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적 이슬람주의와 민주주의

 

 

 

 

 

 

이 장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굵직한 주제 네 가지를 제기했다.

 

1.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통일성과 다양성: 어떤 카테고리에 다양성이 있다고 해서 공통인수가 전무하다는 뜻은 아니다.— 정말 그렇다면 카테고리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슬람교에는 모든 무슬림이 공감하는 핵심 신조— 즉 세계관과 신앙 및 윤리적 가르침 등— 가 있다. 30여 년간 아프리카 및 아시아의 이슬람국가 스무 곳을 다니며 연구해온 나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이는 사례를 숱하게 목격했다. 이슬람주의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슬람교를 샤리아로 통일하고, 코란에서 법이 아닌 도덕을 언급할 때에만 “샤리아”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대놓고 외면할 뿐 아니라, 자칭 권위자라는 위인들이 주장하는 “글로벌 칼리프” 가 아닌 니잠 이슬라미, 즉 신이슬람 질서를 확립하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국가(다울라)” 나 “질서(니잠)”— 이슬람주의자들이 샤리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매우 중요한 개념— 가 코란에는 없다. 따라서 이슬람주의자들이 공감하는 것은 왜곡된 샤리아 전통에 근거하여 세계 재편성을 지향하는, 근대의 종교화된 정치 이데올로기인 셈이다. 이에 동조하는 무슬림이 이슬람주의자가 되는 반면, 이에 편승하지 않은 채 이슬람교를 영적으로 이해하는 독실한 무슬림은 이슬람주의자가 아니다. 사실, 민주정치의 참여를 지지하고 이슬람주의자의 지하드운동은 포기한다는 “포스트이슬람주의” 는 앞뒤가 맞지 않는 용어다.
“신이슬람 질서” 를 창출하고 싶어 안달하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어떻게 “포스트이슬람주의자” 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 목표가 폐기될 때만이 포스트이슬람주의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이슬람주의 아젠다를 포기한 이슬람 조직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터키의A KP를 비롯한 일부 정당은 위헌조치를 피할 요량으로 이슬람주의라는 정체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를 포스트이슬람주의의 징조로 보기는 어렵다. 어쨌든, 제도적 이슬람주의자와 지하디스트의 차이는 모호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일부 이슬람주의 당은 선거에 동의하나 민병대를 지금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즉, 하마스와 헤즈볼라 및 최고 이슬람 이라크 위원회는 의회의 대표를 선출해 적법성을 주장하는 동시에 테러를 자행하며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2. “민주정치에 대한 순수 의지”: 이 맥락에서 “순수”라는 말은 민주적 다원주의에 입각한 진보적 이해를 일컫는다.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와 그 주축을 연구한 결과는 이 같은 의지를 둘러싼 신념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신이슬람 질서는 전체주의적 질서다. 이슬람주의자들의 사상 및 문화적 가치관을 바꾸면 얼마든지 개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껏 정치적 이슬람교를 연구하면서 그런 변화를 체감한 적은 없었다. 수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민주정치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이는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의 경우에서와 같이 모두 법적 제재를 피하거나, 추방을 면하기 위한 수단적인 이유에 그치고 말았다. 물론 그런 개혁을 감행한 위인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이슬람주의를 전면 포기했다고 말할 수 있을 테지만 AKP나 무슬림 형제단은 아직 그런 적이 없었다.

 

3.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와 민주정치의 양립성: 정치를 이슬람주의식 종교로 바꾸는 데에는 타협이 없다. 신성한 종교에는 협상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는 곧 이단으로 정죄될 뿐이며, 민주정치의 필수요소인 다원주의와 다양성에 대한 관용은 “분리를 조장한다” 는 이유로 배격한다. 선거에 참여하고 폭력을 애매하게 폐기하는 것만으로 이슬람주의자들이 순수하게 민주정치를 지향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이슬람주의 조직은 샤리아라는 허울 아래 비무슬림 소수나 종교색을 띠지 않는 정당과는 권력을 분담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전체주의적인 샤리아가 허용한다고 믿는 것만 수용한다. 샤리아가 헌법의 가치와 같다는 주장이 있으나 사실 입헌주의와 샤리아는 본질이 아주 다르다.

