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노 강에 운하를 구상한 레오나르도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430

레오나르도의 <피렌체 서쪽으로 흐르는 아르노와 무뇨네 강 지도>, 수채, 44.2-24.1cm.


429

레오나르도의 <아르노 강 지도>, 수채, 33.4-48.2cm.


로마냐에서 군사공학가로서 경험을 쌓은 레오나르도는 1503년 피렌체에서 적을 포위 공격하는 것에 관해 의견을 제시하는 공학가들에 포함되었습니다. 그해 6월 레오나르도는 정해진 지역으로 가서 지도를 상세하게 그렸습니다. 그는 마키아벨리와 피렌체 권력자에게 자신이 고안한 피사 위쪽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아르노 강을 수로로 전환시키는 계획을 제시한 것 같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운하로 인해 인근 땅의 가치가 올라가게 된다면서 피렌체와 마찬가지로 프라토, 피스토이아, 피사 등의 도시들은 매년 20만 두카트의 수입을 올릴 수 있으므로 예산을 증액하여 운하를 완공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는 수로를 과학과 기술 그 이상으로 보고 “자연의 수송수단”이라고 적으며 물의 역할을 인체의 피에 비유했습니다. 그는 물이 비와 눈으로 지상으로 내려오고 땅에서 솟으며 강물이 되어 흘러 거대한 바다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수로를 재해방지책으로도 생각했습니다. 아르노 강은 범람하여 사람들을 위협한 적이 있었는데, 레오나르도가 네 살 때인 1456년 허리케인으로 범람했고, 10년 후 1466년 1월 12일에도 강물이 강둑을 무너뜨리고 범람하여 인근 지역을 황폐하게 만들었으며, 1478년에도 홍수로 범람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열네 살 때와 스물여섯 살 때 범람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물에 의한 대재난을 막기 위해서도 수로는 절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르노 강이 피렌체의 가파른 언덕을 끼고 서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레오나르도는 수로를 커다란 커브 형태로 만들어 몬테 알바노 반대편의 프라토와 피스토이아로 연결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는 프리울리 계곡에 댐을 만들어 물을 이용해서 터키족을 익사시키는 방법을 제안했지만, 베네치아인들은 그의 말을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투표에 의해 레오나르도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1503년 8월 20일부터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보좌관 중 한 명인 비아조 부오나코르시가 이 작업에 관여했습니다. 하루에 동원된 노동자가 2천 명이나 되는 대규모 공사였습니다. 10월에는 아르노 강에 나무로 댐 공사를 할 수 있었고, 땅을 파서 두 개의 수로를 만들어 강물이 호수에 이르게 하고 급류가 피사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바다로 흐르게 했습니다. 그러나 노동력 부족으로 원래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강물은 넘쳐서 이미 작업을 마친 곳까지 범람했으며, 한 수로의 강둑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강물은 범람했지만 새로 만든 수로쪽으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작업은 6개월 동안 진행되었지만 절반도 완성하지 못한 상태로 7천 두카트의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피렌체 시민들은 술렁거렸습니다. 마키아벨리가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시민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이 계획은 불명예스럽게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부오나코르시의 기록에 레오나르도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당시 이 작업에 처음부터 책임자로 선임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504년 여름 세르 피에로는 유언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아버지의 죽음을 두 차례에 걸쳐 언급했습니다.

1504년 7월 9일 수요일 일곱 시에 나의 아버지 세르 피에로 다 빈치가 세상을 떠나셨다. 여든 살의 그분은 아들 열 명과 딸 두 명을 남기고 가셨다.

