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는 도덕철학에서 답을 찾아내는 분명한 방법을 마련해준다

공리주의는 도덕철학에서 답을 찾아내는 분명한 방법을 마련해준다. 예컨대, 저녁 시간을 친구와 함께 지내기로 약속했는데 곧이어 다른 친구에게서 내일 제출할 숙제를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하자. 내가 아니고는 아무도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 먼저 한 약속의 중요성과 친구를 돕는 일의 중요성을 비교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걸 어떻게 할까? 문제가 쉽지 않아 보인다. 두 대안이 지닌 중요성을 어떻게 측정하고 비교할까?
무엇이 이 문제에 대한 좋은 답일까? 공리주의자라면,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끝내게 해줄 명쾌한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건 공리주의자가 올바른 행위를 찾아내는 방법은 한 가지다. 선택할 수 있는 모든 행위의 대안들을 늘어놓고 각각의 대안이 초래할 비용과 효과를 셈하라. 각각의 대안마다 비용과 효과를 비교하여 득실을 셈하라. 비용과 비교해서 효과가 가장 큰 대안이 최적의 대안이 된다. 이처럼 공리주의는 무엇을 할지 가장 효과적으로 찾아낼 방법을 마련해주는데 비용과 효과를 셈하여 비교하는 순전히 경험적인 작업이다. 물론 실제에서는 계산이 생각보다 복잡할 것이고, 각각의 대안마다 얻을 것과 잃을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데 불확실한 요인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문제에 대한 답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
게 되었다. 그 답은 언제나 “어떤 대안이 가장 큰 행복을 가져오느냐?”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이런 접근법은 행복을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 가정했듯이, 모든 도덕적 문제마다 계측할 수 있는 답을 찾을 수 있음을 전제한다.
실제로 공리주의는 얼마나 잘 적용될 수 있을까? 앞으로 이 문제는 더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안락사, 세계적 빈곤, 동물 복지 같은 문제들을 고려하다 보면, 공리주의에 기대지 않을 수 없는 주제를 만난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공리주의는 고통과 복지에 초점을 맞추는 도덕이론이다. 급진적 공리주의자의 견해에서 볼 때, 관습적 도덕은 너무나 많은 관습상의 규칙들로 채워져서 우리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여 세상을 이롭게 이끌어가기가 어렵다. 예를 들자면, 관습적 도덕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신성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일종의 규칙이나 원칙 같은 것에 얽매이는데, 바로 이것이 전체 인간 세계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노력에 걸림돌이 된다. 비록 어떤 인간이 심한 장애를 안고 있어서 먹을거리나 실험용으로 쓰이는 동물보다 지능이 낮다 하더라도, 인간은 인간의 생명에 깃든 가치와 동물의 생명이 가져올 가치에 대하여 나름의 관념을 지닌다. 우리는 요구되는 행위와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행한다면 다만 ‘거룩할’ 뿐인 행위를 구별한다. 그래서 운 좋게 물려받은 것들을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나눠야 할 책임을 못 본 체 넘겨버리기도 한다. 공리주의자들이 볼 때, 여기서 합리적인 해법은 관습적 도덕 아래 만연되어 온 ‘규칙 숭배’라는 관행을 집어던지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실제 문제로 곧장 달려드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반대의 (말하자면, 결과주의론이 아닌 의무론의) 관점에서 보면, 공리주의자의 급진적 접근은 비도덕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공리주의적 접근의 특징은 미리 제외해버리는 행위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무엇을 할지 결정하려 할 때 우리의 행위가 초래할 결과를 예측해보면서 되도록 최선의 결과를 초래할 대안을 선택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떤 특정 범주의 행위를 제외해서 선택 범위를 한정해두는 것은, 우리는 결코 거짓말을 하거나 훔치거나 죄 없는 사람을 죽이거나 고문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미친 짓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들 가운데 어떤 행위라도, 어떤 특정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그런 행위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면, 필요한 경우 필요한 행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없도록 자신의 손발을 묶어두는 꼴이 될 뿐이다. 공리주의자라면 결코 이런 약속을 할 리가 없다. 도덕의 핵심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의무론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사람은 특정 행위를 특정 이유로(예컨대,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 하여) 미리 배제하기 일쑤다. 이들에게는 공리주의적 접근이란 것(중요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라도 쓸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자못 급진적일 뿐만 아니라 무원칙한 것으로 비칠 것이다.
이제 도덕이론의 하나인 공리주의의 이점을 정리해보자. 무엇보다 공리주의는 도덕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설명한다. 공리주의에서 보는 도덕은 현실을 고통과 고난에서 행복과 자유로 이끄는 것이다. 공리주의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설명한다. 그것은 곧 비용과 효과를 셈하여 비교하는 일이다. 공리주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행위에 도덕적 제한을 설정하지 않으며 선을 최대화하려고 한다. 또한, 공리주의는 평등과 공정함에 뿌리를 박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집약하여 이루어진 공리주의는 본질적으로 급진적이고 비평적인 이론이어서 우리의 도덕적 사고와 행위 및 사회제도에 배어있던 관습을 털어내도록 요구한다. 이제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