이면 먼지구름에서 방출된 빛이 밤하늘을 밝게 비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해결책으로 멀리 있는 별일수록 빛이 희미해진다는 점을 들 수 있으나 이 역시 올베르스의 역설을 해결하지 못하는데, 밤하늘의 한 부분을 바라보면 멀리 있는 별일수록 희미하게 보이지만 멀리 갈수록 별의 개수는 더욱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거리가 멀어지면서 빛이 희미해지는 효과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별이 많아지는 효과와 정확하게 상쇄되어 밤하늘은 여전히 밝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주가 균일하다고 가정하면 별의 밝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별의 개수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우주공간은 거리에 상관없이 밝아야 합니다.

올베르스의 역설을 처음 해결한 사람은 미국의 추리작가이며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1809~49)였습니다. 영국 태생의 여배우 엘리자베스 아널드 포와 볼티모어 출신의 배우 데이비드 포 2세의 아들로 태어난 포는 천문학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으며, 죽기 전에 「유레카 Eureka」라는 제목의 산문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여기에 그가 생전에 모아두었던 천체관측자료들이 난해한 산문시로 요약되어 있습니다.

별들이 끝없이 나열되어 있다면 밤하늘은 눈부시게 빛나야 한다.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별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란 것이 따로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주공간의 대부분이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멀리 있는 천체로부터 방출된 빛이 아직 우리의 눈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포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틀렸을 리가 없다”고 과감하게 결론지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아주 늙은 우주가 아닙니다. 우주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돌연히 탄생했기 때문에 유한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멀리 있는 별들로부터 방출된 빛은 아직 무한히 먼 거리를 이동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별의 수명이 유한하다는 점입니다. 태양을 비롯한 모든 별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생사를 반복하는데 그 주기는 대략 수십억 년 정도입니다.

밤하늘에는 우주배경복사cosmic background radiation라는 마이크로파microwave로 가득 차 있습니다. 따라서 밤하늘이 검게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빛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시광선 이외의 빛도 볼 수 있다면 빅뱅의 잔해인 마이크로파가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장관을 매일 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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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다윗>: 고대의 재탄생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1501년 피렌체로 돌아왔습니다. 피렌체 대성당 작업장에는 ‘거인’으로 불리는 매우 커다란 대리석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약 40년 전 르네상스 조각가 아고스티노 델 두치오에 의해 채석되었지만, 작업장에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미켈란젤로에게 조각가로서 명성을 날릴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피렌체의 지도자 피에트로 소데리니는 이 대리석으로 <다윗>을 제작하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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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다윗>, 1501-04, 대리석, 높이 410cm.


로마에 5년 동안 체류하면서 기술을 연마해온 미켈란젤로는 <바쿠스>와 <로마 피에타>로 자신의 위상을 로마에 알렸습니다. 이제 그는 고향을 위해 걸작을 제작하고 싶었습니다. <다윗>은 그동안 로마에서 익힌 솜씨를 시험하는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자 그가 대가의 반열이 올랐음을 시위하기에 적당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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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텔로의 <다윗>, 1450년대, 청동, 높이 15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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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다윗>, 1473-75년경, 청동, 높이 126cm.


도나텔로와 베로키오의 <다윗>은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지만, 다윗이 적장의 목을 베었다는 기록이 없어 성서적 묘사가 아닙니다. 이와 달리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면 물리적 혹은 심리적으로 곧 행동할 듯한 자세로 돌팔매로 적장을 쓰러뜨린 성서와도 일치합니다. 신앙의 힘으로 우뚝 선 채로 “주는 나의 빛이시고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혹은 “주는 나의 바위가 되시고 요새가 되시나이다” 하는 자신만만한 태도입니다. 또한 이 작품은 누드 남자의 고대 이상형을 알고 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미켈란젤로는 <다윗>을 4m가 넘는 거대한 크기로 제작했습니다. 고대 조각가가 이런 거대한 대리석을 깎아 제작할 때는 보통 신의 형상을 만들었지만, 미켈란젤로는 성서의 인물 다윗의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르네상스를 고대의 ‘재탄생’이라고 말할 때 미켈란젤로의 <다윗>보다 더 함축적으로 그 의미를 시위하는 조각은 없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으로 <다윗>을 제작하기 시작한 건 1501년 9월 13일 월요일부터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1502년 2월 28일 절반가량 제작되었으며, 1504년 1월 25일에는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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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다윗>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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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다윗>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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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다윗>의 부분