 

4. 합류와 배제: 이슬람주의 국가질서가 민주정치와 공존할 수 없음에도, 이슬람세계에서 주요 야권세력을 대변하는 이슬람주의 조직체를 민주 정부는 외면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 방편이 있는데, 첫째는 터키가 대변하는 합류요, 둘째는 알제리의 경우처럼 이슬람주의 당을 공공연히 금지하는 배제다. 나는 개인적으로 터키의 모델을 선호한다. 물론 터키의 AKP에 안심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민주적 다원주의를 버리고 “점진적 이슬람주의화” 를 추구하니 말이다. AKP는 이슬람주의 정당으로 겉으로는 그런 척해도 독일 기독교 민주당원과 비견할 만한 이슬람교의 보수주의는 아니다. 이는 숨은 유대인dönme(돈메)이라 규정된 세속주의자를 비롯하여, 쿠르드족과 알라위족과 같은 소수 민족・종교집단을 용납하지 않았다. 합류 정책은 배제되었던 당에 힘을 실어주었다. AKP는 선거를 “권력에 이르는 가장 적법한 방책” 으로 활용하여 “주로 이슬람주의 노선에서 공화국을 재편”할 수 있었으나 종착역은 민주화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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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는 도덕철학에서 답을 찾아내는 분명한 방법을 마련해준다

 

 

 

 

공리주의는 도덕철학에서 답을 찾아내는 분명한 방법을 마련해준다. 예컨대, 저녁 시간을 친구와 함께 지내기로 약속했는데 곧이어 다른 친구에게서 내일 제출할 숙제를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하자. 내가 아니고는 아무도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 먼저 한 약속의 중요성과 친구를 돕는 일의 중요성을 비교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걸 어떻게 할까? 문제가 쉽지 않아 보인다. 두 대안이 지닌 중요성을 어떻게 측정하고 비교할까?
무엇이 이 문제에 대한 좋은 답일까? 공리주의자라면,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끝내게 해줄 명쾌한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건 공리주의자가 올바른 행위를 찾아내는 방법은 한 가지다. 선택할 수 있는 모든 행위의 대안들을 늘어놓고 각각의 대안이 초래할 비용과 효과를 셈하라. 각각의 대안마다 비용과 효과를 비교하여 득실을 셈하라. 비용과 비교해서 효과가 가장 큰 대안이 최적의 대안이 된다. 이처럼 공리주의는 무엇을 할지 가장 효과적으로 찾아낼 방법을 마련해주는데 비용과 효과를 셈하여 비교하는 순전히 경험적인 작업이다. 물론 실제에서는 계산이 생각보다 복잡할 것이고, 각각의 대안마다 얻을 것과 잃을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데 불확실한 요인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문제에 대한 답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
게 되었다. 그 답은 언제나 “어떤 대안이 가장 큰 행복을 가져오느냐?”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이런 접근법은 행복을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 가정했듯이, 모든 도덕적 문제마다 계측할 수 있는 답을 찾을 수 있음을 전제한다.
실제로 공리주의는 얼마나 잘 적용될 수 있을까? 앞으로 이 문제는 더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안락사, 세계적 빈곤, 동물 복지 같은 문제들을 고려하다 보면, 공리주의에 기대지 않을 수 없는 주제를 만난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공리주의는 고통과 복지에 초점을 맞추는 도덕이론이다. 급진적 공리주의자의 견해에서 볼 때, 관습적 도덕은 너무나 많은 관습상의 규칙들로 채워져서 우리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여 세상을 이롭게 이끌어가기가 어렵다. 예를 들자면, 관습적 도덕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신성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일종의 규칙이나 원칙 같은 것에 얽매이는데, 바로 이것이 전체 인간 세계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노력에 걸림돌이 된다. 비록 어떤 인간이 심한 장애를 안고 있어서 먹을거리나 실험용으로 쓰이는 동물보다 지능이 낮다 하더라도, 인간은 인간의 생명에 깃든 가치와 동물의 생명이 가져올 가치에 대하여 나름의 관념을 지닌다. 우리는 요구되는 행위와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행한다면 다만 ‘거룩할’ 뿐인 행위를 구별한다. 그래서 운 좋게 물려받은 것들을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나눠야 할 책임을 못 본 체 넘겨버리기도 한다. 공리주의자들이 볼 때, 여기서 합리적인 해법은 관습적 도덕 아래 만연되어 온 ‘규칙 숭배’라는 관행을 집어던지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실제 문제로 곧장 달려드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반대의 (말하자면, 결과주의론이 아닌 의무론의) 관점에서 보면, 공리주의자의 급진적 접근은 비도덕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공리주의적 접근의 특징은 미리 제외해버리는 행위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무엇을 할지 결정하려 할 때 우리의 행위가 초래할 결과를 예측해보면서 되도록 최선의 결과를 초래할 대안을 선택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떤 특정 범주의 행위를 제외해서 선택 범위를 한정해두는 것은, 우리는 결코 거짓말을 하거나 훔치거나 죄 없는 사람을 죽이거나 고문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미친 짓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들 가운데 어떤 행위라도, 어떤 특정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그런 행위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면, 필요한 경우 필요한 행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없도록 자신의 손발을 묶어두는 꼴이 될 뿐이다. 공리주의자라면 결코 이런 약속을 할 리가 없다. 도덕의 핵심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의무론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사람은 특정 행위를 특정 이유로(예컨대,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 하여) 미리 배제하기 일쑤다. 이들에게는 공리주의적 접근이란 것(중요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라도 쓸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자못 급진적일 뿐만 아니라 무원칙한 것으로 비칠 것이다.
이제 도덕이론의 하나인 공리주의의 이점을 정리해보자. 무엇보다 공리주의는 도덕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설명한다. 공리주의에서 보는 도덕은 현실을 고통과 고난에서 행복과 자유로 이끄는 것이다. 공리주의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설명한다. 그것은 곧 비용과 효과를 셈하여 비교하는 일이다. 공리주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행위에 도덕적 제한을 설정하지 않으며 선을 최대화하려고 한다. 또한, 공리주의는 평등과 공정함에 뿌리를 박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집약하여 이루어진 공리주의는 본질적으로 급진적이고 비평적인 이론이어서 우리의 도덕적 사고와 행위 및 사회제도에 배어있던 관습을 털어내도록 요구한다. 이제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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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許筠의 <소인론小人論>