하지만 피에로가 타계할 때 그는 78살이었고, 7월 9일은 수요일이 아니라 화요일이었습니다. 피에로의 네 번째 아내가 낳은 자식들이 힘을 합해 세 번째 아내의 자식들과 법적으로 겨루어 많은 유산을 차지했지만, 사생아인 레오나르도는 아무것도 상속받지 못했습니다. 1506년 4월 30일 변호사 모임은 피에로의 유산 상속에서 레오나르도를 배제했습니다. 몇 달 후 삼촌 프란체스코도 타계했으며, 레오나르도의 몫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다른 조카들에게만 유산을 상속시켰습니다. 레오나르도는 프란체스코에게 빌려준 돈이 있어 자신의 권리를 법적으로 주장했지만, 소송은 시간만 끌었을 뿐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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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 우리야말로 핵전쟁의 인질이다


인간 두뇌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대뇌 피질이 직관과 이성의 활동을 관장합니다. 사람은 무리 생활을 통해 진화했으므로 우리는 상호 동반자적 관계에서 기쁨을 누립니다. 상대방을 보살피고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의 본성은 무리 생활을 통한 진화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런 진화 과정에서 우리 마음에는 희생의 정신이 깊이 새겨졌습니다. 인류는 규칙적 자연현상의 숨은 의미를 예리한 직관과 이성으로 해독하여 무리 생활에 효율적으로 이용할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협동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효과적인 협력 방안을 도출하는 능력 또한 꾸준히 키워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자신들이 안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되도록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최후의 날의 도래를 염려하는 이들을 혹세무민을 꾀하는 걱정꾸러기라고 몰아붙이든가, 인류 사회 제도의 근본 변화는 비현실적이고 실현성이 없으며 인간 본성에 위배되는 짓이라고 헛된 주장을 길게 늘어놓고는 합니다. 그들의 주장을 듣다 보면 핵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갈과 협박이 현실적으로 유일한 평화 유지 방안인 듯한 착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 본성의 단 한 가지 속성만 고집한다면 이러한 주장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인간 본성에는 다른 좋은 속성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해결 방안을 핵 이외의 것에서 찾아야 함니다. 전 세계적 규모의 핵전쟁이 일어난 적이 아직 없다는 사시를 통계적으로 전면 핵전쟁이 결코 일어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코스모스 Cosmos』(1980)의 저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은 우리야말로 핵전쟁의 인질이라고 말합니다. 지구상 모든 사람이 핵전쟁의 볼모로 잡혀 있다고 말합니다. 인질로 잡힌 우리가 먼저 핵 및 재래식 무기와 전쟁에 대한 연구를 하고 그 다음에 우리의 정부들을 계몽해야 한다고 말합니니다.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과학 기술의 개발과 연구는 결코 게을리 할 수 없는 우리의 절대 의무입니다. 우리는 이제 사회, 정치, 경제, 종교라는 이름의 제도가 가르쳐온 전통적 지혜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과감한 도전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우리의 이웃이 지구 어디에서 살든 그들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함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제안이 비현실적이고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이라고 거절당할 때마다 “그렇다면 당신이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입니까?” 하고 반문했습니다. 인간의 동질성에 근거한 이 방안 외에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대안은 없습니다.

인간의 성격이나 인류의 역사, 비교 문화 연구 등이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노예제도, 인종차별, 심한 여성혐오, 폭력 등이 모두 서로 깊게 연관된 현상이라면 우리의 미래를 어느 정도 낙관해도 좋을 듯싶습니다. 인간의 야수성을 우리 스스로가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변혁을 겪고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내려오던 노예제도가 겨우 최근 200년 사이에 지구상에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수천 년 동안, 아니 그 이상 더 긴 세월을 통해 여성은 하나의 소유물로서 참정권과 경제권을 박탈당한 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근대로 들어오면서 여성도 남성과 거의 동등한 권리를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극도의 후진 사회에서조차 볼 수 있는 변화입니다. 침략을 준비하던 바로 그 나라의 시민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대규모의 전쟁이 중단되는 사건이 20세기에 들어와서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국수주의와 맹목적 애국주의가 한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를 철저하게 지배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현대는 그들의 열광과 호소가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을 뿐 아니라 심한 경우 백안시당하기도 합니다. 어린이에 대한 처우가 전 세계적으로 점차 개선되고 있는데 이는 생활수준의 향상에 기인하는 바가 클 것입니다. 앞으로 수십 년 이내에 전 지구적 규모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변화의 조짐들이 인류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실현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단 하나의 종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지구상에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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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 교잡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불리하다


