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의 암컷과 수컷의 다툼


리처드 도킨스는 이론적으로 말해서 개체라는 건 가능한 한 많은 이성과 교미하고 자식의 양육은 모두 상대에게 떠맡기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많은 종에 있어 주로 수컷이 그런 습성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밖의 종에서는 암수가 동등하게 양육의 부담을 집니다. 성적 협력을 상호 불신과 상호 착취의 관계로서 보는 관점을 특히 트라이버스가 강조했습니다. 이런 관점은 새로운데, 일반적으로 동물 행동학자들은 성행위, 교미, 그리고 이에 선행하는 구애행동 등을 상호 이익 혹은 심지어 종의 이익을 위해 수행되는, 본질적으로 협력적인 행위로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컷과 암컷을 규정함에 있어서 페니스의 존재, 임신, 특수한 젖샘에 의한 수유, 일부 염색체의 모양 등으로 두 성을 구분합니다. 그러나 동식물을 대상으로 확대하면 이런 기준은 옷을 입는 경향으로 남녀 판정의 기준을 삼는 것과 같이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예를 들면 개구리 같은 것은 암수 어느 쪽도 페니스가 없습니다. 수컷과 암컷을 명명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특징은 수컷의 성세포가 암컷에 비해 매우 작고 그 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는 동식물 어느 것을 취급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동물에게는 난세포 하나가 충분히 커서 발육하는 새끼에게 몇 주 동안에 걸쳐 충분한 먹이를 공급할 만합니다. 알이 현미경에서 볼 수 있는 크기밖에 안 되는 사람에게도 난세포는 정자보다 훨씬 큽니다. 모든 성의 차이는 이 하나의 기본 차이에서 파생한 것입니다.

곰팡이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원시적인 생물에서 유성생식을 볼 수 있으나 암수의 성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형 배우자 접합sogamy으로 알려진 이 시스템에서는 개체를 암수로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어느 개체도 다른 개체와 교배되기 때문입니다. 동형 배우자가 융합할 경우, 새로운 개체에 기여하는 두 배우자의 유전자가 동수인 것은 물론 두 배우자가 기여하는 음식물 비축량도 같습니다. 정자와 난자의 경우도 유전자에 대한 기여도는 같습니다. 그러나 음식물 비축에 대해서는 난자의 기여도가 정자를 훨씬 능가합니다. 실제로 정자의 기여는 전혀 없고 다만 정자는 유전자를 가급적 빨리 난자로 운반하는 데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개의 정자는 아주 작아서 수컷은 매일 수백만 개의 정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암컷이 만들 수 있는 아이의 수는 일정한 한도가 있는 반면 수컷이 만들 수 있는 아이의 수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습니다. 수컷이 암컷을 상대로 한 착취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원래의 동형 접합의 상태로부터 비대칭성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도킨스는 모든 성세포가 쉽게 융합할 수 있고 또한 거의 같은 크기를 갖고 있던 시대에서도 그중에는 우연히 다른 세포보다 큰 성세포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큰 동형 배우자는 평균 크기의 배우자에 비해 어떤 면에서 유리했을 텐데, 남보다 다량의 먹이 공급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다 큰 배우자의 방향으로 진화가 이뤄졌을 것입니다. 작아서 활발히 운동하는 배우자를 만드는 개체의 유리한 점은 더 많은 배우자의 생산을 가능하게 한 것이고, 따라서 새끼를 가질 수 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도킨스는 자연선택은 대형의 배우자를 융합 상대로 활발하게 찾아다니는 소형의 배우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양쪽으로 벌어진 성 전략의 진화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 전략이 소투자 착취 전략의 진화에 스스로 문을 열었습니다. 착취적인 전략의 배우자는 점점 소형으로 되어 민첩한 운동성을 가진 배우자로 진화되어 갔습니다. 성실한 전략이 만들어내는 배우자는 착취적인 배우자의 투자량이 점점 축소되어 가는 것을 메우기 위해 계속 대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착취적인 배우자 쪽은 항상 적극적으로 대형 배우자를 추적하여 후자는 결국 운동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성실한 배우자는 난자가 되고 착취적인 배우자는 정자가 되었습니다. 이론적으로 한 마리의 수컷은 암컷 100마리 정도의 하렘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의 정자를 만들 수 있게 때문에 동물 집단 중에서 암컷의 수는 수컷의 100배 정도가 있어야 합당합니다. 종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수컷은 더욱 무가치적이고 암컷은 더욱 가치 있는 존재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바다코끼리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관찰된 모든 교미 가운데 88%가 겨우 4%의 수컷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이 사례뿐만 아니라 다른 예에서도 전 생애에 걸쳐 교미의 기회가 없는 독신 수컷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종의 이익이란 관점에서 보면 이는 놀랄 만한 낭비인 것입니다. 수컷 중에서 실제로 번식에 참여하는 놈이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더라도 암수의 수는 같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암수가 각각 얼마나 많이 태어나느냐 하는 문제는 부모의 전략이 가진 문제의 특수한 경우입니다. 귀중한 유전자를 아들에게 맡기는 것이 이익인가, 아니면 딸에게 맡기는 것이 이익인가? 정상 조건에서의 최적 성비는 50 대 50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 결정의 메커니즘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포유류의 경우 모든 난자는 암수 어느 쪽으로도 발달할 수 있습니다. 성을 결정하는 염색체는 정자로서 수컷이 만드는 정자의 반은 딸을 만드는 X정자이고 나머지 반은 아들을 만드는 Y정자입니다. 정자는 같은 외양을 하고 있지만, 두 정자는 하나의 염색체만을 달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비에게 딸만 만들게 하려는 유전자는 수컷이 X정자만을 만들도록 하여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어미에게 딸만 낳게 하려는 유전자는 어미가 Y정자를 선택적으로 죽이는 물질을 분비하게 하거나 아들이 될 태아를 유산하도록 하여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체가 문자 그대로 아이의 성별을 선택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암수를 동수로 낳는 전략은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입니다. 이 전략에서 벗어나는 유전자는 손해를 입게 됩니다. 평균적인 유전자는 수많은 세대를 경과하는 사이에 경과 시간의 약 반을 수컷의 몸, 나머지 반을 암컷의 몸속에서 지낸 셈입니다. 유전자 효과 중에는 한쪽의 성에서만 발현되는 것이 있는데, 이를 ‘제한적 성유전자 효과’라고 합니다. 페니스의 길이를 지배하는 유전자는 수컷의 몸에서만 이 효과가 발현됩니다.