 

 

 

方今國家방금국가: 요즈음 나라에는

无小人焉무소인언: 소인小人도 없으니

亦无君子焉역무군자언: 또한 군자君子도 없다.

无小人무소인: 소인이 없다면

則國之幸也칙국지행야: 나라의 다행이지만

若无君子약무군자: 군자가 없다면

則何能國乎칙하능국호: 어떻게 나라일 수 있겠는가?

否否不然부부불연: 절대로 그렇지는 않다.

无君子무군자: 군자가 없기 때문에

故亦无小人焉고역무소인언: 역시 소인도 없는 것이다.

向使國有君子향사국유군자: 나라에 군자가 있다면

則小人不敢掩其跡也칙소인불감엄기적야: 소인들이 그들의 형적形迹을 감히 숨기지 못한다.

夫君子小人부군자소인: 대저 군자와 소인은

如陰陽晝夜여음양주야: 음陰과 양陽, 낮과 밤 같아서

有陰則必有陽유음칙필유양: 음陰이 있으면 반드시 양陽이 있고

有晝則必有夜유주칙필유야: 낮이 있으면 반드시 밤이 있으니

有君子則必有小人유군자칙필유소인: 군자가 있다면 반드시 소인도 있다.

在唐虞亦然재당우역연: 요ㆍ순 때에도 역시 그랬는데

矧後世乎신후세호: 하물며 후세의 세상에서야.

蓋君子則正개군자칙정: 대개 군자라면 바르고

小人則邪소인칙사: 소인이라면 간사하며

君子則是군자칙시: 군자라면 옳고

小人則非소인칙비: 소인이라면 그르며

君子則公군자칙공: 군자라면 공변되고

小人則私소인칙사: 소인이라면 사심私心을 지녔으니

在上者以邪正是非公私재상자이사정시비공사지변이찰지: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사정邪正ㆍ시비是非ㆍ공사公私의 판단으로써 살핀다면

則彼小人者烏敢遁其情哉칙피소인자오감둔기정재: 저들 소인들이 어떻게 감히 그들의 실정實情을 숨길 것인가?

方今之所謂君子小人방금지소위군자소인: 요즈음의 이른바 군자ㆍ소인이란

无大相遠者무대상원자: 서로 간에 큰 동떨어짐이 없다.