구애의식에 있어서 수컷은 종종 적지 않은 혼전 투자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컷이 집을 완성할 때까지 암컷은 교미를 거절하는 수가 있고, 수컷이 암컷에게 충분히 먹이를 줘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암컷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큰 이익인 동시에 가정의 행복을 우선으로 하는 수컷을 선택하는 또 다른 전략이라고 생각됩니다. 수줍어하는 암컷이 결국 자기와 교미에 응하기를 기다리는 수컷은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셈입니다. 수컷은 마음속에 둔 암컷이 최종적으로 교미에 응할 때까지는 암컷에게 몹시 속박당하는 것입니다.

암컷보다 수컷이 자식의 보호에 많은 노력을 쏟는 동물이 있습니다. 아비가 자식 때문에 헌신하는 예는 새와 포유류에서는 극히 드물지만 어류에서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어류는 교미를 하는 대신에 그냥 생식 세포를 물속에 방출합니다. 수정이 배우자의 체내에서 일어나지 않고 물속에서 이뤄집니다. 유성생식이 처음 출현했을 때도 아마 이와 유사했을 것입니다. 새, 포유류, 파충류 같은 육상 동물은 이런 형태로 체외 수정을 할 수 없는데, 생식 세포가 매우 건조해지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를 비롯한 수생 동물에서는 암컷이 산란하기를 기다렸다가 수컷이 알에 정자를 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덕분에 암컷은 귀중한 몇 초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 몸을 감추고 난자를 수컷에게 떠맡깁니다.

두 성 사이에서 널리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차이는 누구를 배우자로 뽑는가에 대해 암컷이 수컷보다 신중하다는 것입니다. 암수를 불문하고 신중함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종 개체와의 교미를 피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교잡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불리합니다. 사람과 양 사이의 교미와 같은 교미의 결과가 배embryo(다세포생물의 발생 과정에서 초반에 해당하는 단계) 형성을 이루지 못하고 손실도 별로 많지 않은 예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과 당나귀와 같은 가까운 종 사이의 교잡이 생기면 그 불이익은 적어도 암컷인 파트너에게 있어서는 매우 큽니다. 교잡의 결과 노새의 배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배는 11개월 동안 당나귀의 자궁을 차지하게 되고 번식 가능한 망아지를 키우는 데 필요한 어미의 능력은 크게 감소됩니다. 노새는 성체가 되어도 번식이 불가능합니다. 말과 당나귀의 염색체는 매우 닮아서 서로 협력하여 우수하고 완강한 노새의 몸을 만들 수 있으나 감수분열에서 적절한 공동 작업을 할 정도로 닮지 않았습니다.

같은 종의 개체 사이에서도 배우자 선택을 신중히 해야 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종간 교잡과 같이 근친상간은 커다란 유전적 손실을 낳기 쉽습니다. 이는 근친상간에 의해 치사성 또는 반치사성의 열성 유전자의 작용이 표면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아비와 딸 사이의 근친상간이 어미와 아들 사이의 근친상간의 빈도보다 높고 남매간의 근친상간의 빈도가 중간 정도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수컷이 암컷에 비해 상대를 가리지 않고 교미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암컷은 한정된 난자를 비교적 느린 속도로 생성하기 때문에 다른 수컷과 많은 교미를 거듭해도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 한편 수컷은 매일 막대한 수의 정자를 만들 수 있으므로 상대를 가릴 필요 없이 많은 교미를 해서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집단생활의 이점으로서 가장 많이 제안되는 것이 포식자에게 먹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지배적입니다. 매는 실제로 무리를 이탈한 비둘기를 노리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무리를 이탈하는 것이 자살행위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는 이론적 근거는 많습니다. 경계음을 내는 행위는 순수한 이기적 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보입니다. 경계음을 냈기 때문에 죽는 개체도 있겠지만, 경계음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죽는 개체가 더 많이 있었습니다. 새의 경계음은 가능한 한 주의를 끌지 않고 신중히 하도록 계획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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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톤도 릴리프: 완성과 미완성의 조화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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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타데이 톤도>, 1504년경, 대리석, 지름 117.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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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타데이 톤도>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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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타데이 톤도>의 부분


