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리운 과거의 사람! 그리고 과거의 장소!
서울과 부산의 KTX 거리는 2시간 40분입니다.
참 작은 한반도의 반 토막이란 생각이 듭니다.
신의주에서 부산까지의 거리 정도가 되어야 한반도의 위상이 걸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구도 마찬가지입니다.
1억은 못 되어도 9천만에 이를 정도가 되어야 문화적으로도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출판업을 하는 관계로 그런 생각이 더욱 절실합니다.
초판을 적어도 4천 부는 발행할 수 있어야 출판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요일 낮에 부산역에 도착하여 간단한 점심식사를 한 후 동래 온천장으로 향했습니다.
부산에 자주 가는 편이지만, 해운대에서 해수온천은 여러 차례 즐겼지만, 동래온천은 처음입니다.
허심청이란 곳에 갔는데, 규모가 매우 컸습니다.
물론 물도 좋았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곳이란 이름도 흥미로웠습니다.
느긋하게 목욕을 즐긴 후 건물 바로 뒤에 있는 금정산에서 지인들을 만나 과도한 음식과 술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울에서 온 사람을 위해 미리 준비한 음식이라면 회정식이 더 좋았을 텐데 보쌈정식이라 아쉬웠지만, 역시 부산이라 그런지 서비스로 나온 전복과 회도 어느 정도의 양이 되어 만족스러웠습니다.
부산은 지난 몇 해 전부터 눈에 띄게 외관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동래에서도 50층 건물을 서너 개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건물들이 우뚝 솟았고, 해운대에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커피샵에서 이런저런 이야기의 꽃을 피우다가 해운대 숙소로 왔습니다.
서울은 29도인데 24도의 기온이라서 쾌적했습니다.
이튿날에는 부평시장에 갔습니다.
KTX를 타고 오다가 KTX잡지를 보니 부평시장이 100년 되었다면서 특집으로 그곳을 다뤄 가고 싶은 충동이 생긴 것입니다.
국제시장 바로 옆에 자리한 부평시장은 매우 깨끗하고 재래시장의 모습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쇼핑의 장소로 온갖 것들을 팔고 있었는데, 재래시장의 모습으로는 부산어묵, 각종 죽, 팥빙수, 생선튀김 등이 여전히 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깡통시장의 모습으로는 각종 외래 물품들을 팔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과자류가 많았습니다.
여성 옷 상점들도 많았는데, 비교적 디자인이 좋고 유행을 따르는 모습입니다.‘
그곳에서 어묵도 먹고 팥빙수도 먹고 일본 캔디도 사먹으며 시장의 문화를 즐겼습니다.
농어, 우럭, 아나고회 등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곳으로 향해 부평시장에서 산 일본산 겨자를 찍어 먹으니 매운 맛이 또한 좋았습니다.
오후 8시30분 기차로 귀경할 것이라고 하니 간단하게 어묵 저녁식사를 준비해주어 위에 과중한 부담을 주는 식사를 하고 기차에 오르자마자 잠에 빠졌습니다.
여행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음식물이란 생각이 다시금 들었습니다.
인간의 욕망 중에 식욕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다니!
매우 동물적인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요일 아침, 화초들에 물을 주고 집안을 청소했습니다.
낮 기온이 30도에 오르기 전에 후딱 청소를 마쳤습니다.
지난 38시간을 돌이켜 생각해봅니다.
38시간 동안에 많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꿈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재를 인식하는 건 항상 현재의 순간일 뿐이기 때문에 잠들기 전에 일어났던 일들은 잠에서 깨어나면서 모두 꿈처럼 아련해진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생각의 나무입니다.
생각이 늘 자라고 있습니다.
생각이 달라지고 지난 생각보다 지금의 생각을 우선시합니다.
생각이 많이 바뀔수록 지난 생각은 기억에서도 사라집니다.
지금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만 기억으로 붙잡아둡니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게 되면 오랫동안 붙잡아두었던 기억도 하루아침에 망각이란 휴지통 속에 넣고 맙니다.
달라지지 않는 생각만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게 됩니다.
지금이라도 사랑할 수 있는 과거의 사람은 현재의 기억 속에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역겨운 과거의 사람은 현재의 기억 속에는 없습니다.
만약 남아 있다면 미움의 대상으로 존재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가고 싶은 과거의 장소는 현재의 기억 속에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나에게는 속초가 그런 장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뒤로는 설악산 앞으로는 동해 바다가 있는 속초를 난 매우 좋아합니다.
곧 그곳으로 여행을 가겠지요.
이렇듯 기억은 현재의 생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 그리운 과거의 사람! 그리고 과거의 장소!
그것은 마음의 위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