而同則皆爲君子이동칙개위군자: 자기들과 뜻을 같이하면 모두 군자로 여기고

異則皆爲小人이칙개위소인: 달리하면 모두 소인으로 여긴다.

彼異則斥以爲邪피이칙척이위사: 저편이 이쪽과 다르다면 배척하여 사邪하다 여기고

此同則推以爲正차동칙추이위정: 이편과 같이 뜻하는 사람이라면 치켜세워 정正이라 여긴다.

是者是其所是시자시기소시: 시是란 그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시이고

非者非其所非비자비기소비: 비非란 그들이 그르다고 여기는 것이 비이니

此皆由公不能勝私而然也차개유공불능승사이연야: 이건 모두 공公이 사私를 이길 수 없는 이유로 그런 것이다.

誠使大人君子學行才識성사대인군자학행재식: 진실로 대인군자大人君子로서 학행學行과 재식才識이

爲一時表率者위일시표솔자: 한 시대의 대표되는 사람으로 하여금

出而在上位출이재상위: 나와서 높은 지위에 있도록 하여

以風勵具僚이풍려구료: 모든 관료들을 권장해 주고

使薦紳大夫사천신대부: 신분 높은 대부大夫들로 하여금

皆知其守正奉公개지기수정봉공: 모두 바름을 지키고 공公에 봉사하며

明是非之分명시비지분: 시비是非의 분별을 밝힐 줄 알게 해 준다면

一時淫朋일시음붕: 한 시대의 음흉한 붕당 떼거리들이

將革面之不暇장혁면지불가: 장차 면모를 개혁하는데 시일이 걸리지 않으리라.

安敢四分五裂안감사분오렬: 어떻게 감히 사분오열四分五裂하여

恣其跳梁如近日乎자기도량여근일호: 함부로 날뛰는 짓을 요즘같이 하겠는가?

然則淫朋之害연칙음붕지해: 그렇다면 음흉한 붕당 떼거리들의 해로움은

有甚於小人之專朝也較矣유심어소인지전조야교의: 소인들이 국권을 전횡함보다 심한 것이 분명하다.

國之惡小人者국지악소인자: 나라에서 소인들을 미워하는 것은

惡其病國而害民也악기병국이해민야: 그들이 나라를 병들게 하고 백성들을 해롭게 하는 것을 미워해서이다.

今則害于國而病乎民者금칙해우국이병호민자: 오늘날 나라에 해를 끼치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것은

不待權奸之秉政불대권간지병정: 권간權奸이 국정을 쥐지 않고도

而若此之極이약차지극: 이처럼 극도에 이르렀음은

是皆私意大行시개사의대행: 모두 사의私意가 크게 행해져서

權不出於一권불출어일: 권한이 한 곳에서 나오지 않고

而紀綱已壞이기강이괴: 기강紀綱이 이미 무너져

不可復振之故也불가부진지고야: 다시는 진작시킬 수 없는 때문이다.

蓋所謂權奸者亦有之矣개소위권간자역유지의: 이른바 권간權奸이라는 자들도 있었다.

安老嘗弄之안로상롱지: 김안로가 일찍이 농간을 피웠고

元衡嘗擅之원형상천지: 윤원향도 일찍이 전권을 휘둘렀다.

近日永慶亦欲專之근일영경역욕전지: 요즘에는 최영경 역시 전횡하고자 하여

其自利而斥異己기자리이척이기: 자기 자신만을 이익 되게 하고 자기와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則同一揆也칙동일규야: 배척했음은 동일한 방법이었다.

至於國之經紀則自若焉지어국지경기칙자약언: 그러나 나라의 기강에 있어서는 여전했었으니

是无他시무타: 이건 다름이 아니라

權出於一권출어일: 권한이 한 곳에서 나왔던 까닭으로

故專擅之者絀고전천지자출: 전천專擅하던 사람이 물러가면

則旋復其舊也칙선부기구야: 곧바로 예전대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今則不然금칙불연: 지금은 그렇지 않아

權之出者多門권지출자다문: 권한이 나오는 곳이 여러 군데이고

而自利而斥異己者이자리이척이기자: 자신만을 이롭게 하며 자기와 달리하는 사람을 배척하는 것은

人人皆是인인개시: 사람마다 모두 그렇다.