<브뤼허 성모>를 완성할 무렵인 1504년경 스물아홉 살의 미켈란젤로는 <타데이 톤도>와 <피티 톤도>를 완성했습니다. 둘 다 커다란 원반 대리석에 릴리프로 제작한 작품들입니다. 톤도는 원형 회화란 뜻이며, 회화적 장면을 삼차원으로 묘사하여 벽에 걸기 위한 것입니다. 이 무거운 대리석을 어떻게 벽에 고정시킬 수 있을까? 미켈란젤로는 초기에도 릴리프를 제작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제작한 것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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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피티 톤도>

미켈란젤로는 성모의 머리를 언형 대리석 위로 약간 돌출시켜 성모를 더욱 부각시켰는데, 이는 도나텔로로부터 배운 교훈으로 톤도를 벽에 걸고 아래에서 올려다 볼 때 성모의 얼굴이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타데이 톤도>는 작품을 의뢰한 피렌체 귀족 타데오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피티 톤도> 역시 바르톨로메오 피티의 의뢰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고르지 못한 원형 대리석판에 릴리프 조각을 새기는 일은 구성에 대한 특별한 아이디어가 요구됩니다. 미켈란젤로는 성모, 아기 예수, 아기 세례 요한으로 구성했습니다. 왼쪽의 세례 요한이 무엇인가를 들고 다가가자 아기 예수가 깜짝 놀라 어머니 품속으로 도망치듯 안기는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놀란 아기 예수의 몸짓은 일반적으로 놀랐을 때의 모습이 아니라 미켈란젤로에 의해 예술적으로 표현된 모습입니다. 도상적으로 말하면 세례 요한이 들고 있는 것은 검은방울새로, 이 새는 가시를 먹고 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의 육촌 형으로 예수보다 6개월가량 먼저 태어났습니다. 미술계에서는 예수와 세례 요한이 어렸을 때 함께 성장한 것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전설에 의한 것입니다.

아기 예수에 비해 세례 요한은 의도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며 성모는 배경으로부터 명료하지 않고 모호하게 모습이 드러납니다. 길게 뻗친 예수의 몸은 원을 가로지르는 듯한 성모의 우미한 옷자락으로 인해 더욱 강조됩니다.

미켈란젤로는 톤도 릴리프에서 분명한 것과 암시적인 것, 완성과 미완성이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암시적인 요소와 미완성의 요소를 충분히 살려 작품에 좀 더 상상의 여지를 둔 것입니다. 이 작품은 부분적으로 미완성처럼 보였지만, 타데이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타데이는 미술에 조예가 깊고 라파엘로를 후원한 사람이었습니다. 라파엘로가 이 작품을 보고 드로잉을 한 것으로 봐서 라파엘로의 마음에 감동을 준 것으로 짐작됩니다.