<다윗>은 아름답고 젊은 승리자의 상으로 나타났습니다. 도나텔로도 다윗을 강한 소년의 모습으로 형상화했고 취향은 전혀 다르지만 베로키오 역시 다윗을 날씬하고 섬세한 감성을 지닌 소년의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장난기를 다 벗지 못한 덩치만 큰 소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자도 아닌, 몸은 아직도 성장하는 중이고 부드러운 팔다리는 거대한 손발과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그런 나이의 청년을 묘사했습니다. 비례가 잘 맞지 않는 모습을 거대한 크기로 확대했지만, 동작의 기묘한 리듬이 있고 다리 사이로는 큰 삼각형이 생겼습니다. 그는 굳이 아름다운 선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지만 모든 세부의 선들이 놀랄 만큼 아름답고 전체적으로 신체의 탄력을 표현해냈기에 거듭 놀라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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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다윗>의 부분

미켈란젤로는 다윗이 왼발을 옆으로 살짝 벌리면서 몸의 중량을 오른쪽 다리에 지탱하게 했습니다. 왼발은 약간 앞으로 내민 채 발가락으로 바닥을 살짝 누르는 자세입니다. 이 발동작에서 다윗에게 내재하는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깊게 주름진 이마, /쑥 들어간 눈, 길게 E고바로 선 코, 돌출한 입술 이런 것들이 얼굴에 긴장감을 나타내며 뚫어지게 응시하는 눈, 두터운 목, 돌출한 목의 근육, 몸통, 팔에서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머리는 반비례적으로 크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축소감으로 비례적으로 보입니다. 다윗은 왼손을 올려 늘어진 투석기 한쪽 끝을 쥐고 있습니다. 돌을 쥐고 컵 모양을 한 오른손은 반비례적으로 크며, 투석기의 다른 한쪽 끝을 쥐고 있습니다. <바쿠스>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관람자가 주위를 돌며 감상하게 만듭니다.


성서에는 어린 다윗은 사울 왕의 무기를 들기에는 체구가 너무 작은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미켈란젤로는 다윗을 거인으로 제작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완전한 누드로 묘사해 놀라움을 가중시켰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다윗>을 거구인 골리앗을 살해하고 나라를 구한 미래의 왕으로 묘사하면서 그의 신앙과 용기를 엄청난 정도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작품의 내용은 예술가만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재창조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당시 프랑스의 압력으로 피렌체로부터 독립한 피사를 탈환하기 위해 파병했던 피렌체 시민들에게 역경을 이겨내는 힘과 용기를 고취시키기에 충분했으며, 자긍심을 심어주었습니다. 바사리는 극찬했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 조각은 고대의 것이든 모던의 것이든, 그리스인의 것이든 로마인의 것이든 간에 모든 조각을 퇴색시켰다. … 분명한 것은 미켈란젤로의 <다윗>을 본 사람이라면 생존하거나 죽은 조각가가 제작한 어떤 조각이라도 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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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청동과 대리석 다윗을 위한 드로잉>, 1501-02, 26.5-18.7cm.


피렌체 지방자치회는 미켈란젤로가 피렌체의 도덕적 힘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호평하면서 <다윗>을 청동으로 제작할 것을 의뢰했습니다. 당시 샤를 8세의 총애를 받던 피에르 드 로앙 장군에게 프랑스와의 동맹을 유지하기 위한 외교적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방자치회는 1502년 8월 12일 청동 <다윗>을 높이 1.5m 되게 제작하라고 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서둘러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청동 조각가이자 주물공인 베네데토 다 로베차노가 최종적으로 청동으로 뜬 건 1508년으로 미켈란젤로가 로마로 떠난 지 수년 후였습니다. 이후 이 작품은 장군이 아닌 프랑스 재무상 플로리묑 로베르테에게 선물로 주기로 했으나 17세기 이후 그 기록이나 자취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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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베키오 궁전 앞에 있는 <다윗>의 복제품, 대리석, 높이 410cm.


<다윗>이 제작되었을 때 이 조각의 위치를 놓고 피렌체 시민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란이 일어났고, 피렌체 시는 예술가들의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때 레오나르도를 포함하여 페루지노, 보티첼리, 필리포 리피, 일 크로나카, 안드레아 델라 로비아, 그리고 그 외의 유명한 예술가들은 <다윗>이 풍상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에 로지아 데이 란지 내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켈란젤로는 시뇨리아(시청) 바깥 광장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조각은 1504년 5월 14일에서 18일 사이에 대성당 작업실로부터 베키오 궁전 정면으로 옮겨졌는데, 불과 1km미만의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틀이 걸렸습니다. 오늘날 여기에 세워져 있는 복제품은 피렌체의 정계로 들어가는 관문을 수호하는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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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유전적으로 어머니가 아이를 편애할 이무런 이유가 없다