欲絀之則不可勝絀욕출지칙불가승출: 그런 것을 물리치려고 한다면 이루 다 쫓아낼 수가 없고

而國綱終无以收拾矣이국강종무이수습의: 나라의 기강도 끝내 수습할 수가 없게 된다.

嗚呼오호: 오호라

安得小人者俾안득소인자비전국방: 어떻게 하여야 소인들이 국권을 전횡하게 했다가,

及其來張而擊去之耶급기래장이격거지야: 그들이 세력을 펼치지 못할 때 공격하여 제거할 수 있을까?

亦安得大人君子者出而風之역안득대인군자자출이풍지: 또 어떻게 하여야 대인군자大人君子가 나와서, 풍동風動하여

以散其淫朋耶이산기음붕야: 그처럼 음흉한 부당들을 해산시킬 수가 있을까?

故曰方今國家无小人고왈방금국가무소인: 때문에,"지금의 국가에는 소인도 없으니

亦无君子也역무군자야: 또한 군자도 없다" 하였다.

抑有說焉억유설언: 또 하나를 말해보면

古之所謂小人者고지소위소인자: 옛날의 이른바 소인이라던 자들은

其學足以濟其辨기학족이제기변: 그들의 학문은 그들의 변설辯說을 돕기에 충분했으며

其行足以欺夫俗기행족이기부속: 그들의 행실은 세속을 속이기에 충분했었고

其才足以應乎變기재족이응호변: 그들의 재주도 사태의 변화에 적응하기에 충분하였다.

故其在位也고기재위야: 그러므로 그가 지위에 있는 동안에는

人不測其中인불측기중: 사람들이 그의 내심을 헤아리지 못했고

而足以行其所欲爲이족이행기소욕위: 충분하게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하였다.

其與君子異者기여군자이자: 그들이 군자와 다른 것은

特公私一毫髮之差특공사일호발지차: 오직 공公과 사私라는 아주 작은 차이지만

其禍猶慘기화유참: 그들이 끼치는 화란은 오히려 참혹했으니

況无才行學識황무재행학식: 하물며 재행才行과 학식學識도 없으면서

而唯好官是饕이유호관시도: 오직 좋은 벼슬만 탐내며

逐逐於津要축축어진요: 요직에만 기를 써서

爲狗苟態者위구구태자: 구차스러운 태도를 하는 사람들이

盈朝滿庭영조만정: 조정朝廷에 가득 찼다면

則其禍終如何耶칙기화종여하야: 그 화는 마침내 어떠한 정도이랴.

故曰淫朋之害고왈음붕지해: 그러므로 "음흉한 붕당의 해는

有甚於小人之專朝也較矣유심어소인지전조야교의: 소인이 조정을 전횡하는 것보다 심하다는 것이 분명하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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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치질에 대한 행법

 

1. 두 다리를 어깨너비보다 약간 넓게 벌리고 선다. 한쪽 새끼손가락과 약손가락의 배를 엉덩이 틈새에 대고 진동을 시키듯이 1분 동안 아래위로 세차게 비빈다. 손을 바꾸어 같은 동작을 한다. 좌우 교대로 1분씩 5회, 약 10분 동안의 행법이다. 이것을 하루에 2-3회 한다. 배변 후에도 화장실에서 행한다.

치질은 항문과 그 언저리의 혈액 흐름이 나빠져서 울혈상태를 일으키고 사기가 쌓여서 생기는 병이다. 울혈상태를 일으키기 쉬운 자세, 즉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이 병에 걸리기 쉽다.

항문에 대한 장시간의 압박, 냉각, 변비 등은 금물이다. 또한 알코올이나 자극적인 음식의 과잉섭취도 점막에 울혈을 일으키기 쉬우므로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좋다.

가벼운 치질이라면 출혈이 당장 멎을 것이다. 3년쯤 내버려두었던 치질도 암치질, 수치질의 단계라면 닷새 내지 일주일이면 효과가 나타나고 한 달 정도면 완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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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운 과거의 사람! 그리고 과거의 장소!

 

 

 

서울과 부산의 KTX 거리는 2시간 40분입니다.

참 작은 한반도의 반 토막이란 생각이 듭니다.

신의주에서 부산까지의 거리 정도가 되어야 한반도의 위상이 걸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구도 마찬가지입니다.