미완성의 요소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피티 톤도>입니다. 이것은 미켈란젤로가 <타데이 톤도>에서보다 그 요소를 더욱 의도적으로 강조한 듯이 보입니다. 왼쪽 성모가 앉은 뒤쪽을 평행으로 조각칼(그라디나라는 갈고리 모양의 끌) 자국을 낸 것은 의도적으로 미완성의 요소를 구성요소로 사용했음을 알게 해줍니다. 그의 미완성적 요소를 회화의 반질반질한 표면과 환상적 속임수와 비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피티 톤도> 역시 앉아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 그리고 세례 요한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성모가 크게 부각되고 요한은 성모의 오른쪽 어깨 뒤로 겨우 보입니다. 성모는 아기 예수를 끌어안고 있고 요한은 뒤에서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성모의 얼굴은 <로마 피에타>와 <브뤼허 성모>에서와 같이 사랑스럽습니다. 아기 예수는 성모의 무릎 위에 펼쳐진 성서에 오른팔을 얹고 아무런 의미 없이 머리를 기대며 미소 짓습니다. 이 작품은 <타데이 톤도>보다 차분하며 경건함을 더욱 강조합니다. 부조의 깊이는 얕지만 성모의 삼차원적 모습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402

미켈란젤로의 <도니 톤도>, 1504년경, 둥근 패널에 템페라, 91-80cm.

이 작품을 <성 요셉이 있는 거룩한 가정>이라고도 합니다. 그림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책을 읽던 성모가 등 뒤에 쭈그리고 앉은 남편 성 요셉이 건네주는 아기 예수를 받고 있습니다. 성모가 아기를 받고 있는 것인지 성모가 건네주는 아기를 요셉이 받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불분명한 동작 때문에 성모와 요셉 사이에 끊임없이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성모는 전통적으로 성모를 상징하는 붉은색 드레스와 짙은 녹색 천이 둘러진 청색 외투를, 요셉은 짙은 청색 상의에 눈부신 금색 외투를 입고 있습니다. 하단을 넓게 차지한 성모의 외투와 요셉의 상의, 그리고 멀리 풍경과 하늘의 파란색은 원근이 반복되는 색으로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오른쪽의 돌난간 뒤 도랑에서는 아기 세례 요한이 놀라워하는 혹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처음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아본 예언자입니다. 그의 뒤로 보이는 벌거벗은 남자들은 예언자들 혹은 이교의 목신들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화면 속에는 이교도와 그리스도교 사이에 요한이 있다는 시대적인 은유가 내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타데이 톤도>와 <피티 톤도>를 제작한 후 같은 해 템페라로 성가족을 그렸습니다. 아뇰로 도니의 주문으로 그린 것이라서 <도니 톤도>라 합니다. 도니가 마달레나 스트로치와 1504년 1월 31일 결혼하면서 기념으로 주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404

라파엘로의 <아뇰로 도니의 초상>, 1506-07년경, 패널에 유채, 65-45.8cm.


405

라파엘로의 <마달레나의 초상>, 1506-07년경, 패널에 유채, 65-45.8cm.

우르비노 태생의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로 성기 르네상스에 호라약하면서 표현이 강렬한 작품을 제작한 라파엘로 산지오의 초기 작품에는 페루지노의 영향이 두드러졌습니다. 라파엘로는 초기에 토스카나와 우르비노의 여러 곳에서 활약했고, 1504년부터 1508년까지는 대부분 피렌체에서 활약했고, 이 시기를 피렌체 시기로 분류합니다. 이 시기에 그는 성 모자를 주제로 여러 점 그렸으며,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인물을 우아하고 건강미가 넘치게 묘사하면서 평온하고 내면적 자긍심이 드러나게 표현했으나 성스러운 이미지를 나타내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1508년 불과 스물다섯 살이었지만 명성을 얻었으며, 교황 율리우스 2세가 그를 초청해 바티칸에 있는 자신의 방에 프레스코를 그리게 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신학을 주제로 한 것으로 유명한 <아테네 학당>과 <논쟁>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는 초상화도 많이 그렸는데, 인물의 성격을 섬세하게 나타낸 점에서 레오나르도에 필적했습니다. 그는 서른일곱 해의 생을 살았습니다.


라파엘 마돈나

라파엘로의 <시스티나 성모>, 1513-14, 캔버스에 유채, 265-196cm.


