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톤도 릴리프: 완성과 미완성의 조화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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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타데이 톤도>, 1504년경, 대리석, 지름 117.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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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타데이 톤도>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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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타데이 톤도>의 부분


<브뤼허 성모>를 완성할 무렵인 1504년경 스물아홉 살의 미켈란젤로는 <타데이 톤도>와 <피티 톤도>를 완성했습니다. 둘 다 커다란 원반 대리석에 릴리프로 제작한 작품들입니다. 톤도는 원형 회화란 뜻이며, 회화적 장면을 삼차원으로 묘사하여 벽에 걸기 위한 것입니다. 이 무거운 대리석을 어떻게 벽에 고정시킬 수 있을까? 미켈란젤로는 초기에도 릴리프를 제작했지만 어디서, 어떻게 제작한 것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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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피티 톤도>

미켈란젤로는 성모의 머리를 언형 대리석 위로 약간 돌출시켜 성모를 더욱 부각시켰는데, 이는 도나텔로로부터 배운 교훈으로 톤도를 벽에 걸고 아래에서 올려다 볼 때 성모의 얼굴이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타데이 톤도>는 작품을 의뢰한 피렌체 귀족 타데오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피티 톤도> 역시 바르톨로메오 피티의 의뢰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고르지 못한 원형 대리석판에 릴리프 조각을 새기는 일은 구성에 대한 특별한 아이디어가 요구됩니다. 미켈란젤로는 성모, 아기 예수, 아기 세례 요한으로 구성했습니다. 왼쪽의 세례 요한이 무엇인가를 들고 다가가자 아기 예수가 깜짝 놀라 어머니 품속으로 도망치듯 안기는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놀란 아기 예수의 몸짓은 일반적으로 놀랐을 때의 모습이 아니라 미켈란젤로에 의해 예술적으로 표현된 모습입니다. 도상적으로 말하면 세례 요한이 들고 있는 것은 검은방울새로, 이 새는 가시를 먹고 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의 육촌 형으로 예수보다 6개월가량 먼저 태어났습니다. 미술계에서는 예수와 세례 요한이 어렸을 때 함께 성장한 것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전설에 의한 것입니다.

아기 예수에 비해 세례 요한은 의도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며 성모는 배경으로부터 명료하지 않고 모호하게 모습이 드러납니다. 길게 뻗친 예수의 몸은 원을 가로지르는 듯한 성모의 우미한 옷자락으로 인해 더욱 강조됩니다.

미켈란젤로는 톤도 릴리프에서 분명한 것과 암시적인 것, 완성과 미완성이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암시적인 요소와 미완성의 요소를 충분히 살려 작품에 좀 더 상상의 여지를 둔 것입니다. 이 작품은 부분적으로 미완성처럼 보였지만, 타데이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타데이는 미술에 조예가 깊고 라파엘로를 후원한 사람이었습니다. 라파엘로가 이 작품을 보고 드로잉을 한 것으로 봐서 라파엘로의 마음에 감동을 준 것으로 짐작됩니다.

미완성의 요소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피티 톤도>입니다. 이것은 미켈란젤로가 <타데이 톤도>에서보다 그 요소를 더욱 의도적으로 강조한 듯이 보입니다. 왼쪽 성모가 앉은 뒤쪽을 평행으로 조각칼(그라디나라는 갈고리 모양의 끌) 자국을 낸 것은 의도적으로 미완성의 요소를 구성요소로 사용했음을 알게 해줍니다. 그의 미완성적 요소를 회화의 반질반질한 표면과 환상적 속임수와 비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피티 톤도> 역시 앉아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 그리고 세례 요한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성모가 크게 부각되고 요한은 성모의 오른쪽 어깨 뒤로 겨우 보입니다. 성모는 아기 예수를 끌어안고 있고 요한은 뒤에서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성모의 얼굴은 <로마 피에타>와 <브뤼허 성모>에서와 같이 사랑스럽습니다. 아기 예수는 성모의 무릎 위에 펼쳐진 성서에 오른팔을 얹고 아무런 의미 없이 머리를 기대며 미소 짓습니다. 이 작품은 <타데이 톤도>보다 차분하며 경건함을 더욱 강조합니다. 부조의 깊이는 얕지만 성모의 삼차원적 모습은 더욱 두드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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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도니 톤도>, 1504년경, 둥근 패널에 템페라, 91-80cm.