1억은 못 되어도 9천만에 이를 정도가 되어야 문화적으로도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출판업을 하는 관계로 그런 생각이 더욱 절실합니다.

초판을 적어도 4천 부는 발행할 수 있어야 출판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요일 낮에 부산역에 도착하여 간단한 점심식사를 한 후 동래 온천장으로 향했습니다.

부산에 자주 가는 편이지만, 해운대에서 해수온천은 여러 차례 즐겼지만, 동래온천은 처음입니다.

허심청이란 곳에 갔는데, 규모가 매우 컸습니다.

물론 물도 좋았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곳이란 이름도 흥미로웠습니다.

느긋하게 목욕을 즐긴 후 건물 바로 뒤에 있는 금정산에서 지인들을 만나 과도한 음식과 술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울에서 온 사람을 위해 미리 준비한 음식이라면 회정식이 더 좋았을 텐데 보쌈정식이라 아쉬웠지만, 역시 부산이라 그런지 서비스로 나온 전복과 회도 어느 정도의 양이 되어 만족스러웠습니다.

 

부산은 지난 몇 해 전부터 눈에 띄게 외관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동래에서도 50층 건물을 서너 개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건물들이 우뚝 솟았고, 해운대에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커피샵에서 이런저런 이야기의 꽃을 피우다가 해운대 숙소로 왔습니다.

서울은 29도인데 24도의 기온이라서 쾌적했습니다.

이튿날에는 부평시장에 갔습니다.

KTX를 타고 오다가 KTX잡지를 보니 부평시장이 100년 되었다면서 특집으로 그곳을 다뤄 가고 싶은 충동이 생긴 것입니다.

국제시장 바로 옆에 자리한 부평시장은 매우 깨끗하고 재래시장의 모습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쇼핑의 장소로 온갖 것들을 팔고 있었는데, 재래시장의 모습으로는 부산어묵, 각종 죽, 팥빙수, 생선튀김 등이 여전히 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깡통시장의 모습으로는 각종 외래 물품들을 팔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과자류가 많았습니다.

여성 옷 상점들도 많았는데, 비교적 디자인이 좋고 유행을 따르는 모습입니다.‘

그곳에서 어묵도 먹고 팥빙수도 먹고 일본 캔디도 사먹으며 시장의 문화를 즐겼습니다.

 

농어, 우럭, 아나고회 등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곳으로 향해 부평시장에서 산 일본산 겨자를 찍어 먹으니 매운 맛이 또한 좋았습니다.

오후 8시30분 기차로 귀경할 것이라고 하니 간단하게 어묵 저녁식사를 준비해주어 위에 과중한 부담을 주는 식사를 하고 기차에 오르자마자 잠에 빠졌습니다.

여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음식물이란 생각이 다시금 들었습니다.

인간의 욕망 중에 식욕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다니!

매우 동물적인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요일 아침, 화초들에 물을 주고 집안을 청소했습니다.

낮 기온이 30도에 오르기 전에 후딱 청소를 마쳤습니다.

지난 38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봅니다.

38시간 동안에 많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꿈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재를 인식하는 건 항상 현재의 순간일 뿐이기 때문에 잠들기 전에 일어났던 일들은 잠에서 깨어나면서 모두 꿈처럼 아련해진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생각의 나무입니다.

생각이 늘 자라고 있습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지난 생각보다 지금의 생각을 우선시합니다.

생각이 많이 바뀔수록 지난 생각은 기억에서도 사라집니다.

지금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만 기억으로 붙잡아둡니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게 되면 오랫동안 붙잡아두었던 기억도 하루아침에 망각이란 휴지통 속에 넣고 맙니다.

달라지지 않는 생각만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게 됩니다.

지금이라도 사랑할 수 있는 과거의 사람은 현재의 기억 속에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역겨운 과거의 사람은 현재의 기억 속에는 없습니다.

만약 남아 있다면 미움의 대상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가고 싶은 과거의 장소는 현재의 기억 속에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나에게는 속초가 그런 장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뒤로는 설악산 앞으로는 동해 바다가 있는 속초를 난 매우 좋아합니다.

곧 그곳으로 여행을 가겠지요.

이렇듯 기억은 현재의 생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 그리운 과거의 사람! 그리고 과거의 장소!

그것은 마음의 위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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