라파엘로 산지오Raffaello Sanzio(1483-1520)도 얼마 후 두 사람의 초상을 그렸습니다. <도니 톤도>는 미켈란젤로의 유일한 템페라 작품으로 <성 요셉이 있는 거룩한 가정>이라고도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가로 명성을 쌓아왔는데, 왜 도니가 그에게 조각이 아닌 그림을 주문했으며 미켈란젤로가 그 주문을 받아들였는지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줄곧 조각을 제작해왔지만, 회화의 세계에 임했을 때에도 대가의 원숙함을 보여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프레임에 맞추기 위해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원래 프레임은 도니의 아내 마달레나 집안인 스트로치의 방패형 문장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전체에 금박을 입힌 나무 프레임은 다섯 개의 흉상과 함께 정교하게 장식되어 매우 아름답지만, 미켈란젤로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마리아와 요셉은 부모의 모범이며 그들의 순결함은 신에 대한 올바른 헌신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미켈란젤로가 성모를 남성적 골격을 한 여걸의 모습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주제가 요구하는 것에 비해 너무나 강렬한 모순이 드러나기 때문에 관람자는 이것이 흥미로운 동작을 표현하며, 구성상의 문제를 인위적으로 해결하려는 의도로 제작된 작품임을 즉시 알아채지 못합니다. 레오나르도의 작품에서도 나타났듯이 회화적 구성의 새로움이라는 ‘예술을 위한 예술 l’art pour l’art’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새로운 이상이 작품에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레오나르도와 경쟁을 벌이려는 속셈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아주 협소한 공간에 최대한의 동작을 담아내는 것은 미켈란젤로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그의 의도는 입체적 풍부함을 집중시키려는 것으로 이 작품으로 레오나르도를 능가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입체적 풍부함을 과시할 수 있었던 건 조각적 관찰 방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림을 조각처럼 그린 것입니다.

이 작품의 모티프가 15세기 피렌체 미술에서 새롭게 드러나는 것은 아기 예수의 양아버지인 요셉의 역할이 특히 부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요셉은 성모의 남편으로 아기를 직접 안고 그녀에게 건네주고 있는데, 과거 성화에서는 볼 수 없는 점입니다. 성 프란체스코 때부터 15세기 말경 프랑스에서는 요셉이 공경 받는 새로운 경향이 있었으며, 이런 영향을 받아 미켈란젤로가 요셉의 역할을 능동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닌가 하고 학자들은 짐작합니다. 훗날 그가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에 그린 무녀들이 이 작품의 성모의 모습을 닮은 것이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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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 핵분열 물질은 원자로에서 쉽게 훔칠 수 있다



인류는 현재 위대한 모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모험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우리가 지금 감행하려는 모험은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이 뭍으로 진출한 사건이나, 유인원이 나무 위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땅으로 내려오기로 한 결정 등에 버금갈 만한 위대하고 중요한 사건으로 인류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지구의 온갖 족쇄에서 벗어나려고 끙끙거리고 있습니다. 인류는 이미 지구의 속박에서 일시적 해방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사고방식에 내재된 원시성을 잘 길들이며 우리의 원시적 두뇌가 내리는 일방적 지시와 대결함으로써 지구가 사람에게 걸어놓은 정신적 족쇄에서 탈출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쟁 수행에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습니다. 인간은 상호 불신이란 최면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하나의 종으로서의 인류에 대한 염려 같은 것은 아예 할 줄 모릅니다.