이 작품을 <성 요셉이 있는 거룩한 가정>이라고도 합니다. 그림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책을 읽던 성모가 등 뒤에 쭈그리고 앉은 남편 성 요셉이 건네주는 아기 예수를 받고 있습니다. 성모가 아기를 받고 있는 것인지 성모가 건네주는 아기를 요셉이 받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불분명한 동작 때문에 성모와 요셉 사이에 끊임없이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성모는 전통적으로 성모를 상징하는 붉은색 드레스와 짙은 녹색 천이 둘러진 청색 외투를, 요셉은 짙은 청색 상의에 눈부신 금색 외투를 입고 있습니다. 하단을 넓게 차지한 성모의 외투와 요셉의 상의, 그리고 멀리 풍경과 하늘의 파란색은 원근이 반복되는 색으로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오른쪽의 돌난간 뒤 도랑에서는 아기 세례 요한이 놀라워하는 혹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처음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아본 예언자입니다. 그의 뒤로 보이는 벌거벗은 남자들은 예언자들 혹은 이교의 목신들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화면 속에는 이교도와 그리스도교 사이에 요한이 있다는 시대적인 은유가 내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타데이 톤도>와 <피티 톤도>를 제작한 후 같은 해 템페라로 성가족을 그렸습니다. 아뇰로 도니의 주문으로 그린 것이라서 <도니 톤도>라 합니다. 도니가 마달레나 스트로치와 1504년 1월 31일 결혼하면서 기념으로 주문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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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의 <아뇰로 도니의 초상>, 1506-07년경, 패널에 유채, 65-45.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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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의 <마달레나의 초상>, 1506-07년경, 패널에 유채, 65-45.8cm.

우르비노 태생의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로 성기 르네상스에 호라약하면서 표현이 강렬한 작품을 제작한 라파엘로 산지오의 초기 작품에는 페루지노의 영향이 두드러졌습니다. 라파엘로는 초기에 토스카나와 우르비노의 여러 곳에서 활약했고, 1504년부터 1508년까지는 대부분 피렌체에서 활약했고, 이 시기를 피렌체 시기로 분류합니다. 이 시기에 그는 성 모자를 주제로 여러 점 그렸으며,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인물을 우아하고 건강미가 넘치게 묘사하면서 평온하고 내면적 자긍심이 드러나게 표현했으나 성스러운 이미지를 나타내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1508년 불과 스물다섯 살이었지만 명성을 얻었으며, 교황 율리우스 2세가 그를 초청해 바티칸에 있는 자신의 방에 프레스코를 그리게 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신학을 주제로 한 것으로 유명한 <아테네 학당>과 <논쟁>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는 초상화도 많이 그렸는데, 인물의 성격을 섬세하게 나타낸 점에서 레오나르도에 필적했습니다. 그는 서른일곱 해의 생을 살았습니다.


라파엘 마돈나

라파엘로의 <시스티나 성모>, 1513-14, 캔버스에 유채, 265-196cm.


라파엘로 산지오Raffaello Sanzio(1483-1520)도 얼마 후 두 사람의 초상을 그렸습니다. <도니 톤도>는 미켈란젤로의 유일한 템페라 작품으로 <성 요셉이 있는 거룩한 가정>이라고도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가로 명성을 쌓아왔는데, 왜 도니가 그에게 조각이 아닌 그림을 주문했으며 미켈란젤로가 그 주문을 받아들였는지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줄곧 조각을 제작해왔지만, 회화의 세계에 임했을 때에도 대가의 원숙함을 보여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프레임에 맞추기 위해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원래 프레임은 도니의 아내 마달레나 집안인 스트로치의 방패형 문장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전체에 금박을 입힌 나무 프레임은 다섯 개의 흉상과 함께 정교하게 장식되어 매우 아름답지만, 미켈란젤로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마리아와 요셉은 부모의 모범이며 그들의 순결함은 신에 대한 올바른 헌신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미켈란젤로가 성모를 남성적 골격을 한 여걸의 모습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주제가 요구하는 것에 비해 너무나 강렬한 모순이 드러나기 때문에 관람자는 이것이 흥미로운 동작을 표현하며, 구성상의 문제를 인위적으로 해결하려는 의도로 제작된 작품임을 즉시 알아채지 못합니다. 레오나르도의 작품에서도 나타났듯이 회화적 구성의 새로움이라는 ‘예술을 위한 예술 l’art pour l’art’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새로운 이상이 작품에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레오나르도와 경쟁을 벌이려는 속셈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아주 협소한 공간에 최대한의 동작을 담아내는 것은 미켈란젤로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그의 의도는 입체적 풍부함을 집중시키려는 것으로 이 작품으로 레오나르도를 능가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입체적 풍부함을 과시할 수 있었던 건 조각적 관찰 방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림을 조각처럼 그린 것입니다.

이 작품의 모티프가 15세기 피렌체 미술에서 새롭게 드러나는 것은 아기 예수의 양아버지인 요셉의 역할이 특히 부각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요셉은 성모의 남편으로 아기를 직접 안고 그녀에게 건네주고 있는데, 과거 성화에서는 볼 수 없는 점입니다. 성 프란체스코 때부터 15세기 말경 프랑스에서는 요셉이 공경 받는 새로운 경향이 있었으며, 이런 영향을 받아 미켈란젤로가 요셉의 역할을 능동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닌가 하고 학자들은 짐작합니다. 훗날 그가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에 그린 무녀들이 이 작품의 성모의 모습을 닮은 것이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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