리처드 도킨스는 생존기계 내부에는 유전자가 들어앉아 있고 이 기계는 그 유전자의 사본을 증식시킬 수 있는 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어미가 새끼를 편애한다는 것은 어미가 이용할 수 있는 여러 자원을 새끼들에게 불균등하게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트라이버스R.L.Trivers는 1972년에 ‘부모의 투자 parental investment’라는 개념을 이용해 이 문제를 풀었습니다. ‘부모의 투자’는 “한 아이에 대한 부모의 투자로서 그 아이의 생존확률은 증가시키면서 동시에 다른 아이에 대한 투자능력을 희생시키는 모든 것”으로 정의됩니다. 어미가 자식을 편애한다는 것에 관해서 유전적 근거는 없습니다. 그녀의 아이에 대한 유전적 근친도는 모든 아이들에 대해서 1/2로 같기 때문입니다. 어미의 가장 효율적인 전략은 자신의 번식연령까지 양육할 수 있는 가장 많은 수의 아이들에 대해 공평한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유전적 배경만을 문제 삼는다면 어머니가 아이를 편애할 이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편애한다면 그 이유는 자식들 간의 나이와 다른 요인에 의존하는 평균 여명의 차이 때문입니다.

뻐꾸기의 암놈은 다른 새둥지에 한 개씩 산란하고,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아주 다른 종의 새인 양부모에게 자기의 새기를 키우게 합니다. 도킨스는 뻐꾸기의 새끼가 “여우야! 여우야! 이리 와서 나와 나의 수양형제를 잡아먹으러 오렴”이라는 식으로 포식자를 유인할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른다고 하면 그는 자기의 생명이라는 큰 희생을 치를 가능성이 있으나, 양부모는 더욱 큰 희생을 치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칫하면 어미는 새끼를 네 마리나 잃는 셈이 됩니다. 따라서 뻐꾸기 새끼가 큰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 놈에게 특별히 많은 먹이를 주는 편이 양모에게 유리합니다. 뻐꾸기 새끼에게는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이 유리한데, 포식자의 습격 위험보다 많은 먹이를 얻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뻐꾸기 새끼가 큰 소리로 떠들면 양부모가 그에게 먹이를 줄 확률은 높습니다. 그러므로 큰 소리로 울도록 하는 유전자는 뻐꾸기의 유전자 풀 속에 그 수를 늘려왔습니다.

뻐꾸기 또는 유사한 탁란 습성을 가진 다른 새가 거짓 전술을 사용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잔인하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뻐꾸기처럼 다른 종의 둥지에 산란하는 새로 꿀잡이새honeyguide가 있습니다. 이 새의 새끼는 끝이 뾰족하고 예리한 부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새끼는 부화하자마자 아직 깃털도 없고, 눈도 못 뜨고, 아주 가냘픈 외양임에도 불구하고 수양형제를 마구 베고 쪼아서 죽여 버립니다. 형제를 죽이면 먹이를 놓고 경합할 걱정이 없어집니다. 영국에서 볼 수 있는 뻐꾸기의 알은 품는 기간이 짧으므로 그 새끼는 수양형제들보다 빨리 부화합니다. 부화된 새끼는 그 직후 맹목적, 기계적이라고는 하나 놀랄 만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다른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냅니다. 둥지 벽을 기어 올라가 알을 땅으로 떨어뜨립니다. 새끼는 나머지 알에 대해서도 같은 식으로 되풀이하여 결국은 양모의 관심을 독점합니다.

까치둥지에서 부화한 제비 새끼도 뻐꾸기 새끼와 같은 동작으로 까치 알을 내버리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제비 새끼 역시 알을 등에 업고 작은 날개로 알의 균형을 잡으면서 뒷걸음으로 둥지의 벽을 기어 올라가 알을 밖으로 떨어뜨림으로써 뻐꾸기와 같은 방법을 이용했습니다. 이런 행동이 제비의 유전자 풀 속에서 어떻게 진화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행동은 제비의 일상적인 생활의 어떤 측면에 대응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경우에 그들이 같은 종 이외의 둥지에서 발견되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습니다. 제비의 경우 제비의 둥지에 태어났더라도 처음 태어난 새끼는 다음에 부화되는 동생들과 부모의 투자를 놓고 결국 경쟁하게 되고, 그의 생애 첫 번째 일로서 다른 알을 둥지에서 내던지는 것이 이익이 되는 것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어미 제비의 입장에서는 알맞은 알의 수가 5개이지만, 새끼의 입장에서는 5개보다 작은 것입니다. 알을 하나만 내던져도 새끼는 부모의 투자의 1/4을 획득하는 것이 되고, 하나를 더 버리면 투자의 1/3을 자기의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유전자의 용어로 말하면 형제를 살해하는 개체의 몸속에서 형제 살해를 촉구하는 유전자는 100% 확률로 존재하지만 희생이 되는 개체 속에는 50%의 확률밖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형제 살해를 촉구하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 속에 퍼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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