『코스모스 Cosmos』(1980)의 저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핵전쟁을 두려워하지만, 핵기술을 보유한 국가들은 단 한 나라도 빠짐없이 핵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누구나 핵전쟁이 미친 짓이라고 알고 있지만, 국가는 국가대로 핵전쟁의 필요성에 대한 그럴듯한 구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가 여기서 음울한 인과의 고리를 보게 된다면서, 핵폭탄은 만들기 쉬운데, 핵분열 물질은 원자로에서 쉽게 훔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핵폭탄 제조 기술은 거의 가내 공업의 범주에 들었다고 말합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파괴력은 겨우 13킬로톤이었습니다. TNT 1만3천 톤에 해당하는 위력이었습니다. 1954년 3월 1일 마셜 군도 비키니 섬에서 있었던 수소폭탄 시험은 15메가톤 급의 위력이었습니다. 폭발 지점에서 150km나 떨어진 작은 산호섬 롱애러프Rongalap도 거대한 방사능 구름으로 덮였습니다. 폭발한 지 수 시간 후 방사능 낙진이 롱에러프 섬에 눈송이가 내리듯 떨어졌습니다. 수소폭탄을 이용한 전쟁이 발작적으로 일어나면 전 세계의 모든 도시에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 100만 개가 떨어지는 셈입니다. 히로시마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TNT 1만3천 톤이 수십만 명을 살해했으니, 전면 핵전쟁에서는 1000억의 인명을 죽이고도 남을 것입니다.

핵 공격에서 비록 몇몇 사람이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쉽게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는 묘한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핵폭발은 지구 상층 대기의 질소와 산소의 결합을 촉진시켜 오존의 상당량을 파괴시킬 것입니다. 오존층의 파괴로 태양 자외선이 지구 대기로 침투할 수 있으며, 그 때문에 지구 표면에 도달하는 자외선의 양이 수 년 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태양 자외선은 피부암을 유발하는데 피부암은 특히 백인종에게 위험합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지구 생태계에 가져올 변화입니다. 하지만 변화의 실상을 모르기 때문에 대책을 세울 수 없습니다. 자외선은 곡식의 수확량을 격감시킬 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미생물들을 죽일 것입니다.

핵무기를 통한 전쟁 억지라는 아이디어는 전적으로 우리의 비인간적 조상의 행동 양식에 근거한 것이다. 정치가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핵 억지력의 실현 여부는 무엇보다 심리학적 판단 기준에 달려 있다. 핵사용 억지의 목적에서 볼 대 협박성 공갈을 신중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편이 심각한 위협을 허풍으로 오판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때로는 막가파식의 비이성적 행태를 상대국에게 구사한다던가, 아니면 상대방을 핵전쟁의 가공할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완전 세뇌하여 핵무기로 인한 전멸 가능성으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두게 유도하는 것이 핵 억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실질적 방책이라는 것입니다. 광기 어린 협박의 실제 목적은 가상의 적대국을 지구 전역에 걸친 대결의 장으로 내몰지 않고 오히려 분쟁의 여러 쟁점에서 상대로부터 양보를 끌어내려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막가파식 공갈 협박을 완벽하게 구사하여 상대방을 속이려면 절묘하게 과장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과장에는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중대한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비이성적 행태로 협박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이러한 방식에 너무 익숙해져서 협박의 허세를 허세로 묶어두지 못하고 언젠가 결국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협박을 실행으로 옮기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자신이 부리는 허세를 상대방으로 하여금 허풍이 아니라 실제라고 믿게 하려다가,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버리는 경우가 생기고 맙니다. 협박은 실행으로 옮겨질 위험을 반드시 동반합니다.

강대국들은 살상용 핵무기를 자체 조달하고 비축하는 데 대한 자기 나름의 정당화 논리를 구축해놓고 있으며, 그 논리의 당위성을 만방에 열심히 홍보하고 있습니다. 항시 가상 적국의 문화적 하자를 지적하고 그들이 저지를지 모르는 비이성적 행태를 상정하여 사람이 아직 갖고 있는 파충류의 뇌를 자극하는 데 유효적절하게 활용함으로서, 자국민을 파충류적 행동 기제로 몰고 갑니다. 자국은 상대국과 달리 문화적 하자가 없고, 타국을 해칠 의도가 없으며, 건전한 세계 시민으로서 세계의 정복 따위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국가에는 결코 실현돼서는 안 되는 일들의 목록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목록에 들어있는 일들이 일어나도록 결코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핵을 보유한 초강대국들이 떠들어대는 그들의 뻔한 주장을 우리는 귀가 아프게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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