도킨스는 몸이 이기적 유전자들에 의해 맹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 기계라고 말합니다. 어느 개체든지 생존하는 자식의 수를 가능한 한 늘리려고 합니다. 이 바람직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데 이용되는 명백한 수단은 파트너로 하여금 어떤 자식에게나 그의 공평한 부담량 이상의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고 자기는 그 사이에 다른 파트너와 새로운 자식을 얻는 수법입니다. 이 전략은 암수 어느 쪽이든 바람직하지만, 암컷이 이를 성취하는 것은 수컷에 비해 매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암컷은 대형이고 영양을 많이 가진 난자의 형태로 처음부터 수컷보다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미는 이 때문에 수태를 할 때 이미 어느 자식에 대해서도 아비보다 더 깊은 정성을 쏟습니다. 이 자식이 죽을 경우 어미는 아비보다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어미가 자식을 아비에게 맡기고 다른 수컷을 찾아 도망치는 전술을 취하면 아비 편에서도 별 부담 없이 자식을 버리는 방법으로 보복합니다. 그러므로 아비가 자식을 버리는 건 일반적인 일이지만 어미가 자식을 버리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암컷이란 착취당하는 성이고 착취를 낳게 한 근본적인 진화적 기초는 난자가 정자보다 큰 데 있습니다.

아비가 근면하고 충실하게 자식을 동보는 종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동물의 경우에도 자식에 대한 투자를 조금 덜 하고 다른 암컷과 더 많은 자식을 만들게 하는 진화적 압력이 어느 정도 수컷에게 작용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이 진화적 압력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나타나는가는 종에 따라 크게 다릅니다. 처자를 버리는 것이 수컷에게 유리할 때는 암컷이 단독으로 자식 양육에 성공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존재할 때입니다.

트라이버스는 배우자에게 버림받은 암컷이 그 후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를 고찰했습니다. 어미로서 가장 유리한 행동은 다른 수컷을 속여서 그에게 자기의 자식을 친자라고 여기도록 해 입양시키는 것입니다. 자식이 아직 뱃속에 있을 때라면 이 방법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연선택은 이처럼 쉽게 속는 수컷에게는 불리합니다. 자연선택은 새로운 암컷을 취한 직후, 잠재적인 의붓자식을 모두 죽여 버리는 방법을 취하는 수컷에게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이를 ‘브루스 효과 Bruce effect’라고 하는데, 이 효과는 쥐에게서 알려진 것으로 수컷이 분비하는 화학 물질을 임신 중의 암컷이 맡으면 유산을 일으키는 현상입니다. 암컷이 유산하는 경우는 이전의 배우자의 것과는 틀린 냄새를 맡았을 때로 한정됩니다. 사자에게서도 유사한 예가 알려졌는데, 한 무리 속에 새로운 수사자들이 끼게 되면 그들은 거기에 있는 새끼를 모조리 죽여 버립니다. 수컷은 의붓자식을 죽이지 않고도 같은 효과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즉 암컷과의 교미에 앞서 수컷은 암컷에게 긴 구애기간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교미에 앞서 암컷 역시 긴 ‘약혼 기간’을 요구하는 이유는 수컷 또한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는 하나의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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